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03)
탑 코더-103화(103/303)
# 103
오직 하나 ONE
“연락 돌렸습니다. 연봉은 기존의 1.5배 수준을 제안했습니다. 박사수료는 1억 부터, 박사는 1.5억 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비서의 보고에도 딱딱하게 굳어진 고동만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나 확보했나?”
“현재 지원서 30장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 중 박사 학위 수료자가 17명. 박사 학위 소지자가 13명입니다.”
박사 수료는 과정을 이수 했다는 뜻이고 학위소지자는 논문이 통과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 격차는 수년에 이를 만큼 큰 것이었다.
“학위 소지자가 너무 적은데.”
“관련 분야 연구 인력 자체가 소수 입니다. 어중한간 실력자들 데려와 봐야 빅스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최대한 실력 있는 인력들 위주로 컨택 했습니다.”
고동만이 미간을 긁적거렸다.
“대한, 포항공대, 카이스트. 위주로 구성했단 말이지?”
“네. 하버드나 MIT 쪽도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긴 하지만 일단은 국내 대학 위주로 채용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시내 소프트가 미국이나, 중국. 일본에서 관련 인력을 채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고동만도 비서의 의견에 공감하는 바였다. 그러나 한 치의 의구심도 남겨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또 한 번 확인해봐. 혹시 또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예카테리나 팀장은?”
비서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전히 양재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있습니다.”
고동만의 눈짓에 비서가 말을 이었다.
“팀장이 퇴근도 하지 않고, 일을 하니. 밑에 사람들도 눈치가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도로 회사 내 야근을 지양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빅스팀 만은 예외로 돌아가고 있는 모양새라.”
“연구원들의 근로 의욕이 떨어질 수 있겠어.”
“네. 약하지만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자칫 퇴사자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보상은 충분히 주고 있을 텐데.”
“그래도 당장의 불만을 삭힐 정도는 아닐 테니까요. 그리고 급여의 대부분이 인센티브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실제 월급은 포트 사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고동만이 미간을 긁적거렸다. 이 상황에서 퇴사자가 생긴다는 건 치명적인 일이었다. 만약 퇴사자가 시내 소프트로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자네 생각은 어떤가?”
“당장 3개월 뒤를 생각한다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참고 견딜만한 당근을 주는 것이 채찍질을 할 수 있는 명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역시 가장 좋은 당근은 돈 이겠지?
“성공 시에도 그리고 실패했을 때도 돈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동만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양재 R&D 센터.
예카테리나는 점심도 샌드위치로 때우며 연구에 몰두했다. 주변의 연구원들이 질린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이러다가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와이프가 이럴 거면 회사랑 결혼하지 왜 자기랑 결혼했냐고 성화야.”
“나는 지금 여자 친구랑 헤어지면 결혼도 못해. 결혼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야, 진짜 이러기야?”
“너야 말로.”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설전을 벌였다. 예카테리나가 그런 소란을 느꼈는지 모니터에서 시선을 때고 둘을 보았다.
“팩터 테스트 끝났습니까?”
“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주 안으로 체스 게임에 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모델을 완성하려면 해당 모델에 맞는 최적의 팩터 값을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 분명이 말씀 드렸을 텐데요.”
냉기가 풀풀 흐르는 말에 연구원이 울상을 지었다.
“팀장님. 벌써 이 주째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야근은 무리입니다.”
연구원의 반박에도 예카테리나는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해당 팩터를 찾기만 하면 지금 퇴근해도 됩니다. 퇴근하려면 결과를 가져 오세요. 만약 우리가 대결에 지면. 빅스 프로젝트는 이대로 끝. 당신들 도 회사에서 날아가는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퇴근하세요.”
예카테리나의 압박에 연구원들의 울상을 지었다. 말로 해서는 도저히 설득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오늘 들어온다는 신입들.
마침 인사팀 직원이 한 무리의 인원들을 데리고 연구실로 들어섰다.
“말씀 드린 새로운 연구원분들이십니다. 다들 인사 하세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예카테리나가 모니터에서 시선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바로 엔지니어링 작업에 합류 하세요. 자세한 건 저 사람들에게 묻고. 알려줄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독설에 사무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
당황한 인사팀직원들을 비롯해 신입 연구원들을 멀뚱히 서있자 기존 연구원들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뭐, 뭐하세요. 각자 자리에 앉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가만히 서 있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걸 알기에 기존 연구원들이 한 번 더 신입들을 재촉했다.
“흠. 흠. 뭐합니까. 어서 움직이세요.”
그러면서 예카테리나의 눈치를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예카테리나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건 승호가 남기고간 키워드 세 가지였다.
‘TPU, 몬테카를로탐색 알고리즘. 그리고 페타급 데이터’
TPU는 GPU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진 포트의 딥러닝 전용 ASIC(주문형 반도체). 몬테카를로탐색 알고리즘은 게임에서 많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 페타 급 데이터.
이 세 가지를 가지고 도대체 무얼 한다는 말 일까. 너무 궁금했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 세 가지를 이용하면 포트의 델타를 이길 수 있다는 말. 그게 정말 일까.’
누구보다 포트의 델타를 이기고 싶었다. 회사가 포트에 팔리고 델타라는 이름으로 런칭 하면서 그녀는 사내 정치에 휘말려 소위 말하는 ‘팽’ 당했다. 그 치욕을 꼭 되 갚아주고 싶었다.
‘두고 보자.’
그녀는 이를 갈며 연구에 몰두했다.
***
며칠이 지났지만 시내소프트 본사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승호는 우리나라에 회사가 얼마나 많은 지 요 며칠 사이에 알 게 되었다.
-네. 시내소프트입니다. ZONE 서비스 이용문의 말씀이십니까.
-네 알겠습니다.
연속해서 들어오는 문의 전화로 직원들의 업무는 마비 상태였다. 콜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직원들을 채용했지만 아직 교육을 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외주를 주려 해도 문제가 있었다.
자사 직원이 아닌 탓에 서비스 품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었고, 보안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많았다. 보안회사에서 보안 문제가 터진다? 지난번과 같은 사고는 더 이상 사양이었다. 전화를 마친 인사팀 직원이 승호에게 다가왔다.
“대표님. 지난 번 건네주신 인력들에 대해 면접 일정을 잡기 위해 연락을 돌리기는 했는데······.”
직원이 머뭇거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승호가 되물었다.
“그랬는데요?”
“대부분이 면접에 응하지 않겠다고 응답이 왔습니다. 최종적으로 조율된 건 1명에 불과 합니다.”
그 말에 승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한 명이요?”
“연락 주신 건 고마운 데 다른 곳으로 가게 됐다고 합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최근 인공지능 관련 기술을 요구하는 기업이 급격히 늘어났다. 통신사를 비롯해. 스타트업. 정부. 제조업 등등 수많은 기업들이 관련 인력을 채용하고 있어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었다.
“어딘지도 들었습니까?”
“다들 선진 전자 쪽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쪽이 대기업이고, 연봉도 많으니까요.”
선진전자.
승호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진전자라면 국내 최고의 대기업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하필이면 왜 이시기에······.
“전부다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호 특유의 촉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시기에 전부다 선진 전자 입사를 결정했다? 더구나 갑자기 빗발치는 서비스 이용문의는 매그니토의 영향이라고만 하기에는 좀······.’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생각에 잠긴 승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풀리기를 수 차 례. 앞에 있던 직원의 심장도 그때마다 쪼여졌다. 다시 풀어졌다.
‘내가 뭘 잘못 했나······.’
강승호 대표에게 밉보이는 건 사절이었다. 지금껏 중소기업 두 군데를 다녔다.
이번이 세 번째 회사.
연봉.
복지.
사내 분위기.
그 모든 것이 좋았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하면서도 월급은 웬만한 대기업 못 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5년을 근무하면 안식 월이라고 해서 한 달간의 휴가를 준다. 공무원 못지않게 근무기준법을 준수해 야근을 하게 되면 철저하게 수당을 주고, 휴가를 낼 때도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전체 메일을 하나 보내면 끝이었다.
심지어 당일 아침에 보낸다고 해도 아무 문제 될 게 없었다.
‘밉보이면 안 되는데······.’
앞으로 이 회사는 자신이 은퇴할 때 까지 쭉 다니고 싶었다. 승진을 못하거나,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중간에 권고사직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생각을 마친 승호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아, 아직 기다리고 계셨네요. 죄송합니다. 자리로 돌아가 보셔도 됩니다.”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승호의 표정에 겨우 직원이 안심하고 제 자리로 돌아갔다.
직원이 돌아가고 승호는 모니터 앞에 앉았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단 말이지.’
유력한 용의자는 고동만.
갑작스런 이용문의 증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매그니토 이슈가 발생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그때의 배가 넘는 회사에서 문의를 해오는 것 같았다. 그저 자신이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고동만의 언질이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 한 일이었다.
‘나 혼자서는 절대 개발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건가.’
그래서 인력을 선점하고, 회사를 정신없게 만들어 3개월 뒤에 있을 대결에서 패배하게 만들 그런 생각인건가.
자신이 지금까지 겪은 고동만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나.
‘교수님들을 섭외 했으니······.’
김필수는 선진의 제안도 차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미 세 명의 교수와 산학협력 관련 계약서를 전부 작성했다. 명예를 위해서라도 지금 말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교수 세 명 VS 대학원생 20명.
어차피 교수를 섭외하면 교수 밑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은 자동적으로 딸려오는 것이나 마찬 가지였다. 당연히 교수 세 명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사장님. 실 수 하시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자신도 선진의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자료를 한 번 빼내가려고 했던 전력(前歷)이 있었다. 아직 고동만이 벌인 일이라는 것이 확인 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게 정말 사실로 밝혀진다면.
앞으로 선진은 한 발 자국 나아가며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후진(後進)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ONE은 한국을 넘어 세계의 미래를 책임질 인공지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