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06)
탑 코더-106화(106/303)
# 106
오직 하나 ONE
강남역 선진전자 본사.
꼭대기 층에 회장의 집무실이 있었다. 오늘 올라온 결제 문건들을 살피던 회장 김희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현재 대결 진행 중으로 32승 31패로 박빙의 승부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빙 이라.”
“시내소프트의 강승호 대표가 준비해온 ONE 이라는 인공지능의 성능이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대결에서 지게 되면 예카테리나 박사가 사직하기로 했다고?”
“그렇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몇 번이나 만류를 했지만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녀가 떠나게 되었을 때 회사가 받을 타격은?”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는 모두 문서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 내용을 승계한다면 충분히 대체 가능한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그녀가 대체 가능하다 그 말인가?”
그 질문에 비서가 처음으로 뜸을 들였다. 그렇게 수 십여 초가 지나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현재 까지는 그렇게 파악 중에 있습니다. 해당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부 팀장이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선진이 자신감만으로 움직이는 회사 인가?”
연이은 질문.
이건 김희건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증거였다.
“아닙니다.”
“그러면?”
또 이어진 질문에 비서의 입이 바짝 말라왔다.
“죄송합니다.”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비서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김희건이 살짝 눈을 감았다가 떴다.
“대결의 승패와 관계없이 선진은 언제나 이겨야 한다. 명심해.”
“알겠습니다.”
비서는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오늘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서의 그런 생각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었다.
***
양재 R&D 센터.
스크린에는 흑색 기물들이 백색 킹을 둘러싸고 있었다.
-체크 메이트.
라는 소리와 함께.
승패가 갈렸다.
승자는 당연히 흑색.
시내소프트의 승이었다.
79전 41승 38패.
시내 소프트가 3승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예카테리나의 표정에서는 냉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체크 메이트.
또 다시 흑 기물의 승.
승호 팀이 이겼다는 말이었다. 빅스팀 연구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진단 말이야.”
“시키는 데로 다 했으면 결과라도 좋아야 하는데.”
“엄청난 실력자라 더니. 이제 겨우 1년 개발 한 사람에게도 질 정도였어?”
“그래 놓고는 지면 저쪽으로 넘어가기로 했다면서?”
“자기도 부끄럽겠지.”
넓은 대강당.
사람이 없었기에 연구원들의 소곤거림은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체크 메이트.
이번에도 승호팀이 이겼다.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연구원들이 싸늘한 표정으로 예카테리나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들들 볶더니 아주 꼴좋네.”
“연구 혼자 하는 것처럼 굴 더니.”
“난 차라리 졌으면 좋겠어. 이참에 저 여자가 떠나는 게 오히려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 일 수도 있으니까.”
연구원들의 수군거림에 승호가 씁쓸한 표정으로 예카테리나를 바라보았다.
‘실력은 확실할지 몰라도··· 리더로 서의 자질은 없나 보군.’
연구원들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평소 그녀의 행동이 어쨌을지 능히 짐작 하는 상황이었다. 그 사이에도 경기는 진행되었고, 또 다시 승호가 승리를 쟁취했다.
결국 예카테리나가 손을 들었다.
“잠시 브레이크 타임 요청합니다.”
“알겠습니다.”
경기 도중 각각 총 세 번의 휴식 시간을 요청할 수 있었다. 각 휴식시간은 10분.
그 동안 각 팀의 인공지능을 점검 하고 할 수 있다면 성능을 향상 시키자는 의도였다. 휴식을 요청한 예카테니라가 연구원들을 보며 말했다.
“38승 41패. 지금 부터는 다시 플랜 C로 구동합니다.
그러나 그 말에 대답하는 연구원이 없었다. 예카테리나가 의아함을 담아 다시 말했다.
“뭐하세요? 어서 움직이지 않고.”
그제야 연구원들이 어기적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표정에는 하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3개월간.
채찍만 휘두른 대가였다. 그때 한 연구원이 궁 시렁 거렸다.
“어차피 질 것 같은데 마지막 까지 사람을 쥐어짜는 구나 쥐어짜.”
아직 한국말이 미숙한 예카테리나였지만 어감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쥐어짤게 없어서 이런 상황에 처했다는 걸 아직도 모르 보죠?”
그 한 마디에 연구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금은 제가 말한 팩터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심층 신경망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자신에 대한 원망을 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연구원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이 상황이 제 탓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예카테리나의 눈매가 한층 더 날카롭게 변했다.
“일정부분. 그렇게 불평할 시간에 제가 시간 일이나 똑바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제 휴식시간도 겨우 7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러자.
연구원이 걸리적거리는 의자를 밀치며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잘 났으면 어디 혼 자 해보세요.”
그렇게 한 사람이 박차고 나갔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예카테리나는 동요하지 않고 말했다.
“뭐해요. 어서 마무리 하지 않고,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연구원들이 질린 얼굴로 예카테리나를 보았다.
“저도···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저도 이만.”
“저도······.”
그렇게 연구원들이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최종적으로 남아 있는 건 서 너 명. 예카테리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려면 빨리 가세요. 걸리적거리지 말고.”
***
고동만이 지친기색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설마, 설마 했는데······.”
뒷좌석에서 함께 대결을 보던 비서가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김필수 교수님은 저희도 몇 번 컨택 했는데 산학협력을 하지 않고 오로지 원천기술 연구에만 몰두한다고 하셔서.”
“저 기술은 탐이 났나 보지.”
“······.”
“허춘수 교수도 깐깐하기로 소문난 교수인데 이 자리까지 따라온걸 보면 꽤나 승호를 아끼나봐.”
“유니콘 육성 프로젝트 때부터 인연을 맺어오면서 강 대표를 아낀다고 합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 교수가 되라고도 권한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거기에 포항공대 박성대 교수까지 합류 했으니 말 다했지.”
“이대로 예카테리나 박사가 넘어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이걸 회장님께서 아시면······.”
고동만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진에 몸 바친 세월이 벌써 30년. 그런 이곳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사람은 회장 밖에 없었다. 비서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전에 제가 전면에 나서서 처리하겠습니다. 사장님까지 드러날 일은 없을 겁니다.”
고동만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예전에 했던 방법을 사용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단 말이지. 더구나 인공지능은 기술의 결정체.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벌집을 건드리는 꼴이라.”
“마운틴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고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운틴.
선진이 야심차게 시작한 스마트폰 전용 OS 프로젝트 이름이었다. 타 회사의 OS 관련 인력을 대거 빼와 시작했지만 이제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동만이 자조적으로 중얼 거렸다.
“나는 이미 제조업 체질에 길들여진 사람. 내가 소프트웨어를 한 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일 수도 있겠지.”
“사장님······.”
“이 참에 건의를 드려야겠어. 소프트웨어 쪽은 완전히 분리해야 할 것 같다고. 그리고 거기에 맡는 인재를 뽑아 관리를 맡겨야 한다고.”
그때 고동만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고동만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대화를 이어 나갈수록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내 전화를 끊고.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만약 예카테리나 박사가 넘어가게 된다면······.”
그 뒷말을 들은 비서의 표정도 더할 나위 없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애초에 질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대결은 승호의 생각보다 더 싱겁게 끝나버렸다.
-89전 51승 38패.
90번이 지나기도 전에 결과가 나와 버린 것이다.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예카테리나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희미해진 시야 사이로 자신을 이긴 남자가 다가왔다.
“수고 많았습니다. 예카테리나 박사님.”
그리고 미소를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승자.
자신은 패자.
웃을 수 있는 건 승자니까. 승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앞으로 함께 ONE 프로젝트를 포트의 델타를 넘어서는 인공지능으로 만들어 봅시다.”
예카테리나는 그저 멍 하니 그 손을 보고 만 있었다. 승호가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거둬들였다.
“하하, 악수는 나중에 할까요?”
예카테리나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찰나.
처음 보는 낯선 인물이 승호에게 다가왔다. 연구원들은 익히 아는 얼굴인지 하나 둘씩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남자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진전자 경영전략실 한종균입니다.”
승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남자를 보았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오늘 대결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대표님의 기술력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오히려 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칭찬을 하고 있었지만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오히려 불길한 생각이 엄습했다.
“뭐, 이런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긴 한데··· 어차피 다 알게 될 테니 그냥 말씀 드리겠습니다.”
손짓 하나에서 눈빛 까지 자신감이 철철 넘쳐흘렀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카테리나 박사님과의 계약에 따라 박사님께서 어딜 가든 자유입니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지요. 그러나.”
한종균이 승호를 보았다. 승호도 한종균을 보고 있었다.
“만약 예카테리나 박사님께서 시내 소프트로 간다면 지금까지 선진과 시내소프트 관계에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선 탑재되어 제공되는 ZONE 서비스가 빠지고, 전사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ZONE 서비스가 부분적으로 적용 된다던지 하는 뭐. 그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명백한 협박.
선진이 이대로 예카테리나 박사를 보내 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역시나 예상 대로였다.
“서비스 사용을 중지하겠다는 말씀으로 들리는 군요.”
한종균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똑똑한 분아라 그런지 대화가 편합니다.”
한종균의 말대로 된다면 현재 시내 소프트 매출의 70%가량이 날아간다. 그럼에도 승호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어차피 ZONE은 ONE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있는 서비스. 더구나 선진이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판로는 충분합니다.”
순간 한종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내소프트 수익원에 대한 분석은 이미 끝마쳤다. 그러나 저 자신감 있어 보이는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팽팽한 신경전.
승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대강당 분위기가 빠르게 얼어붙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예카테리나가 입을 열었다.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델타를 이길 수 있는 인공 지능 개발이 여기에 들어온 목적이었으니까요. 전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어디든 갑니다.”
그녀의 말에 한종균이 빠득 이를 갈았다. 이대로 그녀를 보내게 된다면 빅스는 표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부 팀장이 있다지만 지금까지 업적으로만 봐서는 글쎄 라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 한종균이 자리에 앉아 있는 고동만 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대로 가게 놔둘 거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일.
결국 고동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결이 벌어진 곳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