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14)
탑 코더-114화(114/303)
# 114
치고 박고
한국 인터넷 진흥원.
국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보안 사고는 일 차적으로 한국 인터넷 진흥원 KISA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선진에서 벌어진 일도 마찬 가지였다.
“MBR 이 파괴돼?”
“네. 그래서 선진 데이터 센터에 들어가 있는 서버들이 무작위로 죽어나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3.20 사이버 테러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않나?”
“맞습니다. 그때와 거의 동일합니다. 빨리 해결 하지 못하면 예약 피해액이 수 백억을 넘어 갈 수도 있습니다.”
“현재 까지 추산 된 피해 내용은?”
“다행히 악성코드가 선진 내부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까지는 큰 피해가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현재 까지는 20대 정도의 서버가 파괴된 걸로 보고되었습니다.”
부하직원의 보고를 듣던 이정훈이 마른 침을 삼켰다. 2013년 3월 20일에 벌어진 사이버 테러.
그때도 MBR 영역이 파괴 되는 사이버 테러가 발생했다. 당시의 테러로 금융권, 언론사, 대기업의 시스템이 마비돼 추산 피해액만 8천억을 넘었다. 이정훈의 머릿속으로 그때의 상황이 스쳐지나갔다.
“강 대표 에게 지원 요청할까요?”
“지금 시내소프트와 선진의 관계가 그리 좋질 않아.”
“그래도 돈을 지급한다고 하면 도와주지 않을까요?”
“흐음······.”
이정훈이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생각에 잠겼다. 직원의 보고 내용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자 부하직원이 이정훈을 재촉했다.
“본부장님. 지금 한시가 급합니다. 일단 강 대표에게 빨리 연락을 해서······.”
듣고 있던 이정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강 대표. 강 대표. 이제는 일만 터지면 그 이름부터 찾는 군.”
“그··· 그게······.”
“인터넷진흥원이 언제부터 그렇게 다른 곳의 도움을 받았나? 자체 인력으로 해결할 생각부터 해야지. 도대체가 쯧.”
이정훈이 혀를 차며 말하자 직원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 댔다.
“뭐해. 어서 나가서 해결하지 않고.”
“알겠습니다.”
직원이 나가고, 이정훈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놓친 부분.
뭔가 아주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 같은 직감.
그렇게 5분여가 지났을까. 이정훈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 거렸다.
“매그니토?”
대부분의 악성코드나 랜섬웨어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전염된다. 그러나 매그니토는 달랐다.
오로지 중국.
그곳만을 공격했다. 이번 사태도 비슷했다. 아직 까지 선진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감염 사례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게 만약 매그니토의 변형된 형태라면.
오직 선진만이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매그니토와는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전염력.
매그니토라면 지금쯤 수백 대 이상의 PC에 전염 됐어야 하는데.
“설마······.”
태풍전의 고요처럼 힘을 응축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만약 정말 그렇다면.
선진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야 할지 모른다.
***
새롭게 옮긴 청담 쪽 사무실.
승호가 이곳을 사무실로 정한 가장 큰 이유는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 뷰 였다.
넘실넘실 흐는 강물.
그 옆을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승호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예카테리나가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적어 나가고 있었다.
“현재 델타는 인공지능 단계 중 3단계라 할 수 있어요. 3단 계는 특정 주제에 대한 전문가. 이 말은 즉 바둑 전문가. 체스 전문가. 법 전문가. 이런 식으로 델타가 작동한다는 말 입니다.”
승호의 부탁으로 진행되는 예카테리나의 인공지능 세미나.
거기에는 회사 직원들을 비롯해 승호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허춘수, 김필수, 박성대 교수도 자리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몇 년 전 델타가 바둑으로 인간을 이길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쯤이면 4단계. 범용 기계 단계로 들어섰을 거예요. 즉 하나의 델타가 인간처럼 바둑, 체스, 법, 회계 등등 다양한 도메인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겁니다.”
그때 한 직원이 손을 들려다, 움찔 하며 내렸다.
-그것도 몰라서 질문이라고 하는 겁니까.
-뇌는 생각을 하라고 달려 있는 겁니다.
-하아··· 답답하네요.
질문을 할 때 마다 예카테리나에게 들었던 소리.
그 소리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덕분이었다. 그 모습을 본 승호가 대신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러면 3, 4단계의 가장 큰 차이는 하나의 델타가 여러 도메인에 대한 전문가가 되느냐 아니냐. 인가요? 그렇게만 보면 컴퓨터가 한 대인지. 아닌지. 그 차이와 그리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데.”
그 질문에 예카테리나가 찌릿 승호를 보았다.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건······.”
순간 예카테리의 머릿속으로 며칠 동안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한 직원의 질문에 -하아··· 그걸 질문이라고 하세요?
라고 말하자.
승호가 대뜸 손을 들더니 물어왔다.
-최근 포트 브레인에서 충실도 강화학습에 관한 논문을 발표 했는데 읽어 봤어요?
-······.
-조금 답답하네요. 고품질 소량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학습 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한 논문입니다. 인공지능 개발자라고 말하려면 필히 참고해봐야 합니다.
예카테리나라고 해서 싫은 소리를 듣는 게 좋을 리가 없었다. 그것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애써 변명해 보았지만.
-해당 논문을 읽지 않아도 이미 예전에 비슷한 내용의 논문이 있었습니다. 강화학습 방법론이라는 논문으로······.
예카테리나가 채 말을 다 하기 전에 승호가 끊고 들어갔다.
-그 내용에 나와 있는 방법론은 우리가 사용하는 활성화 함수에 적용 할 수 없습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하는 거 아닐까요.
-······.
다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예카테리나도 더 이상 승호의 질문에 반박하지 못했다. 예카테리나도 눈치는 있었다.
-질문을 무시 하지 마라.
예카테리나가 순순히 답을 내놓았다.
“효율적인 면에서 아주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가정해 볼게요. 어딘가에 인공지능이 필요합니다. 해당 주제에 관한 인공지능이 개발 되어 있지 않으면 개발해서 납품을 해야 해요. 그러나 4단계의 인공지능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해가 가시나요?”
승호의 시선은 강의를 듣고 있는 직원 그리고 교수들에게 가 있었다. 그들이 이해한 기색을 보이자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해가 갑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부탁드려요.”
예카테리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다시 펴졌다.
그렇게 30여분이 지나고 나서야.
예카테리나의 강의 세미나가 끝났다. 세미나를 듣던 사람들이 전부 나가고, 예카테리나가 컬이 들어간 금발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이제 마음에 들어요?”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어요. 앞으로는 직원들이 쉽 게 질문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예카테리나가 냉소적으로 중얼 거렸다.
“굳이 전부를 끌고 갈 필요는 없잖아요. 이해하는 사람들만 데려가면 되지.”
“잠재력을 가진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최소한의 기회는 줘야 합니다.”
예카테리나의 미소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
“한국에서 태어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기회를 잡은 거라는 생각은 못하나 보죠?”
“그런 식이면 이미 예카테리나도 큰 기회를 잡은 거군요. 뛰어난 머리를 유전으로 타고 났으니.”
“······.”
“세상을 적대적으로 보기만 하면 누구도 옆에 남지 않을 겁니다.”
“전 혼자서 할 수 있어요.”
승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면 오늘 설명 드리려고 했던데 촉삭 시스템 부분은 따로 말씀을 안 드려도 되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도 개발 할게 많아 바쁜 참이었는데.”
예카테리나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승호가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한 번 더 말했다.
“정말 갑니다?”
“잠시······.”
“네?”
“오늘······.”
승호가 손을 펼쳐 귀에 대며 다시 물었다.
“뭐라고요? 안 들려요.”
“설명 해주고 가세요. 약속 했잖아요!”
승호가 다시 몸을 돌리며 픽 웃어보였다.
“뭐,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승호가 보드마카를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둘만이 이해 할 수 있는 수식들이 화이트보드를 꽉 메웠고, 열띤 토론이 한 시간을 넘어 저녁 시간 까지 지속 되었다. 요즘 들어 매일 시내 소프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럴수록 ONE은 차츰 고도화 되고 있었다.
***
선진전자 대회의실.
고동만이 잔뜩 인상을 쓴 채 자리에 앉아 직원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랜덤 리붓 현상 D-7 일째. D-4일째부터 발생한 MBR 파괴로 서버 41대, 직원 PC는 50대가 정지한 상태입니다. 총 피해 91대. 피해액 2500만원입니다.”
생각보다 피해액이 미미했다. 직원의 보고가 이어졌다.
“재부팅으로 인한 직원들의 불만 사항 301건. 서비스 정지 사태가 198여건 발생했습니다. 이는 평소보다 각각 20여배 많은 건수입니다.”
“단순 물리적 피해는 미미하나 무형적인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서비스 중지에 따른 고객 신뢰도 하락으로 추후 고객 이탈이 가시화 될 것으로 추정되며, 문제가 계속 정체 되어 있으면 직원들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그러자 함께 자리에 있던 이정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피해액을 너무 보수적으로 잡았습니다.”
자리에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이정훈을 향했다. 이정훈이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중국에서 발생했던 매그니토라는 랜섬웨어 기억하십니까?”
“강 대표가 해결 한 건 이라면 기억합니다.”
“당시 매그니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중국에만 머무르며 타 지역에는 피해를 주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선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매그니토의 파괴력을 알기에 대회의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만약 피해까지 유사하다면 지금까지 발생한 2500여만의 피해는 일종의 테스트 단계에 불과할 겁니다.”
고동만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정훈을 보며 물었다.
“이게 그 정도의 전염력을 보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정훈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미국, 중국 법인에서도 재부팅 현상이 나타나는 중이라 들었습니다. 이는 곧 미국, 중국 법인에서도 MBR 파괴가 나타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염은 이미 되었고, 악성코드가 내부에서 스스로 발전하고 있는 거라면 이해가 되십니까?”
“흐음······.”
한국에서 보안 관련으로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KISA의 본부장이 하는 말이었다. 직원들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태풍전의 고요함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중국에서도 불과 일주일 만에 수백만 대의 PC를 전염 시킨 놈입니다. 그런데 선진에서는 겨우 91대를 정지시켰다? 숫자에서 너무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그러자 직원 한 명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야 중국보다 우리 선진전자의 보안이 더 철저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정훈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태풍전의 고요가 끝나고 진짜 태풍이 몰아닥치게 되면.”
이정훈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비서가 전화를 받더니 황급히 고동만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내 참담한 표정으로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방금 선진데이터시스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데이터센터의 전원이 원인불명 이유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보조전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동하지 않아서. 데이터 센터 내부 전체 서버가.”
이정훈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재부팅 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만약 이게 선진에서 운영하고 있는 반도체, 스마트폰 제조 공장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전화를 받던 비서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다시 고동만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용인 공장입니다. 라인 하나가 원인 불명으로 멈췄다고 합니다.”
라인 하나가 멈추면 발생하는 피해액은 수백억.
피해액이 단 숨에 100배 이상으로 뛰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