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15)
탑 코더-115화(115/303)
# 115
치고 박고
한종균의 기분은 아침부터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뭐? 이직을 안 해?”
“네. 연봉 1억에 인센티브 +a를 제시 했는데도 오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
“아직 회사에서 배울게 많고, 또 성장 가능성이 높아 자신이 받은 스톡옵션이면 그 보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콰앙!
한종균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서류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래서 겨우 한 명 섭외 했다? 그것도 입사한지 1년차에 학교도 서울 하위권 대학 나온 놈을 6000씩이나 주고?”
앞에 있던 직원이 머리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한종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뒷목이 뻣뻣한 느낌에 급히 혈압 약을 털어 넣었다.
“휴우······.”
“헤드헌터들이 링크드 인에 올라와 있는 시내소프트 직원 대부분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여기 있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굳이 거길 가냐며.”
“그래서 앞으로 계획은?”
“일단은 상대 반응을 살펴보면서······.”
“그걸 지금 계획이라고 가지고 왔나?”
“죄, 죄송합니다.”
“자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알고 있나?”
그러나.
직원은 이번에도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구해준 소스는 어떻게 됐어?”
“연구원들이 분석 해본 결과.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테스트 코드라고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분석 가치가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아··· 미국 쪽에 나가 있는 로비스트는?”
“보안 관련해서는 국방부 쪽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편이라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중국에서는?”
“중국 쪽에서도 ZONE 서비스 성능이 기존 보안 솔루션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업체를 바꿀 생각은 딱히 없다는 연락이······.”
콰앙!
콰앙!
또 한 번 책상이 들썩였다. 한종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내 뒷목을 움켜잡으며 쉼 호흡을 시도했다. 놀란 직원이 급히 부축하며 말했다.
“시, 실장님 괜찮으십니까?”
“도대체 되는 일이 없어.”
“공장 라인 쪽에 생긴 문제도 아직 해결이 안 되서 품질 팀에서 난리가 난 모양입니다.”
“아직도 해결이 안 돼?”
“네. 당시 왜 라인 쪽이 멈춘 건지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고 사장님께서는 악성코드가 원인이라 주장하시는 상태이고요. KISA에서도 해결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지만.”
“있지만?”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씩 그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한종균 앞에서 승호의 이름은 금기였기에 직원은 그 이름으로 대신했다.
“또?”
“네.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쪽과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뉜 상태입니다.”
“분명 고동만은······.”
“맞습니다.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쪽입니다. 곧 회장님이 판단하실 것 같습니다.”
“도움을 요청해도 그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을 텐데.”
“만약 회장님께서 판단했을 때 그쪽에서 나서지 않으면 고 사장님도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한종균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나마 들을만한 소식이군.”
“계속 동향 파악해서 보고해. 이번에야 말로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으니까.”
꾸벅 고개를 숙인 직원이 나가고, 한종균이 또 다시 어디론 가 전화를 걸었다.
***
인공지능 성능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여러 논문에서 내놓고 있지만 아직 세계에서 인정되는 정답은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연구소에서 현재 인공지능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그 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이 각종 기관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참가. 상대적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국제패턴인식협회(IAPR)의 문자인식 테스트 참가 시작 합니다.”
문자인식 테스트.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서 문자를 어느 정도의 정확도로 읽어내는 지를 확인하는 작업으로 최근 인터넷을 통한 신분 확인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기술이었다.
“현재 1위는 넥스터. 95.1%의 인식률입니다. 우리 목표는 97%. 넥스터를 이기고 1위가 되는 겁니다.”
승호의 말에 예카테리나, 백채원. 고동수 그리고 허춘수의 추천으로 합류한 대학원생들이 긴장된 낯빛으로 모니터에 집중했다. 준비가 된 걸 확인한 승호가 인터넷 상에서 참가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자 화면에 링크 하나가 나타났다. 해당 링크를 클릭하자 수천 장의 사진이 담긴 압축 파일이 다운로드 되었고, 승호가 그걸 다시 ONE 시스템에 업로드 시켰다.
대회 규칙은 간단했다.
시스템에서 나온 결과를 다시 이미지 별로 국제패턴인식 협회 사이트에 업로드 하면 기존의 정답과 확인해 결과를 내놓는다. 1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최종 결과가 나오고 바로 순위에 적용되는 것이다. 모니터링 화면을 보던 백채원이 말했다.
“이미지 업로드 완료. 분석 시작 합니다.”
인간이 이미지에서 문자를 확인하는 건 간단하다.
-강승호.
이렇게 써져 있는 글자를 그대로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해당 이미지에서 글자를 읽어내는 건 간단한 기술이 아니다. 일단 이미지에서 텍스트를 추출 하고, 해당 텍스트가 글자 형태가 맞는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중 후자의 기술이 인공지능이 하는 일.
물론 전, 후자 전부 어려운 기술이긴 했다.
“10% 분석 완료 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여분 가량입니다.”
승호도 초조한 표정으로 모니터링 화면을 보고 있었다.
“50% 분석 완료 했습니다.”
고동수가 두 손을 꼭 붙잡으며 중얼 거렸다.
“제발······.”
“90% 분석 완료 했습니다.”
백채원의 목소리에 승호도 마른 침을 삼켰다. 내부에서도 몇 번 테스트를 거쳤다. 그러나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테스트하는 건 처음이었다.
“100% 완료. 결과 나왔습니다.”
승호는 결과를 다시 대회 사이트에 올렸다.
-1번 이미지 I love you 정답.
-2번 이미지 Let’s go on a trip. 정답.
-3번 이미지 I need some rest. 정답.
······.
대회 사이트에서 확인된 결과가 빠르게 올라왔다.
정답.
정답.
정답.
그렇게 끊임없이 정답이 나온 결과.
-1위 시내소프트 95.7%.
비록 목표치에는 미달 되었지만 1등을 차지 할 수 있었다. 고동수는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대, 대표님. 1등입니다.”
“우리 목표치 보다 1.3% 부족해. 예카테리나 박사. 원인 분석 됐습니까?”
ONE에서 뿜어내는 로그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던 예카테리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몬테카를로 알고리즘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정확도에 관여하는 매개변수를 적용한 게 1.3%의 정확도를 하락 시킨 요인 의 9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승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러면 그쪽 부분 튜닝을 개발 일정에 포함 시키고. 다음은 스탠포드 사이트에서 상시 진행하는 스쿼드 인가?”
스탠포드 스쿼드.
연중 상시 인터넷 상에서 진행되는 기계독해 대회 중 하나로 제시 된 웹 문서를 분석해 특정 질문에 대한 답을 제출 하는 방식이었다. 최근 글로벌 AI 기술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유사한 대회가 우후죽순 생기는 중이었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2개월 동안 1위를 차지한 곳은 선진의 빅스입니다.”
빅스라는 말에 예카테리나가 움찔 거렸다. 승호가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러면 더더욱 1등을 해야 겠군요.”
승호가 익숙하게 마우스를 움직여 로그인을 하고 365일 24시간 상시 열리는 스탠포드의 스쿼드에 참가했다.
***
비서가 황급히 고동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장님 오더 내려 왔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뭐하나. 아예 연락이 닿질 않는데.”
“저도 몇 번 시도 해봤지만. 사내 중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 일절 외부 연락을 끊어 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전화도 안 받는 거였군.”
“설마 아드님도······.”
고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까지 문제가 생겼어. 회장님께서 합리적으로 판단을 하신 거겠지.”
“방문 문의를 넣어 볼까요?”
“그 전에 어떻게 설득할지 복안을 세워 놔야지. 최근 청담으로 사무실을 옮겼다고?”
“네. 500억 가량에 매입했다고 합니다.”
“그걸 보면 돈은 이제 충분한 것 같은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더 많은 돈을 원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돈도 돈이지만 강 대표를 설득 할 수 있는 다른 방안도 마련해야 돼. 언제나 플랜 B는 필요하니까.”
“돈이 아니라면 최근 시내 소프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공지능 개발이니. 그와 관련된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 설득이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예카테리나 박사까지 넘어 간 마당에 우리가 도움을 줄 게 있을까.”
“데이터. 선진에서 엔진 S를 통해 매일 쌓이는 사용자 데이터를 제공해 준다고 하면. 꽤나 군침을 흘리지 않을까요.”
“데이터라······.”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데이터는 필수. 델타가 최초 포트에 인수된 주요 이유 중 하나도 포트의 데이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검색 창, 튜브넷 등등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데이터.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데이터가 곧 돈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고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도 같았다. ZONE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도 인공지능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함이라고. 생각을 마친 고동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대기 시켜.”
차에 올라탄 고동만은 이동하면서도 연락을 취해 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도, 승호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렇게 까지 연락을 받지 않은 적은 없었는데······.
아마 최근 아들이 밤늦도록 야근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상념에 젖어 20분쯤 지나고, 시내 소프트 본사에 도착했다.
8층짜리 빌딩.
가산 디지털단지의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여기 까지 왔다.
앞으로 10년 뒤.
그가 어디 까지 갈지 자못 궁금해졌다.
“직원에게 연락을 취해 두었습니다. 들어가시죠.”
고동만이 비서를 따라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선진의 사장이 직접 온다는 말에 황호근이 내려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만입니다.”
“하하, 네. 이렇게 다시 뵙게 되는 군요.”
“대표님이 지금 주요 프로젝트 개발을 진행 중이어서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들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다리겠습니다.”
고동만의 말에 황호근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기다림’은 자신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반대 상황이 된 것이다. 황호근은 고동만을 프로젝트 룸 앞까지 안내해 주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지와 함께 상시 대기 경비원이 직접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유리는 선팅 되어 있어 외부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프로젝트 룸 안쪽에서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결과 나왔습니다.”
익숙한 목소리.
바로 고동만의 아들 고동수였다.
“빅스를 꺾고 1등입니다.”
그리고 이어 들리는 승호의 목소리.
“그러면 우리가 석권한 대회가 벌써 5개. 이 정도면 ONE이 강화학습에 완전히 적응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마지막은 예카테리나 였다.
“델타와의 대결 기대해도 되겠어요.”
고동만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