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16)
탑 코더-116화(116/303)
# 116
치고 박고
승호와 고동만 단 둘이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고동만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썩어 들어갔다.
“저희 직원 한 명이 선진전자로 이직을 한다고 하더군요. 4명 정도는 이직 제안을 받았다며 회사에 알려 왔습니다.”
고동만은 타는 듯 한 목마름에 벌컥 거리며 앞에 놓여 있는 물을 마셨다.
“ZONE 앱은 한 달 전부터 엔진 S에서 선 탑재가 제외 되었고, 선진 전자 협력사들은 일제히 서비스 사용 취소를 통보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선진이 취했던 조치들이 승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 중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도 미처 듣지 못한 내용도 있었다.
‘한종균 이 자식이.’
직원을 빼가려 했다는 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얼마 전에는 IDC 센터의 전원이 갑자기 나가 ZONE 서비스가 중단 될 뻔 한 일도 있었고··· 이 모든 일을 우연이라 생각하기에는 지금까지 제가 선진과 너무 많은 일을 해 왔습니다.”
에둘러 하는 말에 고동만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거기에 저희 쪽 개발 서버를 해킹하려 했습니다.’
승호는 굳이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저 고동만이 찾아온 것을 보고 확신했을 뿐이다.
자신이 쳐놓은 덫에 걸렸다. 승호가 그런 고동만을 보며 말을 이었다.
“사장님께서 저와 회사를 위해 힘써 주신 건 기억하고 있지만 그 동안 저도 적지 않은 은혜를 갚았습니다.”
명백한 거절 의사.
그러나 고동만은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적당한 대가를 지급할 생각이야.”
“적당한 대가로는 부족합니다. 터무니없는 대가 정도는 되야. 말씀 하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길 것 같습니다.”
마른 침을 삼킨 고동만이 비서에게 건네받은 자료를 내밀었다.
“여기 엔진 S를 통해 들어오는 데이터 목록이네.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야. 아마 ONE을 개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긴장한 표정으로 승호를 바라보았다.
데이터.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
이거라면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가득 서려있었다.
그러나.
승호는 탁자위로 올라온 자료를 다시 고동만이 있는 쪽으로 내밀었다.
“ONE은 더 이상 대량의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고동만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승호의 대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에 침착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3차원 환경에 적용 할 수 있는 강화 학습에 성공했다는 말인가?”
3차원 환경.
최초 승호가 만들어 발표한 ONE은 2차원에서만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벽돌 깨기 게임이 대표적인 2차원 형태.
강화학습하는 인공지능이 현실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3차원 환경에 적용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3차원 환경에 적응 하게 되면 더 이상 대량의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다. 인간이 현실의 모든 지식을 습득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듯이.
“이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럼없이 나눌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승호의 정중한 거절에 고동만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긴··· 기업의 기밀 정보에 속하는 부분이니.”
“제가 아니어도 결국에는 해결하실 겁니다. 선진에도 우수한 인력이 많이 있으니.”
“그러나 시간이 걸릴 테지. 그리고 그때 까지 생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고. 투자도 싫다. 데이터도 싫다. 그러면 이번에도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겠네.”
“제가 중국의 매그니토를 해결하고 받은 대가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고동만이 고개를 저었다. 추측성 기사는 있지만 실제로 얼마가 지급 되었는지는 중국과 승호만의 비밀로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동만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무조건 그보다 많이 지급하겠네.”
“너무 쉽게 말씀 하시는 군요.”
“돈이라면 자신 있으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승호가 입을 열었다.
“한 장 입니다.”
고동만이 되물었다.
“10억? 하하. 그 정도는 충분히 지급하지. 지난 번 5G 네트워크 장비 조언 때 보다 싸지 않은가. 하긴 그때 보다 빨리 일이 끝나긴 할 테니까.”
그러나 승호가 고개를 저었다. 고동만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배, 백억? 그 정도는··· 내부 상의를 해 봐야겠지만 지급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네.”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100억.
중국에서 지급하긴 했지만 그건 국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기업이 개인에게 한 가지 일을 해결하는 대가로 100억을 지급한다?
고동만의 기억에 단연코 그런 일은 없었다. 이번에도 승호는 고개를 저었다. 고동만이 두 눈을 부릅떴다.
“백억은 중국에서 받은 돈보다 적은 액수 구요.”
중국에서 받은 돈 보다 적다. 그 말이 의미하는 명확했다. 승호가 말하는 한 장은.
“······.”
고동만은 차마 입 밖으로 그 액수를 꺼내지 못했다. 이건 터무니없는 수준을 넘어 그냥 미쳤다는 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승호는 너무나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제 개인 법인을 별로도 만들어 두었습니다. 계약 하실 마음이 있으면 그쪽으로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자네 진심인가?”
“저도 한 기업의 대표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했던 말 중 허언이 있었습니까?”
승호의 반문에 고동만이 입을 한 일자로 다물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다. 그게 더 무서운 일이었다. 고동만이 겨우 입을 열었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지 말게.”
“그 강. 이미 건넜습니다.”
개발 서버를 해킹해 소스를 빼가려 했다. 선을 넘은 건 저 들. 그걸 이대로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자네 정말······.”
“구구절절이 과거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승호가 입을 닫았다. 고동만도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천 억 이라니.’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고동만이 떠나자마자 황호근이 최기훈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왔다. 둘 모두 걱정이 가득했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기에 고 사장님이 여기 까지 와서.”
“선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뭐, 지금까지처럼 제게 도와달라고.”
“그래서요?”
“싫다고 했습니다.”
“네?”
“제가 선진의 직원도 아니고, 언제까지 선진에서 생긴 문제에 대해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문제는 해결 될 겁니다. 선진도 작은 기업이 아니니 어떻게든 하겠죠. 물론 그 사이 큰 피해를 입게 되겠지만.”
“우리를 적대적으로 보게 되잖아. 한국에서 선진에게 밉보여서 기업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너··· 아니. 대표님이 잘 아시면서.”
“앞으로 5개월 후면 포트와 대결이 있습니다. ONE에 집중해도 시간이 부족해요.”
“그, 그야 그렇지만.”
“언제 까지 끌려 다닐 수는 없습니다. 비록 이번 일은 빠르게 해결 한다 손 치더라도. 다음에 또 문제가 생겨 제게 요청했을 때. 그때 만약 1, 2개월 안에 끝날 일이 아니 라면요.”
승호의 질문에 둘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승호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제는 우리 일에 집중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선진에 밉보여서 얻을 수 있는 피해보다 크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제야 둘은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못했다.
저녁시간.
승호가 슬쩍 고동수를 보며 말했다.
“고 사장님이 꽤 화가 났을 수도 있어.”
고동수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 일이. 제게는 제 일이 있으니까요.”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선진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자기들 일 해결하느라 바쁘겠지.”
“그 이후 에는요?”
“그 이후에는··· 우리도 그들이 건들 수 없을 만큼 커버리면 돼. 선진이 금현이나 MG 같은 대기업에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면 포트와의 대결이 정말 중요하겠군요.”
승호가 앞에 놓여 있는 제육볶음을 한 점 집어넣어 우물 거렸다.
“맞아. 거기에서도 이긴다면. 우리는 세계 최초로 포트를 이긴 회사가 되는 거야. 그렇게 된다면. 과연 누가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있을까.”
승호가 눈짓으로 식당 한 편에 켜져 있는 TV를 가리켰다.
-금일 오후 4시. 선진전자 용인공장의 스마트폰 생산라인이 일시적으로 중단 되었다고 합니다. 선진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사건에 대해 선진은 현재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해결 중이라고 합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저런 상황에서 우리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겠어?”
승호의 반문에 고동수도 더 이상 대답 할 말이 없었다.
***
회사로 돌아온 고동만은 바로 회장실로 직행했다.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세히 말해보세요.”
“그쪽에서 천억을 요구해 왔습니다.”
“······.”
“여러 대안을 제시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천억이면 문제를 해결 하지 못했을 때 회사가 입 게 될 피해액 보다는 싸군요.”
긍정적인 김희건의 대답에 고동만이 두 눈을 부릅떴다.
“네?”
“시내 소프트에 3조 가량의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보다도 싸고.”
“그, 그거야 그렇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를 모아봤습니다.”
고동만이 자세를 고쳐 잡고 김희건의 말을 경청했다.
“원자력 발전소, 체크포인트 우승. 크라운 그룹 문제 해결. 거기에 비낸스에서 일어난 코인 해킹 사건 해결.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매그니토 까지.”
김희건이 의자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런 인재에게 선진은 처음부터 박대를 했더군요. 최초 방문 시에는 입구에서 제지를 했고, 함부로 노트북을 해킹하고. 꽤 기분이 나쁠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당한 건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 동물이니.”
“회장님······.”
“엔드로이드 개발자가 선진을 찾아 왔을 때 우리는 그를 박대 했습니다. 만약 받아 들였다고 해서. 엔드로이드가 이 만큼 성장했을까요?”
“물론입니다. 선진은 세계 최고의 기술 회사니까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ONE을 우리가 인수한다고 해서 세계적인 인공지능이 될까. 의문입니다. 다행인 점은 그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는 겁니다.”
김희건이 고동만을 직시하며 말했다.
“자리 한 번 마련하세요. 천억을 지급 하겠다고. 그리고 그걸 공개 합시다.”
그것.
그 말에 고동만이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인공지능 전용 ASIC(주문형 반도체) 말씀이십니까?”
이름 하여 NPU(Neural Processing Unit : 신경망처리장치).
선진에서도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로 포트에서 개발한 딥러닝 전용 TPU를 모티브로 삼아 개발하고 있는 중이었다.
“선진은 선진이 잘하는 하드웨어에 집중하고, 시내소프트는 ONE에 집중하는 겁니다.”
“만약 NPU까지 공개한다면 강 대표도 거절하지는 못할 겁니다.”
김희건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진과 ONE이 힘을 합쳐 포트의 델타를 이겼다. 기대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