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17)
탑 코더-117화(117/303)
# 117
치고 박고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온 비서의 표정은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회장님이 직접 움직이셨습니다.”
그 말에 한종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특별한 제안을 하실 거라고 하는데··· 제 선에서 그게 무엇인지 까지는.”
순간 한종균은 머릿속으로 한 단어를 떠올렸다.
‘설마 NPU를.’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고성능의 GPU가 필요하다. 바이트코인 채굴을 위한 ASIC 장치가 GPU 보다 뛰어난 채굴 효율을 보이듯이 인공지능을 작동시키는데도 전용 칩이 수배에서 수 십 배의 뛰어난 효율을 보인다.
그게 바로 선진에서 개발하고 있는 NPU.
추후 빅스에 적용 예정이었던 칩의 이름이었다.
“더구나 고 사장님과 직접 가셨습니다.”
1 인자.
그 옆에 있다는 건 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권력에서 멀어졌다는 뜻.
“젠장······.”
“실장님.”
털썩.
회장님이 직접 움직였다면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도대체 되는 일이 없군.”
“······.”
“내게 별도로 온 연락은?”
“···없습니다.”
이번 일에서는 빠지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일에서 배제된다는 게 뜻하는 건 한 가지였다.
“휴우······.”
한종균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짐을 쌀 정도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자신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게 생겼다. 한종균이 씁쓸히 중얼 거렸다.
“결국 고동만. 그 놈이 이겼어.”
***
늦은 밤.
용인 R&D 센터로 승호를 태운 차가 들어섰다.
‘직접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어.’
이렇게 선진의 회장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지난 번 계약 건에 이은 두 번째. 그가 나섰다는 것은 그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 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일 테고.
‘그런데 왜 여기로······.’
차에서 내린 승호가 대기하고 있던 직원의 안내에 따라 R&D 센터 내부로 움직였다. 직원은 승호를 안쪽, 더 깊은 안쪽으로 데려 갔다. 카드만 수번을 찍었다. 보안면에서는 양재 R&D 센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10여분 이상을 더 들어가고 나서야 직원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오셨군요.”
자리에 앉아 있던 김희건이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함께 있던 고동만이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승호가 가까이 다가가 손을 맞잡았다.
“네. 오랜만입니다.”
그러나 승호의 표정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김희건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닙니다.”
“궁금하셨을 겁니다. 왜 여기까지 오라고 했는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일까. 말도 친절하게 나오지 않았다.
“사실 좀 그렇긴 합니다.”
김희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동만이 초록기판에 무수한 칩이 심어져 있는 보드 하나를 들어 승호에게 보여주었다. 김희건이 승호를 보며 말했다.
“바쁘신 분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건 자사에서 개발 중인 NPU. 인공지능 전용 칩 셋 입니다. 포트의 TPU에서 모티브를 얻어 개발 중인 놈이지요.”
그 순간 승호의 표정이 변했다. 놀란 눈으로 기판을 바라보았다.
‘인공지능 전용 칩셋?’
꿀꺽.
승호의 목울대가 꿀렁 거렸다.
포트의 TPU와 비슷한 걸 만들고 있었다니!
사실 겉으로는 대결에서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지만 내심 불안한 게 있었다.
TPU.
포트에서 개발하여 델타에 적용된 인공지능 전용 칩셋.
자신에게는 TPU가 없었다. 수많은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포트지만 TPU만은 성능 테스트 결과만이 공개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 성능은 일반 GPU에 비해 15배에서 30배가량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었다. 승호의 표정을 살피던 김희건이 말을 이었다.
“지금 시내소프트에 가장 필요한 놈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
“5G 하드웨어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 분이니.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시다는 건 충분이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비슷한 걸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선진의 회장이라고 해야 할까.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정확히 꽤 뚫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혼자서 모든 걸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예카테리나 박사를 비롯한 인력 채용에 열을 올렸다. 더구나 하드웨어는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관련 지식이 머릿속에 떠다니기는 했지만 제조 까지 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NPU.
그걸 보는 순간 승호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가지고 싶다.’
승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서로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
“말씀 하신 NPU를 저희 쪽에 제공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김희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는 ONE이 델타를 이길 때 선진도 한 축을 담당했으면 합니다.”
“조건은요?”
“현재 선진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 해결. 이미 내용은 고동만 사장에게 충분히 들으셨을 겁니다.”
김희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동만이 NPU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대기 하고 있던 연구원들이 다가와 NPU를 서버에 장착하고 모니터를 연결 시켰다.
“물론 제안하신 금액도 지급될 겁니다. 작지 않은 금액이지만 관계 개선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되니.”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을 배려 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그런 의문을 읽은 것일까.
김희건이 승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규모가 커질수록 내부 직원들의 결정권이 많아집니다. 제가 일일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뜻이죠. 이걸 변명이라 생각한다면. 할 수 없겠지만.”
임직원들 탓이다. 그 한 마디로 정리되는 말이었다. 그사이 직원이 세팅을 마쳤고, 고동만이 말했다.
“세팅 끝났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억이라는 돈 보다 NPU의 성능이 어느 정도 나올지. 그게 더 궁금했다.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사용하는 하드웨어 성능 측정은 대부분 tf_cnn_benchmarks이 사용된다. 해당 벤치마크 스크립트 안에는 몇 가지 딥 러닝 모델이 들어있고, 해당 모델을 실행하는 속도로 성능을 측정하게 된다. 연구원이 한 서버에서 스크립트를 실행하며 말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A사의 최고 사양 GPU입니다.”
그리고 다음서버에서 스크립트를 실행했다.
“이건 B사의 최고사양 GPU.”
마지막 서버로 가 스크립트를 실행했다.
“이건 저희가 자체 개발한 NPU.”
역시나 가장먼저 결과가 나온 건 NPU였다.
“inception3 모델로 테스트 해본 결과 NPU는 10초 A사와 B사는 각각 145초. 155초가 나왔습니다.”
단순 비교만 해도 15배의 차이.
ONE에 NPU가 적용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짜릿해졌다. 승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어떻습니까?”
“inception3 모델을 저희가 사용하고 있는 GPU에서 돌렸을 때의 성능에 10배 정도 차이가 나는 군요. 과연 선진이다. 그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승호의 칭찬에 고동만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김희건이 고개를 젖히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 기분이 좋아진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승호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혹시 좀 만져 봐도 될까요?”
“기꺼이.”
승호가 NPU가 설치된 서버로 다가가 오른 손을 내밀었다.
후욱.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오는 0과1의 향연.
서버에서 돌아가는 어플리케이션. 어플리케이션과 상호작용하는 OS 그리고 OS와 정보를 주고받고 있는 커널 단 까지.
승호는 하드웨어 내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NPU 구조를 완벽히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승호가 볼 수 있는 건 하드웨어 위를 돌아다니는 0과 1.
하드웨어의 설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까지 파악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겉으로 보는 것 보다는 많은 내용을 파악 할 수 있었다.
‘당장 이걸 만들라고 하면 이 정보만으로는 부족해.’
그러나 만약 NPU의 설계도가 있다면?
그렇다면 자신이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생산은 파운드리(주문형 반도체 생산 업체) 업체에 맡기면 된다. 고동만이 입가에 미소를 띄며 승호를 보았다.
“어때?”
승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까 회사에서 들었던 제안 보다는 훨씬 마음에 듭니다.”
“그러면 수락하겠다는 말인가?”
이대로 거래가 성사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승호는 NPU에 들어간 기술 전부를 가지고 싶었다. 생각을 마친 승호가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드릴 말씀이 한 가지 있습니다.”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세요. 그러기 위해 마련된 자리니.”
“제가 NPU 성능을 한 번 개선해 봐도 될까요?”
그러자 연구원이 자신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 이게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내 분위기를 보고 입을 닫았다.
“ONE에 쓰일 두뇌라면 그에 맞게 최적화를 진행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된다면 제 추측으로는 지금보다 최소 2배의 성능은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번에도 연구원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지금 보다 2배라니······.”
그리고 다시 분위기를 보고 입을 닫았다. 고동만이 먼저 나섰다.
“성능을 개선해 보겠다는 건··· 개발 내용을 공유해 달라는 말인가? NPU는 선진에서도 극비 프로젝트야.”
“앞으로 개발되는 내용까지 공유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포트의 델타를 이길 때 까지. 그 이후에는 다시 각자의 길을 가는 겁니다.”
천억에 NPU 제공. 거기에 NPU 원천 기술 까지 제공까지 더한 다면 선진의 손해였다. 고동만이 살짝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그러면 우리가 너무 손해일세.”
승호가 김희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ONE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김희건이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 뭐라고.”
“ONE과 NPU. 그 두 개를 서로 합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작업이라 생각할 뿐입니다.”
승호는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서로 내용이 공유 된다면 무조건 내가 이득이야.’
포트의 델타를 이긴 다면 시내 소프트에는 지금 보다 많은 인재들이 몰릴 것이다. 그 인재들을 활용해 NPU를 함께 고도화 시켜 나가면 된다. 원천기술이 공유된다면 자신 있었다. 김희건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승호를 보았다.
“그 말은 마치 이렇게 들리는 군요. NPU 내용을 공유 받아. 추후 선진 전자의 칩을 납품 받지 않아도 될 상태로 가겠다.”
“선진도 제게 공유 받은 ONE을 빅스와 접목시켜 인공지능을 개발 하면 됩니다. 서로 손해 볼게 없는 거래라 생각 됩니다.”
“서로 기술교환을 하자는 말인데······.”
“발전하지 못하면 도태 되는 게 기술 기업의 숙명이니까요.”
서로 기술을 교환하자.
그리고 발전시키자.
어찌 보면 오만 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상대보다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이었기에.
고동만이 확인하듯 물었다.
“ONE의 전부를 공유해 준다는 말인가?”
“네. 대신 NPU의 전부를 공유해 주셔야 합니다.”
“자신 감이 대단 하군요. ONE도 NPU도 현재 시점의 내용이 의미 없을 만큼 발전시킬 수 있다.”
“불과 2년 전 기술이 도태되는 곳이 바로 이 업계입니다. 발전시키지 못하면 떠나야지요.”
“설계도는 어찌어찌 만들어낸다 쳐도 생산은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단지 회로 설계도만으로는······.”
승호가 선진 회장의 말을 끊고 들어갔다.
“선진에서도 파운드리 사업을 하니. 맡아 주시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대만 업체도 있고.”
승호가 어깨를 으쓱 거리며 덧붙였다.
“너무 걱정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공유를 할지 말지. 결정해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