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18)
탑 코더-118화(118/303)
# 118
치고 박고
승호가 돌아가고. 김희건이 물었다.
“고 사장님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선진에 관한 내용이십니까. 아니면 강 대표에 대한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둘 다.”
“선진이 과연 ONE을 받아들여 소화할 능력이 있느냐 말씀하시면 전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본사 인력만이 아닌 해외 법인에도 우수한 인재들이 많으니까요.”
“그러나 세계 최고라 불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진의 인력은 언제나 세계 최고였습니다. 그들이 ONE을 분석해 발전시키면 결코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희건이 미간을 긁적거렸다. 그런 김희건을 향해 고동만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강 대표가 한 말은 전부 진심일 겁니다. ONE을 주겠다는 것도 NPU를 발전시킬 자신이 있다는 말도.”
“5G 네트워크 장비에 들어가는 펌웨어 개발 당시 엇댔습니까.”
“연구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 대표를 뽑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이 대단하다고. 기간을 늘릴 수는 없냐면서 사정하는 걸 잘라내느라 꽤 진땀 뺐습니다.”
김희건이 입맛을 다셨다.
“그 정도면··· NPU를 개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함께 있던 연구원은 생각이 달랐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대부분 실무 담당자의 이야기가 가장 정확하기에 고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승호 대표님이 대단하다는 건 충분히 알겠습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단한 식견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온 점. 저도 놀랄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NPU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건 좀 다릅니다. 아시다 시피 칩 개발을 하는 연구원들 대부분은 전자전기 공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연구원은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전자전기 공학부. 거기에서 배우는 건 컴퓨터 과학과는 내용이 다릅니다. 일단 칩 설계 과정부터가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를 테면 칩 설계 과정에서는 배선들의 전기 신호 간섭을 고려해야 하지만 소프트웨어에서는 하지 않으니까요.”
고동만이 흥분한 연구원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러면 5G 네트워크 장비 개발 하는 연구원들이 왜 그렇게 강 대표를 원했는지 설명 할 수 있겠나?”
“자세히는 모르지만 제가 들은 대로 말씀드리자면. 당시 강 대표님이 맡은 부분은 펌웨어. 즉 하드웨어 자체를 개발한 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연구원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김희건이 고동만에게 시선을 던졌다.
“연구원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강 대표는 아시다 시피 학력도 학력이고, 소프트웨어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칩 설계는 완전히 다른 분야 이긴 합니다.”
그러나 김희건의 찌푸려진 미간은 풀어지지 않았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왜 자꾸 그가 한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까요.”
연구원이 입을 우물 거렸다.
‘만용입니다.’
그 말을 하고 싶은걸 겨우 참았다.
“회장님.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선진이 손해를 볼 건 없다는 겁니다. 어차피 ONE 기술이 우리 손에 들어오면. 그걸 NPU에 장착해 더 발전시켜 나가면 되니까요.”
김희건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이럴 때는 방해하면 안 된다. 그것이 회장을 보필하는 자신의 임무. 고동만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렇게 수분이 지나고 결정을 내린 김희건이 입을 열었다.
***
용인을 출발한 차는 용인서울고속도로를 지나 동부간선 도로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승호는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도대체 어떤 분이었기에 이런 지식 까지······.’
새삼 놀라웠다. 가끔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만지면서 한 번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쉽게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하드웨어 개발은 소프트웨어 개발과 겹치는 부분도 많지만 또 다른 영역이라 불리는 부분이었기에.
‘정말 엄청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구나.’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이 붙는 중이었다. 5G 네트워크 장비 문제 해결에 참여하면서 그 자신감은 배가 되었다. 단지 시간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할 뿐이었다. 인공지능을 개발 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인데 요즘은 대표로써 신경써야할 일도 많았다.
그러나 NPU.
그걸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질 정도로 탐이 났다.
‘ONE과 NPU가 합쳐지면 엄청난 상승효과를 일으키게 될 거야.’
연산 속도.
전력 소모.
그 어느 것 하나 GPU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장착만 된다면 포트의 델타를 이길 가능성은 내심 생각하고 있는 50%를 넘어 확실시 될 것이다.
‘거기에 NPU의 설계도를 확보해 성능을 개선시키면 또 얼마나 더 발전하게 될지. VHDL라면 자신 있으니까.’
ASIC 칩을 설계하는데 사용되는 언어는 VHDL.
VHDL로 표현된 기술언어가 합성 과정을 거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디지털 회로도가 완성된다. 창밖을 보던 승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포트와의 대결이 앞으로 5개월 뒤.
승호가 느끼기에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진은 아마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기 못할 것이고, ONE은 새로운 두뇌를 장착한 채 포트와 대결하고 승리 할 것이다.
그러면 단숨에.
글로벌 레벨의 업체로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운전기사가 그런 승호의 상념을 깨웠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승호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선진의 회장이었다.
-이런 일은 빠른 결단이 필요한 법이라 바로 연락드립니다.
“네. 말씀하세요.”
NPU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만큼 오랜만에 긴장까지 되었다.
-좋습니다. 두 기술을 서로 공유합시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공유 기준은 포트와의 대결 전까지.
“네.”
-그러면 현재 선진에 생긴 문제는 언제쯤 해결 되겠습니까?
“미룰 거 있겠습니까. 지금 바로 시작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양재 R&D 센터에 준비해 놓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승호가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선진전자 양재 R&D센터로 가주세요.”
잠시 멈췄던 차가 다시 출발했다.
***
선진전자 양재 R&D 센터.
늦은 시각임에도 센터 내부는 환하게 붉을 밝히고 있었다. 승호가 들어서자마자 대기 하고 있던 직원이 문을 열어 주었다. 당연히 보안 게이트도 프리패스.
승호는 멈추지 않고 이동했다. 옆에서 보조를 맞추던 선진전자 직원이 미리 세팅해 놓은 자리로 승호를 안내했다. 그 자리에는 문제 해결에 매달리던 직원 수 십 명이 모여 있었다.
“여깁니다.”
고개를 끄덕인 승호가 자리에 앉아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가끔 재부팅이 되고, 어쩔 땐 MBR 영역이 파괴된다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저희가 분석한 바로는 윈더의 taskschedule.exe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윈더 측에서는 자신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상황입니다.”
타닥.
타다닥.
승호는 대답 없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려 나갔다. 이미 어떤 내용인지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었다. 그러나 분석을 해 나가는 시늉이 필요했다. IDA를 켜 악성코드로 의심되는 프로세스가 사용하는 파일을 집어넣었다.
mov eax, ddword ptr
cmp eax, ddword ptr
push offset string
“2 <= 3n
······.
화면에 나타난 어셈블리 어를 빠르게 훑으며 지나갔다. 그 속도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 빨리 봐도 이해가 되는 건가?”
“너 못 봤구나. 지난 번 5G 장비 작업할 때도 저랬잖아. 그래서 그쪽 연구원들이 며칠 동안 자괴감에 시달렸었어.”
“···헐.”
“인터넷 연예 기사 보듯 스크롤을 내리더라고. 진짜 신기한 건 그렇게 보고도 다 이해 하고 있다는 거야.”
“다 이해 한다고? 그냥 쓱 훑는 것 같은데.”
“그게 바로 범인과 천재의 차이. 아니겠냐. 이제 저 분 왔으니 문제는 해결 됐다고 봐도 무방하지.”
“정말 그 정도 인가 난 잘······.”
“원자력 발전소 해킹 해결. 매그니토 패치 개발. 이 두 건을 생각하면 어떤 단어가 생각 나냐.”
“불가능?”
“가만히 지켜봐봐. 오늘 불가능이 현실로 바뀌는 걸 보게 될 테니까.”
직원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주시했다. 그렇게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메모장이 실행되었다. 그 메모장에 승호가 C언어 코딩을 시작했다.
#include
첫 구문을 시작하고
int main(int argc, char* arg[]){······.
메인 문부터 적어나갔다.
누가 봐도 C언어로 된 코딩.
“이 타이밍에 저건 또 뭐야. 설마 지금 이 자리에서 패치 만들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자신들이 보기에 저건 분명 C언어 였다. C언어로 된 코드로 뭔가를 짜고 있었다. 초당 500타가 넘어가는 속도는 눈으로 쫓아가는 것도 벅차게 만들었다.
“내 생각에는 패치가 맞는 것 같은데. 아까 말했잖아.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걸 보게 될 거라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한 시간 만에 분석을 끝내고 그 자리에서 패치를 뚝딱 만들어낸다고?”
“그러니까 큰 돈 들여서 부르는 거야. 안 그러면 왜 강 대표님을 찾겠냐.”
둘의 대화가 끝나갈 때 쯤 승호도 키보드 위에서 손을 땠다.
“이거 전사에 배포하시고 실행해 보라고 하세요. 일단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분석 결과를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 말씀 드리면 될까요?”
“네. 저희에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승호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먼저 최초 유포 관련 사항입니다.”
***
한종균은 오늘 따라 퇴근하기가 싫었다. 선진전자의 경영지원실장이 된 지도 벌써 2년. 국내 최고 기업의 경영지원실장이 되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당장 연봉만 해도 20억이 넘었으며, 항상 집 앞에 차가 대기 하고 있었기에 우산을 쓸 필요도 없었다. 독립된 사무실에 상시 대기하는 비서.
그 비서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닥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
“지금 강 대표가 양재 R&D 센터에서 악성코드 패치를 만들어냈습니다.”
한종균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라면 희소식 아닌가. 회사의 골칫거리가 해결 되는 마당이니.”
“그리고 감염경로를 분석해 발표 했는데······.”
한종균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비서의 목소리가 갈수록 낮아졌다.
“실장님이 거론 되었습니다.”
“······.”
“악성코드가 최초 실장님께서 연구소장님께 보낸 메일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한종균은 입맛만 다실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뭐라 할 말이 없기도 했다.
전부다 사실.
여기서 부정한다면 오히려 더 추해질 뿐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인가. 그 놈을 너무 믿었어······.’
그래서 다크웹 내에서도 신뢰도가 놈을 선택해 몇 번 거래를 해보았다. 그때 마다 최고의 결과를 가져왔기에 이번에도 믿었건만.
드르륵.
드르륵.
한종균의 핸드폰이 불길한 진동음을 토했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회장님. 한종균이 재빨리 핸드폰을 받았다.
-들어오세요.
단 한 마디에 불과 했지만.
한종균은 느낄 수 있었다.
“다 끝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