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20)
탑 코더-120화(120/303)
# 120
세기의 이벤트
바나나톡.
AI 개발은 근래 IT 관련 모든 기업들이 관심 있는 분야였다. 바나나톡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IWSLT(International Workshop on Spoken Language Translation) 대회에서도 1등을 했습니다.”
‘IWSLT.
국제 통번역 인공지능 대회.
ONE은 그곳에서도 1등을 차지했다. 서현석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이번에도 ONE인가?”
“41.21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이번에도 선진이 2등을 차지했고요. 5위에 넥스터.”
“우리는?”
“저희가 개발 중인 바나나 아이는 27.19점으로 전체 10위를 기록. 순위권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서현석이 한 일자로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직원이 황급히 변명을 시작했다.
“애초 저희는 범용 인공지능 개발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수치입니다. 세계에서 10위를 기록한 것이니까요.”
서현석이 팍 인상을 쓰며 말했다.
“넥스터를 비롯해 중국 업체들에도 뒤져놓고는 그런 말이 나오나?”
“그 쪽은 투자 금액 규모부터가 다르니······.”
“그만. 변명이나 듣자고 자네를 부른 게 아니야.”
“죄송합니다.”
“회장님의 직접적인 지시가 내려왔네. 앞으로 전사적으로 인공지능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야.”
“꼭 성과를 내겠습니다.”
“한국이 아니라 해외의 인재들도 알아봐. 일본을 비롯해 중국 미국 가리지 말고.”
“인재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진에서 NPU를 납품 받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ONE이 NPU를 달고 날개를 달았듯이 바나나아이에도 NPU를 사용하면 지금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일 겁니다.”
“이미 선진에 확인해 봤어.”
“설마······.”
서현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델타와의 대결 전까지는 독점 공급 계약이 되어 있다는 군. 그 이후에야 판매를 시작할 모양이야.”
“그러면 업계에 퍼진 그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겠네요.”
“시내 소프트의 ONE 설계도 공유 말인가?”
“네. 그렇지 않으면 왜 시내소프트에 독점 공급해주겠습니까.”
“얼마 전 선진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한 대가일지도 모르지.”
“더구나 예카테리나 박사가 빠졌음에도 최근 선진의 인공지능 분야에서 약진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성능개선. ONE이 아니면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너무 손해 보는 장사 아닌가.”
서현석이 미간을 긁적거렸다.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일까.
근래 업계에 던져진 화두이기도 했다.
“만약 강 대표가 ONE을 공유해 주었다면··· 아마 NPU에 대한 설계도를 공유 받았을 거야.”
“NPU 설계도라면 시내소프트가 하드웨어도 하려고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더구나 선진에서 그걸 공유해 줄 리가.”
“포트도 TPU를 만들었지 않나. 포토북도 자사 데이터 센터 구축은 직접 하고. 세계최고의 상거래 업체인 인더스는 말 할 것도 없고. 이제 소프트웨어만 하는 회사는 없네.”
“미래를 준비한다?”
“하나씩. 차근차근 하려는 걸 거야. NPU 설계도와 ONE의 설계도를 교환해 최적화 시킨 후. 인공지능의 최강자임을 입증. 자사 데이터 센터도 만들면서 서서히 사업을 확장해 나갈 생각인 게지.”
“만약 그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포트를 이길 지도 모르겠군요.”
서현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IT계의 공룡 포트를 이긴다? 한 번도 시도조차 된 적이 없는 그 일이. 현실화 되고 있었다.
***
M-3.
승호는 밤늦게 까지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CCTV의 사각지대에서 검은색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국정원 사이버보안담당관이었다.
“이런 쪽으로 취미가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취미라기보다는 직업적 특성이라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승호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요?”
“선진에서 생긴 문제도 해결 하셨더군요.”
“뭐, 의뢰가 왔고. 적당한 보수를 지급한다고 하니. 나설 수밖에요.”
담당관이 씁쓸히 중얼 거렸다.
“요즘은 문제가 생기면 다들 대표님을 찾는 군요.”
승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말 하려고 여기 까지 오신 겁니까?”
“선진에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내용도 많아 우리 쪽 요원들도 파견을 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께서 오기 전까지 그저 우왕좌왕하다. 대표님이 오셔서 바로 문제 해결.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대표님께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저 하나 사라진다고 문제를 해결 못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국가는 꽤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의 선문답은 승호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용건은요?”
“국가에서 대표님을 국가전략자산에 지정하는 절차를 밟으려고 합니다.”
국가전략자산.
승호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훈장 수여도 아니고, 국가 전략 자산이라니?
승호가 묻기도 전에 담당관이 빠르게 말 을이었다.
“다양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일단 국가비상상황에서 1차 보호 인력으로써 요원들이 직접 모시러 갈 겁니다. 또한 평소 신변 보호를 위해 수 명의 요 원이 상시 경호를 진행하며······.”
담당관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승호가 치고 들어갔다.
“서서히 경호를 늘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민간에서도 비상 상황 시 대피해주는 서비스가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국가 연구 기관들의 연구 결과를 열람해 보실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ETRI 같은 곳에서 진행하는 인공지능 연구를 비롯해 과기원의 자료 등등. 수많은 연구 자료들을 연람해 보실 수 있습니다.”
ETRI.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중 하나로 수많은 성과를 기록하고 있는 연구소 중 한곳이었다. 이것도 승호의 구미를 당기게 하지는 못했다.
“ETRI 연구 결과를 열람할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전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 서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담당관의 계획에 있던 상황.
역시나 기대했던 반응 그대로였다. 그러나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국가에서 구매한 슈퍼컴퓨터에 대한 최우선 사용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슈퍼컴퓨터야 돈을 주고 사면 그만입니다.”
몇 가지 더 제안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담당관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결국 미국으로 가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승호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미국으로 간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난 번 출장에서 FBI 요원을 만나신 걸로 아는데요.”
“벌써 감시가 시작된 겁니까?”
“일상적인 동향 파악입니다. 이미 한 번 겪으시지 않았습니까. 테러 단체에 의한 납치. 만약 그때 자리에 계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일상적인 경호로 세계 여러 테러 단체들의 동향을 파악해 대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테러가 빈번하다면 포트나 윈더. 선진 전자의 회장도 테러나 납치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겠군요.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과 저의 현재 위치는 다르다는 걸. 그러나 곧 그렇게 될 테니 제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식으로는 설득할 수 없었다. 담당관은 마지막으로 애국심에 호소해 보기로 했다.
“매년 북한에 의한 여러 건의 해킹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반격을 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승호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런 식으로는 절 설득 할 수 없습니다. 딱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없으니···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담당관이 고개를 끄덕였고, 승호가 말을 이어나갔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 인공지능이 필요한 사업 리스트와 함께 관련 사업에 1차적으로 시내 소프트가 선정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전략 자산이라는 거창 한 것에 선정되지 않더라도 약간의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사업 말입니까?”
“네. 인공지능을 개발 해 놓고, 사용할 곳이 없으면 문제니까요.”
담당관은 생각에 빠졌고, 승호는 다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고 승호가 사라질 때 까지 담당관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M-1.
시내소프트가 위치한 청담의 한 빌딩으로 검은색 세단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 내린 세단의 주인공들의 면면은 간단치 않았다.
선진 전자 회장을 비롯한 사장단과 연구진들.
그들이 ONE과 NPU가 합쳐진 인공지능에 대해 마지막 점검을 위해 모인 것이다.
“어떨 것 같나?”
회장의 질문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고동만이 나섰다.
“최근 ONE은 수십여 개의 다양한 인공지능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범용성은 물론이거니와 성능 역시 입증 됐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라 생각됩니다.”
김희건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바로 뒤에서 그를 쫓던 인공지능 연구 팀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자네 생각은?”
“제 생각도 고 사장님과 비슷합니다. 지금까지 ONE이 보여준 성능이라면 포트의 델타와도 해볼만 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어. NPU를 ONE에 맞게 완벽히 최적화 시키고, 최고의 성능을 이끌어내. 각종 인공지능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다니. 이제 기술 공유 남은 일자가 15일?”
“맞습니다. 대회 바로 전날까지가 계약 기간이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났을 때 어떻게 될 것 같은가?”
“······.”
연구팀장의 침묵.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김희건이 씁쓸히 중얼 거렸다.
“결국 최고가 될 수는 없겠군.”
“죄송합니다. 최근 서로 간에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어··· 하지만 시간을 주시면 꼭 최고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연구팀장.
그도 뛰어난 인재였다. 한국 대를 졸업해 MIT에서 뇌 공학을 전공했다. 그런 전문가를 데려다 팀장을 시켰건만.
김희건은 대답하지 않은채 걸음을 옮겼다.
ONE vs DELTA.
강당 스크린에 떠 있는 문구였다. 객석에는 선진의 회장을 비롯한 시내소프트 임직원들이 앉아있었다.
“모두 오신 것 같으니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승호입니다. 앞으로 15일 후면 ONE과 DELTA는 바둑을 통해 자웅을 겨루게 됩니다. 그 전에 지금까지 ONE의 성과 공유를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다음.”
그러자 화면에 NPU 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김희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나타났다.
“NPU. 바로 ONE에 날개를 달아준 존재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다음.”
그러자 이번에는 21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이건 NPU를 장착하고 지금까지 ONE이 1등을 차지한 인공지능 대회입니다. 총 21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다음.”
Elo Rating
1230.
2145.
4155.
5711.
“ONE의 엘로 점수입니다. 아시다 시피 엘로 점수는 바둑 실력을 수치화 한 점수로 차이가 200점 이상인 두 AI가 맞붙었을 때, 점수가 높은 AI가 이길 확률은 75%. 366점 차이라면 90%, 677점 차이는 99%, 800점 이상의 격차인 경우는 사실상 100%가 됩니다. 보시면 ONE의 점수가 계속 상승 중인 걸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다음”
DELTA 5,185
526.
스크린에 나타난 점수에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결과로만 본다면 ONE이 이긴다는 뜻이었기에.
“가장 최근 알려진 델타의 엘로 점수는 5185. 원과의 점수 차이는 526. 즉 90%의 확률로 ONE이 이길 것으로 예상 됩니다. 물론 포트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저 역시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놀고 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다음.”
6000.
“앞으로 ONE의 목표입니다. 6000 정도면 포트를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발표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굳이 하고 싶지 않았지만 ONE과 NPU 사이의 기술 교류 계약에 있었기에 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공유해줄 내용은 없다.’
최초의 기술 협력 후 상대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승호도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공유해 주지 않았다. 그랬기에.
발표는 채 10분도 되지 않아 마무리 되었다.
“이것으로 발표를 마치고 질문 받겠습니다.”
순간 가장 앞자리에서 발표를 듣고 있던 예카테리나 박사가 핸드폰을 확인하곤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승호를 보며 말했다.
“방금 포트에서 네이처지에 델타 코어 버전 논문을 발표했어요. 엘로 점수가 6120입니다.”
그 말에 승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