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22)
탑 코더-122화(122/303)
# 122
세기의 이벤트
D-3.
실리콘 밸리 포트 본사.
에이든이 손에 깍지를 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에이든을 헤나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넌 걱정도 안 되냐?”
“뭐가?”
“델타 코어 논문 공개. 굳이 그럴 필요 까지 있었을까? 아무리 대결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있다고 해도. 혹시나 포기 하지 않고 그걸 이용해서 우릴 이기기라도 하면······.”
듣고 있던 에이든이 실소를 터트렸다.
“뭐? 우릴 이겨? 헤나. 이건 나 혼자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아냐. 제프가 관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라고. 거기에 델타의 아버지인 하사비스가 직접 개발하고 있어. 그런데도 진다고?”
그 말에 헤나가 입맛을 다시며 한 발 물러섰다.
“그렀기야 하지만.”
“물론 나는 패배했어. 그러나 제프라고 무려 포트의 제프가 나선일이야. 그런데 진다는 게 상상이 되?”
에이든의 반문에 헤나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도 제프가 진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확실한 게 좋으니까.”
“제프는 강승호 그 녀석이 똑똑하다면 포기를 할 거라고 했어. 만약 포기 하지 않고 덤빈다면 논문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도 했지.”
“그럼 이해하지 못하고 덤볐을 때 시내소프트의 가치는 2,5억 달러 정도가 적당하다는 말이 되는 건가.”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창업했던 회사를 천억 달러에 사줬으니. 2.5억 달러면 많이 쳐주는 거지.”
헤나가 입을 오므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헤나에게 에이든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헤나. 지금 시간 여유가 있나봐? 막바지 테스트 진행해야 하는 거 아냐? 제프가 오늘 내로 끝내놓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익! 맞다!”
헤나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하지 마. 승리는 언제나 정의 편이니까.”
“그 정의가 몇 번이나 패배 했는지 내가 다시 알려줄까?”
“후훗.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는 말이 있지.”
헤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저 놈의 머리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저 놈의 머리에는 별의 별게 다 들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또 무슨 헛소리를 했 나보지.”
익숙한 목소리.
제프 월슨이었다.
헤나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 왔어요.”
“오긴 아까 왔었지. 네가 내 걱정 해주는 순간부터.”
“······.”
“그런데 에이든의 말에 약간 틀린 게 있어서 바로 잡아 주려고.”
에이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틀린 말이 있다고요? 똑똑하면 포기 할 거다. 만약 포기 하지 않고 덤빈다면 논문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거다. 이 둘 모두 제프가 했잖아요.”
제프가 에이든의 두 눈을 직시했다.
“한 마디를 빼 먹은 것 같은데?”
에이든이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제프가 두 눈에 살짝 힘을 주었다. 압박을 이기지 못한 에이든이 입을 열었다.
“만약 그가 정말 똑똑하면. 그걸 넘어선 새로운 인공지능을 들고 찾아 올 수도 있다.”
놀란 헤나가 새된 비명을 토했다.
“네? 그 말은··· 우리가 질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에이든이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걱정하지 마. 그럴 일은 없으니까. 너도 알잖아. 그 녀석 실력이 그 정도는 안 된 다는 걸.”
“물론 그렇게 까지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묘한 불안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에이든에게 물어 보았건 만. 제프의 말에 불안감은 더 커지기만 했다.
“난 오히려 그가 새로운 인공지능을 들고 찾아오길 바라고 있어.”
헤나가 또 한 번 비명 음을 토했다.
“네?”
“우리는 똑똑해. 그렇기에 쉽게 정체 될 수밖에 없지. 때론 자만하기도 하고.”
그러고는 에이든을 향해 눈짓했다.
“전 아니에요!”
에이든이 콧김을 씩씩 거리며 내뱉었다. 헤나가 픽 웃음을 흘렸다. 어깨를 으쓱 거린 제프가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외부 자극이 필요해. 성장에 가장 필요한 건 경쟁이니까. 포트가 한 번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한 번 쯤 질 필요도 있어.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제프의 말에 담긴 의도를 알기에 헤나는 조용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긴 나조차도 포트 이외의 것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제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나도 질 거란 생각은 잘 들지 않지만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어디까지 했는지 확인 좀 할까. 헤나.”
“아······.”
“시작해봐.”
***
D-2.
승호는 팀원들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들어섰다. 입구부터 꽉 들어찬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퍼버버버벙.
촤라라라락.
셔터에 플래시 소리가 합쳐지며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경호원들이 막지 않았다면 움직이지 못할 정도.
이미 국민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승호였다. 그런 승호가 포트와 바둑 대결을 위해 출국 한다는 소식에 지나가던 공항 이용객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파이팅! 응원합니다!
-꼭 이겨주세요! 파이팅 입니다!
-강승호 파이팅!
-포트 이기고, 세계최고 가즈아!
고동수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올림픽 나가는 선수들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응원 받으니까. 막 가슴이 벅차오르고 뭔가 없던 애국심도 솟아 오르는 게.”
승호가 그런 기분에 찬물을 끼얹었다.
“놀러 가는 거 아니다.”
고동수가 움찍거리며 답했다.
“네, 넵!”
일행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경호원들이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바로 마이크가 파고 들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승산은 얼마나 예상하고 있으십니까.
-최근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서는 9대1의 확률을 점치고 있는데요.
-최근 발표된 델타 코어의 엘로 점수가 6120 인데요. 혹시 ONE의 엘로 점수는 얼마 입니까.
그러나 승호는 일절 답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기자회견은 따로 자리가 마련 되어있었다.
“이쪽입니다.”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승호는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기자들이 포토라인을 빈틈없이 메웠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한 사이. 박신우도 주무관과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무관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나야 무조건 이길 거라 생각합니다.”
주무관이 고개를 흔들며 다시 물었다.
“거기서 애국심을 빼고,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한··· 6대4.”
“4가 포트? 그래도 점수가 후하군요.”
박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까지 그의 행적을 반추해 보면 분명 방비를 했을 테니까요.”
“뭐, 사실 저도 비슷합니다. 저는 4대 6.”
“네?”
“전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강 대표가 이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무관님 말씀은 녹음해서 다음 시내 소프트 미팅 때 틀겠습니다.”
박신우가 한 방 먹은 표정으로 주무관을 보았다.
“···헐.”
정면으로 시선을 돌린 주무관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기자회견 시작합니다.”
수 개의 마이크를 든 승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시내 소프트 강승호입니다.”
파방. 파바바방.
플래시 세례에 눈이 부셨다. 살짝 눈을 찡그린 승호가 말을 이었다.
“우선 이틀 후 벌어지는 포트의 델타와 시내소프트의 ONE이 펼치는 경기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꾸벅 허리를 숙였다. 저런 겸손한 승호의 모습이 국민들로 하여금 더 큰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 다시 자세를 바로 한 승호가 카메라를 직시했다.
“그런 관심에 승리로 보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왔습니다. 최근 발표된 델타 코어 논문에 따르면 델타는 한 번 더 성장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저 또한 놀지 만은 않았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 해왔습니다.”
목소리에는 작은 떨림도 없었고, 표정에는 자신감만이 서려 있었다.
“그 노력은 분명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패배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려는 우려로 남게 될 것이고, 기대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승호가 말을 이어 나갈수록 기자들의 셔터 세례가 잦아들었다. 기자들은 넋을 놓고 승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꼭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그 말에 몇몇 기자들은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약속하신 겁니다. 꼭 이기고 오세요!
-미리 승리 기사 써 놓겠습니다!
-승리 하신 다는 걸 가정하고 다큐멘터리 준비 중입니다!
-강 대표님 파이팅 입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강승호 파이팅!
마치 월드컵에서 16강, 8강을 돌파한 대표 팀을 응원하는 심정과 비슷했다. 한국인이라는 동질감이 자연스럽게 이성을 잠시 가두고, 감성을 자극했다.
“네. 그러면 저는 이만.”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고개를 숙인 승호가 출국심사를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기자들은 그때 까지도 잠시 멍하니 승호를 쳐다보았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박신우가 툭 하고 한 마디 내뱉었다.
“참, 말도 잘하십니다. 그죠? 어디 하나 흠 잡을 대가 없네.”
“사무관님도 팬 되신 겁니까?”
“예전부터 팬이었습니다.”
***
그 모습을 김희건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선진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군요.”
고동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기획팀에서 광고를 중단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열심히 광고하고 있는데 강 대표가 입이라도 뻥끗하게 되면······.”
“연구원들과 사이가 틀어졌다고요?”
“네. NPU 공유 당시 하드웨어 개발자들이 무성의 하게 대응했다고 합니다. 몇몇 연구원들은 고생해서 개발한 걸 왜 공유 하냐고 반발을 하기도.”
“ONE 공유는 잘 이뤄졌습니까?”
“그게 문제입니다. ONE을 공유 받은 연구 팀장은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하지만 일반 연구원들은 하나 같이 최선을 다해 알려줬다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대폭 물갈이를 해야겠군요.”
“문화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돼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 승진을 위해서는 당연한 덕목들이었으니까요.”
“······.”
“회사는 밟고 올라가야 하는 정글. 협력은 상대를 탐색하는 과정. 신뢰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한 수단. 회사 내에 만연했던 문화입니다.”
“고 사장님도 꽤 거친 삶을 사신 것 같습니다.”
“선진전자의 사장이 되는 일이 험난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광고는 그대로 집행하세요. NPU를 공급한 건 사실이니. 사실 위주로.”
“알겠습니다.”
“인공지능 연구 팀장은 저도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고동만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 문화를 혁신하는 작업은······,”
그 뒤로도 김희건의 지시는 한 동안 이어졌다. 대부분 자신이 한 조언과 비슷한 방향. 김희건이 자신의 고언(苦言)을 받아 들였다는 뜻이었다.
“감사합니다.”
“과거의 방식으로는 100년 기업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고동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