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24)
탑 코더-124화(124/303)
# 124
세기의 이벤트
경기장 한편.
포트 관계자 대기실에 앉아 상황을 살피던 에이든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이거 무난하게 승리하는 구도네.”
헤나가 그런 에이든에게 무안을 주었다.
“경기 시작 바로 전까지 질까봐 벌벌 떨고 있었으면서 허세는.”
“내, 내가 언제.”
“손톱 물어뜯으면서 모니터 보고 있는 거 다 봤거든.”
“그런 적 없거든.”
“허··· 이거 오리발 내미는 거 봐.”
“이 몸은 처음부터 승리를 자신했다. 이 말씀이야.”
“제프, 얘 좀 봐요. 시간이 갈수록 아주 헛소리만 느네.”
제프는 아쉬운 눈빛으로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네 번째 경기의 120수가 진행 된 현재.
경기는 델타의 우위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주도권을 백이 좀 잡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흑의 공격이 너무 날카 롭습니다.
-여기 이 돌을 빼고 먼저 교환을 해두었다고 해도, 백이 이길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지금 백이 중앙 쪽에 뛰어드는 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해설에서 중계하고 있는 내용대로 델타는 압도적으로 ONE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게 준비한 전부라면 실망스럽기 그지없군.”
오늘 보았던 승호의 자신만만한 그 눈빛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에이, 제프가 저 녀석을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거라고요. 인공지능 개발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제프가 가장 잘 알잖아요.”
“잘 알지. ZONE 서비스에 들어가 있는 배드패킷 필터 기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누구 보다 잘 알기 때문에 실망스럽 다는 거야. 그 기능을 개발한 사람이 정말 강승호가 맞다면···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오지는 않아야해.”
“그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인공지능과는 격이 달라요. 제프도 알잖아요. 간단한 필터 시스템과 인공지능. 그게 비교할 대상이 되나요.”
“어렵긴 하지만······.”
그 사이에도 해설은 이어지고 있었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긴 하지만 백 쪽은 힘이 많이 빠졌습니다.
-이런 전개가 계속 된다면 이 번 판도 무난하게 흑이 이길 것으로 예상 되는 군요.
-역시 델타는 델타인가요.
에이든이 흐뭇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지켜보며 해설을 들었다. 해설이 기분 좋은 노랫소리처럼 들리고 있었다.
“후후, 이번엔 다를 거다.’
오늘 경기만 벌써 0 대 4.
두 판만 더 이기만 승리다.
-다른 곳은 더 이상 안 됩니다. 어떻게든 중앙에서 승부를 내야 하는데요.
-여기서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방금 ONE이 착수를 했습니다.
-흠··· 이게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역시 컴퓨터라고 해야 할까요. 이 수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자충수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해설을 듣던 에이든이 픽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변을 없을 거예요. 포트는 이길 겁니다. 괜한 허세라고요.”
에이든은 바둑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제프는 달랐다. 지난 번 인간 대 인공지능 바둑 대결 전부터 바둑을 공부해 왔다. 실력은 아마 1단.
그런 그가 보기에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어도 자충수 까지는 아니었다. 중요한건 ONE이 기존 패턴과 다르게 착수하고 있었다. 제프가 털썩 자리에 앉아 급히 모니터링 페이지를 확인했다.
“걱정 말고, 잠시 커피 한 잔하고 오세요. 제가 잘 보고 있을 테니까.”
자신만만한 에이든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화면에 집중했다.
“달라. ONE이 착수하는 속도가 1초 정도 빨라졌어.”
그 말에 에이든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하여간 걱정이 많으시다니 까.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우리가 이길 텐데.”
***
고동수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경기 도중에 패치를 진행한 건 아무래도 무리······.”
승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진행했다면 우리가 졌을 수도 있다.”
“···네.”
예카테리나 박사도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표님 판단을 신뢰하긴 하지만··· 이번 건은 조금 무리가 있었습니다. 차라리 오늘 경기를 포기하고 패치를 한 후에 내일 적용 했어도 충분 했을 겁니다.”
“포트는 이미 논문을 낼 정도로 해당 분야에 박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걸 만들어 내 겨우 수 주에 걸친 테스트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정교함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 결정은 조금 무리였습니다.”
“그 정교함을 높이기 위해서는 ONE을 최대한 학습 시킬 시간이 필요합니다. 델타와 최대한 많은 경기를 하도록 할 시간이요. 그러니 오늘 이대로 경기를 끝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도 만만치 않았다. 승호의 말에 반박 할 수 있는 건 이 자리에서 예카테리나가 유일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무리한 결정이라고 말씀 드린 겁니다. 대표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시피 아주! 중요한 테스트 과정이 빠졌으니까요. 테스트도 하지 않고 바로 업데이트를 해버리다니.”
“제 머릿속으로 테스트를 끝냈습니다.”
처음으로 예카테리나가 코웃음 쳤다. 약간 감정이 올라오는 듯 차가운 표정이 금이 가고 조소가 서려 있었다.
“머릿속으로 테스트를 해 보셨다고요. ONE도 머릿속으로 테스트 해보신 것 아닌가요? 그러면 이미 테스트가 다 끝나 걱정 할 일이 없을 텐데요.”
무겁게 가라 앉은 분위기.
패색이 짙어져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내분에 백채원, 고동수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승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도 ONE 시스템 전체를 머릿속에서 테스트할 정도는 되지 않아요. 그러나 방금 전 적용한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 그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은 서로 힘을 합쳐야 할 때이니.”
“저 흥분 안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예카테리나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실 흥분을 안 한 게 아니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감정이 상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게 벌써 몇 번째 인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꾸만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예카테리나가 긴 숨을 내쉬며 겨우 감정을 가라 앉혔다.
“휴우··· 그래서 아무 문제없을 거란 말인가요?”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무 일 없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부터 ONE이 반격을 시작하길 기다려봐야죠.”
예카테리나가 다시 경기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바둑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경기 형세가 실시간으로 분석되어 모니터링 페이지로 전송되고 있었다. 그 결과에 따라
‘아 지금 지고 있구나.’
,
‘이기고 있구나.’
판단 할 뿐이었다.
-chance of winning : 39%
지금 ONE이 판단하고 있는 이길 확률 이었다.
반도 안 되는 확률.
그걸 보자마자 또 한 번 한 숨이 나왔다.
“휴우······.”
그 사이 ONE이 또 한 번 착수 했다.
-어, ONE이 또 약간 특이한 수를 뒀습니다.
-이 상황은 바둑 10급도 아는 정석인데요. 단수치고 빠지고, 단수치고 빠져야 하는 형세인데 ONE이 걸치기를 했습니다. 이거 묘한 수네요.
-이건 저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인데요. ONE이 오류라도 일으킨 걸까요.
-그렇다면 오늘 경기는 이걸로 끝나게 되겠군요.
해설 진들의 의아한 반응에 기자들이 급히 기사를 적어나갔다.
-[속보] ONE 패배 확실시. 첫날 경기 델타의 승리가 되는 것인가.
-[속보] 한국의 ONE. 기세 좋은 말로 시작했으나 결말은 글쎄······.
-[속보] 포트의 델타. 세계 최강의 인공지능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승호는 눈을 빛내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고, 예카테리나는 모니터링 페이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chance of winning : 44%
‘단숨에 5%가 올랐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ONE이 착수 할 때 마다 승률이 계속해서 올라갔다.
-chance of winning : 45%
-chance of winning : 47%
-chance of winning : 47.5%
-chance of winning : 49%
-chance of winning : 52%
그리고 결국 50%를 넘겼다.
***
같은 시각.
에이든은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켜고 있었다.
“이번 판도 거의 끝났네요.”
ONE 0 vs DELTA 5.
이번 판을 이기면 첫 날 경기는 끝이 난다.
총 10판 6선 승제.
무승부가 될 수 있도록 경기를 하자고 한 건 포트 쪽의 제안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경우.
무승부를 통해 자존심은 지킬 수 있도록.
“이 정도 수준이었으면 무승부 경우는 없어도 됐을 텐데. 아쉽네.”
그러나 막 모니터링 페이지를 확인한 헤나의 표정은 달랐다.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고, 입술은 한 일자로 굳게 닫혀 있었다.
“이거 한 반 봐봐. 현재 델타가 분석한 승률.”
-chance of winning : 47%
처음으로 50%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걸 확인한 에이든이 움찔 거렸다.
“제대로 분석한 것 맞아? 47%라니. 50% 아래로 떨어졌잖아.”
“내 말이. 저 사람들이 해설하는 내용과는 다른 분석이야. 델타가 틀릴 리는 없는데.”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에이든이 고개를 홱 돌려 제프를 바라보았다. 제프는 팔짱을 낀 채 경기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프, 모니터링 결과 봤어요? 지금 델타 승률이 50% 아래로······.”
“ONE이 변했어.”
“네?”
“ONE의 착수 시간을 확인해봐.”
제프의 지시에 에이든이 다시 모니터링 페이지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델타가 착수한 시간. ONE이 착수한 시간이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었다.
ONE 4.5 sec : DELTA 3.3sec
ONE 4.8 sec : DELTA 3.1sec
ONE 4.9 sec : DELTA 3.2sec
그렇게 이어지던 시간이 어느 순간부터.
ONE 3.5 sec : DELTA 3.1sec
ONE 3.4 sec : DELTA 3.6sec
ONE 3.7 sec : DELTA 3.3sec
ONE 3.1 sec : DELTA 3.8sec
ONE의 착수 시간은 줄어든 반면 델타의 착수 시간은 늘어나 있었다.
“이게 왜······.”
의문을 가질 사이도 없이 해설 진들의 목소리가 높아 졌다.
-아!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방금 전 ONE이 잘못 둔 게 아니었습니다.
박빙의 승부에 긴장감이 더해진 해설이 이어졌다.
-결국 바둑은 누가 더 큰 영역을 차지하느냐의 싸움인데요. 지금 보시면 흑이 오른쪽, 백이 왼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앙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이번 6판의 승패를 가리는 승부 처 인데요. 보시면 ONE이 이렇게 적진 한 가운데 착수했어요.
해설 진은 바로 몇 수 전 ONE이 보여준 착수를 차례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착.착.착.
바둑알이 판에 닿을 때마다 맑은 공명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형세가 변화했다.
-이게 결국 왼편의 본진과 이어지면서 중앙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는 시초가 된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이번 판 승기가 ONE 쪽으로 다시 기울 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짧은 사이.
그 보다 더 짧은 5초라는 룰 덕분에 몇 번의 착수가 더 진행되었다.
-chance of winning : 45%
-chance of winning : 41%
-chance of winning : 39%
결국 30% 대까지 떨어진 승률에 에이든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젠장······.”
불현 듯 지난날의 악몽이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