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25)
탑 코더-125화(125/303)
# 125
세기의 이벤트
한국 시간 새벽 6시 30분.
아침 일찍 일어나 TV를 시청하던 고동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 이겼다! 이겼어! 이겼다! 으아아!”
경기를 지켜보던 고동만이 감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탄성을 내지른 것이다. 아침밥을 준비하던 부인이 치마 바람으로 TV 앞으로 달려왔다.
“뭐야, 뭐야. 이겼어요? ONE이 이겼어? 동수가 해낸 거야?”
고동수가 달려온 부인을 얼싸안고 소리쳤다.
“이겼어. 드디어 한 판 이겼다고. 그것도 짜릿한 역전승.”
“진다고 하지 않았어? 당신이 보기에 질 것 같다고 했었잖아.”
“방금 전까지는 그랬지. 그런데, 그런데··· 와. 이거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ONE이 파바박 수를 두니까. 포트가 당황했는지 실수를 연발 하면서.”
“그러면서 이겼다?”
고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감동했는지 두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감동적 이었어. 눈물까지 글썽거릴 만큼.”
“누, 누가 울었다고 그래. 난 그냥 같은 한국인이자 아버지의 한 사람으로써.”
“아이고, 알았어요. 이 양반아. 남자가 늙으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아 글쎄.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알았으니까. 좀 비켜 봐요. 나도 좀 보게.”
부인이 TV 앞에 섰다. TV에서는 막 ONE의 승리를 축하하는 팡파레가 터지고 있었다.
1일차.
ONE 1 vs DELTA 5.
5패 끝에 거둔 첫 승.
앞으로 한 판이라도 지게 된다면 1일차 경기는 ONE의 패배로 돌아간다. 그러나 계속 이기게 된다면 무승부가 되는 것이다. TV에서는 감격한 해설 진들의 해설이 이어지고 있었다.
-와, 이거 2002년 월드컵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실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포트입니다. 무려 포트의 델타. 그런 인공지능을 상대로 한국의 인공지능이 1승을 거두다니요.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승리입니다. 사실 ONE이 몇몇 착수에서 실수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묘수였습니다. 그게 이어져 지금의 승리로 이어진 거라 봐도 무방합니다.
-묘수가 아닙니다. 신의 한수입니다. 비록 몇 년 전 포트의 델타에게 한국의 바둑 기사는 패배했지만 오늘 한국의 ONE이 델타에게 첫 번째 승리를 따 냈습니다.
-여러분 ONE이 이겼습니다. 곧 다음 경기가 시작 됩니다. 그 경기에서도 ONE이 이길 수 있도록 응원 부탁드립니다.
고동만이 부인의 손을 꼭 붙잡고 소리 쳤다.
“대한민국 짝짝짝짝!”
***
승호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첫 번째 승리.
기대했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결국 승리를 따냈다. 고동수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승호를 보았다.
“대표님!”
승호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고동수를 보았다.
“이제 겨우 한 판이야. 아직 많이 남았다.”
“넵!”
대답에는 힘이 넘쳤다. 겨우 1승에 불과하지만 이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게 중요했다. 패색이 짙어지던 승호 일행에 조금이지만 활기가 돌아왔다. 예카테리나가 모니터링 페이지를 보며 중얼 거렸다.
“아까의 업데이트 덕분인가요? 확실히 ONE이 착수하는 속도가 빨라졌군요.”
“이유는 그것 밖에 없을 겁니다. ONE이 학습하고 있긴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을 테니까요.”
“이번에도 대표님의 판단이 옳았군요.”
“저도 실 수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박사님께서는 지금처럼만 해주시면 됩니다.”
예카테리나는 속으로 살짝 놀랐다. 아까의 발언으로 질책을 들을 줄 알았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게 아닙니다.
-노력 말고 성과를 가져오세요.
-입으로 떠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결과로 보여주세요.
-제가 계속 듣기에는 무의미한 활자혼합물처럼 느껴지는 군요.
-차라리 생각이란 걸 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온갖 독설을 아랫사람들에게 퍼부었다. 그러나 시내소프트에 입사한 후 한 번도 독설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독설을 하지 않고도 결과를 내는 승호를 보며 예카테리나는 생각에 잠겼다.
‘좋은 결과와 거친 말이 꼭 비례하는 것만은 아닐지도.’
승리의 여운이 가시고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고동수를 비롯해 백채원, 예카테리나가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착.착.착.
ONE과 델타가 빠른 속도로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방금 전과 같은 일방적인 경기는 아니었다.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고, 미국 해설 진들은 놀란 표정으로 해설을 이어나갔다.
-경기가 혼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ONE이 각성이라도 한 걸까요.
-아··· 이번에는 델타가 악수를 두는군요. 보시다 시피 최초 델타가 착수를 했던 시간은 3초대 그러나 조금씩 시간이 늘어나 지금은 4초가 걸리고 있습니다.
-계산을 하는데 오래 걸린다는 뜻이군요.
-네. 고심 끝에 악수 둔다고 현재 델타가 그런 상황입니다.
-이번 판도 어려울 수 있겠어요.
그러나 현지가 나가 있는 한국 해설진의 반응은 달랐다. 표정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지금 이 페이스만 유지하면 이번 판도 ONE의 승리가 점쳐 집니다. 어떻습니까. 김성원 9단님.
-네. 제가 판단 할 때도 형세가 무척 좋습니다. 일단 좌상귀, 좌하귀에서 백인 ONE이 탄탄하게 집을 마련해 놨어요. 그러나 보십시오.
김성원 9단이 바둑판의 오른쪽 아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우하귀와 우상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흑이 제대로 진지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번 판도 ONE이 이길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앞으로 이변이 없다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페이스를 계속 유지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군요.
이변이 없으면 승리한다. 방금 전까지 델타가 들었던 말을 ONE이 듣고 있었다.
***
ONE 3 vs DELTA 5.
ONE 4 vs DELTA 5.
ONE이 연속적으로 승리를 따내며 빠른 속도로 격차를 좁혀 갔다. 에이든이 땀을 뻘뻘 흘리며 델타가 뿜어내는 로그를 살폈다.
“도대체 이유가 뭐야. 도대체 이유가······.”
이럴 리가 없었다. 절대 델타가 질 리가 없었다. 그런 에이든에게 제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델타 코어가 예상치 못한 수에 계속 당황하고 있어. 그래서 착수 속도가 느려진 거고.”
“당황하다니요. 델타 코어를 당황 시킬 수 있는 건 같은 델타 밖에 없습니다.”
“그건 델타 끼리 붙였을 때의 이야기고. ONE이 다른 알고리즘을 가지고 다른 수를 만들어 내면 당황할 수밖에.”
그러나 에이든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델타는 현존 최고의 인공지능입니다. 델타가 만들어내는 수(手)가 최고의 수라고요!”
그런 말과는 달리 이번 판에서도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프는 그리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내가 말 했었지. 그걸 넘어선 새로운 인공지능을 들고 찾아 올 수도 있다. 결과만 봐서는 정말 그걸 해낸 것 같군.”
듣다 못한 헤나가 빽 소리를 질렀다.
“제프! 지금 ONE 감탄이나 할 때가 아니라고요! 어떻게든 수를 내서 이겨야죠!”
“헤나, 에이든.”
“네.”
“넵!”
제프가 픽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저들이 새로운 인공지능을 들고 왔다지만, 정말 델타가 질 거라 생각하고 있나?”
둘은 동시에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도 똑 같이 하면서.
“네?”
“그간 우리의 노력이 이렇게 쉽게 허물어 질 거라 생각 하냐고.”
에이든의 대답이 한 발 빨랐다.
“아, 아닙니다.”
제프가 고개를 주억 거리며 말했다.
“모니터링 페이지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봐봐. 델타는 지금 지고 있는 게 아니라 학습을 하고 있는 중이야. ONE에 대한 학습을.”
그 말에 둘은 동시에 모니터링 페이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델타에 적용되어 있는 매개 변수들이 조금씩이지만 변화되어 있었다.
-support vector : 0.1233
-z.score : -2.311
-coefficient of determination : 0.41π······.
값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변하면 최적의 값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support vector : 0.1232
-z.score : -2.315
-coefficient of determination : 0.39π······.
제프가 둘을 보며 말을 이었다.
“델타는 지금 학습을 통해 ONE에 맞는 최적의 변수를 찾아가고 있어. 그 값을 찾았을 때.”
-아! 델타의 반격인가요. 중앙 쪽에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델타가 ONE의 빈집을 공격하면서 정신을 빼놓은 사이 중앙을 자치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어지는데요.
-ONE과 델타. 델타와 ONE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승부입니다. 경기는 다시 난전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해설진의 말처럼 기울어지던 승부가 다시 팽팽한 실처럼 당겨졌다.
***
ONE 4 vs DELTA 6.
첫 날 경기는 결국 델타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사람들이 기대하던 이변은 없었고, 몇몇 사람들은 실망을 몇몇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기대로 밤잠을 설쳤다. 승호는 후자 쪽에 있었고, 밤잠을 설치는 것이 아니라 내일 경기에 대한 전략을 짜고 있었다. 호텔에 함께 온 건 승호를 비롯해 총 4명.
고동수.
백채원.
예카테리나.
그 세 명이 승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 했던 패치는 촉삭 시스템과 새롭게 적용한 신경망 알고리즘의 통합 작업. 사실 다른 프로젝트에 떠 있는 것들을 패키지 통합 한 정도라 그리 난이도가 큰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고동수가 입을 달싹 거렸다.
‘그게 대표님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요······.’
승호가 간단 하 게 말 하고 있었지만 고동수의 생각처럼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평범한 개발자라면 수일에 걸쳐 해야 할 작업이었고, 고동수 정도의 실려자라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그러나 그런 속내는 감출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걸 광고 하는 것 밖에 되지 않기에.
“그리고 여러분 도 보셨다 시피 델타도 학습을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변화된 ONE에 적응. 결국 오늘 경기는 ONE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과연 델타는 델타라고 해야 할까요.”
예카테리나가 무겁게 고개를 주억 거리며 말했다.
“만약 대표님이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지 못했다면 4판도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하하, 네 뭐. 어쨌든 제가 하려는 말은 이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
“채원씨 오늘 모니터링 결과 띄워 보세요.”
백채원이 고개를 끄덕였고, 호텔에서 준비해준 프로젝터에서 오늘 경기 내용이 정리된 결과가 나타났다.
ONE 3.1 sec : DELTA 4.3sec
ONE 3.2 sec : DELTA 3.4sec
ONE 3.2 sec : DELTA 4.4sec
ONE 3.1 sec : DELTA 3.7sec
승호가 도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면 착수에 이루어지는 속도가 ONE이 더 빨라졌습니다. 반면 델타의 착수 속도는 중구난방. 학습을 하긴 했지만 아직 최선의 수를 찾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고동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 그렇다는 말은.”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경기에서 최소한 지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지. 최초 내가 예상했던 박빙이 펼쳐 질 거야. 그리고 또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우리가 새롭게 만든 알고리즘이 델타를 학습해. 결국 이기게 될 거야.”
승호의 얼굴에는 자신 감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