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26)
탑 코더-126화(126/303)
# 126
세기의 이벤트
둘째 날.
경기는 아침 10시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아침 9시 전부터 모여 전날의 경기를 복기 하고 오늘의 경기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델타는 델타야. 오늘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흐음··· 오늘은 뭔가 다를 것 같지 않아? 어제도 갑자기 형세가 변했잖아.”
“일시적인 현상이지. 오늘은 포트도 꽤 준비를 했을 거야.”
“하긴 포트가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막판에 ONE이 뭔가 변수를 보여 줄 것 같기도 한데······.”
“변수는 무슨, 발악이지.”
기자들은 둘 모두 미국 방송사 소속 기자.
서로를 보며 픽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긴 포트가 질 리가 없지. 마지막 까지 발악하는 모습을 한 번 지켜보자고.”
그게 경기장을 뒤덮은 대다수의 분위기였다. 중국, 유럽, 일본 등등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들 대부분이 포트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한국 인공지능이 미국을 이긴다?
-하하,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 믿어주지.
그런 대화가 끝없이 오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파견 나온 기자들은 아쉬운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역시나 그렇겠지. 애초에 수년이나 뒤져 있는 인공지능 기술 격차를 이긴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어제 몇 판 이긴 게 대단한 거야. 누가 델타를 상대로 이길 생각이나 할 수 있겠어.”
“다큐 준비해 둔건 날려야 하나······.”
“일단 틀어.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상당하니까. 이슈는 확실히 될 거야. 다만 편집은 좀 해야겠지. 경기에서 지는 모습도 최대한 줄이고.”
“쩝······.”
그렇게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경기 시작 20분 전.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양쪽 사람들에게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댔지만 다들 묵묵부답.
굳은 표정으로 마지막으로 세팅을 점검했다. 그렇게 10시가 되고 다시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경기가 시작되었다.
착.
착.
착.
인공지능이 착수를 하면 실제 프로기사들이 그 대로 바둑판에 착수한다.
오늘은 흑이 ONE. 백이 델타.
경기는 ONE의 선수로 시작 되었다. ONE이 선수를 잡은 이점을 최대한 살린 탓일까.
경기 시작 초반에는 치열하던 양상이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ONE쪽으로 서서히 기울었다.
거기 까지 걸릴 시간이 8분.
아무리 오래 걸려도 20분 안에 끝나는 인공지능 간의 대결이었다. 8분이면 중반이 지난 상황.
그 상황에서 ONE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오늘은 ONE이 공격적으로 착수를 합니다. 델타가 흔들리고 있어요.
-어제 ONE이 델타에 대비한 몇 가지 수를 준비해 왔나 보군요. 경기가 흑에 우세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렇게 끊기를 당하면 결국 백은 제대로 집을 짓지 못하고 진지를 구축하지 못하게 될 텐데요.
해설 진의 해설대로 흑의 완연한 우세.
그렇게 수분이 더 지나고 델타의 모니터에 한 문 장이 나타났다.
-resign, Add to game information 델타가 패배했을 때 나오는 문장.
흑이 이겼다는 말이었다. 한쪽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승호 일행은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겨우 1승.
아직 오늘 경기는 9판이나 남았다. 그때 까지 최대한 많은 경기를 진행해야 ONE을 학습 시킬 수 있고, 최종 승리를 따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
세종시.
정부 청사.
유니콘 육성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주무관이 들뜬 표정으로 물었다.
“경기 보셨습니까?”
박신우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허, 일은 안 하시고.”
“그걸 보는 게 제 일입니다. 그러는 주무관님은 요.”
“하하, 제 일이 사무관님을 보조 하는 일이니 당연히 봐야지요.”
농담을 주고받은 둘이 서로를 보며 픽 웃었다. 박신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3 대 2. 오늘은 경기가 아주 치열 합니다. 이거 좋은 징조겠죠?”
주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제는 5판을 내리지고 겨우 한 판을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초반부터 난전. ONE이 어제와는 다르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거··· 이러다 정말 ONE이 이길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지금 직원들끼리 내기 하고 있는데 사무관님도 참여 하시겠습니까? 커피 내긴데.”
“오··· 커피 좋죠.”
“지금 델타 승에 5명. ONE 이 이긴 다에 3명. 걸려 있습니다.”
박신우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주무관을 보았다.
“아직 무승부에는 아무도 없군요.”
“무승부요?”
“10판이니까 무승부가 될 수도 있잖아요.”
주무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승, 패가 갈리는 승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잊고 있었다. 무승부도 있다는 사실을.
박신우가 그런 주무관을 향해 말을 이었다.
“저는 무승부에 걸 겠습니다.”
“흠······.”
“혹시 내일 것도 내기 했습니까?”
“내일 건 아직······.”
“점심 쏘기 어때요?”
“오늘 지면 어차피 내일은 없지 않습니까.”
“후후. 두고 보세요. 분명 오늘은 무승부가 되고, 내일은 ONE이 압도적으로 이길 겁니다.”
“네?”
박신우가 모니터에 켜놓은 경기화면을 보며 중얼 거렸다.
“아시죠? 제 감이 얼마나 좋은지. 제 감이 아주 강렬하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무승부 내일은 ONE이 승리.”
무승부라는 말에 주무관이 아쉬워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무승부가 되겠군요.”
그러나 박신우는 전혀 아쉬운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초반은 지다가, 중반은 난전, 마지막은 압도적 승리. 이 과정에서 진정한 승리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무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박신우는 그저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경기를 지켜볼 뿐이었다.
***
2일차.
ONE 3 vs DELTA 3.
앞으로 남은 경기는 4판.
두 인공지능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난전을 선보이고 있었다. 미국 쪽 기자들은 예상을 빗나간 결과에 혼란한 모습이었지만 한국 쪽 기자들은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이거 이러다 오늘 이길지도 모르겠어.”
“포트를 이긴다······.”
“그러면 진짜 특종인데.”
“강 대표가 출국장에서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니까. 진짜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난 그냥 젊은이의 혈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까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군.”
“휴우··· 제발 이기자. 이기자!”
“그런데 이건 내 감인데··· 델타가 착수하는 시간이 점점 느려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그, 그런가.”
“내 감이 확실해. 착수 시간 기록 표 한 번 확인해봐.”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기자가 빠르게 착수 시간 기록표를 확인해 보았다.
ONE 3.1 sec : DELTA 4.5sec
ONE 3.3 sec : DELTA 4.8sec
ONE 3.1 sec : DELTA 4.4sec
델타가 전부 4초가 넘어가 5초 근방을 기록하고 있었다. 기자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어제 기록표 한번 보자. 어제는 분명 델타가 3초대를 기록 중인 것 같았는데.”
ONE 4.4 sec : DELTA 3.5sec
ONE 4.5 sec : DELTA 3.2sec
ONE 4.8 sec : DELTA 3.1sec
정확히 반대를 기록하고 있는 시간표.
그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뭐야, 정말 시간이 어제 보다 오래 걸리고 있잖아.
“이거 진짜 ONE이 이길 수도 있겠어.”
“헐······.”
같은 기록을 승호도 보고 있었다.
‘ONE이 점점 학습을 하며 델타를 뛰어 넘고 있다.’
ONE이 착수하는 시간은 3초대로 안정을 찾은 반면 델타가 착수하는 시간은 4초가 되었다가 3초가 되었다가 들쭉날쭉 했다.
ONE의 착수에 델타가 당황하고 있다는 뜻 이었다.
2일차.
ONE 4 vs DELTA 3.
그 사이 또 한 번의 승부가 끝났다.
결과는 ONE의 승리.
경기를 지켜보던 고동수가 환호성을 질렀다.
“이얏호! 이겼다!”
백채원도 작은 주먹을 꽉 쥐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휴우······ 아슬아슬 하네요.”
예카테리나도 마찬가지.
“이겼군요. 잘하면 오늘 무승부가 될 수 있겠습니다.”
“ONE과 델타 착수 시간 한 번 더 검토해보세요.”
승호의 지시에 고동수와 백채원이 재빨리 반응했다.
그 사이 경기는 바로 시작 되었다. 어차피 인공지능끼리의 대결이었기에 쉬는 시간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착.
착.
착.
착.
ONE과 델타가 서로 수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났을 쯤 이번에는 다시 ONE이 패배했다. 승호를 비롯한 일행은 아쉬운 탄성을 쏟아냈다.
ONE 4 vs DELTA 4.
다시 원점이 된 결과.
그렇게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경기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
청와대 새벽 4시.
홍상훈이 눈을 비비며 TV를 보고 있었다.
“이거 오늘은 꼬박 밤을 새고 말았어.”
함께 있던 비서실장은 여전히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잘하면 정말 이길 지도 모르겠습니다.”
“1무 1패. 만약 내일 승부에서 이긴다면 그렇게 되겠지.”
“축전이라도 하나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만약 정말 이기게 된다면 이번에도 청와대 만찬 초청을 한 번 할 생각이야.”
비서실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게 그 지난번 청와대에서 봤던 인공지능이지?”
“네. 그때는 초기 버전이었고, 기술 개발을 통해 성능을 업그레이드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홍상훈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TV에 나오는 승호의 얼굴을 보았다.
“우리나라에 저런 젊은이가 많아져야 나라가 발전 할 텐데.”
“하하, 저런 친구 10명 정도만 있었으면 한국 서비스 산업도 자영업 중심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심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만약 지게 된다 하더라도 정부에서 뭔가 조치 할 수 있는 게 없겠나?”
비서실장이 입술을 꽉 다물 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수 초간 고민 후 겨우 입을 열었다.
“ONE을 활용한 정부 사업을 제안하는 형식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율주행차를 비롯해서 스마트 시티. 국방 등등 필요한 분야는 무궁무진 할 테니까요. 지금도 한국대 허춘수 교수를 비롯해서 박성대, 김필수 교수 연구비를 지급하면서 간접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긴 합니다.”
“흐음··· 스마트 시티라. 이번에 부산을 스마트 시티로 선정해서 투자가 진행되고 있지?”
“네. 맞습니다. 3년간 4조 규모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ONE이 들어 갈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봐. 저 정도의 기술력이면 당연히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다른 사업에도 적용 가능성 한 번 알아보고.”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TV에서는 한국 해설 진들이 ONE의 우수성에 대해 입이 아플 정도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1무 1패.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슈화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