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27)
탑 코더-127화(127/303)
# 127
세기의 이벤트
경기마지막 날.
한국은 새벽 시간이었지만 방송국 사람들은 잠을 잘 틈이 없었다. KBC 방송국에서 ONE vs DELTA 중계방송을 담당하고 있는 PD가 졸린 눈을 비비며 조연출에게 물었다.
“어제 시청률이 얼마였다고?”
“7%를 넘었습니다. 4년 전 델타 경기 때 보다 2%가 더 올랐습니다.”
“더구나 1무 1패. 박빙이란 말이지.”
“오늘 10%를 기대해 봐도 될 것 같습니다. ONE이 서서히 폼을 잡고 있는 상황이니.”
“네 생각은 어때? 정말 ONE이 이길 수 도 있을 것 같나?”
조연출이 고개를 갸웃 거리며 답했다.
“추세를 보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 말로는 무승부만 해도 이긴다고 하니.”
“진짜 이기면 대박이긴 한데··· 그 강승호 대표 다큐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어?”
“교양 쪽에서 준비 해 놨다고 합니다. 이기든 지든 방송한다고 그림 좀 잘 따달라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서현석의 스타트 업에도 출연했었지?”
“네. 그거랑 붙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PD가 주조종실에 붙어 있는 수십 대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실리콘밸리 샌드 힐 호텔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카메라는 경기 준비에 한창인 승호 일행을 비추고 있었다.
“강승호 만이 아니라 저기 보이는 일행들에 대해서도 최대한 알아봐봐. 내 느낌에 오늘 이변이 일어날 것 같으니까.”
“그러면 따로따로 인터뷰 진행하라고 할까요?”
“그거야 당연한 거고. 최소한 1시간 이상씩 붙잡아봐. 뭐든 뽑아내야 쓸 거 아냐.”
“알겠습니다.”
“아마 경기 끝나면 붙잡기 더 어려워 질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약속 잡아놔. 이변이 벌어지면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조연출이 일을 하러 사라지고, PD는 시간을 확인했다.
샌프란시스코 09:50
샌프란시스코 현지시간이 9시50분.
이제 경기 시작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
세팅을 마친 고동수가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벌써 마지막 날이네요.”
“최소한 무승부는 하고 돌아가자.”
승호의 격려에 고동수가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약간 아쉽습니다. 델타를 이기고 돌아가고 싶었는데.”
승호가 입 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무승부지만 우리가 이기는 결과가 나올 거야.”
승호의 말에 나머지 일행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지막 세팅을 점검 중이던 예카테리나가 손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오늘 6연승으로 경기를 마무리 할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하하, 맞아요. 역시 박사님이 제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 군요.”
고동수가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ONE이 6연승을 할거라고요? 어제는 겨우 무승부를 펼쳤는데?”
놀란 백채원도 한 마디 거들었다.
“대표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약간 무리가······.”
“ONE은 완전히 안정을 찾았어요. 그에 비해 델타는 여전히 중구난방입니다.”
말을 하던 승호가 반대편에서 마지막 점검에 한창인 포트 쪽 사람들을 가리켰다.
“저기 보세요. 다들 피곤해 보이지 않아요?”
“그거야 당연히. 어제도 마지막 점검을 열심히 했을 테니까.”
“그리고 딱히 밝아보이지도 않고, 뭔가 근심이 가득한 표정.”
고동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대표님 이제는 무슨 심리술사라도 되신 거예요?”
“하하, 그런 건 아니고. 지금까지 나온 결과를 토대로 말하는 거다. 아직 저들은 ONE을 상대하는 법을 찾아내지 못했어.”
“어제 보여준 델타의 착수 속도 때문에?”
대답은 예카테리나가 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ONE이 스스로 이길 확률에 대해 평가 했을 때 첫째 날은 맞는 경우도 틀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건 확률이니까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러나 어제 중반부터는 달랐습니다. 50%를 기준으로 넘으면 승리. 밑이면 패배. 거의 99%의 정확도였습니다.”
그 다음 말은 승호가 이어나갔다.
“ONE이 델타를 완전히 파악했다는 말이야. 우리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고동수와 백채원이 동시에 탄성을 터트렸다.
“아······.”
“그래서 6 대 0 승리가 될 것 같다는 거지.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된다면 1승1무1패지만. 우리의 승리나 다름없지.”
승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포트 쪽 개발자들을 바라보았다. 마침 준비를 하던 에이든과 눈이 마주쳤고, 픽 한 번 웃어주었다.
반대편에서 세팅을 하던 에이든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저, 저 녀석이. 지금 웃어?”
헤나가 착잡한 표정으로 답했다.
“웃을 만하지.”
“아직 우리가 우위에 있다고.”
“어제 무승부 할 때 못 봤냐. 델타가 다시 갈피를 못 잡는 거.”
“그, 그거야 그렇지만. 델타가 무너질 일은 없어. 결국 이기게 될 거야.”
제프의 목소리도 착 가라앉아 있었다.
“애써 찾은 최적의 파라미터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어. 최적의 방법을 찾은 순간. ONE이 변하고 있다는 말이지. 하사비스도 이유를 찾고 있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다.”
헤나가 작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질수도 있어.”
“그래봤자 무승부. 우리가 진건 아냐.”
“너도 알잖아. 무승부 자체가 우리가 진거나 마찬 가지 란걸. 포트의 델타 관련 연구 인력에 사용하는 리소스가 얼마나 인지 알지? 그러나 시내소프트의 ONE은?”
헤나가 손가락으로 승호를 가리켰다.
“거의 저기 있는 사람이 다 아냐?”
“끄응······.”
에이든이 반박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사이 또 수분이 흘러 경기 시작 1분 전.
-이제 곧 ONE vs DELTA, DELTA vs ONE의 마지막 날 경기가 시작 됩니다. 양측 개발진들이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OK 사인을 보내왔습니다.
째깍.
째깍.
째깍.
수초가 흐르고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세기의 대결 마지막 날 경기를 시작 하겠습니다.
바둑판위에서 흑과 백이 어지러이 춤을 추었다.
마지막 날 경기답게 경기는 팽팽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경기룰은 앞 서 1, 2경기와는 다르게 매 판 마다 흑과 백이 바뀐다.
첫 번째 경기는 ONE이 흑.
선수로 진행되었다.
-선수를 잡은 ONE. 아주 공격적인 수를 많이 두고 있습니다. 보시면 흑이 백을 가르는 듯한 형세가 형성 되어 있는데요.
-이걸 바둑에서는 가르기라고 합니다. 이런 가르기는 특히나 공격적인 성향의 바둑 기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인데 ONE이 현재 그런 수를 많이 두고 있습니다. 델타와의 대국에 자신감이 붙은 걸까요.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해설처럼 ONE은 공격적으로 바둑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공격은 매번 최선의 수가 되어 델타의 급소를 찔렀다. 첫 번째 판이 끝날 때 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resign, Add to game information 델타가 먼저 패배를 인정했다.
3일차.
ONE 1 vs DELTA 0.
ONE의 기분 좋은 첫 승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KBC 방송국 주 조종실의 PD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이거 잘하면 정말 이변이 일어날 지도 모르겠어.”
함께 있던 조연출이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시청률을 확인했다.
“시청률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금 시청률이 9%. 정말 10% 넘을지도 모르겠네요.”
“포트도 넘고, 시청률도 10% 넘어야지.”
PD가 화면에 집중했다. 컴퓨터들의 대결이다 보니 별도의 쉬는 시간 없이 바로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흑이 델타 백이 ONE이었다.
-이번 판은 ONE이 백으로 진행 됩니다. 지금까지의 양상을 보면 ONE이 백을 잡았을 때의 승률이 45% 정도 되는데요. 전 판과 같이 자신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주면 이번 판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국 해설진의 사심이 담긴 해설이 이어졌다.
새벽 2시 20분.
경기를 보는 시청자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
까득.
에이든이 초조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손톱을 깨물었다.
ONE 3 vs DELTA 0.
3판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직 델타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런 말 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러다 정말 지는 거 아냐······.”
헤나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에이든이 애써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럴 리가 없어.”
제프가 심각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제프, 어때요. 우리 이대로 지는 거 아니죠?”
헤나가 대답을 대신했다.
“오늘 경기에서 전부 진다고 해도 1승 1무 1패. 우리가 지는 건 아니야.”
제프는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볼 뿐이었다. 가끔 모니터링 페이지를 보며 델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럴 때 마다 이마의 주름이 하나씩 더해졌다. 경기를 주시하던 제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6 대 0으로 진다면. 1승 1무 1패지만 우리가 진거나 마찬가지가 되겠군.”
놀란 둘이 동시에 답했다.
“네?”
“보면 이번 판도 델타가 이기기 어려워. 그러면 곧 4대0. 6대0이 될 지도 모르지.”
“설마 그럴 리가··· 델타가 그런 식으로 질 리가 없잖아요.”
그러나 해설 진들의 반응은 달랐다.
-ONE이 백을 잡은 판이라 흑에 6집 반을 준다고 해도, 보시면 백이 3집을 더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집을 지을 곳이 없으니, 적진에서 집을 빼앗아 와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그렇게 수 분이 더 흐르고.
-resign, Add to game information.
델타가 또 한 번 패배를 선언했다.
***
KBC에서 ONE vs DELTA 세기의 이벤트 중계방송을 담당하고 있는 PD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꽉 깨문 채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PD님 이거 이러다 진짜 ONE이 이기는 거 아닙니까?”
“이제 한 판이다. 한 판 만 더 이기면 6대 0이야. 최종 결과는 1승 1무 1패지만 결국 마지막에 6대0 승이면.”
“ONE이 이긴 거나 마찬가지네요.”
“그러니까. 국장님께 말씀 드려서 다큐 편성도 최대한 앞으로 당겼다. 바로 오늘 저녁 프라임 시간대에 틀 수 있게.”
“지금 시청률도 어마어마합니다. 무려 15%예요. 방송 3사에 종편들까지 합치면 거의 50%를 육박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거대 미국을 상대로 이렇게 까지 선전 할 줄 누가 알았겠어. 더구나 5대0이라니. 후아··· 이건 진짜 말도 안 된다.”
“국민영웅이 국민영웅 짓을 한 거네요.”
“일이 많아서 현장에 못 간 게 천추의 한이다. 천후의 한이야.”
“입을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PD님 질 거라 생각하고 안 가셨잖아요. 거기 까지 가서 뭐 하러 지는 경기 보냐고.”
“야, 그, 그거야. 그때는 상황이 달랐으니까.”
“흐흐, 저도 진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대부분 일겁니다. 그래서 더 열광하는 거고요.”
둘이 잠시 사담을 나누는 사이 갑자기 바깥에서 거친 함성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아! 이얏호! 대박! 으아아아아-이야! 말 도 안돼! 이게 진짜 말이 된다고.
-대∼ 한민국! 짝짝!짝짝짝!
-끄아아아악!
응원소리에서부터 억눌린 신음소리 까지.
황급히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둘은 어느새 끝나 있는 경기를 볼 수 있었다.
269수 백 불계승.
ONE 승리.
최종 결과 ONE 6 vs DELTA 0.
종합 결과 1승1무1패.
결과를 확인한 둘이 서로를 마주보며 똑같이 함성소리를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