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28)
탑 코더-128화(128/303)
# 128
처음으로 떠나는 휴가
너무 기쁘면 오히려 아무 소리도 지를 수 없는 법이다. 고동수는 그저 멍하니 경기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269수 백 불계승.
-ONE 승리.
-최종 결과 ONE 6 vs DELTA 0.
-종합 결과 1승1무1패.
모니터에 나타난 결과.
몇 번이고 두 눈을 부비고 다시 보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누, 누나. 이거 진짜죠? 거짓말 아니죠?”
그러나 백채원도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경기장의 거대한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 ONE WIN!
-269수 백 불계승.
-ONE 승리.
-최종 결과 ONE 6 vs DELTA 0.
-종합 결과 1승1무1패.
-ONE WIN!
두 개의 텍스트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고 있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승호였다.
“이겼구나······.”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마음 졸이며 했던 고생과 긴장, 초조, 불안감들이 훨훨 털려나가며 다행다라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이겨서 다행이다.’
만약 졌다면.
자신만만하게 공항에서 했던 말들이 거짓말로 변하고, 최악의 경우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기업인으로 기억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겼고, 약속은 지켜졌다.
“이겼군요.”
예카테리나의 중얼거림에 승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뭐, 정확히는 이겼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결과만 보면 이겼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제 대표님께서 말씀하신대로 ONE은 점점 성장해 더 뛰어난 성능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을 비롯해 방송을 본 세계인들은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알았을 겁니다.”
“하하, 현 시점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포트는 금방 치고 올라올 겁니다.”
예카테리나가 픽 헛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까지 대표님이 가만히 있을 분은 아니잖아요.”
입가에 호선이 그려지며 보조개가 쏙 들어갔다. 그녀가 시내소프트에 입사한 후 처음 보는 웃는 모습에 승호도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웃으시니까 보기 좋네요. 앞으로도 즐겁게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예카테리나가 몸을 움찔 거렸다.
‘내가 웃었다고?’
웃음.
언제인가부터 웃는 법을 잊어버렸다. 아마 델타 연구 개발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몰아치기만 했다. 그 모습이 시내 소프트에 입사하고부터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고동수도 입을 해 벌린 채 예카테리나를 보고 있었다.
“박사님이 웃으시니 진짜 보기 좋습니다.”
예카테리나가 괜한 헛기침을 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렇게 일행이 승리의 기쁨에 취해있는 사이 포트 쪽 개발진들이 승호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가장 먼저 다가온 건 에이든.
울 듯한 표정은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졌다.”
승호가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했다.
“무승부잖아.”
“······.”
분한지 아무 말 없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승호가 그런 에이든을 향해 말했다.
“즐거운 경기였다. 나도 많이 배웠어.”
“크윽, 승자의 아량 따윈 필요 없어.”
“과연 포트의 델타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 시간이 지나고 그때는 또 ONE이 질지도 모르지.”
“위로는 그만해!”
“그러니까 더 노력해. 나도 좋은 경쟁 상대를 잃긴 싫으니까. 그리고 경기 전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경기 전 했던 약속.
승호가 할 수 있는 일을 에이든이 하지 못하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내기.
“알았다. 끝나고 따로 연락해.”
에이든과의 대화가 마무리 될 때 쯤. 제프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배우고 익혀 새로운 것을 가져 왔군요.”
“기대한 결과가 나와 다행입니다.”
“하하, 이걸로 포트로 오는 건 물 건너 간 겁니까.”
“포트에는 저 말고도 다른 인재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승호씨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제프님이 있지 않습니까.”
제프가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경기에서 무승부를 당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다.
“하하하. 그런 말도 할 줄 아는지 몰랐습니다.”
“제프 월슨. 이 시대에 당신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도 마찬 가지고요.”
“승호씨는 방금 그 존경하는 개발자를 넘어섰습니다.”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뿐입니다.”
제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첫발이 너무 거대해요.”
“감사합니다.”
“이런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세계 최초로 포트와 무승부. 어쩌면 이긴 걸지도 모를 개발자님을.”
승호의 귀에도 기자들의 열정 가득한 고함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그리고 한국어.
다양한 언어의 다양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경호원들이 아니었다면 경기장은 진작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제프가 승호를 보며 말했다.
“가시죠. 기자 회견해야할 시간 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승호가 걸음을 옮겼다. 한 눈에 봐도 수 십대는 족히 넘어가는 카메라가 승호를 쫓았다. 눈짓하나 손끝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열의를 담고서.
***
셀 수 없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겨우 눈을 뜬 승호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시내소프트 강승호입니다.”
파방.
파바바바방.
다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제프는 익숙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자 회견을 하는 건 각 팀의 대표인 둘 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포트의 제프 월슨입니다.”
둘을 향한 플래시 세례가 잦아들 때 쯤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기자회견이 시작 되었다.
기자회견의 시작은 경기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먼저 포트의 제프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기소개에 이어.
“오늘 경기의 최종결과는 1승1무1패. 그러나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겁니다. 이번 대회에서 포트가 졌다는 걸.”
암묵적으로 퍼진 이야기를 공식화하는 말에 플래시 세례가 거세졌다. 제프는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포트도 질 수 있다. 그 사실을 우리 직원들이 기억하고, 명심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상입니다.”
자성의 목소리에 일부 기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승호도 놀란 눈으로 제프를 바라보았다.
‘에이든과는 완전 달라. 하긴 저런 사람들이 포트에 더 많겠지. 그래야 회사가 유지 될 테니까.’
제프도 승호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승호도 살짝 목례를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시내 소프트 강승호 대표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말에 승호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먼저 여기까지 함께 와준 동료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저 혼자였다면 포트와 무승부를 기록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승호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포트가 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일째 경기에서 비록 ONE이 선전하긴 했지만 1승1무1패라는 기록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승호가 잠시 숨을 골랐다.
무승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터였다.
“하지만 오늘의 결과가 시내소프트의 끝은 아닙니다. 오늘은 시내소프트의 인공지능 ONE의 시작을 알리는 날. 앞으로 ONE 이 걸어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봐 주길 부탁드립니다. 그때는 1승 1무 1패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경기에 대한 소감이 끝나고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 되었다. 질문은 단연 승호에게 집중 되었다.
-NBC 마이클 샌더스 기자입니다. 무승부를 기록한 소감과 또 비결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BBC 에단 아담스 기자 입니다. 3일차 경기에서 ONE은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했는데요. 예상 하신 결과인지 궁금합니다.
-니케이 신문의 아키노리 기자입니다. 포트로부터 인수 제안도 받으신 것으로 알 고 있는데요. 추후 합병 가능성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계 유수의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들이 승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승호의 대답을 그 기자들이 받아 적었다. 전 세계에 속보로 시내소프트, 강승호라는 명사가 전달되었다. 지금 시간만큼은 전 세계에서 승호 그리고 시내소프트가 주인공이었다.
***
오후 한 시가 다되어서야 기자회견은 끝이 났다. 승호는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대회가 시작하고 지금까지 6개월간을 쉼 없이 달려왔다. 매일 같이 이어진 야근에 최근 3일 동안은 거의 한 두 시간을 자다 시피 하며 초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그 피로감이 한 번에 밀려든 것이다. 절로 스르륵 눈이 감겼다. 승호는 핸드폰을 꺼버리고 누가 와도 깨우지 말라는 말을 남긴 채 잠이 들어버렸다.
수개월만의 단잠.
기대했던 결과를 이룬 채 대회가 끝이 났기에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잘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 승호가 거실로 나오자마자 익숙한 인물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옛날에도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요.”
자리에서 일어난 포트의 회장 라이언이 손을 내밀었다.
“체크 포인트 대회가 끝난 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승호가 그 손을 맞잡았다.
“매번 기다리게 만드는 군요.”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포트를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하하, 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쩐 일로······.”
“지난 번 제가 했던 제안 기억하십니까?”
“5억 달러 인수 제안이라면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엄청나게 후회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때 왜 5억 달러는 말했을까. 왜 강승호라는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진심이 느껴지는 말에 승호는 민망한 감정을 느꼈다. 괜히 머쓱한 마음에 코끝을 긁적거렸다.
“과찬이십니다.”
“델타의 가치는 현재 100억 달러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ONE은 그런 델타와 비등한 경기. 마지막 날에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00억 달러 그 이상의 가치 평가를 받아야 한 다는 말이죠.”
“그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으니까요.”
라이언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솔직히 말해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때라고 해봐야 불과 1년 전. 겨우 1년 만에 이런 성과라니.”
“ONE은 계속 발전해 나갈 겁니다.”
“기대 되는 군요. 앞으로 더 얼마나 발전하게 될지.”
“하하, 이런 이야기를 하시려고 절 기다린 건 아니실 테고······.”
그러자 라이언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미 아실수도 있겠지만 델타는 현재 적자입니다. 완벽한 인공지능이 아닌 이상 현실 적용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의사를 시킬 수도 판사를 시킬 수도 없습니다. 완벽하다고 해도, 법적, 윤리적 등등 여러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러나 포트는 그때 까지 버틸 수 있는 자본이 있는 기업입니다.”
라이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승호가 걱정하는 바이기도 했다. 그래서 국정원 담당자에게도 사업에 관한 요청을 한 것이고.
“ONE은 ZONE 고도화에 1차적으로 적용 될 예정입니다. 그걸로 수익 창출이 기대됩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합니다. ZONE이 뛰어난 보안 솔루션이기는 하나 보안은 그리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버틸 수 있는 자금은 될 겁니다.”
“하하,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 합니다. 오늘의 성과로도 투자는 엄청나게 들어올 테니까요. 그래서 제가 하려는 제안은 이겁니다. 100억 달러.”
“네?”
“당신의 팀을 100억 달러에 인수하고 싶습니다.”
한화로 12조에 달하는 금액.
승호도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