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29)
탑 코더-129화(129/303)
# 129
처음으로 떠나는 휴가
라이언이 돌아가고 승호는 방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12조.
포트의 회장이 직접 한 제안이었다. 결코 거짓말이 아니니라. 자신이 시내소프트에 가진 지분 전부를 팔게 되면 8조가 넘는 돈이 들어온다.
‘8조라··· 어느 정도 돈인지 상상도 잘 안 되는 구나.’
20억짜리 아파트를 4천 채 살 수 있는 돈. 반포에 있는 거대 단지 하나를 전부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어마어마한 부자.
단숨에 한국에서도 10위권 안에 드는 부자가 될 수 있는 돈이었다.
8조는 그런 금액.
그럼에도 선뜻 팔겠다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큰돈을 준다고 해도 팔고 싶지가 않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능력이 생기고 사장님의 승진 제안 연이어 주어진 지분 보상. 그때 황호근이 했던 말이 자신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 하나 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
처음 입사 했을 때만 해도 그저 입에 풀칠하기 위해 일을 했었다. 능력이 생기고 인정을 받으며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돈이 생기면서 깨달았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재벌들이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더 좋은 기술 더 뛰어난 기술로 회사를 성장시키고,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명예, 권력 그런 욕구들이 동시다발 적으로 일어났다.
그저 먹고, 사는 문제에 천착했던 과거와는 달리 좀 더 고차원 적인 욕구에 눈이 떠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 복잡한 욕구들이 얽히고설켜 회사를 팔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회사를 운영하며 8조를 버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인수 제안입니까?”
예카테리나의 목소리였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를 말하던가요? 10억 달러? 50억?”
승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예카테리나가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100억 달러?”
“네. 엄청난 액수를 제안하더군요.”
예카테리나도 마른 침을 삼 킬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며 돈의 가치를 현실 가치로 환산해 보았지만 치환이 잘 되지 않았다.
“누구나 혹 할 만 한 액수군요. 소프트웨어 업체에 대한 인수 금액 치고는 사상 최고액입니다. 포토북이 스타 그램을 인수할 때의 금액이 10억 달러였으니.”
“ONE의 원천 기술은 미래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100억 달러가 큰 금액이기는 하지만···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정은 내리셨나요?”
승호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에 자식을 팔아넘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ONE은 제 자식이나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있었다. 자신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그때 누군가 벨을 눌렀다.
삐이익.
삐이익.
고동수가 가장 먼저 바깥으로 나가 보았다. 문밖에는 착잡한 표정의 에이든이 서 있었다.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승호가 픽 웃음을 흘리며 에이든을 바라보았다.
***
에이든이 절망 적인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노력의 결과물을 그렇게 취급하니 섭섭한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한 번 더!’
를 외쳤다. 그러나 몇 번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자신이 시도해 보겠다는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에이든이 만든 간단한 프로그램을 IDA도 사용하지 않고, 어셈블리 언어로 코딩해냈다. 결과만 같은 것이 아니라 코드 안에 담겨 있는 처리 절차 까지 그대로였다.
보면 볼수록 놀라 운 광경.
승호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세상에는 너 말고도 많은 천재들이 있어. 네가 나를 어떻게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는 인정하겠지?”
“······.”
에이든은 멍한 눈빛으로 승호를 한 번 모니터를 한 번 훑었다. 인공지능으로도, 방금 전의 퍼포먼스로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 한 테 안 된다. 어쩌면 자신이 인정하고 있는 유일한 개발자 제프. 그 정도는 돼야 승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네가 할 수 없다는 걸 인정?”
머뭇거리던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이제 소원을 말 할 차례인가.”
“말해 봐.”
“실리콘 밸리에도 시내 소프트 지사를 하나 만들려고.”
이런 이직 제안은 익숙했다.
“지사장이 되어 달라는 건가?”
이번에는 승호가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지사장? 네가?”
“으, 응?”
“네가 지사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연이은 질문에 당황한 에이든이 헛기침을 했다.
“흠··· 흠흠. 그러면 어떤 건 말하는 건데.”
“수석 연구원. 물론 연봉은 포트에서 보다 많이. 어때? 싫으면 할 수 없지만.”
승호는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소원 들어주기라는 장난 같은 내기로 시작 된 일이었다. 그러나 에이든의 반응은 좀 달랐다.
“이미 약속 했으니 지켜야지.”
즉답에 놀란 건 승호였다.
“으, 응?”
“지사를 세우고 사무실이 생기면 연락 줘. 회사에도 미리 말을 해 놔야 하니까.”
에이든 베이커.
해킹 대회를 겪으며 그가 상당한 실력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포트 델타 개발에도 참여 했다고 하니 인공지능 관련 지식도 상당할 터였다. 승호가 평가하기에 예카테리나와 비슷하거나 그 아래. 고동수나 백채원 보다는 위에 있는 실력자. 그런 실력자가 순순히 와준다는 말에 빙그레 미소가 흘러나왔다. 인공지능 대결에서는 기대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렇게 인재 까지 한 명 섭외하다니.
이번 출장에서는 꽤나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오케이.”
“그러면 내기는 이걸로 끝인가?”
“응 즐거웠다.”
“나도. 그리고 만약 나도 시내소프트에 입사하게 된다면 ONE의 알고리즘을 볼 수 있는 건가?”
“당연하지. 물론 비밀 유지 계약서는 작성해야 하지만.”
“그거야 당연한 일이고.”
“곧 연락이 갈 거야.”
짧은 만남을 끝으로 에이든 까지 돌아가고 70여 평 크기의 스위트룸이 조용해졌다. 승호는 각자의 방에 있던 일행들을 거실로 불러 모았다.
백채원.
고동수.
예카테리나.
일행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지금까지 수고 많았습니다.”
진심이 담긴 한 마디에 감정이 격해진 고동수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오늘의 공은 여러분들의 열과 성을 다한 노력이 있었기에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회사로 돌아가게 되면 약속했던 보상이 지급 될 겁니다.”
대결 시작 전 승호가 했던 보상들은 다양했다.
-특진에 기여도에 따른 수 천 만원의 인센티브.
-한 달간의 휴가.
-어딜 가던지 휴가비 전액 지원.
······.
그리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 하지도 않은 보상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할 말은 이게 끝입니다. 혹시 제게 요청하거나 하실 말 있으신 분.”
가장 먼저 예카테리나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ONE의 미래라던가······.”
“물론 ONE은 고도화를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ONE을 본격적으로 적용 할 사업을 몇 가지 구상해 둔 건 있습니다. 이를테면 금현 자동차와 자율 주행 자동차 개발 같은.”
“자율 주행차라······.”
“물론 가장 먼저 적용 될 것은 ZONE입니다. 우리의 주 수익원이니까요.”
백채원이 입을 달싹 거리며 머뭇거렸다. 할 말이 있는데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고동수가 판을 깔았다.
“누나가 하고 싶은 말이 있데요.”
“야······.”
승호가 백채원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백채원의 볼이 복숭아 빛으로 물들었다.
“말씀해보세요. 어떤 말이든 괜찮습니다.”
“저··· 그게. 음······.”
크게 쉼 호흡을 한 번 한 백채원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여기까지 데려와 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 말이 꼭 하고 싶었어요.”
“하하, 감사하긴요. 동료로써 같이 온 건데.”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오지 못했을 겁니다. 대학에서부터 포트에 입사할 생각이나 했지 포트를 꺾어 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더구나 인공지능이라니······.”
말라 버린 입술을 살짝 축인 백채원이 말을 이었다.
“그걸로 포트를 이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사실 아직도 꿈만 같아요.”
고동수가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저, 저도요. 처음에도 대표님이 무척이나 뛰어나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포트를 이기게 될 줄은 정말··· 꿈만 같아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니까요.”
“하하, 다행이네요. 결국 회사에 만족한다는 말이잖아요.”
“만족하고말고요. 대표님 밑에 평생 있고 싶어요.”
고동수가 먼저 나섰고, 뒤이어 백채원이 수줍게 입을 열었다.
“저도 대표님과 평생 함께 일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예카테리나도 조용히 동참했다.
“뭐, 저도···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하, 네. 잘 새겨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실리콘 밸리에서의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네 사람은 짐을 싸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경찰 병력 수백 명이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그와 엇 비슷 어쩌면 그 보다 많은 수의 취재진이 카메라를 들고 하염없이 입국장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피켓을 들고 입국장을 보고 있는 일반 시민들.
-갓승호, 빛승호!
-승호사랑 나라사랑.
-내꺼 중에 최고 강승호!
-우리 승호 하고 싶은 데로 해.
자발 적으로 피켓을 만들어 공항을 찾아온 10대에서 20대 소녀 팬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연예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팬 덤에 기자들도 놀란 눈치였다.
“하여간 뭘 하던지 잘생기고 봐야해. 세상에 한 기업의 대표한테 이런 팬 덤이 생길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강 대표가 좀 생기기는 했지.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는지 몸도 좋고 말이야.”
“거기에 나이까지 20대니.”
“우리 조카가 이번에 꼭 싸인 받아 오라고 하더라.”
“내 동생도 똑같은 말 하던데.”
“기자 회견이 아니라 팬 사인회를 해야 할 각이야.”
“사실 난 예카테리나 박사님 때문에 이번 취재 지원했다.”
“흐흐 너도 예카예카 팬클럽 가입했냐?”
“당연.”
그러자 옆에 있던 기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쪽들도 예카예카 회원들이세요?”
한두 명이 아니었다. 수 명의 기자들이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금발의 푸른 눈. 차가운 눈빛. 그 보다 지적인 머리.”
“오늘 꼭 사인 한 장 받아갈 겁니다.”
다른 기자가 거대한 렌즈를 달고 있는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전 이 카메라로 최고의 한 장을 뽑아내려고요.”
동상이몽의 기자와 팬클럽 회원들.
그 모두가 초조한 표정으로 입국장보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
드르륵.
자동문이 열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경호원 무리가 먼저 입국장 밖으로 나왔다. 셔터를 누르던 기자들이 잠시 손을 멈추었다.
뒤이어.
고동수와 백채원이 먼저 캐리어를 끌고 입국장을 나섰다. 기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마이크를 들이밀며 소리를 질렀다.
-안녕하십니까. KBC 최문수 기자입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안녕하세요. 동민 일보 장기철 기자입니다.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미 기자회견은 따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둘은 그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수초가 지났을 때 승호가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입국장을 뒤 덮은 소리.
-꺄아아아악!
-꺄아아악! 갓승호님!
-오빠아아아!
들려야할 셔터 소리가 아닌 소녀들의 뜨거운 비명소리가 입국장을 가득 메웠다.
“이게 무슨 일이지······.”
승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소리 지르는 팬 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연이어 입국한 예카테리나가 싸늘한 시선으로 승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좋겠어요. 이렇게 인기도 많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