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31)
탑 코더-131화(131/303)
# 131
처음으로 떠나는 휴가
삼 일 후 김포국제공항.
승호는 모자에 선글라스를 쓰고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돌아가 보세요.”
“네. 대표님.”
운전기사가 돌아가고, 승호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뒤이어 고동수도 차에서 내렸다.
“후아··· 열심히 일한 뒤 꿀맛 같은 휴가네요.”
“가서 일해야 할지도 모른다니까 왜 따라 와서는.”
“그러면 더 좋은 일이잖아요. 저야 한창 배우고 일 할 때니까.”
“그래 마음대로 해라. 대신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야. 정말 놀기 만 할 건 아니니까.”
고동수가 힘차게 대답했다.
“넵!”
둘은 퍼스트 클래스를 예약했기에 체크인을 하는데 대기할 필요가 없었다.
통과.
통과.
빠르게 체크인을 마치고,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에서 잠시 대기하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승호가 비행기에 탑승해 앉고, 몇 분 후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한국 항공은 여러분들의 탑승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비행기는 부산까지 가는 한국 항공 901편입니다.
고동수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대표님, 역시 1등석이라 그런지 자리도 엄청 넓어요. 다리를 쭉 뻗어도 닿질 않네.”
승호가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하하, 그러게 1등석이 좋긴 좋다.”
고동수가 그런 승호를 보며 씩 웃었다.
“대표님 지금 기분 엄청 좋아보이시는데요?”
“좋지. 나 사실 난생 처음이야. 부산 가는 게.”
“네?”
“알잖아. 보육원 나와서 군대 전역하고, 알바하다 시내 소프트 입사. 여행갈 돈도 시간도 없었어.”
“아니 부산은 국내인데······.”
“그 만큼 바쁜 시간들이었으니까.”
고동수의 표정에 연민이 서리려 할 때 승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 만큼 성공했으면 된 거지 뭐.”
마침.
쉬으으우웅.
특별한 효과음과 함께 활주로를 이탈해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창문 사이로 멀어지는 지상의 모습이 보였다.
작아지는 건물과 자동차들.
출장을 갈 때는 비행기 안에서도 일에 매진했었다. 바깥 풍경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들뜬 마음 덕분인지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때.
덜컹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흔들렸다. 대화를 나누던 고동수와 승호가 입을 닫은 채 서로를 마주 보았다. 고동수가 먼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 뭐 별일이야 있겠어요.”
“그, 그러게.”
그런데 왜 이렇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걸까. 승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에어트레인 본사.
기술연구소 시니어 엔지니어인 그레고리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질 않았다.
“매니저님, 정말 이런 식으로 해결이 된 거라 생각하십니까?”
매니저가 인상을 팍 구기며 답했다.
“자네 또 그 이야기 인가?”
“몇 번을 말해도 조치를 취재 주지 않으시니 까요. 이건 소프트웨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하드웨어부터 전면 수정해야 합니다.”
“하 참 네··· 진짜. 이미 팔려나간 767MAX만 해도 수 백 대야. 그게 대당 얼마 짜리인줄은 알고 있나?”
“정확히 1.2억 달러입니다.”
“그래, 수백 대면 20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이야. 그런데 지금 와서 기체를 바꿔야 하니 리콜이라도 하자는 말이야?”
매니저의 호통에도 그레고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비행기를 그냥 두자는 말씀이십니까? 지난 번 767MAX가 추락해 200여명이 몰살당한 사건 기억 안 나세요?”
“MCAS(Maneuvering Characteristics Augmentation System : 조종특성보강시스템)은 완벽해.”
“매니저님!”
매니저가 그레고리를 보며 비아냥거렸다.
“그 알량한 기술 믿고 계속 나대나 본데. 자네가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회사에서도 더 이상 참지 않아.”
“그래서 다 죽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듣고 있던 매니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꾸 죽기는 누가 죽어! MCAS는 완벽하게 작동해. 767MAX는 아무 이상 없이 운행 되고 있어!”
“그러면 왜 관련 내용을 숨기고 있는 겁니까. 조종사 훈련에서도 별다른 교육이 없고, 교육 동영상에서도 언급조차 하고 있지 않잖아요.”
매니저가 피곤하다는 듯 뒷목을 주물럭거렸다.
“그거야 회사에서 결정할 일. 자네는 그냥 기술 개발이나 하면 돼.”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공익제보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매니저가 코웃음을 치며 그레고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회사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나? 비밀유지계약서에 서명해 놓고서는 공익제보를 하겠다? 소송 당해서 빚더미에 앉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봐.”
그 말을 끝으로 매니저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레고리가 긴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도 매니저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그레고리가 돌아서 걸어가며 자조적으로 중얼 거렸다.
“뭐, 어차피 회사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건 알 고 있었던 사실 아닌 가······.
벌써 몇 번째 말해 보았지만 실패했다. 그렇다고 공익제보를 할 용기는 없었다. 빚더미에 앉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위한 몸부림뿐이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 고 있었다.
“제발 더 이상 사고가 터지지 않길······.”
빌고 또 빌 수밖에 없었다.
***
KC901편 주조종실.
기장이 잡고 있던 조종간을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기장님.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아침부터 영속이 안 좋아서. 어차피 지금 부터는 자동운항 상태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을 겁니다.”
“하하, 네.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기장은 사무장에게 연락을 취해 기장실로 들어오게 했다. 조종실 2인 상주 규정에 따른 것이다. 사무장에게 연락을 마친 기장이 부기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부기장님 왜 이렇게 식은땀을······.”
부기장이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다.
“그러네요. 오늘 따라 땀이 많이 나네.”
“내부가 덥나 보군요. 에어컨 더 세게 돌리시고 계십시오.”
“아! 그런데 아까 그건 괜찮을 까요?”
기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갑자기 난기류를 만나는 일이야 흔 한 일 아니겠습니까.”
부기장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느꼈을 때는 기수가 살짝 아래로 내려가려는 것 같았는데······.”
사무장이 들어오고 기장이 나가며 말했다.
“하하, 이런 일 흔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부기장의 이마로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조종실로 들어온 사무장도 같은 말을 전했다.
“부기장님 안색이 영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부기장이 이마의 땀을 훔쳤다. 아까부터 체했는지 속이 안 좋기는 했다.
“괘, 괜찮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삐익―.
경고음이 들렸다.
급히 계기판을 확인한 부기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기수가 자꾸 아래로 내려가려고······.”
그 말에 옆에 있던 사무장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기수가 아래로 내려가다니요. 갑자기 왜.”
사무장도 간단한 비행지식 정도는 알고 있었다. 기수가 아래로 내려간다. 실속(속도가 느려지는 상태)에 빠진다. 마지막은 추락이었다.
“그, 그건 저도 잘··· 이런 상황은 교육 내용에 없었는데······.”
“관제소에 알립시다.”
교신 기를 잡은 부기장의 이마에서 식은땀 비처럼 흘러내렸다. 부기장이 교신 기를 잡고 관제소에 연락을 취했다.
“한국항공 901. 기수 하강 현상 발생.”
치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관제소의 응답이 들려왔다.
-기수 하강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꾸 기수가 아래로 내려가려 합니다. 기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비상 착륙 시도 요청 합니다.”
치이익.치익.
-알겠습니다.
그때 까지도 기장이 조종실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마른 침을 삼키던 사무장이 입을 열었다.
“제가 기장님 다시 모셔 오겠습니다.”
교신 기를 잡고 있던 부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긴급 상황.
사무장이 조종실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기장님, 기장님!”
순간.
또 한 번.
덜컹.
비행기가 흔들렸다. 사무장이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발··· 이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
-안녕하십니까. 승객 여러분 현재 901편 비행기는 기체 결함으로 비상 착륙을 시도 하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자리를 떠나지 마시고, 승무원의 안내를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901편 비행기는 기체 결함으로 비상 착륙을 시도 하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자리를 떠나지 마시고, 승무원의 안내를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기내 안내 방송을 듣고 있던 고동수가 마른 침을 삼켰다.
“대, 대표님. 이거···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요.”
승호도 당황하긴 마찬 가지.
“그, 그런 것 같은데.”
창밖으로는 이미 구름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사건이 터진다면 결말은 죽음 밖에 없었다. 승호의 머릿속이 두려움으로 서서히 물들어 갔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승호가 승무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희미하지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이거 조종실 문이 왜 안 열려. 부기장! 부기장!
-조종실 개폐 코드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뭐야?
-내부에서 문을 잠근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 보안 로직이 작동해 5분 동안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건 나도 알지! 왜 문이 잠겼냐고!
조종실과 1등석이 가장 가깝기에 들을 수 있는 대화였다. 순간 승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조종실이 문이 잠겨?’
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상하잖아. 그렇다는 말은 부기장이 문을 잠갔다는 말인데 부기장이 갑자기 왜 그런 일을 하냐고.
-그것 까지는 저도 잘······.
소곤거리는 소리가 한 층 더 선명하게 들렸다.
-부기장! 부기장!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몇몇 탑승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승무원들이 만류해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계속 힐끔 거리며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기장님. 제가 나오기 전에 부기장님이 기수가 하강하는 것 같다고.
-···뭐?
승호도 똑똑히 그 소리를 들었다. 참지 못한 일등석 승객 몇 명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무원이 제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금 무슨 일 일어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상황을 제대로 알려줘야죠. 비상 착륙은 왜 시도 하는 겁니까?”
승객이 거칠게 항의하자 당황한 승무원이 어버버 거리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순간.
또 한 번 덜컹.
중심을 잡지 못한 승객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켜보던 승호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도 승무원이 승호를 제지했다.
“고객님 앉아서 기다리시면······.”
승호가 승무원을 보며 진지한 눈빛을 보냈다.
“시내소프트 강승호 입니다.”
그 말에 몇몇 승객이 불쑥 고개를 들어 승호를 쳐다보았다.
시내 소프트 강승호.
최근 언론에 가장 많이 노출 되고 있는 이름이었다.
-도끼 가져와봐. 이거 때려 부셔서라도 열어 야지. 이러다. 비상 착륙도 못하겠어.
-잠시 만요.
승호가 미리 챙긴 노트북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앉아서 기다릴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군요. 부수는 것 보다 해킹을 해서 문을 여는 게 더 빠를 것 같기도 하고요.”
“가, 강승호 대표다.”
승객 한 명이 소리쳤다.
“어, 진짜네. 강승호 잖아.”
사람들의 소란이 커지자 승무원이 재빨리 사무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내 알았다 며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