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32)
탑 코더-132화(132/303)
# 132
처음으로 떠나는 휴가
Daegu Area Sector.
교신을 나누던 관제소 직원이 마른 침을 삼키며 외쳤다.
“901! 응답바람. 901! 응답 바란다! 901! 응답해!”
뒤 쪽에 있던 상사가 급히 다가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기수가 자꾸 아래로 내려간다는 교신을 끝으로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현재 위치는?”
“대구를 지나 김해까지 15분 거리를 지나고 있습니다.”
“알았어. 내가 유관기관에 연락 취할 테니까. 계속 교신 시도해.”
“아, 알겠습니다.”
“901! 응답바람. 901! 응답 바란다! 901!”
몇 번을 연락해 보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관제소 직원이 답답한 마음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비행기는 지금 9000m 상공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연락 방법은 일체 없는 상황. 그 상황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
승호가 문 옆에 붙어 있는 번호판을 오른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일자 드라이버나 여기 번호 판에 연결 할 수 있는 연결선 아무거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눈으로는 번호판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후욱.
간단한 0과1의 신호가 번호판에서 문의 잠금장치 까지 연결되어 흐르고 있었다. 이내 이 신호들이 어떤 의미를 띄고 있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 어려운 시스템은 아니었다. 번호판을 이용해 문의 잠금 장치를 제어하는 펌웨어 기반의 간단한 프로그램.
이미 어떻게 해야 문을 열 수 있는지는 알아 두었다. 문을 열기 위한 명분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사이 승무원이 일자 드라이버를 가져왔다.
“연결 할 수 있는 잭은 별도로 없습니다. 그건 본사와 연결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일단 이걸로 해보겠습니다.”
인공지능 대결에서 포트와 무승부를 거뒀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별 의심 없이 승호의 행동을 믿고 있었다. 윈더 OS 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천지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전자 기기 관련해서 모르는 것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너무나 급박한 상황. 일반적인 사고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승호는 일자 드라이버로 번호판을 툭툭 건드리다가 기장이 알려준 오픈 코드를 슬쩍 입력했다.
삐리릭
순간 들리는 알림 음에 기장을 비롯해 모여 있던 승무원들이 놀란 눈으로 승호를 보았다.
“확실히 고장 난 게 맞는 것 같네요.”
그리고 열려 있는 문을 보며 말했다.
“급한 것 같은데 어서 들어가 보세요.”
승호의 재촉에 문이 어떻게 열린지에 대한 의문은 사라졌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기장이 기함을 토했다.
“어! 부기장! 부기장!”
다급한 소리에 사무장이 뒤따라 조종실로 들어갔다. 문 바로 앞에 쓰러져 있는 부기장.
그 손의 끝이 문의 개폐장치에 닿아 있었다. 마지막 까지 문을 열려고 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사무장이 급히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기장은 바로 자리에 앉아 조종간을 잡았다.
덜컹.
또 한 번 비행기가 덜컹 거렸다. 자꾸만 아래쪽으로 향하려는 기수를 바로 잡으려다보니 생긴 흔들림이었다. 결코 난기류 따위를 만난 게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기장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 거렸다.
“젠장··· 이게 도대체 왜 자꾸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는 거야.”
작은 소리였지만 뒤에 있던 승호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
https://www.liveatc.net.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운영 되는 사이트로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비행기와 관제탑 사이의 교신 내용을 들을 수 있는 사이트였다. 비행기 조종사가 꿈인 20살 홍인대는 오늘도 사이트에 접속해 교신 내용을 들으며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에어아메리카 981 줄리에서 우회전 후 알파로 진입하고 있다.
-MA에서 대기.
-줄리에서 우회전 후 알파 진입. MA 대기 -램프 허락 받았어?
미국 비행기의 교신내용을 듣던 홍인대는 마우스를 움직여 한국의 관제소를 클릭했다. 순간 홍인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현재도 기수가 아래로 내려가려 하는 상황이다.
-901. 에어트레인에 해당문제를 확인 중이다. 가장 가까운 곳이 김해 공항. 비상 착륙 준비 중.
-젠장 또야!
-901. 901.
-기수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실속에 빠지려고 한다. 잘못하면 최악의 상황이.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홍인대는 직감적으로 최악의 상황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사이트 설명에 의하면 지금 나오는 내용은 약간의 딜레이가 있긴 하지만 거의 실시간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 한국 하늘에서 비행기 한대가 추락하고 있다는 뜻이나 마찬 가지.
-901. 다른 방법은 없겠나?
-당장 비상 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다.
목소리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마른 침을 삼키던 홍인대가 머리에 쓰고 있던 헤드셋을 내려놓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
승호는 뒤에서 똑똑히 들었다.
비상착륙.
최악의 상황.
이대로 있다가는 그냥 죽을 수도 있었다. 승호는 혼란스러운 틈을 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종실 내부에 슬쩍 들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기판위에 손을 얹었다.
‘자동으로 기수가 자꾸 내려간다는 걸 보니 뭔가 시스템이 잘 못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계공학적인 문제라면 몰라도, 소프트웨어 적인 문제라면 자신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해킹 문제도 해결 하지 않았던가. 그런 승호를 막 심폐 소생술로 부기장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사무장이 제지했다.
“강 대표님. 이곳은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이쪽으로 나오셔서.”
그러나 승호는 나갈 생각이 없었다.
“비행기도 소프트웨어로 돌아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자동항법장치를 비롯해서 운항정보 교신시스템, 계기 착륙 장치 등등. 출발 전 정비사들이 비행기의 내, 외관을 점검 한다고 하지만 내부 시스템을 완벽하게 체크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긴급한 상황. 승호가 빠르게 내뱉는 말에 사무장은 일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 그러나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정비사들이 사용하는 체크 프로그램이 여기 있는 것도 아니고······.”
승호가 조종실 특정 부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FMS(Flight management system)에서 직접 보면 되니까요.”
FMS
비행관련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운항 관리시스템의 일종이었다. 놀란 사무장이 되 물었다.
“비행 관련 소프트웨어도 개발 하셨습니까?”
“옛날에 뭐 잠깐. 관심이 있어서. 인공지능만큼 합니다.”
그 말에 사무장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기장은 그리 환영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가세요. 여기 있는 건 오히려 사고 위험을 키우는 것 밖에 안 됩니다. 사무장님 이 사람 데리고 나가세요.”
승호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뜬금없이 일반인이 옆에서 돕겠다고 하면 자신도 거부반응이 생길 것 이다. 그것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승호는 기장의 말을 무시한 채 여전히 0과1의 세계에 집중하며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지식의 바다를 헤집고 다녔다. 다행이 비행 시스템 관련 지식이 탄산처럼 톡톡 치고 올라왔다.
“KC901편은 에어트레인 767MAX 기종이라 들었습니다. 이 비행기의 경우 받음각이 커지면서 동체가 빠른 속도로 상승. 속도가 줄어들면서 실속에 빠져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수를 자동으로 하강시키는 시스템을 개발해 적용 했습니다. 그 이름이 MCAS(실속방지시스템).”
듣고 있던 기장이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 당신과 비행기에 관해 이야기 할 시간 없습니다. 하나 만 알려드리면 767MAX 교육 시 MCAS에 관련된 내용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육 관련 책자에도.”
이번에는 승호가 당황했다.
‘MCAS가 없다고?’
분명 0과 1의 세계에선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그러니까 어서 나가보세요.”
덜컹.
또 한 번 비행기가 덜컹거렸다. 승호의 뒤편으로 앉아 있는 승객들의 표정이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승무원들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긴장된 표정으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만약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그건 에어트레인에서 뭔가를 감추기 위함이야.’
확신에 찬 승호가 기장을 향해 말했다.
“그러면 관제소에 확인해 보세요. MCAS는 분명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꺼야 기수가 아래로 내려가 실속에 빠지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기장도 만만치 않았다.
“나가라니까 당장!”
그때 기장이 벗어둔 헤드셋에서 관제소 음성이 들렸다.
-치직. 치지직
-901. 901. 무슨 일인가.
승호가 관제소에서 듣길 바라는 마음에 큰 소리로 소리쳤다.
“MCAS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당장!”
***
국정원 담당관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다니.”
“강 대표가 타고 있는 KC901편이 기체 결함으로 비상 착륙 요청을 해 왔다고 합니다.”
“젠장···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쪽 교신 내용을 확인해 봤는데 상당히 급박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현재 상황은?”
“그게 좀 묘합니다.”
“뜸 뜰이지 말고 빨리 말해봐!”
“혹시나 해서 방금 KC901편 비행기 관제탑과 교신내용 확인해 봤는데······.”
“그런데?”
“강 대표가 조종실에서 MCAS라는 걸 확인해 보라고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에어트레인사의 767MAX 기종에 MCAS라는 실속방지시스템이 실행되고 있는데 그걸 꺼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장은 항공법에 의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고요.”
담당관이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강 대표가 헛소리를 할 타입은 아닌데······.”
“그래서 현재 에어트레인 사에 연락을 취해 놓은 상태입니다.”
“답변은?”
“아직 확인 중이라는 말만······.”
“아니 지금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그딴 답이 어딨어! 당장 1분 내로 알아와!”
그때 드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하직원의 핸드폰이 울렸다.
“뭐해 받지 않고.”
전화를 받은 직원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입술을 깨물었다가, 두 눈을 부릅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불길함을 느낀 담당관이 빠르게 물었다.
“왜, 뭐야. 무슨 일인데.”
“KC901의 고도가 낮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비상 착륙 시도한다는 말이야? 김해까지는 아직 10분정도 남았다고 하지 않았어?”
“문제는 속도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고.”
“착륙할 때 원래 속도 떨어지잖아.”
직원이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실속에 빠진 것 같습니다.”
실속(失速) 속도를 잃고 있다는 말. 추락하고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담당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뭐하고 있어 당장 전 채널 동원해서 에어트레인사에 확인해! 국가전략자산을 이대로 죽일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