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34)
탑 코더-134화(134/303)
# 134
처음으로 떠나는 휴가
당황한 승호가 문을 열자 정만식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커다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네. 정만식 일세.”
재계 순위 2위다운 당당함이 느껴졌다. 곰 같은 풍채에서는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승호가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십니까. 강승호입니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실제로 보니 더 훤칠하게 생겼군. 딸만 있었으면 사위로 삼고 싶을 정도야.”
“하하. 별 말씀을 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저희 약속은 일주일 뒤로 알고 있는데요.”
정만식은 안으로 들어와 스윽 룸을 한 번 둘러보더니, 터벅터벅 탁자로 가 앉았다. 따라 들어온 비서가 차를 세팅하는 사이 정만식은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할 말 만 해댔다.
“뉴스는 봤네. 대단한 일을 해냈더군.”
승호도 어쩔 수 없이 맞은편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네 뭐. 아직 살아있는 게 실감이 안 날 정도입니다.”
“그걸 보니 도무지 기다릴 수가 없었어. 혹시나 사고가 날까. 혹은 떠나가 버릴까. 뭐 그런 마음에.”
사고가 나?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싶어 당황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네?”
“하하하. 자네도 당황이란 걸 하는구먼. 그건 농담이고 뉴스를 보니 항공 소프트웨어에도 조예가 꽤 깊더군.”
“평소 관심 있는 분야였습니다.”
“자네 이런 말 알고 있나. 자동차의 미래는 항공기를 보면 보인다.”
자신이 승무원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네. 들어본 적 있습니다.”
“오호 그래? 그렇다면 말이 더 잘 통하겠구먼. 잘 알겠지만 항공기에는 수많은 센서 들이 사용되고 있네. 기상 레이더를 비롯해 공중충돌방지장치, 대지접근 경보 장치 등등 자동차는 그저 흉내를 내는 수준이지.”
자동차에도 많은 센서 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엔진, 조향, 브레이크 등등 그러나 그 양은 항공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중 승호가 알고 있는 센서가 한 가지 있었다.
“후방 감지 센서 같은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네. 그러나 자율주행자동차로 넘어가려면 그것만으로는 턱도 없지. 최소한 수십 가지 이상은 들어가. 그 센서들에서 들어오는 데이터를 수집해 상황을 판단해야 하는 거야.”
“항공기와 비슷해지는 군요.”
정민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항공기에서는 자동항법장치를 사용한지 오래 되었으니까. 자동차도 똑같은 기술은 아니더라도 그 개념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지.”
승호는 대충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깨달았다.
-너 항공기 엄청 잘 알고 있구나.
-그러면 자동차도 잘 알 수 있겠네.
그렇다고 중간에 말을 끊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재계 2위의 회장. 함부로 할 상대가 아니었다. 정만식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이번 일로 항공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에도 정통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네. 사실 깜짝 놀랐어. MCAS라니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도, 그걸 끄고 수동 비행해야 정상 운행 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는 것도. 너무 놀라 뉴스를 보는 순간 헬기를 타고 바로 달려왔네. 비행기는 무섭더군.”
정만식의 농담에 승호가 마시던 차를 뿜어냈다.
“풉······.”
“하하, 자네 이런 유의 농담을 좋아하나?”
“아, 아닙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묻겠네. MCAS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나?”
“평소에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승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사실 다른 할 말이 없었다.
-0과1의 세계에 들어가면 모든 게 보입니다.
아마 미친놈 취급 받기 딱 좋은 대답이리라. 정만식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승호를 쳐다보았다.
“하여간 그런 판단을 하려면 평소 관심 정도로는 부족해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지. 만약 자네가 관심 정도로 그런 판단을 내렸다면··· 더 놀라운 일이야.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한 성과니까. 천재 그 이상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영역.”
계속되는 칭찬에 승호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정만식은 흐뭇한 표정으로 승호를 보고 있었다.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한 것 같았지만 그 생각을 굳이 바꿔줄 필요는 없으리라.
“네, 뭐······.”
“그런 천재 혹은 그 이상의 남자라면 얼마나 바쁠까. 사실 짐작조차 되지 않았어. 그래서 일주일을 기다린 자신이 없었네. 이것도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지.”
“과찬 이십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자네도 알겠지만 사실 자율 주행차가 완벽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만으로는 부족하네. 어떤 센서를 부착하고,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왜 그런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지. 센서를 부착했을 때 운행에 무리는 없는지 등등 수 백 가지 것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돼.”
승호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제가 관여할 부분이 있나 사전에 실무자 회의를 하고 싶다고 요청 드린 겁니다.”
“하하, 알고 있네. 회의를 우리의 요청 보다 일주일 뒤에 잡은 것도 아마 사전지식을 쌓기 위해 그런 걸 테지.”
“역시 회장님은 못 당하겠군요.”
“그러면 오늘 내가 직접 찾아온 진짜 이유를 한 번 말 해보겠나?”
정만식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승호를 쳐다보았다. 승호도 정만식을 마주보았다. 재계 1위에 이어 재계2위의 회장까지 직접 만나보았다. 그들이 직접 움직이는 경우가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비행기 사건 해결로 능력을 입증했으니 사전 준비는 필요 없다. 자율 주행 차 관련하여 더 많은 역할을 주고 싶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정만식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맞네. 맞아. 이번 사건을 통해 자네는 많은 국민들의 목숨도 구했지만 내게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최종적인 형태 레벨 5. 거기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어찌 내가 한 달음에 달려오지 않을 수가 있겠나.”
정만식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정만식의 말대로 자율주행 자동차는 인공지능 ONE 하나만으로 되는 건 아니었다.
자동차에 부착되는 각종 센서에서부터 기기장치. 사용자 안전 등등 수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랬기에 정만식도 처음에는 관련 조언 정도를 얻거나, 몇 가지 소프트웨어 개발 정도를 맡겨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사건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복잡다단한 비행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친구라면 자동차는 누워서 떡 먹기 이리라.
“구체적으로 어떤 제안을 하시려는 건지요.”
“포트의 애니웨어 같은걸 만들어 볼 수 있겠나? 물론 두뇌에는 ONE이 들어가게 되겠지.”
애니웨어.
포트의 자율주행 자동차.
총 6단계. 레벨 0에서 5까지로 나누어진 자율주행 자동차 등급 중 레벨 4. 운전자의 개입이나 모니터링이 필요하지 않은 단계를 달성한 자동차였다. 애니웨어는 현 시대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 중에 있었다. 아쉽게도 금현은 15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국내 1위라는 위명이 무색한 순위.
“만들 수는 있을 것도 같습니다. 다만 그 문장 안에 너무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자네가 만들면 우리가 생산해 주겠네.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마 잘 알 거야.”
승호가 정만식을 마주 보았다.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처럼. 핵심은 우리가 만들고 금현에는 제조만 하겠다는 건가.’
꽤나 괜찮은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승호가 되 물었다.
“생산만 하겠다는 말입니까?”
“맞네. 우리가 외주 업체가 되는 거지. 자네들은 자동차 설계를 하고. 그 뿐만이 아니야. 지금까지 개발한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기술을 공유하고 최대한 협조해 주겠네.”
그야 말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승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건이 너무 일방적인 것 같습니다.”
“물론 수 년 간은 우리 쪽에 독점 제조 권한을 줘야해. 자세한 내용은 각 사의 실무진들이 협의를 통해 계약서를 만들어야 겠지. 일단 큰 틀은 그렇다는 말이네.”
여전히 고개를 갸웃 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겪은 선진과는 너무 다른 조건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의심할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이해하네. 그러나 이대로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야. 현재 미국의 스타트업들과 손을 잡고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답보 상태. ONE이 포트를 이겼듯이 나도 애니웨어를 이겨 보고 싶네. 내가 금현에 몸담은 지 수십 년. 단 한 번도 달아 보지 못한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 그걸 차지하고 싶어.”
더 이상 의심만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당장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생각을 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승호의 말에 정만식도 더 이상 질척거리지 않았다.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는 정만식의 뒷모습을 승호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재계 2위 회장이 직접 제안을 하고, 그의 제안을 당장 수락하지 않아도 되며 돌려보낼 수 있는 위치까지는 된 건가.’
새삼 자신의 위치가 실감나는 하루였다.
***
다음날.
아침부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자신이 현재 이곳에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건 회사, 국정원 담당관 그리고 고동수 밖에 없었다.
‘어제 정 회장님은 회사에서 목적지를 알려 줬지만 정신이 없어 회사에서 연락을 못 받았지만. 오늘은 아닌데······.’
승호가 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누구······.”
국정원 담당관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이 한 명 서 있었다. 먼저 담당관이 물었다.
“기자 회견은 생각 좀 해보셨습니까?”
“얼마 전에도 했더니 더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서면으로 대체할 생각입니다.”
기자회견이란 건 사실 당사자가 하기 싫다면 그만이었다. 승호의 거부에 담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처음 보는 얼굴이 입을 열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몇 가지 질의드릴 사항이 있어서요.”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사관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당시 조종실을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일부 증언이 있습니다.”
어이가 없어진 승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잠긴 문을 열어준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까?”
“아··· 제 이야기는 그런 게 아니라.”
그러자 담당관이 먼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사관님!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협의했던 질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고 당시 비행기를 구한 게 누군데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승객들 인터뷰 한 내용은 못 들었습니까? 당장 그 멍청한 기장 놈부터 구속하세요!”
당황한 조사관이 말을 더듬었다.
“이, 이게 조종실 무단 침입은 항공법에 저촉되는 사안이라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야 해서······.”
승호가 미간을 찡그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그냥 가만히 있다가 죽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바로 어제 죽다 살아났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사람에게 항공법을 운운하시는 겁니까?”
급격히 굳어가는 승호의 표정에 조사관이 마른 침을 삼켰다.
“아,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죄송합니다만 담당관님. 오늘 무척이나 피곤하군요. 그리고 조사관님. 조사하실 내용이 있으시면 정식으로 요청해 주세요. 어차피 영장도 없으실 테니 절 데려가진 못하실 테고. 이만 문 닫겠습니다.”
“자, 잠시 만요.”
쿵.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담당관의 희미한 고함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