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35)
탑 코더-135화(135/303)
# 135
동시에 하면 되잖아
시작이 거칠기는 했지만 휴가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승호는 고동수와 함께 하루 종일 부산 시내를 돌아 다녔다. 난생 처음으로 태종대도 가보고, 유명한 밀 면을 먹고, 부산 국밥도 한 그릇 해치웠다.
일만 하다가 맛보는 꿀맛 같은 휴가.
자신의 생에 언제 이렇게 놀아 본적이 있었던가?
보육원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돈에 허덕이는 삶이었기에 하루를 쉬면 이틀을 일해야 했다. 그랬기에 8평 남짓 원룸에서 겨우겨우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인지 휴가가 더욱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코스는 해운대의 야경 명소.
그곳에 앉아 맥주를 한 잔 마시며 바다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검푸른 바다위로 도시의 야경이 비추며 절경을 만들어냈다.
“좋다.”
“헤헤, 저도 좋네요. 이렇게 놀러온 건 오랜 만이라.”
“나도.”
“내일은 박 사무관 님 만나기로 했다고요?”
“스마트 시티 부지에서 같이 이야기 좀 하자더라. ONE을 거기에 적용하고 싶은가봐.”
“저도 좀 알아봤는데 수조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라고 하던데요. 규모가 상당합니다.”
승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 시티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 니까. 여기서 좋은 사례를 만들면 앞으로 기회는 많겠지.”
“헤헤, 잘 됐으면 좋겠네요.”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고동수와 잔을 부딪쳤다.
“정만식 회장님도 꽤나 좋은 제안을 해왔어. 앞으로 정말 많이 바빠 질 거다. ONE도 발전 시켜야 하고, 스마트 시티에 자율 주행 차 까지.”
고동수가 맥주를 쭈욱 들이키며 말했다.
“캬아! 일 많으면 좋죠. 회사가 더 커진다는 의미니까. 더 열심히 해서 세계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동만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승호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둘은 또 한 번 잔을 부딪치고, 맥주를 들이켰다. 열의에 불타는 고동수의 눈동자를 보며 승호가 말했다.
“하하, 이럴 때 보면 꼭 네 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 최고에 대한 욕심.”
“흐흐,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둘이 담소를 나누는 사이 낯 선 그림자가 테이블 위로 드리워졌다. 컴컴한 밤임에도 승호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기에 누군지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저, 저기요······.”
낯선 목소리는 여자.
고동수의 커진 눈동자에서 외모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짐작 할 수 있었다. 승호가 조용히 있는 사이 고동수가 빠르게 대답했다.
“네. 무슨 일로······.”
내심 자신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는 건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여자들이 말을 이었다.
“혹시 두 분이서 오셨어요?”
뭐지 이건.
자신을 알아보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설마 헌팅?
이게 말로만 듣던 급 만남인가. 난생 처음 겪는 일에 승호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네. 맞아요.”
“저희도 둘이서 왔는데··· 혹시 번호 알려줄 수 있어요?”
승호가 힐끗 선글라스 너머로 찾아온 여성들을 살폈다. 나쁘지 않은 몸매에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에게 헌팅을 하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오늘만큼은 한 기업의 회장이 아닌 20대의 불타는 청춘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승호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의미를 알아들은 고동수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러나 여자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는 것 같았다. 바로 안면을 바꾸며 말했다.
“쳇. 따로 할 이야기는 무슨.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지. 얼마나 잘 났다고.”
당황한 고동수가 뭐라 말하려는 찰나. 탁자 위로 또 다른 그림자 2개가 드리워졌다. 이번에는 험상궂은 인상에 단단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남성들.
“미영아. 여기서 뭐하냐.”
“아! 오빠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 이분들이 번호를 달라고 해서.”
“네? 저희가 그런 게 아니라··· 이분들이 먼저.”
고동수가 반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나 오늘 또 야마 돌게 하네. 지금 내 여자한테 찝쩍댔냐?”
남자는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시비를 걸어왔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승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다.”
당황하던 고동수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게요.”
“이만 가자.”
남자를 완전히 무시한 태도.
여자는 더 약이 올랐고, 남자는 더 화가 올랐다.
“야, 일어나봐. 면상 좀 보자.”
그러자 고동수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여기요. 이제 이동 하겠습니다.”
그러자.
곳곳에서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에는 인 이어를 끼고 있었고, 하나 같이 다부진 체격을 자랑했다. 그 사내들이 순식간에 남자와 승호 사이를 가로 막았다.
“저희랑 이야기 하시면 됩니다.”
“뭐, 뭐라는 거야.”
당황한 남자를 두고 승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선임자로 보이는 경호원이 앞으로 나섰다.
“이쪽으로.”
낯선 풍경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인지 누군지 쉽게 알아보는 눈치는 아니었다. 남자는 호구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더 목소리를 높였다.
“야, 거기 안서. 야! 경찰 불러 시발!”
그러자.
어느 샌가 나타난 경찰이 나타나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경찰, 여기 왔습니다.”
남자는 순식간에 순한 양으로 변했다.
“아··· 네, 네?”
경찰이 승호의 경호원들을 보며 말했다.
“경호원 분들은 먼저 가셔도 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경호원들이 자리를 떠났고, 경찰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 정도로 끝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느 날 부산 해운대에서 일어난 사소한 해프닝이었다.
***
다음날.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아래에 있는 에코델타시티.
아직은 허허들판에 불과한 곳에 승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 와 있던 박신우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승호를 맞이했다.
“아직은 아무것도 없군요.”
“네. 앞으로 차차 채워가야 합니다.”
말 그대로 허허들판.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몇 가지 중장비들이 땅을 다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 한국 최초, 최고의 스마트 시티를 세운다.”
“네. 주요 도시 문제를 효율 적으로 해결 하고, 급격한 고령화와 일자리 감소 같은 문제들에 선 대응하려 합니다. 이게 모범 사례가 되면 전국의 다른 도시들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 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도 있고요.”
“수출 이라······.”
“그에 관련해서는 따로 말씀이 갈 겁니다. 제가 이곳에서 대표님을 만나자고 한 건 여기 80만평 크기의 부지에 들어갈 모든 시스템이 ONE에 의해 움직이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박신우가 지평선 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ONE에 의해 택배가 배달되고, ONE에 의해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ONE에 의해 도시의 전력이 관리되고. ONE에 의해 자동차들이 움직이고. 오로지 ONE에 의해서 움직이는 그런 도시.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의 관리를 통해 편리하고, 자원소모가 최적화된 도시.”
박신우가 그리는 큰 그림에 승호가 마른 침을 삼켰다. 옆에 있던 고동수도 마찬 가지 반응이었다. 상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ONE이 포트와 무승부. 아니 실질적으로 이기는 순간. 전 그런 도시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니요. 아마 어떤 분은 자율주행차를 또 어떤 분은 로봇의사를 또 어떤 분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로봇을 떠올렸을 겁니다. ONE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 주었고요.”
박신우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승호를 보았다. 위에서는 반드시 설득하라는 연락이 다시 한 번 왔다.
-꼭 설득해서 스마트 시티 시스템 총괄 책임자로 앉혀라.
지금 그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스타였다.
정치권 영입 1순위.
현 정부에서도 그가 이번 스마트시티 시스템 개발을 총괄해 주기를 염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한 개. 원하는 곳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모습을 저도 보고 싶기는 합니다.”
긍정적인 답변에 박신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ONE 고도화. ZONE에 적용. 그것 만해도 바쁜 시간들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인력은 적고 일은 많으니까요.”
그 말에 박신우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래서 저희도 인력을 더 확충할 계획에 있습니다. 어차피 저 혼자 모든 걸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또 다시 밝아진 얼굴.
박신우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승호가 한층 더 긍정적인 답변을 해왔다.
“이런 저런 사정을 따져 봐도···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박신우가 그제야 안도의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알겠습니다. 바로 자세한 사업 계획 보내드리겠습니다. ONE이 어떻게 적용 되었으면 하는지 저희들이 생각해 놓은 게 있는데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낸 박신우가 스마트 시티 부지 이곳저곳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저곳은 통합 재해 관리 시스템이 저곳은 스마트 특화거리로 조성 될 계획입니다. 또 저곳은······.”
그렇게 안내를 해주던 박신우가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쪽이 자율주행 자동차 테스트 베드입니다. 스마트 시티 건설 전 미리 만들어 둔 곳이죠.”
박신우가 가리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희미하지만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이동해서 볼까요?”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고, 고동수를 비롯한 셋은 다시 차에 올랐다.
10여분을 달려 도착한 자율주행자동차 테스트 베드.
10만평 규모로 조성된 그곳에는 테스트를 위한 다양한 종류의 장비가 구비되어 있었다. 신호등은 기본이었고, 다른 차들을 비롯해, 비 오는 효과를 연출하기 위한 살수 시설. 강풍기. 사람 모형 등등 다양한 장비들이 구축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수대의 자율 주행차가 테스트 중에 있었다. 박신우는 승호를 데리고 중앙 관제탑을 찾았다.
“마침 테스트를 진행 중이었군요. 어 저 분은······.”
관제탑에 미리 와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건장한 풍채를 자랑하는 뒷모습을 보니 한 번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정 회장님이시군요.”
우연일까.
필연일까.
만약 필연이라면··· 앞으로 좀 더 조심해야겠다. 는 생각을 하며 승호가 걸음을 옮겼다. 마침 관제탑 너머 도로를 움직이던 차 한 대가 신호 대기 중이던 앞 차에 부딪치며 멈춰 섰다. 관제탑에 앉아 있던 관리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1101번 테스트. 추돌사고 발생.
정만식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씁쓸히 중얼 거렸다.
“봤나?”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정만식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게 금현 자율주행자동차의 현 주소야. 기술의 한계를 절감하는 중이네. 그리고 그걸 부셔줄 사람을 찾고 있지.”
정만식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생각은 좀 해봤나?”
역시나 듣던 대로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