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37)
탑 코더-137화(137/303)
# 137
동시에 하면 되잖아
둘은 승호의 방으로 올라왔다.
“대당 만원의 로열티. ONE의 가치를 조금은 인정해 주셨다는 느낌이 듭니다. 포트와 무승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겁니까?”
고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룸서비스로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입 머금었다. 이제는 달콤하게 느껴지는 커피향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ONE과 포트의 대결이 끝나자마자 우리 연구원들에게 물어봤네. 빅스도 포트와 무승부를 할 수 있겠나?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 것 같은가.”
승호는 간단하게 답했다.
“불가.”
고동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안된다고 하더군.”
“ONE은 그 사이 또 발전 했으니까요. 그들이 가진 것으로는 포트를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혹 NPU도 발전 시켰나?”
“아닙니다. 현재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어서.”
“하긴 자네 몸은 하나니.”
“하하, 네.”
“하여간 연구원들이 불가(不可)라고 답하는 순간. 앞으로 엔진 S에 적용되어야 할 다양한 서비스들에도 불가라는 꼬리표가 붙었네.”
“예를 들면 어떤······.”
“99%의 성능으로 얼굴이나 이미지를 인식하고, 핸드폰 사용패턴을 학습해 적절한 앱 을 추천 하거나 완벽한 음성인식 기능까지. 요즘 핫 한 서비스들 말이네.”
“선진에서도 관련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동만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앞에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 거리며 마셔버렸다.
“그렇지. 그런데 최고라는 평가는 받지 못했네.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말도. 킬러 콘텐츠라는 말도. 그저 구색 맞추기라는 평가가 다였어.”
“언론에서는······.”
“이제는 알지 않나. 이 바닥 생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엔진 S에 선 탑재 된 앱이나 기능들 중 쓸 만한 거라······. 단 한 가지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렇군요.”
고동만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음성인식은 포트 어시스턴트에 떨어지고, 얼굴인식은 포트 렌즈에 비해 떨어지고 또··· 모든 서비스가 포트의 아류작 혹은 따라 하기에 불과했어.”
서서히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았다. 승호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고동만을 바라보았다.
“스마트 폰에서 하드웨어로 혁신을 보여주는 건 어느 정도 한계에 왔다고 보는 중이야. 이제 소프트웨어로 보여줘야 할 때. 그와 중에 ONE은 포트와 무승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지.”
승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 ONE으로 그런 서비스들을 완벽하게 구현해 달라?”
“이런 서비스들일수록 1%의 차이가 고객들의 신뢰와 직결 되니까. 쓰는 순간 ‘우와’ 하는 감탄이 나오는 그런 서비스. 자네의 ONE과 선진의 렌즈 기술이 합쳐진다면, 자네의 ONE과 ONE의 마이크 기술이 합쳐진다면. 가능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야.”
승호는 저도 모르게 픽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입을 굳게 다문 채 말했다.
“선진과는 지금까지 몇 번의 협업을 해왔습니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고동만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때 마다 서로 웃으며 헤어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혹시 기억 하십니까?”
“······.”
고동만은 침묵했고, 승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신뢰는 훼손 되었지만 사업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 회사가 성장하고, 경험이 쌓이니 보이는 것들이 있더군요.”
그 말에 고동만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러나 약간의 그늘은 남아 있었다. 승호가 어떤 말을 꺼낼지 대충 짐작이 되기 때문이었다.
“조건을 바꾸자는 말인가?”
“사장님과는 대화가 편해서 좋네요. 대당 2만원은 어떻습니까.”
대당 2만원.
2억대에 전부 적용된다고 했을 때 매년 4조원이 로열티로 빠져 나간다.
‘4조··· 4조······.’
자신의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머뭇거리는 고동만을 보며 승호가 말을 이었다.
“사장님 선에서 결정할 수 없다면 논의를 해보시고 다시 말씀 주셔도 좋습니다. 다만 지금 도 정부의 스마트 시티 사업을 비롯해서 금현 쪽과도 몇 가지 사업을 논의 중입니다.”
승호가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을 이었다.
“보시다 시피 제 몸은 하나이고.”
“바빠서 일이 미뤄 질 수도 있단 말이군.”
“어쩌며 단가를 더 올려야 할 수도 있고요. 그 사이에도 기술은 발전 하고 있을 테니까.”
고동만이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그리고 다시 후 하고 내 뱉길 수차례. 올라오는 화를 삭이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승호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했다. 이제 더 이상 승호는 을이 아니었다. 오히려 갑 쪽에 더 가까웠다.
“알겠네. 한 번 논의를 해보고 알려 주겠네.”
“알겠습니다. 동수도 여기 와 있는데 한 번 보고 가시겠습니까?”
고동만이 고개를 흔들었다.
“여긴 일을 하러 온 거라.”
“네. 그럼 이만.”
승호의 말에 고동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고동만을 만났을 때 승호는 그가 부르면 가야했고, 그의 안색을 살피며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문을 닫고 나가는 고동만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조심히 가십시오.”
고동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고동만이 돌아가고.
고동수와 점심을 함께한 승호가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고 사장님이 다녀가셨어.”
“아··· 그랬어요?”
“꽤 좋은 조건을 제시하더라. ONE을 엔진 S에 적용하는 일로.”
“헤헤, 일이 엄청나게 많아지겠네요.”
“아직 결정 된 건 아니야. 내가 조건 을 좀 더 크게 불렀거든.”
“뭐, 대표님이 하시는 일이니. 잘 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동수는 정말 별 것 아니라는 태도로 대답했다. 그 대답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승호도 내심 가지고 있던 우려를 털어낼 수 있었다.
“그래. 우리 회사에 이익이 되는 방향임은 확실해.”
“그런데 이렇게 일을 너무 많이 벌려도 될까요. 스마트 시티에 자율 주행 차. 거기에 선진의 일까지. 전 그게 걱정입니다.”
“플러스 두바이를 해야 할 거다.”
“두바이요?”
“어제 따로 이야기 한 내용.”
“아··· 뒤늦게 나타나신 그분.”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고동수는 그 사람의 정체를 모른다. 아마 박신우도 정확한 정체는 알지 못할 것이다. 국정원이라는 신분은 함부로 밝혀서도, 함부로 알아 서도 안 되는 것이기에.
“후아, 그러면 정말 일이 몇 개에요. 이거 지금 인원으로는 도저히 커버가 안 될 것 같은데요.”
“불가능해 보이지만 또 그런 것만은 아니야. 그리고 만약 해낸다면 이번에는 포트를 이겼다는 명예가 아닌 실질적인 돈. 그것도 엄청난 양이 들어올 테니까.”
“대표님 설마 그걸 전부 동시에······.”
승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했잖아. 꽤 바빠질 거라고. 물론 대규모 인력 채용을 실시할 거다. 경력에서부터 신입 까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대화를 나누던 둘에게 인 이어를 착용한 건장한 남성이 다가왔다. 승호가 고용한 사설 경호원이었다.
“대표님, 차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승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 카페.
승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았으나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
서울로 올라가는 차안에서 고동만은 몇 번이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전화를 걸려다 말길 수차례. 결국 크게 숨을 한 번 내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회장님. 고동만입니다.”
-그래요. 이야기는 잘 됐습니까.
“그게······.”
-쉽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습니다. 이미 신뢰에 크게 금이 가 있는 상황이니.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대당 2만원을 요구했습니다.”
순간 핸드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대당 만원의 로열티.
그것도 논의 과정에서 엄청난 출혈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그 두 배라니. 아마 실무 진 사이에서는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를 이룰 것이다.
-꽤 비싼 값이군요.
“네. 기획에서 올라온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4조원 정도가 로열티로 지급되는 셈입니다.”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될 수도 있고.
“망고 사의 에이 폰을 이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고 사장님은 찬성하는 입장이십니까?
“만약 우리 연구진들이 할 수 없다면. 그 전제가 있다면 찬성입니다. 어차피 선진의 모태는 제조업이었으니까요.”
-흐음······.
“그렇다고 소프트웨어를 버릴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가 아닌 서비스는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왜 100년을 생존하는 기업이 없는지 알 것 같은 심정이군요. 이런 선택의 순간. 순간 마다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니.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 연구진들은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 수 없습니까?
“제 대답은 이번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포트의 델타를 상대로 무승부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연구진들의 최종 결론입니다. 회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델타 같은 인공지능이 선진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또 이어지는 침묵.
김희건도 쉽게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고동만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수 십초의 침묵이 지나가고 김희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김희건이 말을 이어가는 내내 고동만은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
서울로 돌아온 승호는 바로 전체 회의를 소집했다. 부산 행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 직원들의 표정에는 한 층 더 굳센 믿음과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승호가 분위기를 풀 겸 농담을 던졌다.
“하하, 대단하다는 말은 이미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목숨을 구하고, 또 기적 같은 일을 해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반박 할 수가 없어서 더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너무 기쁩니다.”
“대표님은 정말이지! 크윽.”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해내시는 겁니까!”
“지금 대표님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국민영웅을 넘어서 대한민국 수호신이라는 애칭 까지 붙었습니다.”
수호신이라는 말에 승호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푸흡. 네?”
“수호신이요. 수호신! 이순신 장군 다음 가는 수호신!”
“제로원 팬 카페 회원만 50만을 넘었습니다!”
“이 세상에 0과1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가 모르는 것은 없다.”
잠시 직원들의 농담을 받아준 승호가 툭툭 마이크를 두드렸다.
“들어보니 다들 저에 대해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 시내소프트 직원들이 본업에서 더 뛰어난 능력과 지식을 선보여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말에 사위가 조용해졌다. 일거리가 생겼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기에.
“총 여섯 가지 일이 있습니다. ONE 고도화. ZONE 고도화. 선진 전자와 협업.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스마트 시티. 그리고 두바이 쪽 스마트 시티 수출. 먼저 ONE 고도화는 예카테리나 박사님이 주축이 될 겁니다. 실리콘 밸리에 세울 지사에서 포트의 에이든 베이커가 합류 할 거고요.”
마이크를 잡은 승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ZONE 고도화는 백채원 책임 연구원이 주축이 되어 고동수 선임 연구원과 함께 진행할 겁니다.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을 비롯해 스마트 시티는 별도 인력이 충원 될 예정입니다. 두바이 쪽 수출은 황호근 부사장님을 비롯해 영업팀 직원들이 애써주길 바랍니다. 물론 전체 총괄은 제가 합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승호가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일이 많습니다. 즉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지만 전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건 이번에 전 직원에게 지급된 인센티브에서 느끼셨을 겁니다.”
현재 전 직원은 대기업 그중에서도 선진에 버금가는 연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지급된 인센티브로 연봉의 40%를 지급 받았다. 신입으로 들어와 있는 직원이 받은 인센티브만 2000만원. 이런 중소기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물론 중소기업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규모가 커져 버렸지만.
“이번 일들이 마무리 되면 시내 소프트는 더 커질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겁니다. 그것 하나 만큼은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승호가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더 툭 던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돈 벌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