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46)
탑 코더-146화(146/303)
# 146
엔진 S의 판매량
같은 시각.
선진의 언락 행사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멘로 컨벤션 센터에서 망고사의 에이폰 X 출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망고사의 CEO 팀 켈리가 새로운 에이폰 X를 들고 객석을 향해 말했다.
“에이폰 X의 화면 품질은 정말 대단 합니다. 슈퍼 레티나가 탑재된 5.8인치는 2400 x 1125의 해상도를 자랑합니다. 인치당 448의 픽셀이 들어가는데 세계에서 가장 화질이 좋은 폰입니다.”
평이한 설명이 이어졌다. 관객들의 반응도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간혹 터져 나오는 박수는 혁신에 대한 감탄 보다는 노력에 대한 성의표시였다.
“페이스 ID는 더 대단합니다. 누군가가 무작위로 에이폰 잠금 해제를 할 수 있지만, 그건 100만분의 1의 확률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페이스 ID는 암호화가 필요한 이메일, 채팅 같은 모든 앱 에서 작동하게 됩니다.”
이것도 이미 이전부터 존재했던 기능이었다. 그 기능이 조금 발전 된 것에 불과 했다.
완전하다.
완벽하다.
세계최고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설명해 나갔지만 객석의 반응은 더 이상 달아오르지 않았다.
“흠흠.”
목청을 가다듬은 팀 켈리가 오늘 준비한 행사의 마지막 순서를 진행하기 위해 화면을 바꾸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것은 에이 폰에 탑재된 세리.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음성인식 비서입니다.”
그 말을 시작 했을 때 객석에 약간의 웅성거림이 생겨나갔다.
-선진 엔진S에 탑재된 ONE 말이야. 이거 포트 어시스턴트 보다 음성인식 율이 높데.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인식해서 대답한다던데? 지금 그쪽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나봐.
-우리도 거기나 가볼까? 바로 한 블록 근처 아냐?
-그러자. 여기는 뭐 더 볼 것 없는 것 같다.
그런 대화 끝에 한 두 명 씩 자리를 떠났다. 팀 켈리가 눈짓하자 직원들이 상황 파악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 켈리는 평온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에이폰에 탑재된 세리의 음성인식 성능은 무려 96%. 알려진 바로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세리!”
팀 켈리가 말하자 예의 그 미성의 여자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네. 사용자 님.
“나와 제일 친한 친구에게 연결해줘.”
-알겠습니다.
그러자 화면에 번호가 하나 나타났다. 그걸 확인한 팀 켈리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여기에 나타난 번호는 가장 많은 통화 횟수 및 가장 긴 통화 기록뿐만이 아니라······.”
설명을 이어나갈수록 이탈하는 참석자가 조금씩 늘어났다. 그렇게 발표가 끝날 쯤에는 참석자의 1/3 정도가 사라져 있었다. 발표를 끝내고 내려온 팀 켈리가 직원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선진 쪽에서 ONE과 연동한 음성인식 서비스를 내놓은 모양입니다. 화면 한 번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직원은 튜브넷에 실시간으로 올라온 영상을 틀어주었다. 자신도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강승호가 단상으로 올라와 시연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팀 켈리가 냉소적으로 중얼 거렸다.
“저 시연회도 영어로 진행되는 걸 보니 영어에 최적화 된 상태. 엔진 S가 중국, 독일, 영국, 스페인 등등으로 팔려나가면 저렇게 까지 음성인식을 할 수가 없어. 결국 시연회 용 인거지.”
“작금의 화제성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팀 켈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약 정말로 전 세계 언어에 전부 대응 되는 음성인식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렇게 된다고 해도··· 어차피 이기는 건 우리야.”
팀 켈리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
다시 선진전자 언락 행사장.
승호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시연회를 이어 나갔다.
“ONE 주변 맛집 좀 찾아줘.”
-알겠습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오늘은 매콤한 게 당기는데.”
-검색 중입니다.
“디저트는 달달한 걸로.”
-함께 검색하겠습니다.
ONE의 대답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걸 지켜보는 참석자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렇게 수 초 쯤 지났을 때.
ONE이 대답을 꺼내 놓았다.
-1Km 근방에 멕시칸 음식점이 있습니다. 멕시칸 특유의 매콤한 고추가 들어간 다양한 요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메뉴 출력해줘.”
-알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고 화면에 관련 메뉴가 텍스트로 나타났다. 정말 사람과 대화를 하는 듯한 시연에 행사 참가자들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취재 중인 기자들의 셔터 소리는 빨라졌고,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튜브 넷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abmdkqq : 갓 피셜 : ONE은 이미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갓원님 : 포트 보고 있나? 이게 ONE이다!
루루꺄 : ㅋㅋ지렸다. ONE. 사전 예약 고고!
황종이 : 내 생각에 선진은 신의 한수를 둔거다. ONE과 콜라보라니.
노바 : 음성인식 미쳤다. 이걸로 에이폰 판매량 넘어서자.
정현수 : 선진 X ONE. 합쳐서 세계 접수 가즈아!!!
댓글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달렸다. 대부분이 호의적인 반응. 그걸 모니터링 하고 있는 선진전자 마케팅 팀 직원들의 입가에도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단상위에 올라가 있던 승호의 설명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ONE 이제 오늘 행사가 끝마칠 시간이야. 소감이 어때?”
-즐겁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한 번 살펴봐 줄래?”
승호가 다시 핸드폰을 객석을 향해 내밀었다. 카메라가 객석에 앉아 있는 여러 사람들의 표정을 포착해 이미지로 만들었다. 촬영된 이미지는 내부적으로 분석을 거치며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감정 표현 결과로 나타났다.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감정으로 보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승호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상입니다. 지금 까지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승호가 단상 뒤편으로 내려갔다.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난 참가자들이 끊이지 않고, 박수를 보냈다.
대기하고 있던 고동만이 환한 표정으로 승호를 맞이했다.
“하하, 대단하구만. 대단해. 역시 강 대표야.”
“감사합니다.”
“혹시나 했던 생각이 단숨에 날아가는 군. 더구나 실제 시연회에서는 실수가 생기는 경우도 많은데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시연회를 마무리 하다니.”
고동만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역시 자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아.”
그러나 승호에게는 이런 말보다는 구체적인 수치가 중요했다.
“사전 예약 판매량이 어떻게 됐습니까?”
“막 15만대 돌파했네. 이 정도면 전작을 뛰어넘는 수치야.”
그것만큼 중요한 수치가 하나 더 있었다.
“ONE 때문에 구매한 사용자 수치는 요?”
“지금까지 평균 15%. 30%까지는 아직 절반 정도 남았네.”
“알겠습니다.”
“사용자들이 써보면 점점 늘어 날거야. 마케팅 팀에서도 ONE을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고. 그래서 이번 언락 행사에서도 ONE을 전면에 내세웠지 않나.”
승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30%를 넘지 못하면 이때까지의 노력은 물거품 되는 것이나 마찬 가지였기에 단상위에서 보였던 환한 미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걸 이해한 고동만이 승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보냈다.
“잘 될 거야. 오늘 선보인 ONE이 실사용에서도 이런 성능을 보여준다면.”
그러나 승호의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아직 15%가 남았다. 30%가 될 때 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
엔진 S의 판매는 순탄하게 이어졌다.
-엔진 S10 전 세계 동시 출격. 프리미엄 폰의 절대 강자.
-사전예약 20만대 돌파한 엔진 S10. 순항 중.
-엔진 S X ONE. 예상했던 높은 성능으로 판매 순항 중.
-올해 판매량 4000만대 예상. 선진 전자 실적 개선 이뤄지나.
언론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사전 판매량은 전작을 뛰어넘는 2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듯이 폭탄하나가 뚝 떨어졌다.
-팀 켈리. 토머스에게 관세 안내는 선진과 경쟁 어렵다 토로.
-中 관세 폭탄으로 직격탄 맞은 망고사. 토머스 찾아가 SOS.
그와 관련된 현 대통령 토머스의 인터뷰 까지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망고는 위대한 미국 기업. 선진은 관세 부과 안 돼 불공평-팀 켈리와 아주 좋은 관계 유지. 그를 도와줄 방안 다방면으로 검토 중.
선진에는 악재가 분명했다.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 기업 우선주의로 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만약 정말 핀셋관세라도 때린다면 판매량에는 치명타임이 분명했다.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선진의 수뇌부들이 모였다. 가장 먼저 선진전자의 법무팀장이 입을 열었다.
“토머스가 세이프 가드를 발동할 위험도 있습니다. 20%에서 30% 사이의 고율 관세를 때리면 단숨에 에이폰의 가격을 넘어서 버릴 수 있습니다. 관련해서 법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아시다 시피 미 정부가 진행하는 일이라 저희가 소송을 거는 게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고요.”
법무팀장의 긴 설명에 고동만의 표정이 굳어졌다.
“판매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군.”
컨퍼런스 콜로 참여한 미 지사장이 입을 열었다.
“네. 일정 수준 넘어서면 발동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워싱턴 발 소식입니다. 미, 중 갈등으로 에이폰 가격이 높아질 테니.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겠죠. 지난 번 세탁기에 관세를 매긴 것처럼 이번에도 비슷하게 진행 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주겠다고 미끼를 던져 놨는데도.”
“세이프 가드 발동이 기정사실화되기 전에 카드를 내밀어야 합니다. 그 이후에 공장 건설을 발표하게 되면 미 정부에서도 철회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세탁기도 벌써 1년째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휴우··· 수 조원이 들어가는 투자를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수도 없고.”
심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회의실내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답 없는 회의를 계속 할 수도 없는 일. 고동만이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로빙 펌에 돈 더 찔러주고 관련 정보 계속 수집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회의를 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고동만에게 비서가 스마트 폰을 내밀었다.
“이거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고동만이 다시 앉았다. 소리를 키워놓은 핸드폰에서는 한국의 유명 크리에이터가 방송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번 엔진 S 10에 탑재된 ONE. 그 시연회를 보고 많은 분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큰 기대를 안고 제품을 구매했는데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시연회와 같은 성능이 나오지 않는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에이터가 마이크에 대고 말을 시작했다.
-ONE 오늘 비와서 기분이 꿀꿀 한데 넌 어때.
라고 말하자.
[ONE 오늘 비와서 기분 꿀꿀 넌 어때]라는 말이 화면에 찍혔다. 확실히 시연 회 때와 달리 음성 인식 율이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이내 ONE의 대답이 화면에 나타났다.
[전 괜찮습니다.]다시 크리에이터가 말하자.
-그래? 넌 비 오는 게 좋은가 보구나.
완전히 다른 문자열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래? 넌 비와서 좋아 보여]그러자 크리에이터의 혹평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한국어에 대한 테스트가 아직은 덜 된 모양새입니다. 시연회 때의 놀라운 성능을 기대하고 핸드폰을 구입하셨다면 다들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구야?”
“IT양군이라는 튜브넷 크리에이터입니다. 문제는······.”
고동만이 으득 이를 갈았다.
“문제는?”
“ONE에 대한 세간의 관심 덕분에 관련 동영상 조회 수가 벌써 백만을 넘었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다른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는 중이고요. 그 밑에 악플이 엄청나게 달리고 있습니다. 물론 옹호하는 글도 있지만.”
“강 대표한테 연락은 했어?”
“네.”
“그랬더니?”
“당연한 일이라고 합니다.”
“뭐?”
“출시 일을 맞추기 위해 영어에 최적화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한국어가 완벽하게 작동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럼 뭐야. 기다리면 해결 된다. 이 말이야?”
“네.”
고동만은 미간을 찡그리는 것으로 답답한 심정을 대신했다.
“이것도, 저것도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