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5)
탑 코더-15화(15/303)
# 15
갑질을 이기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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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납품해서 적용해 보자니··· 대기업이 이렇게 빠르게 일을 진행하는 경우는 본적이 없습니다.”
“해킹 예고장 때문에 그쪽 상황이 급박 한 가봐.”
황호근의 시선이 승호를 향했다.
“마침 우리도 코드 난독 화를 솔루션 화 할 생각이니. 이거 일이 딱딱 맞아 떨어지네.”
최기훈이 끼어들어 물었다.
“단가는요?”
“그것도 내일 만나서 바로 협의하자고 하더라.”
“업계 표준 단가를 모르니··· 얼마를 제안해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최기훈이 정곡을 꼬집자, 황호근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 그렇긴 하지.”
“검색 솔루션 납품도 삐걱 거리면서 진행 되고 있습니다. 선진과의 거래는 영 내키지 않아요. 당장 내일 들어와서 적용하라니. 적용만 해놓고, 시간 질질 끌면서 돈은 지급 안하면요. 차라리 좀 더 시간을 두고, 공공기관이나 다른 거래처를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최기훈의 말을 듣던 황호근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무거워진 분위기에 최기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고······.”
“사실··· 이런 말 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지금 회사 사정이 많이 안 좋아.”
“눈치는 채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조금 만 버텨서 선진이 아니라 다른 쪽 루트를 한 번 뚫어 보는 게······.”
황호근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그 조금 도 견딜 시간이 없어. 당장 이번 달 월급 지급하고 나면 끝이다. 돈이 안 들어오면 다음 달 월급부터 대출을 받던지 해야 돼.”
최기훈이 침묵했다. 승호도 입을 닫았다. 회사 사정이 그 정도로 나빠져 있을 줄은 몰랐다. 황호근이 말을 이었다.
“이대로 회사를 접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도 있더라.”
승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겨우 밥 값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건 안 됩니다.”
“한 달 회사 운영비만 거의 1억이다. 다음 달까지 1억 구하지 못하면 문 닫아야 하는 거야. 다행히 선진이랑 솔루션 납품 계약이 되면 계약금으로 1억을 받기로 되어 있어. 그래서 더 조바심을 내는 거고.”
승호가 혼잣말을 중얼 거렸다.
“1억이 필요한 거군요.”
“그건 당장 필요한 금액이고, 앞으로 매달 그 금액이 필요한 거지.”
1억.
자신이 현재 받고 있는 연봉이 2200이었다. 5년을 한 푼 도 안 쓰고, 모아야 하는 액수.
감조차 오지 않았다.
“기훈이 네가 정 걱정이라면 일 진행, 안 해도 된다. 다만 회사가 어렵다는 건 너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가만히 듣고 있던 최기훈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회의실이 둘의 한숨으로 가득 찼다. 상황을 지켜보던 승호가 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둘의 시선이 승호에게 꽂혔다.
“일단 사장님이 바나나 톡에 연락해서 보안 허점 을 찾아냈다. 혹시 살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세요. 아마 바나나톡 쪽에서도 저 앱을 보면 꽤나 탐을 낼 겁니다.”
황호근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최기훈을 보며 말했다.
“팀장님은 저랑 내일 선진에 가서 코드 난독 화 솔루션 계약에 대해 이야기 해 보는 겁니다. 조건이 안 좋으면 뭐,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되고요.”
황호근이 물었다.
“만약 둘 다 계약이 안 되면······.”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안 되면··· 선진의 보안 취약점을 분석해서 팔아도 되고요. 만약 그것도 안 되면······.”
이번에는 최기훈이 승호의 말을 막았다.
“아직 검색 솔루션 건도 남아 있고. 만약 그것마저도 실패한다면 회사를 접으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 해야지.”
승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어깨에 회사의 명운이 달린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
다음날.
다시 찾은 선진 데이터시스템 건물은 여전히 웅장함을 자랑했다. 그제께와 달리 방문증 수령에서 부터 회의실 출입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도착한 회의실에는 간단한 다과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마치 환대를 받고 있는 느낌.
최기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거 그저께랑은 너무 다른 거 아니냐? 계약이 잘 풀리려고 그러나.”
그러나 승호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살짝 굳어져 있었다.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너무 긴장 안 해도 되. 뭐, 잘 안되면 할 수 없는 거지 어쩌겠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자.”
그렇게 5분 정도 대기하자 김신우 과장이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하, 이틀 만에 다시 뵙네요. 급하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최기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도와 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최대한 협력해야죠.”
자리에 앉은 김신우가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자꾸 이 먼 곳까지 오라고 한 게 미안하던 참이었어요.”
딱딱하던 이틀 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김신우의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말에는 호의가 가득했다.
“일이 있다면 당연히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 곳까지 오신 만큼 충분히 마음에 드는 결과를 가져가셔야 할 텐데······.”
말을 늘이던 김신우가 슬그머니 본론을 꺼내들었다.
“아쉽게도 어제 보내주신 메일 내용이 저희가 기대하던 부분과 상충되는 게 꽤 보입니다.”
“어떤 부분을 말씀 하시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이어지는 내용에 최기훈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일단 솔루션 단가부터가 저희와 갭이 있습니다. 제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시내 소프트에서 정식으로 출시된 솔루션은 XONE 하나. 코드 난독 화는 아직 정식으로 출 시 되지도 않았는데 웹 사이트 하나당 적용 비용을 400만원으로 책정 하셨더군요.”
“저희 난독 화 라이브러리를 사용 하면 누구도 자바 스크립트나 html 코드를 알아보지 못할 테니까요.”
“그건 차차 알아 가도록 하죠. 다음으로 기술 지원 수준도 저희 기대와는 다릅니다. 코드 공개는 어렵더라도, 코드 레벨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사이트에 문제가 생겨도 매번 시내 소프트에 연락하지 않고 해결 할 수가 있어요.”
승호의 눈이 반짝였다.
‘코드 공개는 어렵지만 코드 레벨에서 작동 방법을 설명해 달라?’
코드를 보여 달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김신우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 적용 기간 인데··· 4일은 너무 깁니다. 최소한 이틀 안에 처리해 주셔야. 저희가 솔루션 도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 할 수 있어요. 만약에 정말 해킹이라도 당하고 나면 다른 일로 정신이 없을 겁니다.”
예상했던 대로 계약은 난항이었다. 최기훈이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전부 안 된다고 하면 아예 계약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덥석 저들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는 검색 솔루션처럼 끌려 다니다가 끝날까 걱정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는 최기훈에게 김신우가 최후통첩을 날렸다.
“저희가 제안 하는 건 이겁니다. 솔루션 도입 비용은 아직 정식 출시되지 않은 베타 버전이니 200만원. 그리고 사이트 운영을 위한 코드 레벨 설명. 마지막으로 이 틀 안의 적용.”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한 마디를 더 툭 던졌다.
“아직 정식 출시도 되지 않고, 레퍼런스도 없는 솔루션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모험입니다. 시내 소프트의 코드 난독 화에 문제가 생겨서 사이트가 뚫리기라도 하면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당장 회사 굴리는 것도 어려운 걸로 알고 있어요.”
최기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들은 자신들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알 고 있었다. 대기업이 괜히 대기업이 아니었다. 최기훈의 고민이 깊어졌다.
한다고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그런 낌새를 알아챈 김신우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최대한 편의는 봐드리겠습니다. 위약 조건도 업계에서는 찾아 보기 힘들 정도 준비 했습니다. 내부 소식에 의하면 검색 솔루션 도입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데, 그 건이 안 되면 이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뱀.
은밀한 속삭임은 마치 뱀을 생각나게 했다. 최기훈이 겨우 입을 열었다.
“사이트 당 200만원은 저희 인건비도 나오지 않습니다.”
김신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혀를 놀렸다.
“선진 그룹에서 운영하는 사이트가 몇 개라고 생각하십니까? 10개? 아니면 50개? 아니. 그 이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진 데이터시스템은 각종 정부 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을 수주해서 현재 진행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전부 시내 소프트의 솔루션이 적용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최소한 100개는 넘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바로 2억이 확보 되는 겁니다.”
마치 준비된 답변처럼 거침이 없었다.
“더구나 선진에 납품 되었다는 사실이 가지는 이점을 생각해 보세요. 다른 곳에서도 납품해 달라고 줄을 서게 될 겁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손해가 나더라도 자사의 솔루션을 받아달라는 업체들도 있어요. 선진에 납품했다는 레퍼런스. 그걸 만들기 위해서.”
꿀꺽.
최기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김신우의 말은 하나하나가 사실이었다.
선진에 납품 되었다.
그것 자체가 홍보효과를 가진다. 그랬기에 황호근도 선진에 검색 솔루션을 납품하기 위해 노력했다. 말을 하던 김신우가 손목에 걸치고 있던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회의를 시작한 지도 30분이 지났습니다. 저희 회사 방침이 회의는 한 시간 안에 끝내자 입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신우의 압박에 최기훈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위약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자세한 건 더 이야기 해봐야겠지만, 손해 배상을 금전이 아닌 보유 기술이나, 현물로 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보유기술이나 현물이라니··· 그러면 저희 코드를 공개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만약 배상 하실 현금이 없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기술 협력한다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위대한 프로그램은 홀로 탄생하지 않는다. 우리가 협력해서 난독 화 솔루션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도 있습니다.”
김신우가 슬쩍 앞에 있던 종이 뭉치를 앞으로 내밀었다.
“저희는 검색 납품처럼 시간을 질질 끌지 않습니다. 여기 계약서 까지 준비해 왔습니다. 바로 사인만 하시면 되요.”
최기훈이 빠르게 계약서를 훑었다. 지금까지 김신우가 말했던 내용들이 대략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 납품 단가 : 200만원.
– 손해 배상 : 현금 또는 기술 이전.
– 적용 기간 : 시작일로부터 +2
최기훈이 탁자 아래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러다 슬쩍 승호를 보았다. 잔뜩 구겨진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승호야, 네 생각은 어때?”
그때 까지도 승호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최기훈이 그런 승호를 한 번 더 불렀다.
“승호야. 강승호?”
승호는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지난번처럼 공유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갑작스런 행동에 최기훈이 다급히 승호를 불렀다.
“야. 뭐, 뭐 하는 거야.”
째깍.
째깍.
수초가 흐르고,
“윽.”
순간 승호가 머리를 움켜쥐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갑작스런 현상에 최기훈이 급히 승호에게 다가가 부축해 주었다.
“갑자기 왜 이래. 너무 무리 했나 보다. 오늘은 이만 가서 쉬어. 여기는 내가 정리 하고 갈 테니까.”
김신우도 놀란 표정으로 승호를 보았다.
“그, 그러세요. 오늘은 이만 들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움켜지고, 있던 승호가 공유기에서 손을 떼고 입을 열었다.
“저, 전 괜찮아요.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리고 다시 슬쩍 손을 대 보았다.
‘역시··· 내가 잘 못 읽은 게 아니었어.’
승호가 머리를 움켜진 이유는 갑자기 늘어난 정보량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0과1을 해석하던 승호의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김신우 과장님. 아무래도 디도스(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 공격이 시작 된 것 같습니다. 데이터 센터에 연락부터 해보세요.”
뜬금없는 소리에 김신우가 물었다.
“디, 디도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얼마 전에 받았다는 해킹 예고장. 꼭 이 주 뒤에 벌어진다는 보장 있습니까?”
김신우가 급히 전화 걸었고, 이내 사색이 된 채 승호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