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60)
탑 코더-160화(160/303)
# 160
완벽한 4레벨 자동차
부우우웅.
차량 다섯 대가 제자리에서 일제히 RPM을 올렸다. 바퀴가 빠르게 돌아가며 일으킨 마찰열로 지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얀 연기가 쇼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서서히 퍼질 때 쯤.
차량 5대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출발 했다.
위협적인 엔진 소리에 지켜보던 이들이 흠칫 거리며 한 걸음씩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와. 저거 저 짧은 순간에 시속 몇 까지 올라간 거냐.
-연기 날 정도면 최소한 100km는 되겠는데.
-핸들도 없는데 자동차가 저렇게 움직여도 되는 거야.
-자율주행차가 아니라 포뮬러 카를 만들어 왔네.
-저, 저거 뭐야. 차들이 곡예 운전을 하는데.
웅성거리며 지켜보는 CES 참가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놀라움 이었다. 그 모습을 승호가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시내 소프트 강승호 입니다.”
스크린 옆에 준비되어 있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에 참가자들의 시선이 승호에게 쏠렸다.
“여러분은 지금 제로. 미래 표준이 될 자동차를 보고 계십니다. 보시면 차 안에는 핸들이 없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나누는 0단계에서부터 5단계 기준. 그 중 5단계에 와 있다는 뜻입니다.”
승호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가 가끔 정만식을 향했다.
“이제 타고, 목적지를 말하고, 내리면 됩니다. 제로에서는 그 세 가지 행동만 하면 모든 게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리고 제로의 기능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여기 스크린을 봐주십시오.”
스피커 옆쪽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에 5대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보여 지고 있었다. 스크린 왼편 하단에는 승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손님에게 차량을 보내고 싶을 때도 간단합니다. 이렇게 핸드폰으로 목적지를 입력하고 완료 버튼을 누르면 끝.”
그러자 5대 중 한 대가 쇼를 멈추고 스르륵 승호에게 다가 왔다.
이윽고.
빵.
빵빵.
마치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듯 클락션을 울리고, 비상등을 켰다. 차에 다가간 승호가 문을 열고 자동차에 올라탔다. 이내 스크린에는 승호가 탄 자동차 내부가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올라왔다.
부우웅.
승호를 태운 자동차가 부드럽게 쇼 장을 벗어났다.
“제가 설정한 목적지는 CES 행사장 입구. 보시는 바와 같이 제로는 무인 택시처럼 사용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미 연방 정부와 캘리포니아 주로부터 무인 승객 운송 서비스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다음 달부터 캘리포니아에서 ‘제로 택시’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르게 추진 중 입니다.”
자동차는 빠르게 행사장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 도착한 승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제1전시관으로 가자.”
그러자 자동차 대시보드에 박혀있는 15인치 크기의 스크린에 목적지와 목적지로 가는 경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제로가 물어왔다.
-목적지 CES 행사장 제1전시관 입구.
-출발 하시겠습니까?
승호는 입도 떼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출발 하겠습니다.
제로는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시동이 걸리며 부드럽게 출발해 쇼가 벌어지고 있는 제1시관 앞까지 도착했다. 놀라운 일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4대의 자동차 사이를 곡예비행하며 처음 승호가 승차 했던 곳에 차량이 멈춰 섰다. 승호가 차에서 내리자 차량은 다시 자신이 있던 위치로 돌아갔다.
4대의 차량이 곡예비행하고 있는 곳으로.
차에서 내린 승호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마이크에 입을 댔다.
“제로는 완벽하게 4레벨을 마스터 했습니다. 왜냐하면 5단계 초입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시연회를 마치겠습니다. 체험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승호가 단상에서 내려왔다. 쇼를 하던 5대의 제로는 체험 할 수 있도록 행사장 앞에 주차 되었다.
***
정만식이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부들부들 떨며 금현자동차 경영진을 노려보았다.
“자네들은 지금까지 도대체 뭘 했나?”
강한 분노가 느껴지는 말에 경영진의 고개가 한 층 더 숙여졌다.
“선진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동안 도대체 무얼 했냐 이 말일세!”
금현 자동차를 위해 따로 마련된 CES내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바깥의 소란스러움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최 전무. 내가 제로와 협업을 끝낼 때 뭐라고 했지?”
최 전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시내소프트를 고사 시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정만식의 시선이 또 다른 쪽을 훑었다.
“김 상무. 내가 자네에게 제로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동향 파악을 철저하게 하라고 지시 했었지?”
호명된 김 상무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 이런 사달이 날 때 까지 도대체!”
콰앙.
정만식의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탁자를 내리쳤다.
투둑.투두둑.
진동을 이기지 못한 탁자 위 핸드폰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누구도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정만식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가장 끝에 앉아 있는 연구소장에게 향했다.
“에이오닉도 곧 저렇게 될 수 있겠지?”
앉아 있던 연구소장이 움찔 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허공에서 두 시선이 마주쳤다. 이내 연구소장의 눈알이 스르륵 굴러가며 정만식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대답하지 못했다. 정만식이 다시 물었다.
“할 수 있겠지?”
“그··· 그게······.”
“자네가 추천한 자율주행차 관련 스타트업도 수천억을 들여 인수 했네. 그런데 아직도 4단계를 정복하지 못했어. 그런데 제로는 4단계를 끝내고 5단계에 들어선 자동차를 들고 나왔네?”
정만식의 눈에 핏 발이 서렸다. 호흡은 기차소리를 연상케 할 만큼 거칠었다.
콰앙!
또 한 번 탁자가 들썩였다.
“할 수 있어 없어!”
놀란 연구소장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할 수 없다는 말.
그게 가능했다면 에이오닉이 아직 4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리라.
“제로는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무인 택시 운행을 시작한다는데 금현의 에이오닉은 아직도 개발! 개발!. 도대체 언제 까지 개발만 할 건가!”
분노가 가득한 고성이 사무실을 울렸다. 사무실내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정준구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지금이라도 한국 시장을 수성하는데 전력을 다하면 늦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무인 택시는 택시 업계의 반발로 아마 나오지 못 할 테고, 자율 주행 차 역시 시내를 달리기 위해서는 관련 법 정비가 필요한데 일체 진행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정만식이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일단 한국 시장을 수성하는데 집중하자는 말이냐?”
“네. 미국시장에서도 자율 주행차가 정식 출시 할 때 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 할 겁니다. 앞으로 최소한 3년.”
말을 하던 정준구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연구소장을 한 번 노려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1년 안에 개발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연구소장을 교체하고, 포트나 시내소프트와 다시 협업을 해도 됩니다. 영원한 우군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니까요.”
정만식의 분노가 차츰 삭아 들었다. 그러나 이내 비서가 들고온 소식에 다시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속보]부산 스마트 시티. 제로 무인 택시 면허 부분 허용.
-[단독]제로, 부산 스마트 시티 달린다.
-시내소프트 부산시와 MOU 체결.
-규제 샌드박스 10호 제로. 부산 스마트 시티에서 구매 가능.
제로가 부산 스마트 시티에서 달릴 수 있다는 뉴스였다.
***
시연을 끝낸 승호가 관계자 대기실로 돌아왔다. 대기실로 들어오자마자 한편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화상 통화를 연결 시켰다.
“로그 확인은?”
-방금 끝냈습니다.
“왜 운행 중에 비상 깜박이를 키려고 한 거야.”
-SLAM 시스템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사람으로 인식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도로로 들어 온 다고 판단해서 순간적으로 비상 깜박이를 켜고 브레이크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휴우··· 알고리즘 점검 해봐.”
-네.
승호가 아쉬움을 가득 담아 중얼 거렸다.
“그렇게 수도 없이 테스트 했는데 역시나······.”
시연회가 무사히 끝난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아니었다. 중간 중간 문제가 발생 할 뻔했다. 그때 마다 승호는 0과1의 세계에 개입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해 버렸다.
-최대한 빨리 수정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승호가 털썩 의자에 몸을 기댔다. 잔뜩 긴장한 채로 시연회를 진행했더니 등 뒤가 축축하게 땀으로 젖어있었다.
뒤 따라 들어온 김희건이 승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도 잘 끝났으니 다행입니다.”
“네. 이걸로 큰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제 마무리 작업을 거쳐서 출시하는 일만 남았군요.”
“하하,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지금 CES를 비롯해 언론 반응이 얼마나 뜨거 운지 모릅니다. 당장이라도 제로를 사고 싶다는 소비자들로 홈페이지는 거의 마비될 지경입니다.”
“생산 공장 건설 상황은 어떻습니까?”
“90% 완료 중입니다. 상반기 내로 제로 양산이 가능해 질 겁니다.”
“마지막 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됩니다. 자동차는 핸드폰과는 다르니까요.”
“하하, 물론입니다.”
김희건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되었건 시연회는 잘 마무리 되었고, 제로 개발은 문제없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저도 최선을 다할 테니. 회장님께서도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김희건이 웃음기를 빼고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이 대화가 마무리 될 때쯤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승호를 보며 말했다.
“대표님. 포트 회장님이 혹시 시간되시냐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좀 피곤하다고 전해주시겠어요.”
놀란 비서가 무의식 적으로 되물었다.
“포, 포트의 회장이십니다.”
승호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약속이 되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타당한 말이었다. 그러나 포트가 어딘가. 세계 최고의 IT 회사였다. 그 회장의 만남 요청을 거부 하다니······. 놀란 비서가 머뭇거리며 나가지 못하자, 승호가 말을 이었다.
“시연회 때문에 며칠 밤낮을 밤샘 작업을 했다고 전해주세요. 그러면 이해하실 겁니다.”
그것도 일체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었다. 어제까지 밤샘 작업을 했다. 오늘은 자율주행차의 0과1의 세상을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집중에 집중을 더한 시간이었다. 그랬기에 손 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다. 고개를 주억 거린 비서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나섰다. 그러나 10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다시 들어왔다.
“저기··· 대표님.”
승호는 뇌가 멈춰버린 듯한 상태를 견디고 있는 중이었다. 눈을 감고 있던 승호가 살짝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시연회 끝나고 인터뷰나 만남 요청은 전부 거절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날카로운 승호의 반응에 마른 침을 삼킨 비서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게··· 미 대통령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감겨 있던 승호의 두 눈이 떠 질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