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75)
탑 코더-175화(175/303)
# 175
내실을 다질때
황호근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포털 서비스에서 후발주자가 성공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시내소프트는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에서 자율주행 자동차 까지. 지금까지 개발 된 내용으로 검색 서비스에 적용하기도 쉬 울 테고요.”
승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왜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였다. 최기훈이 한 마디 덧 붙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검색을 통해 들어오는 데이터는 분명 ONE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에게는 X-ONE이라는 검색 엔진도 있고요. 사람을 모으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잠시 뜸을 들이던 최기훈이 말을 이었다.
“시내 소프트 채널 구독자만 800만이 넘는 걸로 알 고 있습니다. 최소한 800만 사용자는 확보한 것 아닐까요?”
이 말도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승호를 망설이게 만드는 점이 아직 해결 되지 않았다.
“국내 포털 서비스 시장은 넥스터가 세계 시장은 포트가 잠식한 상태라 봐도 무방합니다. 거기에 한 발 걸치려면 킬러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검색은 이미 다른 두 회사에서도 잘하고 있으니까요. 굳이 시내소프트에서 검색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황호근이 나섰다.
“혹시 심심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승호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심심이.
자신은 처음 들어보는 서비스였다.
“아직 스마트 폰이 나오기 전 출시 했던 서비스 인데 말을 걸면 대답을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아··· 엔진 S에 들어가 있는 ONE의 대답 기능 같은 걸 말씀하시는 군요.”
“하하, 네. 맞습니다. ONE에 사용자가 물어보면 ONE이 마치 인간처럼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 데이터를 지금까지 저와 최 팀장이 지속적으로 분석해 왔습니다. 밥값은 해야 하니까요.”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승호가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요?”
“최근 ONE 서비스를 이용해 고민 상담을 하는 사용자가 꽤 늘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나는 왜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
‘왜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
‘어떻게 해야 남자친구가 생길까.’
등등.”
“재밌는 현상이네요.”
“항상 사용자들은 저희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서비스를 사용하니까요. 어쨌든 중요한 건 그렇게 사용하는 사용자가 늘었다는 겁니다. 즉 ONE이 적절한 대답을 했고, 이에 만족한 사용자들이 계속 질문을 던진다. 심심이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은 수요가 존재한다는 뜻이죠.”
논리에 큰 허점을 찾지 못한 승호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일본에 비슷한 로봇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긴 합니다.”
“로봇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건 소프트웨어만으로 해결 되는 것도 아니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나 투자해야 할 부분이 너무 커져 배제했습니다. 일단 공장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하긴······.”
“그래서 먼저 심심이 같은 채팅 서비스를 출시하는 겁니다. 그걸 통해 사용자를 모으면서 세계 1위의 채팅 앱으로 성장. 해당 사용자를 기반으로 포털 서비스를 진행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희 둘의 의견입니다.”
“흐음······.”
나쁘지 않았다.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더구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명을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바나나 톡도 최초 채팅 앱 이었지만 지금은 택시, 쇼핑, 게임 까지. 진출 하지 않은 분야가 없으니까요. ONE이 심심이 보다 월등한 능력으로 사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ONE 인공지능을 최대한 활용해 보자는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지금까지 발전 시켜온 기술을 적용해 보자는 말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기보다는 리스크가 적으면서도 기존의 기술을 활용 할 수 있습니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로 양산에서부터 스마트 시티까지 진행하면서 뭔가 사업이 파편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걸 안정화시키면서도 확장을 멈추지 않는 데는 포털 서비스만한 게 없었다.
“흐음······.”
승호가 또 생각에 잠기자 둘은 잔뜩 긴장한 채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시내소프트라는 이름은 자신들이 만들었지만 그 이름이 세계에 퍼지게 만든 건 승호였다. 최근 회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짐짓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던 차였다. 그 짐을 덜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잠시 후.
승호가 둘을 찬찬히 보았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한번 추진해 보도록 해요.”
둘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다음으로 찾은 곳은 제로 양산을 위한 공장이 있는 부산이었다.
제로 자동차.
원래는 독일에 인수되었던 선진라인자동차가 있던 자리였다. 제로 생산을 위해 공장 전체에 공사 한 창이었다.
“하하, 왔구만.”
승호가 내려온 다는 소식에 미리 와 있던 고동만이 솥뚜껑 같은 손을 내밀었다. 승호가 그 손을 맞잡으며 물었다.
“올해 말에는 양산이 가능 할까요?”
“물론. 완성만 되면 한 해 10만대 생산은 문제없어. 지금 선 예약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그 말에 승호가 미간을 좁혔다.
“어차피 여기 부산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밖에 사용 할 수 없는 게 문제군요.”
“회장님도 문제를 인식하고, 동분서주 하고 계시니. 올 연말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해결 하도록 해봐야지. 다행히 지난 번 테스트 영상이 큰 도움이 되고 있어. 일반인들 사이에서 제로가 기존 자동차들보다 안전하다는 여론이 퍼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데.”
“그러면 이건 어떠냐. 우리 마케팅 팀에서 올라온 기획인데.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면서 쇼를 펼치는 거다.”
“쇼요?”
“이를 테면 CES나, 지난 번 테스트 현장에서 보여주었던 것 같은 것들이지. 영상 보다 실제로 보는 게 더 믿음이 갈 테니까.”
고동만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자율 주행 차 시험장을 돌아다니며 진행하는 거다. 된다면 일반 도로에서도. 섭외는 선진에서 하마.”
“그 말씀은······.”
“그래, 너도 와서 얼굴 한 번 비춰 달라는 말이지. 지금 세계가 난리잖아. 젊은 기업인 강승호에 대한 이야기로.”
인공지능에 이은 자율 주행 차.
그로 인해 세계가 승호를 주목하고 있었다. 포브스를 비롯한 각종 경제 잡지에서 취재요청이 쇄도 하고 있었으며, 각종 방송사를 비롯해 대학들에서도 강연 요청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걸 전부 소화하기에는 일을 할 수 없기에 대부분 거절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렇게 뜨거울 때 투어 한 번 해주면 여론 몰이에도 좋고, 기회가 된다면 각 나라 정상들을 만나서 설득하면. 더 빠르게 자율 주행 차 법안이 마련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맞는 말이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제도 개선에는 더 효과적일 것이다. 어차피 한국과 미국은 쌓아둔 빚이 많으니 금세 해결 될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문제였다. 고동만이 말을 이었다.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 미국, 캐나다등등 그렇게 10여국 정도 기획 중인데. 어떠냐?”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승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 번 추진해 보죠.”
고동만이 입 꼬리를 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그렇게 공장 시찰을 끝낸 승호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경기도에 위치한 천사보육원.
최근 몇 년 사이 할 일이 너무 많아 한 번 도 직접 찾아와보지 못한 곳이었다. 대문에 붙어있는 나무명패에서부터 운동장에 세워져 있는 축구 골 대 그리고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미리 말을 하지 않고 찾아왔기에 마중 나온 이는 없었다.
시간은 오후 4시.
운동장에서 한 창 아이들이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패스! 윤철아 여기!”
“슛! 슛 해 임마.”
“드리블하다 말고 슛 해야지!”
볼을 차는 아이들이 저마다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승호는 잠시 벤치에 앉아 넋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아무 걱정 없이 이곳에서 공을 차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에 나갈 걱정도, 부모에 대한 생각도 없이 그저 보육원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 놀며 볼을 차던 시절.
그 시절이 지나고 냉혹한 사회생활을 거쳐 이제는 누구나 알아보는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지금도 아직 20대에 불과한 나이였지만 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간 참 빠르다.’
오랜만에 잠시 쉬면서 한참을 앉아 있던 승호의 귓가로 포근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승호가 시선을 돌렸다. 원장 수녀님이 다가와 앉아 있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승호가 고개를 숙였다.
“하하, 네. 수녀님. 오셨어요.”
오랜만에 만난 수녀님의 눈가에는 잔주름이 더 늘어나 있었다. 이마에 새겨진 골 역시 세월의 흔적을 비켜 나가지 못했다. 그 모습이 못내 아쉬워, 가슴이 찌르르 아파왔다. 원장 수녀님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눈빛으로 승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승호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그래. 그간 고생 많았다.”
왜 이럴까.
가슴이 울컥 거렸다. 돈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절로 목소리가 떨렸다.
“고, 고생은 요.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인데요.”
“이 작은 보육원 하나 운영하는데도 많은 고민은 한단다. 아이들 식단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바르게 자랄까. 사회에 나가기 전에 어떤 준비를 시켜야 할까. 그런데 넌 이보다 수십 배는 더 큰 일을 하고 있으니. 그 고민과 수고로 움이 얼마나 될지.”
승호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원장 수녀님이 승호의 등을 살짝 두드려주며 말을 이었다.
“고생하고, 수고했다. 너무 잘하고 있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울컥거림을 겨우 집어넣었다. 수녀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 마음을 안다는 듯이 수녀님은 한동안 가만히 등을 두드려주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승호가 물었다.
“원에 필요한 건 없으세요?”
“지금도 충분하다. 네 덕분에 보육원 사정도 많이 좋아졌어. 최신식 컴퓨터에서부터 아이들 장난감. 풍족한 간식까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주세요. 원장님도 뉴스 보셨죠? 저 사회에서 꽤 성공했어요.”
원장 수녀님이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구나.”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오늘은 이거 드리려고 들렸습니다. 한 번 보세요.”
“으, 응? 이게 또 무슨······.”
봉투를 열어본 원장 수녀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변 땅 문서예요. 항상 말씀 하셨잖아요. 여기가 더 넓어진다면 더 많은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이번에는 원장수녀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스, 승호야······.”
“넉넉하게 매입했으니까. 최 소한 건물 두 동은 지을 수 있을 거예요. 공사는 말씀 하시면 바로 시작 할 수 있게 준비해놨으니까. 언제든지 여기 비서한테 전화 주세요. 그러면 설계 사무소에서 찾아 갈 겁니다. 수녀님이 생각하셨던 대로 꾸미 시면 되요.”
“이, 이건 너무······.”
원장수녀님의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눈 가에는 습기가 가득 차올랐다. 왠지 모를 머쓱함에 승호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헤헤. 항상 생각했어요. 나중에 수녀님 소원 꼭 들어드리겠다고. 저 같은 아이들이 수녀님 밑에서 컸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던 승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있다가는 또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오늘 이것도 잠시 짬 내서 온 거라.”
“그래. 바쁠 텐데 어서 가봐야지.”
자리를 떠나 돌아가는 승호를 원장 수녀님은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향한 승호의 일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