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77)
탑 코더-177화(177/303)
# 177
내실을 다질때
당장 대답하긴 힘든 문제였다. 승호는 일단 생각해 보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뒤로는 평범한 시간이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입에 맞지 않는 말들을 던졌다.
그렇게 수 십여 분이 지났을 때 쯤.
술잔을 든 그가 찾아왔다.
현 세계 3위 자동차 기업 GM 회장 프레데릭 핸더슨. 자율 주행차 세계에서는 포트의 애니웨어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는 회사의 회장이었다.
“이렇게 직접 뵈니 더 젊으신 분이었군요. 반갑습니다. 프레데릭 핸더슨입니다.”
승호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50대로 보이는 프레데릭은 각진 턱에 넓은 어깨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강승호입니다.”
“정말 볼수록 놀랍더군요. 인공 지능 ONE을 개발했다고 했을 때는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어느새 자율 주행 자동차 까지. 제가 웬만해서는 칭찬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승호도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GM의 크루즈 성능도 대단히 뛰어난 것으로 들었습니다.”
GM의 크루즈.
GM에서 개발한 자율주행 차의 대표 브랜드였다. 프레데릭이 자조적인 태도로 한 마디 내뱉었다.
“혹시 그 뉴스도 보셨습니까? 최근 기술난항을 겪고 있다.”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 덕분에 자신이 관여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슈사항은 매일 체크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자율주행 차 업계 전반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80%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10마을 갈 때 마다 급제동을 한다. 그런 뉴스라면 확인했습니다. GM은 제로의 최대 경쟁사 중 한 곳이니까요.”
프레데릭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이거 회사의 치부를 남의 입을 통해 들으니 더 부끄럽습니다.”
프레데릭이 벌컥 거리며 손에 들려 있던 위스키를 마셔 버렸다. 그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기술 개발이 한 번에 성공할 수는 없으니까요. 저도 제로를 개발하면서 겪었던 일들입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이거 미스터 강이 겪었던 일이라고 하니. 힘이 생기는 군요.”
그는 마치 친구처럼 다가오려고 했다.
왜?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감돌고 있었다. 그런 승호를 향해 프레데릭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혹시 몇 가지 조언을 구해도 되겠습니까?”
“네. 제가 답 할 수 있는 것 이라면.”
프레데릭이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애니웨어처럼 자율주행차 관련 부품도 판매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를테면 라이다나 레이더. 또는 초음파 센서 같은.”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못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애니웨어는 자체적으로 만든 라이다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것도 실제 애니웨어 차량에 부착되어 있는 것으로.
‘포트는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들도 결국 타사에서도 개발되고, 보편화 될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그렇기 때문에 선점한 기술을 저렇게 팔 수 있는 것이리라. 엔드로이드 처럼.
승호는 솔직하게 답했다.
“아직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시군요. 물론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포트는 수년에 걸쳐 준비해온 사업지만 제로는 최근 급격히 성장한 곳이니까요.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제로에 들어가는 인공지능에 로열티를 지급할 테니 공개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차량에 들어가는 부품보다는 개발이 많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어!
이건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이미 제로도 선진에 로열티를 받고 있는 방식이었다. 같은 형식의 데이터만 넘겨준다면 어디에도 적용할 수 있었다.
마치 엔드로이드를 여러 제조사에서 사용하지만 OS를 만드는 곳은 포트 하나이듯.
자율주행차의 뇌를 담당하는 부분을 자신이 만든 ONE으로 통일 한다면.
승호의 입 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건 꽤 논의해볼만한 제안이군요.”
프레데릭도 승호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럼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자리를 잡겠습니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
둘째 날 일정은 다른 나라에서도 했던 시연회였다.
벌써 수도 없이 진행하는 시연회.
특별한 일은 없었다. 제로는 부드럽게 시험 도로를 달렸다. 그 모습을 행사장에 참석한 사람들이 놀란 모습을 지켜보았다.
승호에게는 익숙한 것들이 이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제로의 모습을 실제로 접한 이들이 하나 같이 보이는 반응.
입을 떡 벌린 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이 이번에도 연출되었다.
그렇게 둘째 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법안과 제도 정비에 관한 의견을 나눈 후 승호는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승호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중국을 끝으로 이 짓도 끝이군요.”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휴우··· 개발을 이렇게 하라면 하겠지만 사람 만나는 일은 해도 해도 적응이 잘 안됩니다.”
“그런 것 치고는 꽤나 잘 하셨습니다.”
“조사해 주신 내용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토마스 대통령에 대해서 알려주신 내용으로 점수를 좀 땄고.”
“다행이군요. 제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뜻이니.”
“중국에서 조심해야할 일도 혹시 알아보셨습니까? 이를테면 중국 주석인 하오란에게 점수 따는 법이라던가.”
“물론입니다.”
비서가 한 뭉치의 서류 더미를 내밀었다.
“여기. 이거 확인하시면 됩니다.”
승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거 다··· 말입니까?”
비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마지막이니까요.”
승호는 중국에 도착할 때 까지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나라.
그러나 최근 무역전쟁의 양상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으니.
그리고.
‘토마스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 더 수세에 몰리게 되겠지.’
그러나 아직 그 부탁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북한은 명백한 적이라 생각했지만 중국은 애매한 위치였다. 이곳에 엔진 S를 팔고, 제로를 팔아 이익을 남겨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10억이 넘어가는 인구를 가진 중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니까.
일정은 다른 나라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첫째 날은 시연회.
중국이라는 나라답게 아주 거대한 자율 주행 차 시험장이었다.
모여 있는 관객만 수 만 명.
지금까지 했던 시연회와는 규모 자체가 비교되지 않았다. 가장 컷 던 미국에서 모인 숫자가 4천 명 정도로 들었다. 그런데 여긴 현장에 모인 숫자만 3만여 명이라고 했다. 인구 10억의 중국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제로 출발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마치 약속된 것처럼 참석자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그 목소리에 시험장이 울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 만큼 거센 소리였다.
그렇게 한 시간여의 테스트가 끝나고 참석한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놀랍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 인가.
-대단하다.
찬사가 승호를 향해 쏟아졌다. 승호는 익숙하게 겸손의 말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과찬입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중국의 자율주행차도 대단합니다.
그게 바로 오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저녁 시간.
승호가 기다린 시간이기도 했다.
중국 수도 베이징의 최고급 호텔 에클라 베이징. 그곳의 연회장에 경호원 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뒤.
검은 색 양복을 입은 중국 주석이 나타났다.
이름은 하오란.
중국 헌법까지 바꿔가며 권력욕을 불태우고 있는 남자였다. 과연 얼굴부터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는 바로 승호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이미 미국 대통령을 만나서 일까. 그리 긴장 되지는 않았다.
“반갑습니다. 하오란 입니다.”
“강승호입니다.”
관시.
중국 비즈니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다는 관시를 승호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조심히 하오란을 대했다.
“중국을 구해준 영웅을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니 이루 말 할 수 없이 기쁘군요.”
매그니토 사건을 말하는 것이리라. 승호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정당한 거래를 했을 뿐입니다. 합당한 대가를 받았고요.”
“그래도 중국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지요. 제로 시연회는 아주 인상 깊게 봤습니다. 관련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자리를 좀 옮길 까요?”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장소로 이동한 하오란은 토마스와는 조금 달랐다.
“중국 시장은 거대합니다. 그리고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시연회를 하길 바랐고요.”
“또한 여타의 서방국과는 달리 제 말 한 마디면 당장 내일부터 제로는 중국 시내를 달릴 수 있습니다. 제 말이 곧 법인 세상이니까요.”
자신감에 넘치는 말.
이 역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공산주의 국가 이자 일인독재 국가에 가까운 나라가 중국이다. 북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점점 권력 집중화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중국에서 하오란의 말 한 마디로 안 되는 일은 없다. 승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먼저 미국처럼 중국에도 제로 생산 공장이 하나 있었으면 합니다. 중국에서 팔릴 건 중국에서 생산되어야 한다는 게 내부적인 방침이라.”
그리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다.
“중국에도 공장은 건설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미, 중 무역 전쟁에 대해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승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대충 짐작 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강 대표님은 범인을 뛰어넘는 해킹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시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과찬이십니다.”
“과례는 실례라고 했습니다. 강 대표님과 접촉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하하, 뭐 그렇다고 하죠. 제가 궁금한 건 이겁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혹시 미국을 해킹 할 수도 있겠습니까?”
미국은 중국을.
중국은 미국을.
하오란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고개만 끄덕이시면 바로 내일 제로가 중국 시내를 달릴 수 있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승호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러자 하오란이 손을 내밀며 입 꼬리를 올렸다.
“믿고 있겠습니다.”
꽉 잡은 두 손에서 단단함이 느껴졌다.
***
중국에서 총 일정은 3일.
승호는 빠르게 일정을 마무리 하고 한국을 향했다.
비행시간은 겨우 2시간 남짓.
비행을 마친 승호는 별도의 게이트를 통해 이동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비공식적으로 청와대에서 만남 요청이 있었기 때문 이었다.
승호는 공항을 빠져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서울의 모처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만난 건 국정원장 이었다. 바로 며칠 전 까지 미 대통령에 중국 주석을 만나고 왔다. 국정원장을 만나는데 긴장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승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빠르게 끝냈으면 합니다. 해외 일정이 많아서 좀 피곤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급하게 만나자고 하는 게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연락 했습니다.”
얼굴 표정이 다급해보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승호의 해외 일정.
그게 한국 정부를 자극했다.
-혹시나 해외로 나가려고 알아보는 건가?
-정말 그렇게 된다면······.
-미 대통령에 이어 중국 주석까지?
-우리가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건가.
그런 말들이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그 의견을 종합해 국정원장이 전달했다.
“어떻게 하면 한국에 계속 남겠다는 확답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갑작스런 말에 승호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네?”
“한국 정부는 그럴 수만 있다면 최대한 모든 것을 협조하겠다는 기조를 세웠습니다.”
승호가 픽 웃음을 흘렸다.
“하하, 정말 뭐든지 말입니까?”
국정원장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그는 여전히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네. 무엇이든. 최대한.”
승호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