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93)
탑 코더-193화(193/303)
# 193
모두가 원한다
서울의 한 호텔.
고동만은 전국경제인 연합회에 참가하기 위해 호텔을 찾았다. 한 끼 식사에 30만원이 넘어 가는 요리가 준비되는 곳이었지만 이곳을 찾은 이는 전부 국내 최고의 부호들.
그 부호들이 고동만 근처로 모여 들었다.
“시내 소프트가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통신 관련 회사의 회장이 와서 물었다. 이럴 때 고동만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말은 따로 있으니까.
“상장 할 때도 되었으니까요.”
그러자 건설이 주업인 회사의 사장이 와서 물었다.
“거기 초기 투자 좀 해보려고 하는데 방법이 없겠나?”
고동만은 픽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방법이 있었으면 제가 먼저 참여 했습니다.’
사실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나 뿐인 아들은 회사 내용을 일절 함구했고, 내부 정보를 얻는 게 갈수록 힘들어 지고 있었다.
“하하, 알게 되면 꼭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또 다른 유통 회사의 회장이 와서 물었다.
“이번에 우리도 중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내 소프트 대표와 다리 좀 놓아 줄 수 있나? 원 톡 중국 진출이 허용 된걸 보면 중국 정부와 꽤나 인연이 깊은 것 같아 보이는데.”
“알겠습니다. 만나게 되면 한 번 말을 전해 보겠습니다.”
고동만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그들에게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벌써부터 꽤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을 한 남자.
“하하, 사장님은 좋겠습니다. 시내 소프트라는 든든한 동아줄을 잡고 있으니.”
“서로 돕고 있는 것뿐입니다. 서로 이득이 되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그래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줄이 언제 썩은 줄이 될지 모르니까요.”
금현자동차 부회장 정준구.
아버지 정만식이 심장마비로 병원에 입원한 게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생명 유지 장치에 의지해 그저 숨이 붙어 있는 게 고작이었다. 아직 경영권 승계가 되지 않아 숨을 붙여 놓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고동만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좋은 말씀 참고 하겠습니다.”
그러자 유통 기업 회장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럴게 아니라 이참에 우리 모임에 한 번 부르는 게 어떤가. 직접 얼굴을 보고 도울 게 있으면 서로 도울 겸 말일세. 이미 전경련에 들 자격은 충분하니까.”
그러자 금융 기업 관련 회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긴 그게 좋겠군요. 이제 시내소프트도 우리 모임에 함께 할 정도로 성장 했으니.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너도 나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고동만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저 인간들의 속셈이 뻔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소란 속에서 고동만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다른 곳이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일을 저지를 것 같은 얼굴이야.’
정준구.
벌겋게 충혈 된 눈에는 광기마저 서려 있었다.
‘자업자득인 것을 누구 탓을 하는지. 쯧쯧. 금현 자동차도 이번 세대에 끝나겠어.’
정준구는 또 한 잔의 술을 마시더니 고동만을 향해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이렇게 다들 원하시니, 꼭 이 모임에 한 번 불러 주십시오. 강 대표 얼굴을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으니까요.”
고동만이 훈련 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자리를 마련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 뒤로도 모임은 한 시간 가량 계속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대부분의 기업 수장들이 시내소프트에 관련된 질문을 해왔다. 고동만이 선진의 사장임에도 선진의 행보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
비슷한 시각 청와대 근처 안가.
승호는 뉴스에서만 보던 사람을 마주보고 있었다. 대통령의 복심이라 알려진 정책실장 권오준. 그의 가느다란 안경테 뒤에 자리 잡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승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강승호입니다.”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이제 별 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권오준이 승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정책 실장 권오준입니다.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닿는군요.”
청와대 정책실장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다니. 이제는 그런 일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정책 실장만이 아니라 각국의 정상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승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상장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정하셨습니까?”
“아직 입니다. 여러 군데서 제안이 들어와 검토 중입니다.”
“하하, 그러면 한국에도 기회가 있는 거군요.”
승호는 태도에 담긴 아쉬움을 읽었다. 이런 사람들은 한 마디 말에 천 개의 의미를 담고 있는 법이니까.
“저도 굳이 다른 나라에서 상장해서 일을 번거롭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너무 차이가 나면 기업인으로써 당연히 회사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할 수밖에요. 실장님께서 나라를 위한 결정을 내리듯이.”
“시내소프트가 국내에서 잘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는 것이 곧 나라를 위한 길입니다. 좋은 기업이 많은 나라가 좋은 나라니까요.”
이런 탐색전은 승호의 취향이 아니었다.
“저는 태생이 엔지니어입니다. 신속, 정확 한 걸 좋아합니다.”
그 말에 권오준이 들고 있떤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건 2차 안입니다. 1차 안이 부족하다 하여 준비했습니다.”
“그걸 직원이 아닌 제게 직접 주신다는 건 오늘 여기서 결론을 짓겠다는 뜻입니까?”
권오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라는 대통령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합리적이면서 최고라······.
승호는 그 의미를 단박에 알아 들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제안하는 수준에 맞춰 주시겠다는 뜻입니까?”
정책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승호가 안주머니에서 펜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리고 2차안의 첫 번째 항목인 법인세 감면 부분에 두 줄을 쫙쫙 그으며 새로운 숫자를 써 넣었다.
“그러면 이 부분부터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행동에 권오준의 미간이 꿈틀 거렸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몇 초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하얀 색 종이위에 검은색 글씨가 빠르게 지워 지고 붉은색 글자가 대신 자리를 잡았다. 그때 마다 권오준의 미간이 꿈틀 거렸지만 펜을 움직이는 승호를 막지 못했다.
슥슥.
슥슥.
조용한 안가에서 펜대 굴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
권오준 정책 실장을 만나 타협안이 만들어진 이후 일은 일사 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미 TF 팀까지 구성해 상장 준비를 해왔다. 시내소프트에서 할 일은 거의 마친 것이다. 더구나 최대 한 달이 걸리는 상장심사는 증권거래소의 빠른 일처리로 인해 일주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내소프트, 상장심사 통과.
시가 총액을 고려해 상장할 주식은 총 10억 주.
한 주당 10만원이라는 가격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총 시가 총액 100조.
단일 기업 시가 총액으로 그 위에 선진 전자 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승호가 코스닥을 찾았다. 시내소프트 상장 행사를 위해서였다.
“대표님 입장하십니다.”
경호원들의 삼엄한 경호 속에 승호가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는 한국 증권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해 국무총리,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까지 자리를 하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시내소프트, 상장을 축하드립니다.”
“얼마까지 올라갈지 정말 기대 되는 군요.”
“축하드립니다.”
여러 고위 공직자들의 축하인사를 받으며 상장 행사장 자리에 앉은 게 8시 40분.
20분 후면 주식이 상장되고 일반인들 사이에서 주식이 거래 된다. 그러면 시장이 생각하는 시내소프트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거래 15분 전입니다. 내빈 여러분들께서는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내소프트 대표님께서는 단상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단상에는 골든 벨이 걸려 있었다. 주식 거래가 시작되는 9시를 기점으로 그날 상장하는 대표가 골든 벨을 울리는 것이 일종의 의식이었다.
-시장에서 좋은 가치를 받게 해 달라.
그런 염원이 담겨 있는 의식이었다. 앉아 있던 승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올라갔다. 참석해 있던 정부관계자를 비롯해 거래소 관계자 상장 주관사 관계자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거래 5분 전입니다. 말씀 드린 것처럼 9시에 맞춰서 종을 울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승호가 앞에 설치되어 있는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시간과 상장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제 거래가 시작되면 저기에 적혀 있는 숫자가 시장가로 바뀔 것이다.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거래 10초전입니다. 앞에 놓인 손잡이를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8초전.
-5초전.
-1초전.
그 말에 승호가 앞에 놓인 손잡이를 당겼다.
-땡땡땡땡.
소리와 함께 거래가 시작되었다.
시초가는 10만원.
그러나 그 숫자는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10만 5천원.
-10만 6천원.
-10만 9천원.
-12만원.
한 번도 도박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도박을 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눈앞에 떠 있는 숫자가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 옆에 쓰여 있는 시내소프트 시가 총액 역시 덩달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100조.
-105조.
-110조.
-120조 까지.
너무 큰 단위로 올라가서 인지 실감조차 잘 나지 않았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주식 가격을 보며 사회자가 툭 한 마디를 던졌다.
-하하,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저도 몇 주 사놓는 거였는데 아쉽습니다.
주가는 마치 더 아쉬워하라는 듯이 브레이크 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
역삼 ㈜제로원 본사.
이성욱이 직원들을 독려 하고 있었다.
“최대한 매입하세요. 대표님께서 돈을 아끼지 말라 지시하셨습니다. 시내소프트는 지금 사는 값이 가장 싼 값이다.”
근무하는 직원들이 제로원 법인 계좌로 시내소프트 주식을 시장가에 모조리 사들였다. 그 생각에 다른 개미 투자자들도 동의하는지 매수세는 끝이 없었다.
-12만원 5천원.
시초가인 10만원에서 30%가 오른 13만원이 되면 상한가가 된다. 이성욱은 그때 까지 끊임없이 매수를 지시했다.
오후 1시.
장 마감이 되기 전 시내소프트는 결국 상한가로 장을 마무리했다. 수 백 억 규모가 아닌 100조원 대 시가 총액을 가진 기업이 상한가로 장을 마무리 한다는 건 주식 시장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성욱이 직원들을 보며 지시했다.
“내일도 최대한 매수 합니다. 총 2500억을 쏟아 부울 겁니다.”
그게 승호의 지시였기에.
그리고 그런 승호의 지시가 맞아 떨어지기라도 하듯 다음날도 시내소프트는 상승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튿날.
시가 총액이 150조를 넘어섰다. 주가는 그리고도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명실상부 재계 2위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