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95)
탑 코더-195화(195/303)
ⓒ (195)
청와대.
그곳에서 근무하는 참모 중 한 명인 정책실장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제로 사고 건 어떻게 됐어?”
“현재 부산 경찰서에서 확인하고 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특혜다 뭐다 시비에 휘말리고 있는데 갑자기 사고라니 이게 무슨. 쯧쯧.”
“교통사고 전문가 말을 빌리자면 사고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한데··· 그래도 10대 0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결국 제로에도 과실이 있다는 뜻입니다.”
“시내소프트에서는 뭐라고 하나?”
“당연히 자신들이 100% 책임을 진다고 합니다. 사고 운전자에게도 적당한 보상을 하고요. 그러나 분위기로 봐서는 10대 0을 자신하는 분위기입니다.”
정책 실장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사고 책임이야 당연한 일이고, 10대 0? 교통사고에 10대 0이라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앞으로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 되느냐에 따라서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데 아직도 그런 미몽에 빠져있으니.”
그러자 정책실장을 보좌하는 비서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까지······.”
“선진 배터리 터졌을 때 기억 안나나? 선진도 바로 고개를 숙이고 전량 회수를 결정해서 겨우 민심을 잡았네. 더구나 시내소프트는 선진처럼 역사가 있는 기업도 아니잖아.”
“원 톡과 원 서치 서비스도 성장세에 있습니다. 실장님 말씀처럼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비서관의 말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회의실을 들어온 참모 한 명이 소식을 전했다.
“시내소프트 주가가 폭락하고 있습니다. 벌써 장중 20%가 넘게 떨어졌습니다.
-12만 5000원.
상장 했을 때의 가격과 비슷해졌다. 정책실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물론 내 말이 틀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선진과 시내소프트의 이 둘의 차이가 뭔지 아나?”
“···기반 말입니까?”
정책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계, 언론, 관가, 재계 등등 수많은 기업들이 선진과 관계를 맺고 한 배를 탄 채 움직이고 있어. 그래서 타격을 입어도 서포트 해주는 곳이 많지. 역사가 마련 해준 기반.”
비서관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렇지 않아도 회의실에 설치해둔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계 최초 5단계 자율주행차로 알려져 있는 제로의 사고 소식입니다. 관련해서 자율주행차 관련 전문가 최창수 박사님 모셨습니다.
-네. 최창수 박사입니다.
-박사님께서는 꾸준히 자율주행차는 시기상조임을 주장해 오셨는데요. 시내소프트가 기적의 시연회를 보일 때 조차도 아직 상용화는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오늘 같은 사건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아무리 고난이도의 테스트를 통과 한다고 해도 실제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측 불허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위험 하다는 말씀을 드렸던 거고요.
-테스트와 실제 환경은 다르다. 이 말씀이십니까?
-네. 포트의 애니웨어도 실 도로에서 수 천 시간의 테스트를 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물론 제로가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지만 후발 주자인 만큼 실 도로 환경에서 테스트가 부족한건 사실이죠.
-일각에서는 제로 택시를 통해 테스트가 진행 되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래 봤자 수 개 월입니다. 눈이 오고 비가 내리고, 우박이 떨어지며, 천둥이 치는 그 수많은 기상환경에서 일반 운전자들이 어떤 운전 패턴을 보이는지 전부 테스트 해보지는 못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테스트가 중요하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한 언론에서 시작된 방송은 전파를 타고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제로 출시에 반대 했던 지식인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것이다. 정채실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기반이 없으면 저렇게 되는 법이야.”
특종에 신이 난 언론이 가열 차게 시내소프트를 매장시키고 있었다.
***
부산의 한 호텔에서 로그 검토를 마친 승호에게 비서가 다가왔다.
“대표님, 언론사 한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건 관련 내용 입장 표명이라면 한 번에 하겠다고 하세요.”
“그건 그렇게 공지 했습니다. 이 건은 거래를 하자는 내용입니다.”
승호의 목소리가 절로 낮아졌다.
“거래?”
“기사 수위를 낮춰 줄 테니 자사에 광고를 실어 들라고 합니다. 이를 테면 ‘자율 주행 차의 위기’가 아니라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기사를 바꿔 준다고 합니다.”
그 말에 승호가 코웃음을 쳤다.
“참 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지금 언론의 보도 때문에 회사 주가가 하한가 직전까지 왔습니다.”
그러자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눈을 번쩍 떴다.
“기회군요.”
“네?”
“시내소프트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
“대표님. 지금 상황이 그리.”
“잠시 만요.”
사고가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잠시 잊고 있었다. 로그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 이성욱에게 지시했다.
-시내소프트 주식 최대한 매입하세요.
그 한 마디에 이성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알겠다.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간 승호의 투자 지시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마치고온 승호가 비서에게 물었다.
“그래서 현재 경찰은 뭐라고 합니까?”
“경찰에서는 서로 조용히 합의 보는 것을 추천했습니다. 사고 자체가 가벼운 충돌사고 여서요.”
“상대 운전자는 요?”
“목과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입니다.”
“흐음······.”
“저희 쪽에서 파견한 교통사고 전문가들도 6대 4정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4가 시내소프트고요. 그쪽에서 정확히 깜박이를 켜고 들어왔고, 제로도 현행법상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한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상대사고 차량은 어디 있습니까?”
“현재 견인 돼서 카센터에 있을 겁니다. 우리 차량은 제로 정비소에 들어가 있고요.”
승호가 엄지로 미간을 긁적거렸다.
‘벌써 몇 번을 살펴봤다. 로그는 아무 문제가 없어. 제로는 정상적으로 기동했고. 분명 사고를 회피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가속해 사고를 냈다. 왜 그랬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로그만 가지고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일단 교통사고 전문가팀에게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해서 보고 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제로가 녹화한 영상 분석 역시 최대한 빨리 끝내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상대 운전자가 입원한 병원이 어디라고요?”
***
허인식.
그는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거친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짜장면 배달부터 시작해 노가다 그리고 택시 운전까지. 그러다 얼마 전 제안을 하나 받았다.
-일하나 해주면 오백을 주겠다.
오백이면 자신이 두 달을 일해야 벌 수 있을까 말까 한 돈이었다. 더구나 일 자체도 아주 간단했다. 물론 사건이 이렇게 까지 커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거대 그룹 회장까지 날 찾아오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야.’
허인식이 아주 뻔뻔한 얼굴로 목청을 높였다.
“진짜 목뼈가 돌아간 것 같다니까요. 제대로 움직이질 않아요. 움직이지가.”
“사고 충격으로 경추 인대가 조금 늘어났을 수는 있습니다.”
담담한 의사의 반응에도 허인식은 목을 잡고 있는 손을 떼지 않았다.
“의사 양반, 인대가 조금 늘어나다니! 어디 한, 두 군데 끊어진 것 같다니까.”
승호가 나타나자 보란 듯이 더 과장된 액션을 취했다.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운전자가 입원한 곳은 부산의 한 병원 1인실.
언론사의 과한 취재열기를 막고,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그곳에 승호와 환자 단 둘만이 남았다.
“안녕하십니까. 시내소프트 강승호입니다. 먼저 이번 사고 관련해서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허인식이 목에 찬 깁스를 가리켰다.
“이게 지금 괜찮아 보입니까? 합의 하러 찾아왔으면 소용없습니다. 절대 합의할 생각이 없으니까. 언론에도 이 사실을 다 퍼트릴 테니까. 단단히 각오하쇼.”
허인식은 택시운전자.
제로 택시 덕분에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중이었다. 승호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승호가 눈을 빛냈다. 병원으로 오는 차 안에서 비서에게 들었던 말 덕분이었다.
-제로가 보내온 영상 중에 이상한 점이 발견 되었습니다. 사고 차량이 제로가 행사장을 떠나는 순간부터 쫓아 온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쫓아와?
-네. 행사장에서 한 번, 중간 길목에서 또 한 번. 그리고 사고 발생. 3호 차량이 움직이는 중간 중간 마다 가해 차량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가는 길이 같았을 확률은?
-그건 가해차량이 어디로 가는지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없었다. 이럴 때 확실히 하려면 객관적인 증거를 잡는 게 중요하다. 승호는 슬며시 허인식의 옆에 앉았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을 드려보죠. 어떻게 보상을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허인식이 눈을 빛냈다. 탐욕이라는 두 글자가 두 눈에 나타났다.
“흠흠··· 뭐, 꼭 보상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사실 교통사고라는 게 대부분 쌍방 과실이고. 그쪽이 전방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니까.”
“하하, 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목이 타네요. 잠시 음료 한잔 마셔도 되겠습니까?”
보상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인지 허인식의 태도가 조금은 호의적으로 변했다.
“네. 뭐 냉장고에 있습니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던 승호가 픽하고 침대가 있는 쪽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한 손으로 머리맡에 놓아둔 핸드폰을 짚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0과 1의 세계.
승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손에 살짝 힘을 주어 핸드폰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불과 몇 초도 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
드르륵.
핸드폰이 진동하며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그리고 승호의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문자 내용.
‘010-4188-xxxx. 합의 절대 안 됨.’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운 승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변화된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한 허인식이 승호를 노려 보았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승호도 마주 허인식을 노려보았다. 더 이상 장단을 맞춰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합의.
지금 이 상황에서 합의는 자신 밖에 없다. 허인식이 다른 곳에서 사고를 쳐서 또 다른 합의를 기다리고 있다? 승호는 좀 더 집중해 백그라운드에서 돌고 있는 문자 앱의 내용을 살폈다. 그러자 그 이전 내용들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3 호차. 가벼운 충돌 500, 대인 1000.’
절로 욕지거리가 터져 나오는 내용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네, 아니 뭐?”
“010-4188-xxxx. 합의 절대 안 됨.”
“어디서 지금 헛소리를.”
“누굽니까?”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남의 핸드폰 바닥에 떨어트렸으면 사과부터 하는 게 정상 인 것 같소만.”
그러나 승호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얼마 받기로 했습니까?”
그러자 허인식이 움찔 거리며 목울 대를 꿀렁거렸다.
“헛소리 하지 말 라고 했지.”
“충돌 500, 대인 1000.”
허인식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승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사건은 언론을 비롯해, 청와대, 검찰, 국회 및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사건입니다. 010-4188-xxxx. 그들에게 사건 의뢰를 하면 그 번호 주인이 누군지 10분이면 알아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한 번 해볼까요?”
허인식도 험난한 삶을 살아왔다. 지금 발을 빼면 뒤는 낭떠러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었다.
“지금 협박하냐? 시내소프트 회장이 협박하는 거냐고. 어디 두고 보자. 어떻게 되는지.”
“협박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될지는 이제 정해졌습니다.”
승호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다. 홀로 남은 허인식이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잔뜩 서려 있었다.
< 제로 정식 출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