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97)
탑 코더-197화(197/303)
ⓒ (197)
장길우.
그는 금현에서 정준구의 오른 팔로만 벌써 4년째 일하고 있었다. 그가 전임 비서에게 인수인계를 받을 때 들었던 한 문장.
-노예가 되더라도 개가 되지는 마라.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이거였다.
노예는 사람이고, 개는 짐승이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
그 경계를 넘어서지 말라는 뜻이었다. 장길우는 지금 그 기로에 서 있었다.
달칵.
달칵.
늦은 시간 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었다.
-제로, 사고 현장 재조사 중.
-3호 차량 사고.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다?
-의도된 사고인가. 우연한 사고인가.
클릭할 때 마다 새로운 뉴스가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다행이 아직 자신의 이름이나 회사는 거론 되고 있지 않았다. 장길우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 거렸다.
“내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절대, 절대 알 수 없어······.”
전화번호는 발신자 표시 제한을 사용했다. 돈은 대포통장을 이용했다. 일 진행 상태는 언론을 통해 진행했다.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것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장길우는 참을 수 없는 불안함에 한 번 더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뉴스를 클릭해 보았다.
달칵.
마우스를 누르는 순간.
-조사 결과 부산 최대 심부름센터 사주로 드러나.
-제로를 시기한 배후는 누구인가.
-호남이파, 대대적인 수사 착수.
방금 전 뉴스보다 더 많은 정보가 공개 되었다.
심부름 센터.
호남이파.
언론에 나오는 단어들이 장길우의 불안감을 증폭 시켰다.
“절대··· 절대······.”
같은 말을 중얼 거리며 손톱을 깨물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손길이 현저히 느려졌다. 혹여 ‘금현’ 이나 ‘장길우’ 또는 ‘비서’라는 단어가 나올까봐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장길우의 핸드폰이
드르륵.
진동음을 토했다.
드르륵.
드르륵.
계속 진동했지만 장길우는 받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연락했다.
드르륵.
드르륵.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받아야 말아야 할까.
그러나 둘 중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장길우가 떨리는 손길로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이내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부산지방경찰청 유상철 형사입니다.
툭.
들고 있던 핸드폰을 놓칠 수밖에 없는 목소리였다.
***
아침 9시.
승호가 비서에게 들어오라는 전화를 건 시간이었다. 속보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던 비서가 황급히 호텔 방안으로 들어섰다.
“대표님. 뉴스 확인 하셨습니까?”
승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가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설마 대표님이······.”
“순리대로 흘러가게 만든 것 뿐 입니다.”
승호는 그 이상의 말은 해주지 않았다.
“사고 분석은 끝났습니까?”
비서가 준비해 두었던 서류를 꺼내들었다. 밤새도록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만들어낸 보고서였다. 서류를 건넨 비서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해당 사고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제로의 행동이라고 합니다. 상대 차량이 깜박이를 켜고 차선 변경을 시도하는 순간 속도를 줄이는 것이 정상인데 순간적으로 가속을 했으니까요. 마치 사고를 내려는 듯이.”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을 해보라는 뜻이었다.
“그게 언론에서도 제로를 이 잡듯 잡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론 만 간단히.”
“두 번째로 이상한 점은 제로와 사고 차량 블랙박스에서 에서 동시에 RPM 올라가는 소리가 녹음되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승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비서가 말을 이었다.
“우우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기어를 중립으로 놓은 채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았을 때 나는 소리라고 하는데 주변 소음과 섞여 있어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승호가 한 차례 턱을 문지르며 생수를 한 모금 마셨다. 밤사이 작업을 마치고 제로 로그를 한 차례 더 살펴보았다.
‘제로는 분명 정상적으로 활동을 했어. 그리고 긴급 경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건 분명 뭔가 상황이 발생 할 것 같아서 미리 대비했다는 신호야.’
그 점이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자동차는 깜빡이를 켜고, 차선 변경을 시도했다. 거기에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도 제로는 긴급 경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주변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어 제로가 끼어들었다는 뜻 밖에 되지 않아.’
밤새 고민해 내린 결론은 상대 차량을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대 차량이 입고되어 있는 카센터로 갑시다.”
“직접 가시겠습니까?”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율주행차가 아니더라도 요즘 차량에는 수많은 전자 장치들이 부착된다. 거기에 단서가 있을 것 같았다.
카센터로 이동하는 길.
승호는 비서가 건네준 간추린 뉴스를 살펴보았다.
-의혹투성이 제로 사고. 사고자 입건 조사 중.
-제로의 첫 번째 사고. 인재였나.
많은 언론들이 간밤에 일어난 일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비서가 아침 대용으로 준비한 샌드위치를 꺼내며 간단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어젯밤 부산 경찰에서 허인식을 입건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바로 정식 수사에 착수 했다고 하는군요. 더 이상의 정보는 수집이 힘든 상황입니다.”
잠시 뜸을 들인 비서가 말을 이었다.
“이건 소문인데 부산의 한 심부름센터에서 허인식에게 사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밤에 심부름센터를 급습해 증거를 수집. 심부름센터 직원과 허인식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은근한 눈으로 승호를 보았다.
“대표님이라면 더 많은 정보에 접근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확인해 보죠.”
승호의 눈은 여전히 뉴스를 향해 있었다.
-특종 탐사보도. 제로 사건의 배후에 금현이 있다.
-부산 경찰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간밤 금현의 비서 중 한 명을 참고인 조사차 소환 통보를 했다고 한다. 금현은 자율주행차로 제로와 애증의 관계가 있는 곳으로······.
그 뉴스는 딱 하나 밖에 없었다. 승호의 관심사를 알아차린 비서가 말했다.
“팩트 TV라고 인터넷 언론사인데 재밌는 기사를 하나 올려서 추가 해 놨습니다.”
“이 정도면 특종감인데 다른 언론사에서는 일절 언급이 없군요.”
“금현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다룰 수는 없을 테니까요.”
“이쪽 광고 한 번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튜브넷 PD는 어떻게 됐습니까?”
“이미 카센터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빨리 갑시다. 오늘 안에 일을 마무리 하는 게 회사에도 좋을 테니까.”
비서가 자신들이 타고 있는 제로의 설정을 움직여 최고 성능을 선택했다. 전기는 그 만큼 빠르게 소모 되었지만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다.
부산의 한 카센터.
부르릉.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고, 승호는 운전대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시내소프트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PD가 카메라에 담았다.
“저걸 왜 찍으라고 하는지 혹시 아십니까?”
그 질문에 비서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알지 못한다. 카센터에 도착해서 한 일이라고는 시동 온, 오프 반복. 그러면서 자동차 주변 살피기. 운전대 잡기.
마치 의사가 환자의 배에 청진기를 대는 것처럼 자동차에 손을 대며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화면을 찍고 있던 PD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 이해가 안 되네······.”
그런 의문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에 임한 지도 벌써 한 시간 째.
슬슬 지겨워 지려 할 때였다.
갑자기 굉음이 들리며 자동차 바퀴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수리를 위해 자동차 바퀴가 들려있지 않았다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정비사들을 비롯해 비서진, 영상을 찍고 있던 PD 까지 차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뭐, 뭡니까.”
정비사들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승호를 보며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이 차의 시동은 다시 꺼져 있었다.
“정비소에서 기어를 드라이브에 놓으시면 안 됩니다.”
승호가 차 밖으로 나오며 비서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비서. 이거 차대 번호 확인해서 차 종류, 특성, 년도, 공장이 같은 놈들로 바로 섭외 좀 해주세요.”
갑작스런 지시에도 비서는 당황하지 않고, 바로 지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승호는 PD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 영상의 제목은
‘제로 급발진을 막아서다.’
입니다.”
PD는 비서가 아니었다. 바로 질문을 던졌다.
“저 차량이 급발진 하려는 걸 제로가 막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서 첫 사고가 난 거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PD 여서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갔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PD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보기에 승호가 한 일이라고는 시동을 몇 번 걸어본 것 밖에 없었다.
“확인이라니······.”
승호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그 결과물이 방금 전 나타난 것이고요.”
말을 마친 승호가 다시 비서를 보며 지시했다.
“그리고 자동차 관련 전문가들도 섭외해주세요. 아주 크게 판을 벌리려고 하니까.”
핸드폰을 잡은 채 이곳저곳 연락을 취하던 비서가 그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서울 강남 선진전자 본사.
완벽한 방음과 도, 감청 장치가 절대 허용되지 않는 장소가 바로 회장 김희건의 집무실이었다. 그곳에서 은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 놈 비서가 맞다는 말이군요.”
“네. 정준구 회장은 모르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 모양입니다. 언론 쪽에는 최대한 기사 자제 요청이 들어가 있는 상태고요.”
김희건이 까칠하게 돋아난 턱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심부름센터에서 부산 경찰청에 자수 의사를 밝히고, 관련 자료를 전부 보내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의뢰를 한 것이 금현 정준구 회장의 비서다. 팀장님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김희건이 질문은 던진 남자는 선진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정체를 알 고 있는 정보팀.
이런 일이라면 잔뼈가 굵은 남자였다.
“아마 금현에서 제로의 출시를 못 마땅하게 여겨 작업을 하려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걸 알아챈 강 대표께서 그 이후의 일을 만들어 내신 걸 테고요.”
팀장이라 불린 남자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 이후의 일을 만들어낸 건 자체 정보원을 두고 있거나 국정원이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김희건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국정원?”
팀장이라 불린 남자도 전직 국정원 출신이었다.
“자국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일 처리를 도와주고 상부상조하는 일이 왕왕 있었습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요.”
“흐음······.”
“물론 강 대표가 해킹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직접 해결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루 사이에 이 정도 일을 처리하려면 얼마나 뛰어난 해킹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솔직히 전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저 정도 실력이면··· 강 대표가 마음먹는 순간 선진의 반도체 기밀은 다 털릴 겁니다.”
그 말에 김희건이 마른 침을 삼켰다. 자신이 생각해도 후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절대 그렇게 되어 서는 안 된다. 자사 SA 팀에 이미 한 번 문의를 해 보았다. 그쪽에서도 그건 불가능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전자.
“확인된 바가 있습니까?”
“국정원에서도 강승호 관련이라면 다들 입을 다 무는 통에 아직 확인하진 못했습니다. 그와 관련된 건 전부 탑 시크릿으로 묶여 있다. 그 정도만 알아 낼 수 있었습니다.”
김희건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알겠습니다. 추가 정보가 있으면 바로 보고해주세요.”
그 말에 팀장이 나가고 바로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장님, 이거 한 번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비서가 내민 건 튜브넷의 시내소프트 채널.
제목 : 제로 급발진을 막아서다.
그 영상에는 어제 있었던 사고가 아주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 제로 정식 출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