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
탑 코더-2화(2/303)
# 2
마법 같은 능력
────────────────승호는 며칠이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마치 우주 속을 유영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꿈속에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을 만났고, 고아원을 나와 시내 소프트에 입사 했던 순간들을 차례로 경험했다.
시내 소프트 입사.
25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돈이 없어 전문대도 가지 못하고,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며 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녔다.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은 4년제 대학을 나오지 않아 원서조차 낼 수 없었다. 중소기업이나 소기업에서도 고아라는 사실에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그러나 시내 소프트는 달랐다.
고아라는 사실 덕분에 합격했다.
시내 소프트의 사장 황호근도 고아였다. 실력은 미흡했으나 열의를 높게 사 주었다. 그게 고마워 더 열심히 했다. 그렇다고 열정 페이를 지급한 것 도 아니었다. 업계 신입 평균 임금을 지급해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친절히 가르쳐 주셨다.
그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마치 누군가 눈앞에서 사진을 넘기는 느낌이었다. 승호는 이런 게 죽는 건가 싶었다. 감은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만 누군가가 귀찮게 굴었다. 대답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귀 옆에서 앵앵 거리는 소리가 거슬려서 잠들 수가 없었다. 승호는 할 수 없이 빛이 보이는 쪽으로 걸어갔다.
승호의 병상 옆에서 의료진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깨어나야 할 시간을 훨씬 지났는데······.”
“혹시 수술이 잘못된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어. 분명 기증자와 완벽히 일치하는 걸 확인 한 후에 진행한 걸세.”
“하긴 엑스레이나 CT, MRI에서 전부 정상으로 나오는데, 왜 깨어나질 못하는 거지.”
“조금 만 더 기다려 보죠.”
“흐음······.”
대화를 나누던 의료진이 몸을 돌렸다.
순간.
“여기가 어딘가요······.”
막 잠에서 깨어난 목소리.
“강승호씨 정신이 드십니까?”
끄덕.
승호의 반응에 의료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목소리는 한층 명료해졌다.
“병원 인가요?”
“네. 한 달 만에 깨어나신 겁니다.”
승호는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제 눈이랑 팔은 어떻게······.”
“수술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재활 치료만 열심히 받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을 겁니다.”
“감사··· 합니다.”
승호는 무의식적으로 왼쪽 눈을 감아 보았다. 선명하진 않지만 천장의 격자무늬가 시야로 들어왔다. 눈에 이상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오른 팔을 슬쩍 들어보았다.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었지만 손가락이 꿈틀 거리는 것이 의지대로 팔이 움직였다.
“회복에 최소한 석 달 이상이 걸릴 겁니다. 의식은 완전히 회복 된 것 같군요. 따로 불편 하신 사항이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안정을 취하세요. 눈과 팔은 이상 없으니 걱정 마시고요. 의식이 회복 되었으니 이제 빠르게 회복 될 겁니다.”
“감사 합니다.”
승호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
승호가 눈을 뜨고 일주일 뒤.
몸은 빠른 속도로 회복 되었다. 일주일 만에 손을 움직이고, TV를 보는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승호의 회복 속도에 의사들이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승호 만 큼 놀라지는 않았다.
01100000101010000100001101000111.
탁자위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만지자마자.
눈앞에 0과1로 된 숫자 나타났다.
정확히는 숫자들이 핸드폰 내부를 돌아다녔다. 뿐만 아니라 그 숫자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해석이 가능했다.
enum class MultiViewResult{
TooLow = -1,
GoldLock = 0,
}
이렇게 디 컴파일이 되어 코드 레벨에서도 보였고, 동시에 코드의 의미도 떠올랐다.
“enum 타입을 사용하여 상수 형 변수를 객체화 하여 관리 할 수 있다. 객체 지향 언어인 C++를 객체 지향 언어 답게 사용하는 것이야 말로 그 프로그래밍 언어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벌써 수 번째 경험하는 것이지만 익숙지 않았다. C++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 고 있었다. 그러나 학원에서 이름만 들어 봤을 뿐이지 실제로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마치 잘 알고 있는 언어인 양 관련 내용이 머릿속에서 불쑥 튀어 나왔다.
111011000111111111111100001111.
숫자들은 끊임없이 핸드폰 내부를 유영했다.
그러다 손을 떼면.
“보이지 않는다······.”
벌써 일주일 동안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의사에게 슬쩍 물어 본적도 있었다.
-이상한 글자들이 보입니다.
-아직 회복 기간 중이라 그럴 수 있습니다. 더구나 강승호씨는 다른 이의 각막을 이식 받았습니다. 안정기가 지나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면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지금은 지켜봐야 할 단계입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을 뿐이었다.
“신기 한 건 오른 손으로 만져야 보인다는 거야.”
승호는 다시 한 번 시험하기 위해 핸드폰을 왼손으로 만져 보았다. 이번에는 아무런 숫자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오른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자.
011101010111001111110001110000001.
0과 1로 이루어진 문자열이 핸드폰 내부를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더구나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떠오르는 이 지식들은 도대체······.”
승호가 살짝 눈을 감았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프로그래밍 관련된 수많은 지식들이 떠다녔다. 그 중 한 가지를 조용히 읊조려 보았다.
“포트의 검색은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이란 논문 검색 방법과 유사하다. 해당 논문을 얼마나 인용하고 있는지에 따라 논문의 중요도가 높아지듯이 해당 웹 페이지가 다른 웹페이지에 얼마나 많이 링크 되어 있느냐에 따라 웹 페이지의 중요도는 올라가고, 검색 우선순위에 놓인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벌써 몇 번이나 확인해 보았지만 여전히 어색하기만 했다. 혼란 을 느끼며 승호는 감았던 눈을 떴다.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러나 대답해 줄 사람이 없었다.
사고가 난 후 천재가 되었다.
뉴스에 나오는 그런 신기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승호가 정신없이 자신의 능력을 살피는 사이 누군가 병실로 들어섰다.
“승호야, 몸은 좀 괜찮냐?”
귀밑머리가 희끗해진 남자.
시내 소프트의 사장 황호근이었다. 그는 들고 온 음료수를 탁자 한 편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승호의 몸을 살폈다. 그러더니 깁스가 되어 있는 오른 팔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거 오른 팔은 진짜 어쩌냐··· 정말 잘 회복 되고 있는 거 맞지?”
“네. 의사 선생님도 지금 까지는 별 문제 없다고 하세요.”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몸은 좀 어때?”
“어제 보다 더 좋아요. 이 상태면 일주일 후에 퇴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도 이 속도면 얼마 뒤 퇴원해도 된다고 하셨고.”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퇴원하면 바로 출근 하겠습니다. 어서 일해서 병원비도 갚아야하고.”
“아니다. 몸 회복 할 때 까지 출근은 하지 마. 그리고 병원비는 회사 비용으로 처리했다. 안 갚아도 돼.”
승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번에도 신세를 갚지는 못할 망 정 또 다시 폐를 끼쳤다. 입사 후 6개월 쯤 부터 자신의 거취에 대해 말이 나왔었다.
솔루션 팀.
데브 옵스 팀.
기술지원팀.
어느 팀에서도 자신과 함께 일하려 하지 않았다. 실력은 형편없고, 능력은 바닥이지만 열정만은 가득한 승호는 그저 부담스런 존재일 뿐이었다. 그런 승호를 독려해 일을 시킨 건 전부 황호근의 뜻이었다.
“매번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퇴근하다가 사고 당한 게 네 탓은 아니잖아.”
“그것도 그렇고 회사 일도 그렇고······.”
“아직 1년 밖에 안 된 신입이다. 실력을 갈고 닦을 시기야. 못하는 건 충분히 이해 받을 수 있는 영역이야.”
황호근의 따뜻한 위로에 승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만약 아버지가 있다면 저렇게 말씀해 주셨을까. 만나보지 못했으니 알 수 없었다.
“병원에 누워서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학원을 다닌 게 1년, 입사 한 지도 벌써 1년. 이 일을 시작한 지 2년이나 지났습니다.”
“대기만성 하는 친구들도 많아. 승호 너는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결국 잘 될 거다. 원래 공부라는 게 그래. 정체기가 있다가 어느 순간 점프 하는 거야.”
승호는 씁쓸함에 입맛을 다셨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앞으로 1년 뒤에도 계속 정체되어 있다면 이 길은 제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폐만 끼칠 수는 없으니까요.”
“신입을 뽑으면 투자하는 기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네가 정 개발자의 길이 맞지 않는다면, 영업 쪽으로 직무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몸 회복하는 데나 신경 써.”
이렇게 까지 자신을 생각해 주는 황호근이 너무 고마웠다. 울컥하는 마음이 눈 까지 치고 올라왔다. 가슴이 먹먹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우리 회사 모토가 가족 같은 회사다. 가족이 뭐냐. 다치면 간호해주고,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아니냐?”
결국 승호의 눈동자에서 또르르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다쳤다고 버리고, 쓸모없다고 버리면 그게 가족이냐. 그냥 족 같은 거지.”
황호근은 두 팔을 벌려 승호를 안아 주었다. 승호는 그 품에서 그간의 설움을 조금이나마 씻어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