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03)
탑 코더-203화(203/303)
ⓒ (203)
주주총회가 끝나고, 승호는 금현의 대회의실로 임원들을 불러 모았다. 아직 대표 이사 임기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떠오르는 해를 거부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거의.
그건 즉 자리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뜻이었다. 임원들이 자리에 앉고 난 후 천천히 나타난 승호는 시작부터 폭탄을 터트렸다.
“여러분들이 전해주세요. 이 자리에 오시지 않은 분들은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고, 개미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시내소프트 사건에 조금이라도 개입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조용히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가시면 됩니다. 괜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가, 나중에 밝혀지면 옷 벗고 교도소로 가게 될 테니까요.”
폭탄 발언의 연속.
눈알 굴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마른침을 삼켰다. 침묵을 이기지 못한 2명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금현 자동차에 뼈를 묻겠다. 하시는 분들도 나가주세요. 금현 자동차는 오늘 부로 끝입니다. 내일부터 이곳은 제로 모터스가 될 겁니다.”
그러자 한 임원이 입을 열었다.
“하하, 사명이 참 좋습니다. 제로 모터스. 전 그곳에 뼈를 묻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고객 경험 팀 이중기 이사입니다.”
“제가 발언권을 드린 기억이 없습니다만. 아직 제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일어나서 나가주세요.”
당황한 이중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승호를 보았다.
‘아부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
이중기는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승호가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일어나셔서 나가시면 된다고요.”
“이··· 이이······.”
“그 뒷말. 잘 생각해서 말하세요.”
승호의 경고에 이중기는 더 이상 입을 떼지 못했다. 그제야 자리에 앉아 있는 임원들은 알 수 있었다.
‘피바람이 분다.’
이번 인수로 자신들은 파리보다 못한 목숨이 되었다. 지금부터 어떻게 처세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배의 선원이 될지. 침몰하는 배와 함께 가라앉을 지가 결정 되는 것이다.
“좀 정리가 되었으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가겠습니다.”
짧은 시간에 상대를 굴복시키는데 공포만한 것이 없었다. 직장인에게 가장 큰 공포는 직장을 잃는 것.
승호는 그걸 무기로 임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렇게 까지 해서 임원들을 사로잡은 이유는 속전속결로 회사를 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앞으로 제로 모터스는 자율주행 자동차 생산의 전초 기지가 될 겁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제로는 현재 선진 자동차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신청해도 출고까지 1년이나 걸릴 만큼 생산량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조용한 한 가운데 승호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생산량을 급격하게 늘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제로 모터스가 그 뒤를 받쳐줘야 합니다. 앞으로 자율주행차 수요는 폭증할 일 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승호가 준비한 건 채찍만이 아니었다. 말을 움직이는데 당근은 필수였다.
“즉 여러분들이 하실 일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일이 많다는 것은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말. 그러나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시내소프트의 비전과 맞지 않는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을 겁니다. 그러면 좀 더 자세한 설명은 PPT를 보며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승호의 말이 끝나고, 승호의 옆 자리에 앉아 있던 황호근이 중장기 계획에 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미 이런 상황을 가정 하고, 전부 준비해둔 자료였다. 황호근은 열과 성을 다해 설명을 해나갔다.
금현 자동차 임원.
황호근이 이끌던 시내소프트는 금현 자동차 부장에게도 굽실 거려야 했다.
-X-ONE 한 번 사용해 보시면 느끼실 겁니다. 얼마나 대단하지.
-가세요.
-국내 최고의 검색 솔루션입니다.
-그냥 가시라니까요.
언제나 문전 박대만을 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금현 자동차의 별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진짜 이런 일이 일어 나다니.’
설명을 하고 있으면서도 잘 믿기지가 않았다. 꿈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 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정준구가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다. 앉아 있던 임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정준구를 향했다. 승호도 물론 그를 보고 있었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정준구가 승호의 앞에 섰다.
“남의 회사에서 이게 무슨 짓거리 입니까?”
앉아 있던 승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호의 덩치도 작은 편은 아니었다. 두 덩치가 서로를 마주보며 섰다. 승호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전 대표이사님. 다음 주부터 대표이사 임기를 시작하게 된 강승호 입니다. 혹시 인수인계 사항이 있어 찾아오신 겁니까? 하하. 그러면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인수인계 따위는 필요 없어서요.”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정준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뭔 개소리야!”
“개소리라니요. 그리고 여기 회의실에는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경호원. 경호원!”
“여기가 어딘지 알고 까불어.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여기 금현 자동차야. 내 회사라고.”
“주주총회 결과 못 받으셨습니까? 이제부터 아닙니다.”
“푸하하하 뭐? 아냐?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미친 건 정준구 당신이야. 최 비서.”
그러자 옆에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서류 뭉치를 들고 왔다. 승호가 그 서류 뭉치를 정준구에게 내밀었다.
“여기 제가 제로를 개발할 당시 금현에서 제로 기술을 탐내고 훔쳐 가려 했던 증거입니다. 이게 검찰 쪽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성난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준구가 떨리는 눈동자로 물었다.
“그, 그게 증거라고? 아, 아까부터 자꾸 개소리만 하는데.”
“하하, 사실 농담이었습니다.”
그러자 놀림 당했다고 생각한 정준구가 와락 승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완력이나 기술 그 무엇도 승호의 상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제풀에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검찰 쪽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가 아니라 이미 넘겼거든요.”
마치 그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고 수사관들이 일제히 들이닥쳤다. 그러더니 정준구 앞까지 다가와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미란다 원칙에 따라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사관이 설명을 이어나갔으나 완전히 넋이 나간 정준구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
[속보] 시내소프트, 금현 무혈입성. [속보] 국민연금, 금현 인수 합병 안 찬성. [속보] 필로스, 국민연금, 시내소프트. 연합 승리. [단독] 금현 자동차 인수 합병까지. 막전 막후 7일간의 이야기.주주총회가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뉴스였다.
종로.
금현 자동차 본사 빌딩 앞에는 기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있었다.
“금현 자동차가 시내소프트에 인수되다니. x발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네.”
“설마, 설마 했는데. 그럼 이제 금현 자동차 계열사들이랑 협력사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계열사는 각자 도생의 길을 가야지. 옛날 대우처럼. 그리고 협력사들이야 뭐. 주인 바뀌었다고 달라 질 게 있나. 오히려 좋을 수도 있지.”
“좋다고?”
“금현 갑 질이 얼마나 심했냐. 시내소프트는 회사 이미지도 있으니까. 그렇게 까지는 하지 못하겠지.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재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는 거야.”
“하긴 이제 선진이 1위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르겠어.”
“당연하지. 자율 주행 자동차 제한 지역이 풀릴 때 마다 제로가 얼마나 팔리는지 모르냐? 스마트 폰이 필 수 듯이 이제 자율주행차가 필수 인 시대가 되겠지. 거기에 엔진S에 들어가는 인공지능도 시내소프트 거잖아.”
대화를 나누던 기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본사 정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주주총회가 끝난 지 언젠데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
“다른 쪽으로 빠져 나간 건 아닐까?”
“주차장 출입구 쪽에도 얘들 대기하고 있어서 나갈 때 연락 준다고 했는데.”
그 순간.
기자들의 머리 위로 헬기 한 대가 날아가고 있었다.
투다다다.
투다다다다다.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잦아들고, 타고 있던 인원들이 차례대로 하차했다. 승호를 비롯해, 사모펀드 필로스의 회장이 내렸다. 헬기에서 내린 둘은 바로 회사 회의실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아 마자 필로스 회장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금현 자동차. 잘 키워주세요.”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이제 일전에 들었던 로드맵대로 진행되는 겁니까?”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금현은 제로 모터스로 회사명을 바꾸고, 앞으로 제로를 생산하는 최전선 기지가 될 겁니다.”
“들을 때 마다 기분 좋아지는 내용이군요. 대표님이라면 충분히 잘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몇 분을 더 담소를 나누었다. 중요 조력자였기에 허투루 상대할 수는 없었다. 필리스와의 대화가 끝나고, 이번에는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세계 각지.
기업의 수장이나 각 나라에서 힘 꽤나 쓴다는 사람들의 전화였다. 금현 자동차가 글로벌한 기업이니 만큼 시내소프트와의 인수 합병 역시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그 관심들이 반영된 연락이었다.
연락을 다 받고 나니 진이 쭉 빠졌다. 중요한 연락만 받았는데도 수 십 분이었다. 힘겹게 자리에 앉아 있는 승호에게 비서가 공진 단을 내밀었다.
“하나 드시면 기운이 나실 겁니다.”
승호가 금색 껍질을 까서 입에 털어 넣었다. 새삼 자신의 위치가 실감 되었다.
‘옛날에는 박카스 였는데.’
그것도 돈이 아까워 안 먹은 적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박카스의 수십 배가 넘는 걸 먹고 있었다. 쓰면서도, 약간은 시큼한 맛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그래서인지 뭔가 기운이 조금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플로시보 효과 일지도 모르지만.
“이로써 큰일은 끝났네요. 정준구 회장도 소송 때문에 회사 일에는 신경 못쓸 테니.”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회사를 잘 꾸려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산 스마트 시티 오픈 일이 6달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디트로이트에 건설될 스마트 시티 설계 작업도 한 달 후면 끝이고요.”
“또 다른 이슈는 요?”
“전경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 3번째 연락입니다.”
“고 사장님께서도 한 번쯤 와서 얼굴을 비추라고 하긴 했는데.”
“금현 인수 건도 있으니 참석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이미지를 심어놔서 나쁠 건 없으니.”
“알겠습니다. 일정 잡아 보세요.”
“그리고 신지은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 그 분.”
원 톡과 원 서치의 얼굴.
광고 촬영 이후에 몇 번 연락이 왔지만 받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
“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직접 말하세요. 연락 무시하지 말고.”
“······.”
“말 그대로 전해달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흠··· 흠흠. 아닙니다. 그 건은 제가 직접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약간의 어색함을 마지막으로 그 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대표이사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은 한국 거래소가 실질심사 적격 판정을 내렸다.
금현자동차 032107 코스피.
68,700 전일 대비 +30.00%.
시초가에서 상한가를 찍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재계 서열 1위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