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12)
탑 코더-212화(212/303)
ⓒ (212)
재계 서열 1위로
붉은 색 터번을 쓴 남자가 7평 남짓한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짙은 수염에 까무잡잡한 피부는 TV에서 보던 중동의 테러리스트를 연상 시켰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테러리스트와는 달랐다. 승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청했다.
“알 왈리드 빈 살만입니다. 이렇게 약속 없이 찾아와 죄송합니다.”
사실 조금 더 많이 죄송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꼬치꼬치 따질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행이 영어로 말해 대화에 문제는 없었다.
“하하, 아닙니다. 일 이야기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사실 스마트 시티 오픈이 끝나고 나면 대표님이 무척 바빠질 것 같았습니다. 이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건 저 만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마음이 좀 급했습니다.”
마음이 급하다. 자신을 높이 평가해주는 말에 살짝 나빠져 있던 기분이 풀렸다.
“높이 평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히려 전 과소평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지금 만들고 있는 스마트 시티가 그레고리의 미래 시대에 나오는 모습이라 하더군요.”
“아··· 그 책은 저도 꽤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그레고리의 미래시대.
5년 전 발간된 책으로 4차 산업 혁명이 바꿔나갈 미래에 대해 설명한 책이었다. 그 중 한 챕터가 스마트 시티로 그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고 평가 받고 있었다. 승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보려 노력했습니다.”
“아직 누구도 하지 못했던 그 모습을······.”
빈 살만이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실 저희는 그걸 사막 한 가운데에 짓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렇게 까지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 없더군요. 그러다 대표님이 진행하는 사업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이게 과연 진짜인지 알아보는데 시간이 좀 걸렸고요.”
“아······.”
“그리고 그게 사실임을 아는 순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에게 듣는 칭찬이었다. 승호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네.”
“바쁘신 분이니 서론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고, 빈 살만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대충 이야기는 들으셨을 겁니다.”
“네. 오 천억 달러짜리 사업이라고.”
오 천 억 달러.
한화로 치면 580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물론 이 금액이 전부 시내소프트로 흘러들어 오는 것도 아니고, 사업 중간에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규모가 가히 엄청난 건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빈 살만이 긍정의 끄덕임을 보였다.
“맞습니다. 프로젝트 ‘네옴’. 서울의 약 50배에 달하는 크기로 투자 금액만 오천억 달러. 사우디 북부에 위치한 홍해 부근이 사업부지 입니다. 관련해서 여러 컨설팅 업체에서 관련 사업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 중인 상태고요.”
승호도 알고 있는 프로젝트 명이었다. 스마트 시티 사업을 시작 할 때 꼭 따내야겠다고 생각한 사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그걸 강 대표님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역시나.
예상했던 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중동의 갑부가 여기까지 직접 찾아 올 리 없을 테니까. 빈 살만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물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이었다.
“앞으로 이틀 뒤에 있을 스마트 시티 오픈 날에 단 한 건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으면 됩니다.”
순간 승호가 침음을 삼켰다. 오픈 날 문제가 단 한건도 발생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단 한건도 있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게만 된다면 바로 실무진과 계약 협의 진행을 하겠습니다. 제로 시연회 때도 문제없이 진행해 주셨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 합니다.”
물론 불가능 하지는 않았다. 가능성이 한 없이 0에 수렴 할 뿐.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아시다 시피 저희도 엄청난 금액을 투입하는 사업입니다. 최대한 문제 발생의 소지를 줄이고 싶어 하는 제안이니 오해 없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승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차피 시내소프트가 보는 손해는 없었다. 몇 건의 문제가 발생해도 당장 계약이 되지 않을 뿐.
‘어차피 우리 회사를 찾을 수밖에 없을 거야.’
자신 있었다. 제대로 동작하는 도시를 보면 누구나 혹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
스마트 시티 오픈 D-Day.
청와대 관계자들을 비롯해 국토부 장관, 중국, 미국, 사우디 등지에서 온 각 정부 관계자.
뿐만 아니라 포트를 비롯해, 포토 북, 나노 소프트, 일본의 유명 소프트웨어 기업인 하드 뱅크 까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 기업 관계자들이 부산 스마트 시티에 몰려들었다. 인공지능 ONE 뒤이어 나온 제로. 그리고 가장 최근 나온 원 톡이라는 서비스라는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간의 성과가 사람들의 기대 심리를 자극했고, 덕분에 구름 같은 인파가 모여든 것이다. 그것도 하나 같이 유명 인물들로. 그들 중에는 한국에서만 유명한 전경련 가입 기업들도 있었다.
“휘유··· 이거 저희는 명함도 못 내밀 겠습니다.”
믿음 은행장이 말하자, 호산 그룹 방명식 회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이건 뭐, 눈 만 돌리면 CNN에서나 보던 사람들이 가득하니.”
MG 그룹 회장도 주변을 둘러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저도 만나보지 못한 분들이 꽤 됩니다.”
“회장님께서도?”
“네. 당장 나노소프트 회장은 저도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그보다 신기한건 마치 시내소프트가 갑이고 저들이 ‘을’ 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 말에 하나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시내소프트는 스마트 시티를 선보이고 수주를 해야 하는 을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곳의 분위기는 시내소프트가 갑처럼 보이고 있었다.
이를테면.
-강 대표와 약속 잡았어?
-약속은 무슨 아직 얼굴도 못 봤지.
-일정이 앞으로 1주일은 꽉 찼다고 하던데.
-허 참··· 그래도 내가 포토 북에서 나왔는데······.
-나노 소프트 쪽에서도 대기 중이라고 하더라.
-그, 그래?
-일단 오늘은 공식일정만 소화할 생각인가 봐. 오픈 전까지 준비를 거의 혼자 다해서 무리를 했다나. 뭐라나.
-쩝······.
이런 식의 대화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선진전자의 회장 김희건 정도만이 승호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었다.
“드디어 오픈을 하는 군요. 그간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아직 시내소프트는 제조 회사라고 하기 에는 부족한 감이 많았기에 선진전자에서 각종 센서류를 비롯해 필요한 가전제품들을 공급해 주고 있었다. 김희건의 말을 들은 승호가 지난 시간을 회상해보았다. 확실히 ONE을 개발할 당시보다 살짝 힘겨운 날들이었다.
“쉽지 않더군요.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이.”
“하하, 강 대표님이 쉽지 않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나마 선진은 저희 쪽 요구 사항에 대해 즉각적으로 응대해 주었지만 다른 협력사들은 아니었습니다. 제로를 개발할 때 선진이 얼마나 노력해 주었는지 새삼 알게 됐습니다.”
최초 제로를 생산할 때 선진은 더 많은 협력사를 상대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걸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김희건이 미묘한 표정으로 승호를 보았다.
“그러면 이제 다시 신뢰가 쌓였다고 봐도 될까요?”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김희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걸로 신뢰가 회복 되었다니 다행이야. 앞으로도 이렇게만 유지된다면 회사에 큰 이익이 되겠어.’
스마트 시티.
그 안에 들어가는 가전의 50% 이상이 선진에서 출시된 것들이다.
냉장고.
TV.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
상상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선진에서 만들어낸 가전들로 채워져 있었다. 덕분에 선진의 매출에도 꽤나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매출은 더 많았기에 김희건도 부탁 하는 입장이었다.
둘은 담소를 그치고, 정면에 설치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정부에서 관계자들이 보낸 축하 영상이 끝나고, 시내소프트에서 준비한 행사 영상이 플레이 되었다.
-119를 누르지 않아도 응급차가 출동합니다.
-신호등은 최적의 교통흐름에 맞추어 자동 조정 됩니다.
-건물을 출입할 때 별도의 카드는 필요치 않습니다.
-전기, 물, 난방은 항상 최적의 효율화를 거쳐 절약 될 겁니다.
······.
중략.
-여기가 바로 부산 스마트 시티입니다.
그 영상이 끝나고, 준비된 화면이 실시간으로 전송되었다. 예전부터 준비한 각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크린에 전송된 것이다.
물론.
아직 전체 아파트가 건설되어 그곳에 전부 적용 된 것은 아니었다. 스마트 시티 내에서도 시범 단지로 선정된 곳에서 오픈식이 진행되었다.
어차피 한 개단지 정도에서 완벽하게 적용된다면 그걸 기반으로 범위를 넓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시범 단지에서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도 오픈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충분히 놀라고 있었다. 제로가 보여준 완벽한 자율주행자동차의 모습이 도시 단위로 구현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오오, 무슨 로봇이 움직이는 것 같군요.”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 습니다. 구급차가 출동하는데 자동차들이 질서정연하게 일렬로 비켜서다니. 저러면 출동시간이 반으로 줄어 들겠습니다.”
구급차 출동 시연이 끝나고 또 다른 시연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쓰레기를 저렇게 통에 넣기만 하면 지하의 파이프 라인을 통해 한 곳으로 보인다는 말이군요.”
“지상에 쓰레기차가 아예 다닐 필요도 없고.”
“재활용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으니 에너지도 절약 되겠어. 위생 문제도 많이 좋아 질 테고.”
벌써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오픈 식에서 단 한 건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승호가 긴장감 가득한 눈으로 스크린을 보았다.
‘앞으로 한 시간 만 더 잘 마무리 되면. 네옴 프로젝트 까지. 딴다.’
무려 오 천 억 달러짜리 사업.
그걸 딸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가슴이 두근거리기 까지 했다.
‘완벽해 문제는 생기지 않아. 내가 서버 단위로 전부 확인했으니까.’
몇날 며칠 대회의실에서 밤을 새다시피 작업했다. 그때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면 결코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스크린을 보는 승호의 눈빛이 반짝 거렸다.
‘네옴을 차지하고, 제2의 도약을 하는 거야.’
승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스크린에는 또 다른 시나리오가 진행 되고 있었다.
***
스크린을 보고 있던 홍상훈이 주먹을 꽉 쥐었다.
‘저 정도 일 줄이야······.’
보고서에 쓰여 있는 활자와 스크린에서 보여 지고 있는 모습은 그야 말로 천지 차이였다. 저게 정말 대한민국 전역에 적용 될 수 있다면.
앞으로 수 년 간 IT 강국의 자리는 내주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현 정부에서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혁신 경제.
그에 딱 맞는 모델이 아닌가.
‘어쩌면 3%대에 불과한 경제 성장률이 배가 될 수도 있고.’
그야 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였다. 그건 자신만의 생각이 아닌지, 여.야 정치인들이 하나 같이 승호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총선을 넘어 대선까지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가는 거다.’
그런 홍상훈에게 비서실장이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다.
“빈 살만이 이틀 일찍 입국해 만난 사람 알아냈습니다. 강승호. 이유는 스마트 시티 밖에 없습니다.”
홍상훈이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 거렸다.
“프로젝트 네옴을······.”
비서실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내소프트는 현재 혁신의 상징. 그 상징이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 한 번 더 도약하게 되면 정말.
“선진을 뛰어넘을 겁니다.”
한국에서 선진전자를 뛰어넘는다. 그 문장이 주는 파급력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