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15)
탑 코더-215화(215/303)
개발자 컨퍼런스 ONE
오찬이 끝나고, 기업인을 비롯한 모두가 돌아간 뒤에도 청와대는 시끌벅적했다. 국토부 장관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스마트 시티는 안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개발 여력이 없다고 합니다.”
“쩝······.”
“결국, 그렇게······.”
“그것만 여러 군데 건설할 수 있다면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인데······.”
이곳저곳에서 아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각 부처 장관과 참모진을 보며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대신 다른 제안을 하나 해왔습니다.”
“제안이요?”
“어떤······.”
“무조건 해야 합니다. 시내소프트가 하는 건.”
소란 속에서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ONE API를 제공해 줄 테니 그걸 이용해 AI 정부가 되어보자.”
AI 정부.
그 말에 참석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21세기 현재.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단어가 인공지능이었다. 그걸 정부 행정 시스템에 적용한다. 꽤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대통령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게 과연 정부에 이득인지. 고민입니다.”
“대통령님 고민할 게 없습니다. 제로에서부터 원 톡, 스마트 시티 까지. 시내소프트의 저력을 이미 보지 않았습니까.”
국토부 장관의 말에 기재부 장관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관련해서 어떻게 하면 ONE을 기재부에 녹여낼까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농수산부 장관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그러면 먼저 파급력이 적은 저희 쪽부터 적용해보시고, 순차 적용하시는 게······.”
그때.
비서실장이 굳게 닫혀 있던 입을 뗐다.
“대통령님이 걱정하시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그걸 적용하는 순간 시내소프트에 종속되는 겁니다.”
“네?”
“종속?”
“크음.”
몇몇은 되물었고, 몇몇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침음을 삼켰다.
“다른 기업들도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이러다 ONE에 종속되는 건 아닌가. 함부로 ONE을 적용했을 때 차후 그게 없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제는 그 성능 때문에 사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겁니다. 사용하면 ONE에 종속되고, 사용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상황인 겁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정책실장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시내소프트는 한국기업입니다. 종속돼도 나쁠 건 없다고 봅니다.”
“우리 정부가 한 회사에 종속돼도 괜찮다는 말씀입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근 100년 안으로 포트 제국, 포토 북 제국이 생겨난다.”
“······.”
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 직한 말이었다.
“어차피 그런 일이 일어날 거 조금 빨라진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자꾸만 다가오는 시대를 밀어내려고 하면 도태될 뿐입니다. 전 도태보다는 종속이 낫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잠시 뜸을 들인 정책실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꼭 나쁘게만 생각할 건 없습니다. 상생이라는 좋은 말도 있으니까요.”
정책실장이 말을 마치자 모두의 시선이 대통령을 향했다. 이런 사안의 최종결정은 어차피 대통령이 내린다.
AI 정부.
1, 2억이 투입되는 시도가 아니다. 기존의 정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수천억. 어쩌면 그 이상을 투입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굳게 다물어져 있던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어떤 게 정부에 도움이 될지.”
그러자 정책실장이 툭 한 마디를 내뱉었다.
“대통령님. 그때는 또 늦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부산 스마트 시티를 시작할 때부터 다른 도시 건설까지 계약했다면 이렇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사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서실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정책 실장의 말이 맞습니다. 숙고해야 할 일이 있고, 빠르게 진행 시켜야 할 일이 있는데··· 이건 전자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쩌면 이 프로젝트로 인해 정부의 형태가 달라질 수도 있다. 공무원 수는 줄어들 테고, 효율화를 명목으로 퇴직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만약 정말 도태된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김 대통령님이 들었던 조언대로 해서 경제 위기를 극복했듯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IT의 거목이 해주었던 조언.
첫째도 초고속 인터넷.
둘째도 초고속 인터넷.
셋째도 초고속 인터넷.
그 조언을 해준 사람이 자신에게는 인공지능을 말했다.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
사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내심 답은 내리고 있었으니까.
‘AI 정부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단어였다.
***
이제는 전 사원과 함께 대회의실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임직원이 수천 명을 넘어가기 때문이었다. 승호는 효율적으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먼저 스마트 시티 관계자들을 대회의실로 불렀다.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앞으로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개발자 대부분이 새롭게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중에서 가작 익숙한 사람은 예카테리나 박사.
그녀는 ONE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끼지 않는 회의가 없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시범 단지를 오픈 한 지도 벌써 한 달. 그간 큰 문제 없이 운용되고 있는 걸 보니 여러분들의 노고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가장 고생하신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민망합니다.”
“그러니까요. 매일 부산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까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좀 더 해볼 테니까요.”
“하하, 알겠습니다.”
승호가 예카테리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박사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제가 안심하고, 연동 쪽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예카테리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금발의 파란 눈.
오늘따라 그 파란 눈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승호는 잠시 떠오른 그 생각을 지우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사례를 기반으로 디트로이트, 그 뒤를 이어 사우디에 건설될 프로젝트 네옴 까지. 잘 마무리해 봅시다. 일은 미친 듯이 밀려 있으니까. 성과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국에서만 스마트 시티를 몇 개 더 건설해 달라고 한 게 아니다. 미국, 중국, 유럽 등등 세계 각국에서 그런 요청들이 쇄도하고 있었다. 임원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대표님 궁금하게 하나 있습니다.”
승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임원이 말을 이었다.
“ONE과 연동하는 협력사는 저희가 대부분 흡수했는데, 앞으로 건설사는 어떻게 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이번 부산 스마트 시티를 하며 느낀 게 건설사의 역량도 무척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번 협력사 사태처럼 우리 쪽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요.”
승호도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였다. 다행히 이미 염두에 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그래서 선진 건설과 물 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건은 아마 선진 건설과 하게 될 거고 거기에서 합이 잘 맞는다면 프로젝트 네옴까지 함께 하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선진 쪽에도 말해 놨지만 절대 갑과 을 같은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일 처리를 해나갈 테니 그 점 유념해주세요. 아시겠지만 그런 이슈가 회사 이미지에 치명타를 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임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스마트 시티에서 ONE 외부 연동 회의까지.
순식간에 2시간이 지나버렸다. 그 회의가 전부 끝나고 승호는 예카테리나 박사와 단둘이 회의실에 남았다.
“일이 점점 더 많아지기만 하는군요. 혹시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이걸 물어보기 위해 예카테리나만 남긴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 대답이 쌀쌀맞았다.
“어려운 점은 많아요. 현재도 테스트용 ONE, 운영 중인 ONE 그리고 이제는 외부 공개용으로 ONE 시스템을 하나 더 구축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외부 공개용 ONE 테스트 시스템까지. 총 4개가 운용되어야 합니다.”
승호가 미간을 긁적거리며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4개라··· 생각만 해도 어렵게 느껴지네요.”
관련 시스템이 사용하고 있는 서버만 300여 대였다. 네 개의 ONE을 합치면 천 이백 대.
거기에 마운트 되어 있는 데이터는 현재 페타(기가-테라-페타)바이트를 넘어가고 있었다. 예카테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인원 증원이 필요합니다.”
“당연하죠. 마음대로 채용하셔도 됩니다.”
“어중이떠중이 말고 최소한 저와 대화가 되는 상대로요. 동수씨나 채원씨도 도움이 되고 있지만 부족한 감이 있어요. 미국의 에이든? 그 정도 되는 실력자가 필요합니다. 허 교수님 같은 분도 환영이지만 교수라는 본업이 있으니 여기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입장은 아니고.”
승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계획하던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많은 생각을 하셨군요.”
순간 남자의 직감이 발동했다.
‘바쁜 와중이라는 게 꼭 일을 뜻하는 게 아닌 것 같단 말이야.’
그렇다면 남은 건 한 가지.
승호는 고개를 흔들며 잡생각을 털어냈다.
“개발자 컨퍼런스 ONE. 거기에 대회를 하나 만들어 100억 정도의 상금을 내걸 생각입니다.”
100억.
그 액수에 예카테리나가 침음을 삼켰다.
“흐음······.”
“공식적으로 ONE 외부 API를 공개하고, 그게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시연회를 할 필요도 있으니까요. 다른 기업에서도 자사 서비스 홍보를 겸해서 개발자 축제를 하는 것처럼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본선 진출자에 대해서는 숙박비를 비롯한 체재비, 교통비까지 전액 지원. 최고 대우로 시내소프트 입사. 지원 자격은 무제한. 이 정도면 꽤 혹할 만한 제안이라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예카테리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 가타부타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계획은 대표 고유의 권한. 자신이 침범할 영역이 아니었다.
“좋은 인재가 많이 들어오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하하, 네.”
순간.
드르륵 소리와 함께 승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이름을 확인한 승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갔다. 예카테리나는 그 잠깐을 놓치지 않았다.
“뭐 하세요. 안 받으시고.”
조금 더 싸늘해진 말투.
승호는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급한 연락은 아닙니다.”
예카테리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무슨 연애를 한다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승호에게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네, 네?”
“아니에요. 일 진행되면 다시 말씀해주세요.”
잘 들리지 않는 것이지 완전히 못 들은 건 아니었다.
“연애라고 한 것 같은데······.”
혼자 남은 승호가 중얼거렸지만 이제 듣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언론에 공고가 하나 나갔다.
-개발자 컨퍼런스 ONE.
-세계 최초 ONE API 공개 행사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그 공고에 함께 적혀 있는 대회 상금이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켰다.
-ONE 관련 개발자 채용을 위한 ONE 알고리즘 성능 개선 대회.
-총 상금 100억.
-1등 50억.
-2등 30억.
-3등 20억.
많은 분의 지원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한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ONE 외부 API 최초 공개.
기업인들의 시선은 거기에 쏠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