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20)
탑 코더-220화(220/303)
-······.
목소리에 담긴 단호함을 읽었는지 전화상으로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하실 말씀이 없으면 이만 전화를 끊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담당관도 더는 승호를 붙잡지 못했다. 시가 총액 400조에 한 해 매출 만 100조가 될 거라는 추측이 나오는 회사의 소유주였다. 이제는 돈으로도 섭외할 수 없었다.
회사로 이동하는 차 안.
비서가 전날 있었던 뉴스를 브리핑해 주었다.
“어제 선조 일보가 해킹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현재 웹 사이트를 비롯한 방송 송출까지 중단된 상태입니다.”
“방송까지?”
“네. 종편 쪽 서버들도 해킹당한 모양입니다.”
“꽤 센 놈이 두드렸나 보군요.”
“아직 누구 소행인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관련해서 경찰과 인터넷 진흥원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 쪽으로 들어온 요청은 없었습니까?”
선조 일보 관련 사항은 승호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비서도 철저히 준비해 두었다.
“영업 쪽으로 ZONE 서비스 이용 요청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것 말고 별다른 사항은 없습니다.”
“흐음······.”
“지연시킬까요?”
“일단은 데이터 센터 이전에 따른 마이그레이션을 준비 중이라고 하세요. 굳이 나서서 도와줄 필요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지시하고 나자 불현듯 의문이 생겼다.
‘블랙 워치가 하필이면 왜 선조 일보를 공격했을까. 하필이면 그 한 곳을··· 그놈이 날 도와주려고 일부러? 아니면 그냥 재밌어서?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쪽과 사이가 안 좋다는 걸 알고 혹시 침입한 흔적이 있나 찾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걸 약점으로 잡아서 이용하기 위해서.’
실제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사이버 세상에서는 몇 번의 만남을 가졌고 그때마다 승호가 승리했다. 아마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있진 않으리라.
‘그러면 여기만이 아니라 다른 쪽도 공격 할 수 있다는 말인데······.’
승호는 고개를 흔들며 그 생각을 털어냈다. 생각의 비약일 뿐이라 치부했다.
그때.
비서의 핸드폰이 울렸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네.”
“데이터 센터가요?”
“알겠습니다.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빠르게 전화를 끊은 비서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승호를 보며 말했다.
“지금 데이터 센터에 해킹 시도가 발생했습니다.”
“그런 시도는 꾸준히 있었을 텐데요.”
전 세계 유명 웹 사이트들은 하루에도 수 번씩 공격 패킷을 전달받는다. 그런데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평소 보안 관련 방비가 철저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선조 일보에 발생한 것과 같은 유형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아직 자사에 어떤 피해도 발생하진 않았고요. 직접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알아서 처리하라고 할까요?”
“차 돌리세요.”
차는 올림픽 대로에 올라타 빠르게 데이터 센터가 있는 서쪽으로 향했다.
***
회사가 하루 동안 운영되지 못했을 때 생기는 피해액을 추산하는 방법은 전년도 매출액에서 365를 나누면 된다. 단순하지만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선조 일보의 작년 매출이 3200억.
벌써 이틀째 영업을 못 하고 있으니 벌써 17억의 손실을 보고 있었다. 성충민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이유였다.
“아직도 못 고쳤어?”
“일반 애플리케이션 서버들을 재기동을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데이터베이스인데··· 데이터들이 랜섬웨어 때문에 변형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서버를 재시작해도 소용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성충민이 듣고 싶은 건 이런 어려운 말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전산실장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 안됩니다.”
성충민이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현재 인터넷 진흥원에서 파견 나 온 직원들과 협업하며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꽤 며칠?”
“최, 최소한 4일 정도는.”
성난 성충민이 번쩍 오른손을 들었고, 전산실장의 몸이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뭐 이 새끼야!”
“죄,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습니다.”
“하아··· 진짜 내가 이것 들을 믿고.”
말을 마친 전산 실장이 슬그머니 주변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인터넷 진흥원에서 계속 시내소프트에 지원 요청은 했냐고, 자신들도 말을 하고 있기는 한데 선조 일보에서도 요청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쪽에서 지원이 오면 당장 내일이라도 아마 해결될 거라고······.”
“뭐? 그 말 진짜야? 그쪽에서 나오면 당장 내일이라도 해결된다고?”
“인터넷 진흥원 직원 말에 따르면 비슷한 시각에 시내소프트 쪽으로 같은 해커가 침입한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니 벌써 해결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문제가 생겼다면 원 톡이나 원 서치 접속에 제한이 발생해야 하니까요.”
말을 하던 전산실장에게 임원이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전산 실장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래서 현재 ZONE 서비스 이용 신청도 해둔 상태인데 서버 증설 작업으로 현재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면서 거부 하는 상황입니다.”
성충민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미 한 번 만나봤지만 절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눈치였다. 고심하던 성충민이 겨우 말을 꺼냈다.
“백업 본은 어떻게 됐어.”
“그것도 전부 감염됐습니다. 복호화 키를 건네주는 조건으로 일만 바이트 코인을 요구하고 있고요.”
현 시세로 900억.
사내 유보금으로 대략 7000억을 보유하고 있으니 지급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일주일 내에 지급하지 않으면 하루에 만 바이트 코인을 더 올리겠다고 합니다.”
결정해야 할 순간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느냐, 900억을 쓰느냐.
실리냐 자존심이냐. 성충민이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락해 볼 테니까 나가봐.”
이미 재계 1위에게 내세울 자존심 같은 건 존재 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나가고 다시 비서가 들어왔다. 비서의 표정을 보는 순간 성충민은 직감 할 수 있었다.
“안 된데?”
“현재 해킹 공격을 수습 중이라 당장은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체면을 구긴 것도 벌써 두 번째.
성충민이 툭 혼잣말을 내뱉었다.
“삼고초려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뭐든 할 수 있다.
시내소프트 데이터 센터.
승호가 서버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회장의 출현에 직원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관제실에 설치된 빨간색 사이렌이 돌아가는 와중에 스크린에는 붉은색 경고 문자가 떠 있었다.
-A-1 구역 공격 패킷 침입 중.
-A-3 구역 공격 패킷 침입 중.
-B-10 구역 공격 패킷 침입 중.
······.
그 밖에도 대 여섯 군데로 공격이 들어오고 있었다. 동시다발적인 공격에 직원들은 잔뜩 긴장한 채 로그를 살펴보고 있었다. 승호도 한편에 앉아 직원들이 건네준 악성코드를 살펴보고 있었다.
‘시작은 매그니토 코드와 거의 흡사해. 이건 뭐 거의 ‘복붙
‘인데.’
코드는 1/3쯤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끝은 완전히 달랐다.
마지막 줄에 쓰여 있는 주석.
-Don’t butt in.
끼어들지 말라는 말로 일종의 경고였다.
‘그러니까 이건 경고 장이고, 앞으로 자기 일을 방해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이건가.’
승호는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러나 모니터에 떠 있는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누가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지금까지 직접적인 피해가 없어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데이터 센터 해킹 대응 팀장이 승호에게 다가왔다.
“현재 공격 패킷은 멈춘 상태입니다. 감염된 서버는 격리 망에서 경로 추적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결과 나오면 알려주세요.”
“그리고 인터넷 진흥원에서 비슷한 보내온 랜섬웨어가 하나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팀장이 USB를 하나 내밀었다. 그 USB를 노트북에 꽂자 여러 개의 파일이 들어있었다. 승호는 그 파일을 리버싱해 보았다. 이번에도 리버싱 된 코드의 끝에 주석이 한 줄 적혀 있었다.
-This is more powerful.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을 겨냥한 게 확실했다. 지금까지 블랙워치의 작업을 완벽하게 막아낸 건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가만둬선 안 되겠어.’
언제고 또다시 이런 일을 벌일 줄 몰랐다. 앞으로 자사의 시스템이 늘어날수록 허점도 늘어 날 테니, 한 번쯤 뚫릴 수도 있었다. 블랙워치는 승호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실력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치지직.
-치지지직.
갑자기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승호가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치지지직.
-치직치직치지지직.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였다. 승호는 어렵지 않게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체크포인트.’
그 기억이 틀리지 않다는 듯.
-끼이이이이익.
칠판 긁는 소리가 들리고.
-지금부터 이곳은 블랙 워치가 통제한다.
익숙한 기계음이 들렸다. 승호는 바로 팀장을 호출 했다.
“이 서버는 어디서 운용되는 겁니까.”
당황한 팀장이 급히 다가와 말했다.
“여기 스피커 서버는 4층 방송실에······.”
승호가 차갑게 지시했다.
“당장 끄세요.”
지시가 내려가고 3분도 지나지 않아 스피커에서 더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터 센터 내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승호의 눈빛이 번뜩였다.
‘CIA와도 공조해서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쳐 내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게 분명했다. 이런 짓까지 하는 놈을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센터 내에서 볼일을 마친 승호가 차에 올랐다.
작업을 마치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비서가 바로 말을 걸었다.
“이번 사태 관련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선조일보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승호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쪽과는 끝까지 갑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대응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미 대사관 앞에 내려 주세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알겠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