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34)
탑 코더-234화(234/303)
시가총액 1000조
소파에 앉아 쉬고 있던 승호에게 비서가 다가왔다.
“대표님, 계속 연락이 오는 데 어떻게 할까요?”
복수심에 불타올라도 모자랄 판에 계속 연락이 온다? 한 나라의 장관급 인사가 그저 화풀이나 하자고 전화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받아보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비서가 연락을 받았다.
“네.”
“아닙니다.”
“내일 아침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힘듭니다. 어떤 용무인지 먼저 말씀해주시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핸드폰을 손으로 막은 비서가 승호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꼭 만나 뵙고 싶답니다. 조금 전의 무례를 사과드리고 싶다고. 그리고 원하신다면 당장이라도 제도를 정비해 자율주행 자동차가 시내에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하는데요.”
갑작스레 태도가 돌변했다.
왜?
입맛을 다시던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호텔로 오라고 하세요.”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을 잡았다. 전화기 너머로 감사하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성사된 자리.
호텔 스위트 룸의 한 방에 총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승호, 국토교통성 대신 그리고 내각정보조사실 실장이었다. 그리고 승호는 그 실장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실장이 먼저 꾸벅 인사를 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각정보조사실 실장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하긴 아무리 미국이 최강대국이지만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제어하지는 못하겠지.’
다른 나라들도 눈뜬장님이 아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몇 가지 정도는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경호원을 좀 더 보강해야겠어.’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히 입을 열었다.
“그런 분이 왜 절?”
“먼저 일본은 강 대표님 편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국토교통성 대신이 슬쩍 눈치를 살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승호는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떤 일 때문에 저러는 걸까. 이럴 때는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서로 숨기는 내용이 있다면 같은 편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실장이 마른 침을 삼켰다.
“대답해 주시기 곤란한 질문이긴 하지만 솔직한 걸 좋아하신다고 하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차세대 프리즘 프로젝트에 일정 비용을 내고 다섯 개의 눈 중 하나가 되기로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일순 승호의 볼이 꿈틀거렸다.
‘이거였구나.’
실장이 묵묵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대표님께서 거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승호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어디서 빠져나간 걸까. 한국? 미국?.’
자신은 아니었다. 누구도 그에 관해 말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승호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장이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러나 승호의 볼이 꿈틀거리는 걸 보는 순간 확신했다.
‘알고 있다. 미국의 최고 등급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게 확실해. 도대체 어떻게. ZONE? 아니면 ONE 때문인가.’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눈앞의 사람은 중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과 척을 지게 된다?
일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게 뻔했다. 실장이 팔꿈치로 대신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하긴 일의 순서가 잘못됐군요.”
그러면서 대신을 쳐다보았다. 대신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결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과까지 하는데 그 앞에서 뚱한 표정을 지을 순 없었다. 승호도 마주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알겠습니다. 저 역시 순간적인 감정에 취해 결례를 범했습니다.”
실장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이렇게 서로 화해를 하니 오늘 참 기분이 좋습니다.”
승호는 웃지 않고 국토교통성 대신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제로 판매 허가는 나는 겁니까?”
직접적인 질문에 대신이 난감해하며 볼을 긁적거렸다. 내각정보조사실 실장 역시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직 그로부터 얻어낸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승호는 아무 말도 할 생각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전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승호는 한 번 더 쐐기를 박았고,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일본까지 와서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시내소프트가 ZONE을 미 국방성에 납품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미 국방성에 납품하고 있다. 모종의 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에 일본 정부 측 인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승호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예정대로 내일 시연회를 하고, 자율주행차 법규 관련 로드맵을 발표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무산시킬까요? 둘 중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국에서 제 행보가 달라질 것 같군요.”
승호의 말에 둘은 동시에 같은 대답을 떠올렸다.
***
다음날.
노무라 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스즈키가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공매도가 너무 많은데······.”
국내 빅 3 자동차 제조업체에 대한 공매도 잔량이 평소보다 20%가 넘게 늘어나 있었다. 이러면 시장 참여자들이 주가가 내려갈 거로 생각하고 투매하는 경향이 생겨날 수 있었다.
“완전 미친놈들이잖아.”
지금 이 순간에도 공매도 잔량이 쌓이고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스즈키가 미친놈들이라 생각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어차피 기업 펀더멘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무작정 공매도를 치면 어쩌자는 건지.”
자못 공매도란 앞으로 주가가 내려갈 거로 생각하는 거래 방식이었다. 만약 주가가 내려가지 않거나 오히려 올라가 버리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벌써 천억 엔이 넘는 돈이 공매도 잔량으로 쌓여 있었다.
더구나 스즈키가 담당하는 분야는 자동차.
자신이 알기로는 당장 일본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미칠만한 일은 없었다. 공매도 잔량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던 스즈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천억엔?”
아직 빅 3 전체 시가 총액인 350조에 비하면 미미했지만, 금액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오 천억 엔이 잔량으로 쌓였다.
“···이, 일조엔.”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 금액에 시장이 조금씩 반응하고 있었다. 주식은 심리라는 말이 있다. 엄청난 양의 공매도 잔량이 쌓이자 사람들이 한둘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빅 3의 주가가 내려가는데 베팅한 것이다. 스즈키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알기로 빅3의 영업이익은 탄탄하다. 더구나 자율주행자동차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에서 최대한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나 회장이 적극 로비를 하고 있지만 빅 3 회장이 철저하게 막고 있어서 올해 안에 자율주행차 관련 제도가 정비 될 일은 없었다.
-도요타 : 8100 ¥
-혼다 : 3221 ¥
-닛산 : 680 ¥
이었던 주가가 계속 흘러내렸다.
-도요타 : 7611 ¥
-혼다 : 3081 ¥
-닛산 : 661 ¥
스즈키는 핸드폰을 들어 자신의 정보망을 최대한 동원했다. 혹시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언론사 쪽 정보망에 하나가 걸렸다.
-엠바고
-일본 정부 다음 달 안으로 자율주행자동차 제로 수입 허가.
-준비된 제도, 법규 국무회의 의결 및 공표.
그 뉴스를 접한 순간 스즈키도 바로 공매도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
빅3 업계의 회장들 역시 시연회장을 찾았다. 갑작스러운 정부의 태도 변경에 잔뜩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경쟁사의 시연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매년 자민당에 지급하는 후원금이 얼만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쩝, 미국 측에서 압력이 있었다고 하니 이해할 건 이해해야죠.”
“답답해서 그럽니다. 답답해서. 오늘 정부 발표 때문에 주가가 30%가 빠졌어요. 내일은 또 얼마나 빠지려는지······.”
회장들의 안색이 어두웠다. 당장 다음 달에 관련 법규가 발표되고 제로가 수입된다. 자신들이 내부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제로를 구매하겠다는 잠재 소비자층이 엄청났다. 아마 이번 달부터 판매량이 떨어지고, 구매를 미루는 소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도요타 회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대로 두면 자율주행 자동차 시장을 시내소프트에 빼앗길 위험이 많습니다. 우리 삼사가 협력해서 개발하는 건 어떻습니까?”
“기술 협력을 하자는 말씀이 십니까?”
도요타 회장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협력을 넘어 공유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제로라는 자동차를 이길 수 없습니다.”
두 회장은 도요타 회장이 가리킨 손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제로와 함께 서 있는 승호가 시연회 참석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고 있었다.
승호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말을 전했다.
“이렇게 두 번째 시연회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승호의 그 말이 끝나자 차량 세 대가 동시에 시연회 안으로 들어왔다. 일본 정부의 태세 변경 뒤에는 자동차 3사가 있다는 나정의 회장의 말을 듣고 난 후에 준비한 이벤트였다.
“이건 영화에서 말하는 쿠키 영상 같은 겁니다. 어떤 내용이냐. 저희 자동차 연구소에서 일본 자동차에 배울 점이 있는지 연구하던 중 승객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안이 발견되었습니다.”
승호가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