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37)
탑 코더-237화(237/303)
***
며칠 뒤.
작업을 마친 승호는 NSA 본부를 빠져 나와 전용기를 타고 뉴욕으로 이동했다. 공항을 빠져 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는 순간.
코끝을 간지럽히는 기분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신지은이 차에 타고 있었다. 며칠간 기계음 가득한 곳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많이 기다렸어요?”
신지은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길게 웨이븐 진 검은색 머리칼이 살랑 흔들리며 재스민 향을 흩뿌렸다.
“조금? 그래도 영화관 데이트를 잊지 않았네요.”
“이런 미인분과의 약속을 잊어버리는 건 죄니까요.”
“헤헤, 그거 알아요?”
승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지은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예쁘다는 말. 매일 같이 듣는 거.”
“하긴 지은씨한테는 익숙하겠네요.”
“그런데 승호 씨한테 들으면 달라요.”
“···네?”
“식상하지 않아요.”
“아··· 이걸로 또 점수 올라간 건가요?”
신지은이 검지를 들어 좌우로 움직였다.
“알잖아요.”
이번에도 승호가 물음표를 띄웠다. 신지은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만점인 거.”
“하하, 그럼 오늘 가산점을 더할 수 있겠네요. 오늘을 위해서 아주 멋진 코스를 준비했거든요.”
신지은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부드럽게 움직이며 뉴욕 시내로 향했다.
뉴욕.
수많은 로맨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 같이 극찬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야경.
그 야경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브루클린 다리였다. 승호는 그 다리가 한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국에서 꽤 잘나가는 신지은도 휘둥그레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엣헴. 괜찮죠? 미국에 올 때마다 종종 들르는 곳인데 이곳 야경이 끝내줍니다.”
“저도 뉴욕에 꽤 많이 왔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에요.”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검색해도 안 나올 거예요.”
“어쩜. 그래서 사람도 별로 없는 거구나.”
“여기 양고기 스테이크가 맛있어요. 한 번 드셔보세요.”
메뉴가 정해지고, 본격적으로 음식이 서빙되었다. 모양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꽃 모양을 한 전채 요리에서부터 마치 예술 작품을 연상케 하는 본 요리까지.
먹는 것이 미안할 정도의 모습을 자랑했다. 맛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신지은이 부지런히 집기를 움직였다. 또 한 조각의 양고기를 털어 넣은 신지은이 중얼거렸다.
“내숭 좀 부리면서 먹으려고 했는데. 이건 그럴 수가 없네.”
“많이 먹어요. 또 내일 한국 가서 열심히 하려면.”
그 소리에 신지은이 탁.
집기를 내려놓았다.
“그거 알아요?”
“네.”
단호한 승호의 대답에 당황한 건 신지은이었다.
“아, 알아요? 뭔데요?”
“원래 꿈은 연예계 일이 아니었다는 거.”
“어!”
“잡지사 인터뷰에서 봤습니다.”
“우와, 제 인터뷰도 챙겨봐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요? 어땠나요?”
“함께 식사하는 게 답이라고 할까요.”
“이익!”
문제를 내려다 오히려 역공을 당한 신지은이 볼을 부풀렸다. 그때 식당 한가운데 마련된 무대 위로 일련의 사람들이 올라갔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각각의 악기가 주인을 찾았고, 마이크 앞에 중후한 남성이 서서 천천히 노래를 시작했다.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곧 있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노래.
승호와 신지은도 잠시 식사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신지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일정이 있겠죠?”
“쉴 생각입니다.”
“저도 따로 일정이 없는데······.”
“잘됐네요. 같이 보내요.”
신지은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둘 사이에 따뜻한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
청와대 경제장관 회의.
현재 경제 상황을 점검하고, 정책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자리였다.
수출기업 지원.
적극적 재정 정책.
일자리 창출.
등등의 여러 경제 정책에 관한 이야기 말미에 시내소프트도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시내소프트가 현 정부의 경제 정책 관련하여 가장 큰 성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보고는 박신우가 담당하고 있었다.
“어제부로 시가총액 900조를 돌파했습니다. 덕분에 코스피 지수가 전체적으로 상승했고, 시중의 유동자금이 자본 시장 쪽으로 유입.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자 경제부총리가 마이크를 잡았다.
“최초 예상했던 결과들이 속속 현실이 되고 있군요.”
“그렇습니다. 시내소프트가 발전함에 따라 나타날 파급 효과들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며칠 뒤 있을 RONE 프로토타입까지 발표되면 시가총액이 1000조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겁니까?”
박신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는 가능성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천조 기업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게 됩니다.”
묵묵히 보고를 듣고 있던 대통령이 말했다.
“지금 강 대표는 어디에 있습니까?”
“현재는 미국에 나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흠··· 그러면 시가총액 천조가 될 때 한국 증권거래소에서 만나는 방안 한 번 추진해 보세요. 기쁜 날 정부도 함께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표창장도 하나 주면 좋을 것 같군요.”
“준비하겠습니다.”
이내 다음 방안으로 넘어갔지만, 그 자리의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시내소프트라는 기업이 떠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크리스마스이브.
대통령이 한국 증권거래소를 찾았다. 시내소프트 시가총액은 950조를 넘어선 상황이었다.
시가총액 1000조
크리스마스이브 한국 증권거래소.
주식 시황에 따라 거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워야 할 곳이 오늘만큼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모두 커다란 전광판 아래 자리를 잡은 두 거인 때문이었다.
한 명은 대통령.
또 다른 한 명은 시가총액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승호였다. 먼저 홍상훈 대통령이 말을 걸었다.
“축하드립니다. 시가총액 천조라니. 그 돈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군요.”
“제가 알기로 한 해 나라 살림이 500조 가량 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천조면 대한민국의 2년 치 예산이 되겠군요.”
“하하, 그렇습니다. 2년 치 예산.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군요. 기분이 어떠십니까. 곧 그런 회사의 주인이 될 텐데.”
“크게 감흥은 없습니다. 이미 돈은 넘치도록 많아서.”
“솔직하시군요.”
“사실이니까요.”
승호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스스로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수 년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 긴장감에 입을 제대로 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일말의 긴장도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 행사가 끝나고 진행해야 할 다른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도 참 많이 컸어.’
이런 자신의 변화가 싫지 않았다.
“960조가 넘었군요. 10분 만에 10조라니. 여기에 있으니 돈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승호가 전광판을 주시했다.
-상장가 10만원.
-현재가 96만원.
그때에 비해 정확히 9.6배가 된 것이다. 승호가 전광판을 보고 있는 사이 또 다시 10만원이 올랐다.
-현재가 97만원.
시가 총액 970조가 되었다. 오늘 행사를 위해 한국증권거래소에서도 꽤나 신경을 썼다. 전면의 거대 스크린에는 시내소프트라는 커다란 글자 하나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스크린에 나타난 주가가 수시로 변하는 중이었다. 스크린을 보던 승호는 잠시 딴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 보면 한주에 97만원에 달하는 주식을 사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세상에 돈 많은 사람이 많아.’
자신이 시내소프트에 처음 입사해서 받은 돈이 88만원이었다. 왜냐하면 첫 3개월은 인턴으로 근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는 시내소프트 주식 한 주를 사지 못한다. 스크린의 숫자가 또 한 번 바뀌었다. 상승세를 타자 기관 투자자에서부터 개미까지 전부 달라붙은 탓이었다.
-현재가 98만원.
총 10억 주를 발행했다. 현재가가 98만원이니 980조라는 뜻이었다. 홍상훈도 현 상황에 살짝 마른 침을 삼켰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경제다. 경제를 성장 시키지 못하면 결국 민심은 돌아선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선진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레임덕에 빠져 정권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자신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더구나 시내소프트 초기에 정부의 창업 지원금이 들어갔으니 정권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삼을 수 있게 되었어.’
한 발을 넘어 두 팔 정도 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가 99만원.
덕분에 지지율은 60%대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다. 시내소프트가 상장하기 전 40%대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급 지지율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와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차피 천조도 지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 말에 홍상훈이 슬쩍 승호를 쳐다보았다.
“과연. 왜 시내소프트가 여기 까지 왔는지 알 것 같군요.”
-현재가 100만원.
그 숫자가 스크린에 뜨는 순간 스피커에서는 빵바레가 흘러나왔고, 전광판에서는 폭죽이 터졌다. 홍상훈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모습을 기자들이 카메라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