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38)
탑 코더-238화(238/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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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 기업의 탄생.
그건 대한민국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기존 재벌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경제 질서가 탄생했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선진의 김희건도 TV 앞에 앉아 있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홍상훈의 첫 마디였다. 함께 있던 고동만이 씁쓸한지 입맛을 다셨다.
“결국 이렇게 됐군요.”
“이미 우리 모두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예상 보다 너무 빨랐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천 조가 될지는 몰랐는데.”
“덕분에 선진전자 주가도 마의 500조를 돌파 할 수 있었습니다.”
“하긴······.”
-시가 총액 천조 원. 세계 5위의 기업. 그리고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기업.
홍상훈은 꽤 많은 수식어로 시내소프트를 설명했다. 그걸 보던 김희건이 툭 내뱉었다.
“정부에서 시내소프트를 작정하고 밀어줄 생각인가 봅니다. 저렇게 까지 띄워주는 걸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시내소프트 덕분에 지지율이 20%나 올랐으니까요.”
김희건이 미간을 긁적거리며 중얼 거렸다.
“검찰에서 잔뜩 벼르고 있을 것 같은데······.”
“시내소프트가 뒷돈을 주고 특혜를 받았다면 그렇겠지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 것 치고는 스마트 시티에서 AI 정부 까지 정부 관련 수주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지 않습니까?”
“과연 누가 먼저 부탁해서 그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답이 간단하게 나옵니다.”
“그 말씀은 정부에서 먼저 제안했다는 말로 들리는 군요.”
“스마트 시티는 협의를 통해 진행했을 수도 있지만 AI 정부는 확실합니다. 정부에서 먼저 제안 했을 겁니다.”
“흠······.”
“그리고 이런 말이 있습니다. 1억을 벌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면 잡범이다. 100억 벌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면 사기꾼이다. 1000억을 벌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면 기업인이다. 그런데 저렇게 조 단위를 벌 게 되면.”
김희건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동만을 보았다. 초롱초롱 한 눈빛에서는 궁금증이 한가득 느껴졌다.
“재벌이다.”
그 말에 김희건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오랜만에 웃어보는군요. 정말 그런 말이 있습니까?”
“농담처럼 인터넷에 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지금 강 대표는 재벌을 뛰어넘어 위인이 되었습니다.”
“위인이라······.”
“그가 개인적으로 한 해 보육원에 기부하는 돈 만 수백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사회에 환원하는 돈도 만만치 않고요. 더욱이 시내소프트는 금현을 자회사로 두면서 고용 인력이 순식간에 3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그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두말 하면 입 아프고요. 이런 때 검찰이 조사를 시작한다.”
김희건이 입을 다물었다. 아마 전 국민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건들 수 없는 위치에 올라간 거군요.”
“앞으로 그 위치는 더 공고해 질 겁니다. 물론 제가 아는 강 대표는 불법적인 일을 진행할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일을 한다고 하면······.”
고동만이 한 차례 입술을 깨물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일일 겁니다. 그리고 회장님이나 제가 들은 소문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 말에 김희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미국에 있는 선진의 로비스트로는 로비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정가에 돌고 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 정보에 의하면 강승호가 미국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고동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인물이 된 겁니다. 그가 입을 열면 안 다치는 곳이 없을 테니까요.”
김희건의 표정도 딱딱해졌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대통령의 축사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정부는 앞으로 이런 혁신 기업이 더 많이 탄생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대통령 발언이 모두 끝났다. 승호가 대통령 옆으로 올라가 금탑산업훈장을 수여 받았다. 퍼포먼스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둘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쇼가 끝난 행사장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승호는 대통령과 함께 단둘이 조용한 곳에서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축하한다는 말은 이미 많이 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네.”
승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북이 핵 포기를 선언하면서 유엔으로부터 받았던 제재 사항들이 해제되었다는 말은 들으셨을 겁니다. 덕분에 곧 개성공단부터 금강산 관광까지 전부 재개될 것입니다.”
순간 어떤 말이 나올지 짐작되었다.
“그리고 대륙 철도 사업까지 진행될 겁니다. 철도가 만들어지면 그 철도가 멈추는 도시 개발도 해야 하고요.”
“위험하겠지만 엄청난 이득이 발생하겠군요.”
“하이리스트 하이 리턴. 관심이 가십니까?”
“흠······.”
승호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투자하고 싶긴 하지만 북한이 언제 또 문호를 닫고 전투준비에 나설지 몰랐다. 금강산이나 개성공단 역시 그렇게 문을 닫아 투자 금을 날리지 않았는가. 하지만 안전장치만 만들어 둘 수 있다면 분명 매력적인 투자 처였다.
“참고로 인터넷은 KU 통신사가 들어가 인프라를 건설 하게 될 겁니다. 일정 부분은 남북 협력 기금에서 보조 될 거라 전액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혹시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 이틀 정도면 결정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이틀 정도야 충분히 드릴 수 있습니다. 참고로 북한에서 시내소프트를 꼭 집었습니다. 선진과 시내소프트. 그 두 이름은 정확히 알 고 있더군요.”
고개를 끄덕인 승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국, 러시아 쪽과 관계를 만들어 두면 북한도 함부로 하지 못하겠지.’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면서.
***
그날 저녁.
승호는 잠실의 시그니엘 빌딩에서 신지은과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창가로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하지만 승호의 눈에는 야경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 보다 반짝이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지은이 붉은 색으로 반짝거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어요.”
승호는 그 입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멍하니 있는 승호를 보며 신지은이 한 번 더 물었다.
“승호씨?”
“아··· 네. 저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초대장이 날아와 알게 된 곳입니다.”
그곳의 120층.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출입하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개별 공간들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고, 각 공간은 야경을 잘 볼 수 있도록 창가 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신지은이 와인을 한 잔 마시며 중얼거렸다.
“꼭 서울 야경 속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아요.”
“혹시 그것 아세요? 왜 크리스마스이브에 수많은 연인이 만나는지.”
신지은이 상큼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승호씨가 말하는 걸 보니 하나는 알 것 같네요. 기업과 관련이 있죠?”
“하하, 맞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날을 기업에서 그대로 둘 수 없었고, 여러 마케팅을 펼친 끝에 지금처럼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날이 된 겁니다.”
와인을 한 모금 삼킨 승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사실 솔로일 때는
‘저런 바보들 기업 마케팅에 속아 추운데 밖에서 저게 뭐하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죠.”
“풉,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만큼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네요. 지은씨 말처럼 오직 우리 둘만이 이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순간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신지은은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꼈다. 그건 승호도 마찬가지였다. 승호의 시선이 다시 신지은의 입술에 고정되었다. 신지은도 그 시선을 느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승호가 천천히 신지은에게 다가갔다.
스르륵.
두 눈이 감겼고, 승호가 부드럽게 신지은의 어깨를 잡았다. 이내 정신이 몽롱할 정도의 달콤함이 전신을 휘몰아쳤다.
북한 개발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
그 꼭대기 층 부근의 한 침실에서 한 남자가 꿈틀거리며 눈을 떴다. 눈을 비비며 옆을 보자 TV에서만 보던 그녀가 눈을 감은 채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눈을 떼기 힘들어 한동안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핸드폰 진동 소리에 여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으음······.”
신음을 내며 여자가 눈을 떴다.
“언제 일어났어요?”
“저도 방금.”
“맞다. 우리 이제 말 놓기로 했잖아요.”
맑고 영롱한 목소리가 피곤한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전화 온다.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신지은이 이불 속을 파고들며 중얼거렸다.
“우웅, 조금만 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승호가 이불 속으로 손을 뻗었다. 어디를 어떻게 만졌는지 신지은의 눈가가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아침부터 또?”
승호는 말없이 몸을 움직였다.
또 한 차례 뜨거운 열기가 지나가고.
이번에는 승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상기된 표정의 신지은이 물었다.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언제쯤 나갈 거야? 차 대기 시킬게.”
신지은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오빠 때문에 좀 더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일어나 목을 축이던 승호가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