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4)
탑 코더-24화(24/303)
# 24
잡아야 한다.
────────────────기쁨의 시간이 지나가고.
최기훈은 승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승호만 있으면······.’
자신이 황호근과 함께 회사를 세울 때 세웠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
그 목표.
아직 잊지 않고 가슴속에 남아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그런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승호의 핸드폰이 멈추지 않고 울렸다.
“받아봐.”
이름을 확인한 승호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꿔 버렸다. 또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최기훈은 핸드폰에 나타난 이름을 놓치지 않았다.
‘장민재······.’
선진데이터시스템의 부장.
아마 검색 솔루션 납품 건을 핑계로 전화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승호에게 꽤나 괜찮은 제안을 하겠지.
자신이라도 그랬을 테니까.
드르륵.
드르륵.
승호의 핸드폰이 또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한서준.
장민재와 같은 선진데이터 시스템의 부장이었다. 이번에도 승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고민을 하던 최기훈이 슬쩍 승호를 불렀다.
“승호야, 잠깐 이야기 좀 할까?”
황호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뭐야, 나는? 나 몰래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잠시면 됩니다. 사장님께는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최기훈의 진지한 표정에 황호근도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둘은 1층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최기훈이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솔직하게 말 해 줄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뭐든 말씀하세요.”
“앱, 보안, 검색 그리고 각종 알고리즘 까지. 정말 실력을 숨기고 있던 게 아니라··· 사고를 당한 후 갑자기 알게 된 거냐?”
진심으로 궁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네. 사고가 기점이었던 건 확실해요. 그 뒤로 예전에 공부 했던 것들이 더 빠르고 쉽게 이해가 되었으니까요.”
“이거 정말 나도··· 사고라도 당해야 하나······.”
최기훈의 실없는 소리에 승호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형수님 생각도 하셔야죠.”
“생각하니까. 이런 말 하는 거야. 잘 다니던 회사 때려 치고, 시내 소프트 만들었는데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났으니까.”
“앞으로 더 잘 될 겁니다.”
“물론 그렇겠지. 네가 계속 다닌다는 전제 하에서는.”
잠시 숨을 고른 최기훈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나도 눈치는 있다. 장민재 부장이 계속 널 스카우트하려고 연락하고 있지?”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아예 전화를 안 받고 있는데도 계속 연락을 하네요.”
“나라도 그럴 거야. 네가 보여준 실력은 놀라움을 넘어서는 것이니까. 선진에서 말하는 1%에 의한 경영. 그 1%에 딱 어울리는 게 너니까.”
승호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쑥스러워 했다.
“하하, 뭘 그렇게 까지······.”
최기훈이 승호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사장님이나 나도 무작정 정(情)으로 널 붙잡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서 부장으로 진급도 시킨 거고. 그럼에도 자꾸 너에 대한 대우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몇 번이나 말씀 드렸다시피, 당장 회사를 이직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언젠가 네가 떠나는 그때. 어쩌면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야. 당장 네가 아니었다면 다음 달이면 회사는 망했을 테니까.”
“앞으로 자체 기술력을 키우면 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회사에 스터디도 조직 되었으니까요. 제가 열심히 가르치다 보면······.”
최기훈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도 우리 회사 직원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나 능력에 대한 평가는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최기훈이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승호도 최기훈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직원들의 실력으로는 시내 소프트 한계가 명확하다.
최기훈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정말 미친 듯이 몰아친다면 폭발적으로 성장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럴 수도 있다는 미래.’
현재 우리 직원들의 능력은 아쉬운 점이 많아.”
승호는 원론적인 답변밖에 하지 못했다.
“열심히 한다면··· 되지 않을까요.”
“프로그래밍 세계만큼 재능이 중요한 분야는 없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코드제로에서 그레이드 1을 달성할 수는 없어.”
최기훈 자신이 그랬다. 미친 듯이 노력했지만 그레이드 5가 한계였다. 최기훈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지금 까지 지켜본 바로 너에게 시내 소프트의 부장 자리는··· 너무 작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아.”
최기훈이 빠르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너에게 줄 수 있는 게 많지가 않구나.”
둘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커피 숍 한 쪽에 앉아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서 최기훈의 목소리는 똑똑히 승호에게 전달되었다.
“직위는 더 올려주고 싶어도 네가 거부하고 있으니. 제외. 월급은 현재 회사 수입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남은 건······.”
승호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주식.
이어진 말은 승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시내 소프트는 자본금 3억에 80%를 사장님이 나머지 20%를 내가 가지고 있는 법인이다. 사장님께 말해서 최소한 20%의 지분을 네게 넘기라고 하마.”
“20% 씩이나··· 그렇게 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기훈이 고개를 저었다.
“20% 라고 해봤자. 6천만 원. 이번에 네가 낸 성과. 그리고 앞으로 낼 성과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알 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최기훈은 입을 닫았다. 승호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어지럽기만 했다.
***
몇 번을 전화 했는지 모른다. 그때 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만남을 거부했다. 송보나는 할 수 없이 시내소프트가 있는 가산디지털 단지 까지 찾아왔다.
“휴우··· 뭐, 이런 일까지 해야 되는 건지······.”
-부장님 말씀 들었지? 강승호라는 그 친구 무슨 일이 있어도 데려와.
-아, 아니. 그걸 왜 제가.
-그러면 내가 해?
-아,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해. 사실 시내 소프트도 자네가 추천해서 섭외한 회사잖아.
자신이 이런 일 까지 해야 한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신은 대리.
과장인 김신우가 시키면 해야 한다.
가산 디지털 단지 역에 도착한 송보나는 시내 소프트가 위치한 포스트 타워 3차 15층으로 이동했다.
“여긴가 보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작은 문에 작은 명판이 달려 있었다.
-시내 소프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안내 데스크도 없었다. 문에서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여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선진 데이터 시스템에서 왔습니다. 보안 솔루션 관련해서 협의 할 사항이 있어서요.”
여직원이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선진이요?”
“하하. 네.”
“잠시 만요. 사장님!”
여자가 사장을 불렀고, 송보나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어디 보자······.’
자신이 여기 까지 온 이유.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사실 보안 솔루션 계약은 지난 번 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크게 논의 할 사항이 없었다.
‘찾았다.’
송보나가 성큼성큼 승호에게 걸어갔다.
사무실 가장 안쪽 자리.
명패에는 강승호 부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송보나는 자신이 받았던 명함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는 사원이었는데··· 벌써?’
일을 하던 승호가 고개를 들었다.
“어, 송 대리님?”
“하하, 네. 안녕하십니까. 강··· 부장님.”
“여기는 어쩐 일로··· 혹시 연락하셨던 그 건이라면 분명히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송보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계약 관련해서 왔습니다.”
송보나는 일단 계약을 핑계로 친분을 쌓고 스카우트 이야기를 꺼낼 심산이었다.
“계약이라면······.”
“이번에 납품 받기로 한 코드 난독화 솔루션 외에도 지난 번 보여주셨던 패킷 체크 툴도 납품 받고 싶어서요.”
송보나의 말에 옆에 있던 최기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아, 그런 일이라면 굳이 여기 까지 오시지 않아도 저희가 찾아 갔을 텐데요.”
“바쁘신 것 같아서 직접 왔어요. 언제나 저희가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송보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대답했다. 어찌됐건 지금은 자신이 ‘을’이었으니까.
“회의실로 가실까요. 나리씨 여기 차 좀 부탁해요.”
송보나는 팔짱을 끼고 승호를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헤드헌터에게 일을 맡겨 보았다.
그러나 번번이 퇴짜를 당했다는 말만 돌아왔다. 자신도 몇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스카우트의 ‘스’자를 꺼내는 순간 단단한 벽에 부딪쳤다.
-그런 이야기라면 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을 여기까지 찾아오게 만들었다.
“그러면 코드 난독화 솔루션 계약은 말씀 하신 데로 진행하겠습니다.”
송보나는 승호를 지켜보느라 듣지 못했다. 황호근이 다시 송보나를 불렀다.
“송 대리님?”
“아, 네.”
“난독화 솔루션 계약 내용은 이미 교환한 내용대로 진행 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다음으로 네트워크 패킷 체크 솔루션 건 말씀 드리겠습니다. 강 부장.”
승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송보나는 더욱 집중해서 승호를 살폈다.
‘어떻게 해야 꾀어 낼 수 있을까. 연봉? 지위? 능력 있는 동료?’
그 사이 승호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미 정해진 규칙에 따라 패킷을 필터링해 주는 기술은 시중에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OSI 3, 4 계층에서 동작하는 것으로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은 있지만 IP 주소 변조 같은 공격에는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승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2세대 스테이트풀 인스펙션 방화벽. 그리고 현재는 3세대라 불리는 애플리케이션 방화벽까지 발전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송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핵심은 지난번에 보여 주셨던 것처럼 방화벽을 통해 들어오는 패킷을 빠른 속도로 체크해서 문제가 되는 상황을 발견 할 수 있냐는 겁니다.”
아직 실제로 개발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할지 머릿속에 그림은 있었다.
승호가 화이트보드에 단어를 하나 적어 나갔다.
Advanced Levenstein’s Algorithm.
“이름 하여 A-레벤슈타인 알고리즘이 적용된 패킷 분석 솔루션 덕분입니다.”
송보나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A-레벤슈타인 알고리즘이요?”
“네. 레벤슈타인 알고리즘 관련해서는 포트에서 찾아보시면 될 겁니다. A는 제가 개선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붙어 있는 일종의 태그라 생각하시면 되고요. 저희 검색 솔루션에 적용된 알고리즘을 응용하여 만든 솔루션입니다.”
송보나가 입술을 오므리며 화이트보드를 보았다.
“그러면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었다는 말인가요?”
“네.”
“이걸로 지난 번 해킹 공범을 잡으신 거고······.”
“그렇습니다.”
확실히 흥미를 끄는 솔루션이었다. 라온정보통신이 협력사에서 제외되고 마침 네트워크 보안 관련 협력사가 필요한 참이었다.
“해당 솔루션의 단가는 요?”
“하루 1GB 처리를 기준으로 1년에 백만 원.”
“네?”
“저희는 이제 서비스 회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용도 사용량에 따라 책정되는 겁니다.”
송보나가 기억하기로 하루에 선진데이터시스템 센터내로 유입되는 데이터가 대략 100GB 정도였다.
그렇다면 일 년 기준으로 1억에 달하는 비용이었다.
문제는 일회성이 아닌 매년 같은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양을 사용 하실수록 가격이 다운 됩니다. 처음부터 하루 10GB의 정액 요금제를 사용하시면 70만원. 100GB를 예약하고 사용하시면 50만원 까지 해드립니다.”
그렇다고 해도 1년 5천에 달하는 비용이었다. 선진의 규모에 비해 얼마가 안 되는 비용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하루 100GB의 사용량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비용도 증가한다는 뜻.
회사는 고정비가 생기는 것도, 증가하는 것도 극도로 꺼리는 생물이다.
“고가 사양의 방화벽 가격이 솔루션 까지 포함해서 대당 비용이 오백만 원을 넘지 않아요. 그 돈이면 매년 방화벽 10 대를 살 수 있는 돈인데······.”
라온정보통신에서 납품하던 건 500만원도 아닌 사 백.
한 대를 사면 수년을 사용한다.
더구나 500만원이라는 금액에는 하드웨어에 솔루션이 합쳐진 금액.
그런데 이건 패킷 분석 서비스를 사용하는 금액만 오 천이다.
승호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 만한 가치를 충분히 하니까요.”
이 건은 자신이 결정할 수 없었다. 자신은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 온 것이지 계약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이건 제 선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결정 하실 수 있는 분께 연락드리세요. 계약은 그때 진행해도 되니까.”
“알겠습니다. 일단 위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빨리 결정하셔야 할 거예요. 일이 많이 밀려 있어서. 자칫 후순위로 밀릴 수도 있어서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순간 회의실 문이 열리고, 선진데이터시스템 장민재 부장이 들어왔다.
“무슨 말이긴. 사람은 하난데 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지. 이제 우리가 약속한 시간인데. 그만 끝내 주겠나?”
송보나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