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62)
탑 코더-262화(262/303)
262화 ONE 제국
근정전 바깥.
접견실에서 황호근과 비서가 초조한 표정으로 승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받아들일까.”
“아마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이제 스마트 시티는 시대의 흐름이니까요. 더구나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수락한 조건입니다. 수락하지 이유가 없을 겁니다.”
“하긴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중국은 또 다르니까.”
황호근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스마트 시티를 통제하는 건 ONE이다. 그걸 한국에 둔다. 그러면 흡사 전 세계 스마트 시티를 한국에서 통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이미 동남아 쪽은 대부분 한국에 두기로 협의가 끝났습니다. 사우디에서도 전쟁위험이 많은 사막보다는 한국이 안전하다. 판단했고요.”
“물론 동남아는 한국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테지. 하지만 사우디는 미국에 두자는 걸 강 대표가 설득한 것 아닌가.”
“그 강 대표님이 직접 설득하고 계십니다. 별일 없는 한 수용 될 겁니다.”
황호근이 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무리한 요구로 혹여 하오란의 분노를 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대가 간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대국 중국이다.
‘쩝, 이런 생각 자체가 아직 고정 관념을 깨지 못해서 일지도 몰라.’
자신의 이런 생각과 달리 승호는 거침이 없었다. 미국을 상대로도 비슷한 조건을 내걸었으니. 비서가 말을 이었다.
“미국과도 비슷한 조건으로 협상 중입니다. 중국이라고 다른 선택을 하지는 못할 겁니다.”
“흠······.”
ONE 제국.
황호근은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민간 기업은 ONE API를 사용하고, 정부는 ONE AI 정부 패키지를 쓴다. 그리고 정부를 이루는 각 도시는 시내소프트에서 만든다. 이 고리가 완성된다면 정말 ONE 제국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때.
비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며 승호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근정전을 나와 차에 올라탈 때까지도 승호의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황호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기부는 10조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반색하더군요.”
“그럴 겁니다. 현 상황이 녹록지 않을 테니까요. 민심이 이반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습니다. 공안을 이용해 공포를 조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고요.”
그러자 비서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리고 원 서치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습득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중국 정부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투자 건도 그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황호근이 반색하며 물었다.
“그럼 된 겁니까?”
“단, 조건을 걸었습니다.”
“미국처럼 백업시스템은 자국에 두라?”
“네. 같은 조건이었습니다. 그 백업시스템도 한국과 통신을 할 수 없어지면 멈춘다. 그런 조건을 추가했지만요.”
“허 중국까지······.”
승호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이걸 가지고 미국으로 가서 중국도 이렇게 했다고 하면. 그들도 더는 고집을 피우지 못할 겁니다.”
“아······.”
대화를 나눌수록 승호의 미소는 짙어져 갔다.
“그리고 중국, 미국이 받아들인 조건을 다른 나라가 거부하기는 힘들 테고요.”
“앞으로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되겠군요.”
승호가 자동차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사실 처음에는 미국에 둘까도 고민해 봤는데.”
“신뢰가 깨졌으니.”
“토마스나 하오란 둘 다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한국 정부와는 크게 트러블이 없었어요. 그래도 조국은 조국인 모양입니다.”
청와대는 오히려 자신을 도와주었다. 그 사실을 승호는 잊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비서가 입을 열었다.
“보도 자료 배포 할까요?”
이미 몇 가지 시나리오에 대해 기사 작성을 마쳐 두었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핸드폰을 들었다. 채 1분도 되지 않아 전 세계로 속보가 전달 되었다.
***
-시내소프트, 중국에 통 큰 10조 기부.
-중국 스마트 시티 건설 본격화. 20조 투자 결정.
-하오란과 면담 이후. 투자 계획 발표. 사전 조율 있었나.
-총 30조원 규모의 페이백. 시내소프트 중국을 사로잡다.
그 뉴스를 김희건도 보고 있었다.
“확실히 통이 큰 친구입니다.”
마침 고동만도 함께 있었다. 밀려드는 중국발 반도체 수요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른 걸 먼저 의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총 30조 규모가 중국에 투입되겠군요. 수천억 달러가 빠져나가 곳간이 텅텅 비었을 텐데 30조로 될지는 모르지만.”
“마중물은 될 겁니다. 시내소프트 투자 소식이 전해 지면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도 다시 중국으로 눈을 돌릴 테니까요.”
“하긴··· 하오란 주석도 그래서 거절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말에 김희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미국의 로비스트를 통해 전해 들은 내용 때문이었다.
“그럼 중국도 한국에 스마트 시티 통제 시스템을 두는 걸 허용했을까요?”
“네. 그러지 않았다면 강 대표가 투자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아는 강 대표라면 그랬을 겁니다.”
“흠······.”
“이런 식으로 가면 정말 시내소프트가 전 세계를 잡아먹게 되겠네요. 우리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어떤 변화 말씀 이십니까?”
“이미 엔진 S가 ONE을 채택해 사용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회사 내 다른 시스템들도 점점 ONE API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거라면 이야기를 듣자 하니 자체 AI보다 성능이 뛰어나 비용 대비 효율 면에서 따라올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쓰지 않을 수도 없다고.”
“네. 이미 MG 전자에서도 TV에 ONE API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서비스 매출이 성장했고요. 그러니 선진에서도 ONE API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결국, 점점 종속되어 간다······.”
“차라리 전면 도입을 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비스 부문은 시내소프트와 전적으로 협력하는 겁니다.”
“종속을 탈피하는 게 아니라요?”
고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내소프트는 우리만의 협력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다른 폰에도 엔진 S처럼 ONE이 탑재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망고사에 점하는 우위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지금 엔진 S가 중국을 휩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김희건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고동만의 의견이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협력사 그 이상의 위치에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를테면 합작회사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시내소프트는 ONE OS를 발표하며 OS 시장 진출까지 선언했습니다. 즉 PC만이 아니라 스마트 폰 OS도 곧 만들어 낼 거라는 말이죠.”
“그 말인즉슨······.”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엔진 S를 그 OS에 최적화해서 만드는 겁니다. 비록 우리가 만든 OS는 망했지만 시내소프트가 만들면 다를 테니까요. 회장님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 중국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과연 윈더사나 포트사가 버틸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김희건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꾹 닫은 채 생각에 잠겼다.
‘아마 버티지 못하겠지. 그러면 이제 정말 선진은 시내소프트 OEM 기지로 전락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고동만은 김희건과 10여 년을 함께 일했다. 지금 이 순간 김희건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우리는 제조에 집중하면 됩니다. 시내소프트가 갑자기 반도체를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요. 스마트 폰도 어차피 포트에서 엔드로이드를 수입해서 쓰고 있는 실정 아니겠습니까.”
“이미··· 포트는 플랫폼으로써의 위치가 공고한 데 그게 무너질까요?”
“포트가 있기 전 PDA가 있었습니다. PDA OS의 절대 강자는 윈더 였고요. 이제 ONE이 생겨났습니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나타날 무궁무진한 서비스가 나타날 겁니다. 포트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김희건이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전 세계에 시내소프트 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 줄을 잘 못 서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즉 선진에서 제작하는 모든 제품을 시내소프트 최적화 버전으로 만들자는 겁니다. 엔진 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선진이 아니라 시내소프트를 떠올릴 정도로.”
김희건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극단적인 선택이었지만 왠지 맞는 길처럼 느껴졌다.
***
새롭게 미 대통령이 된 에드워드 브룩이 비서가 건네 문서를 집어 들었다.
“중국도 했으니 미국도 해라.”
“네. 만약 하지 않으면 디트로이트는 부산을 넘어서는 스마트 시티는 안 될 거라고 합니다. 안전장치도 없이 외부에 ONE을 제공할 수는 없다면서.”
“단호하군.”
비서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토마스 대통령과의 일을 겪으며 신뢰가 깨졌으니까요. 정상적으로 납품을 진행했다가 또다시 ONE을 해킹하겠다고 달려들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다고 합니다.”
에드워드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디트로이트의 운영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네. 한국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디트로이트도 멈춘다.”
“도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기능은 유지된다고 했습니다. 생활 편의 기능만 사라질 뿐.”
에드워드가 고개를 들어 비서와 눈을 맞추었다.
“자네, 스마트 폰을 쓸 수 없는 세상이 상상되나?”
“안됩니다.”
“사람이란 게 그래. 처음에는 몰랐다가 한 번 맛을 들이면 없어서는 안 될 게 되지. 스마트 시티도 같아. 한 번 그 맛을 들이면 기존에 필요 없었던 것들도 꼭 필요한 게 되어 버려. 사람은 먹고, 자고, 싸기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니까.”
비서도 수긍하는 바였다. 그랬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에드워드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신뢰를 깬 건 너희들이 먼저다. 너희들이 먼저 신뢰를 보여라. 그러면 생각해 보겠다.’
협상 과정을 요약 할 수 있는 한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에드워드는 입맛이 썼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어쩌다가.’
협상에서 을의 위치에 서게 됐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원인을 찾으면 혹시나 현 상황을 타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서.
하지만 참모진들이 수 없는 시간 동안 머리를 맞대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받아들여야 하나······.’
시내소프트가 들고 있는 명분이 너무 많았다.
-북 핵 포기 선언 건.
그런데도 미국이 취한.
-AI 정부 ONE 해킹 건.
그리고 만약 ‘디엔드’ 같은 놈이 미국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졌다. ‘디엔드’로 확인된 중국 측 피해액만 5조 달러를 넘어간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리 세계 최강의 나라라 지만 미국이 그런 타격을 받으면 강대국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어쩔 수 없군.’
결론을 내린 에드워드가 비서를 불렀다.
“연결하게. 협상 진행하자고.”
시내소프트의 조건을 수용한다는 의미였다. 비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어차피 다른 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