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64)
탑 코더-264화(264/303)
264화 ONE 제국
청와대 경제수석실.
그 밑에서 일하고 있는 박신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시내소프트 관련 동향 파악이었다. 회사가 어떤 사업에 투자하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원하는 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파악해 보고 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공정위로부터 연락이 한 통 도착했다.
“독과점 조사요?”
-네. 그렇지 않아도 주시하고 있었는데 외부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자료 요청을 하셨다고······.”
-시내소프트가 국내 인터넷 서비스에서 시장 점유율 절반을 넘어선 건 사실이니까요. 그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흠······.”
공정위 직원은 바로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를 읽었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싫어하는 일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덮을까요?
“아닙니다. 원칙에 따라 조사를 해봐야죠.”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뚝.
연락이 끊어졌다. 박신우는 바로 경제수석을 찾아갔다.
“수석님, 공정위에서 시내소프트 조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경제수석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며 되물었다.
“왜?”
“독과점 문제 관련해서 외부 민원이 들어 왔다고 합니다.”
“허, 참. 이 시점에?”
이 시점.
시내소프트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성을 무너뜨리고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전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한창 주가를 날리고 있는 이때.
“국내 독과점 업체가 되었으니까요.”
경제수석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그럴 거면 국세청에 세무조사도 하라고 하지. 검찰에는 정경 유착 조사하라고 하고. 하여간 융통성이 없어요. 융통성이.”
“······.”
“이 사실이 언론에 들어가면 국민이 뭐라 생각하겠어. 지금 정권 지지율 보다 시내소프트 지지율이 더 높은 걸 모르나··· 할 거면 다음 정권에서나 하지.”
경제수석이 혀를 차며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일단 알았다고 했습니다.”
“시내소프트 반응은?”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자료 제출도 빠짐없이 했고요.”
경제수석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걸 막아주고, 좋은 모습을 한 번 보여줘야 하나······.’
시내소프트에는 빚을 많이 지워두면 둘수록 이득이었다. 시가 총액이 세계 1위라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그 거대한 중국조차 시내소프트에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시내소프트가 콧바람을 불면 한국의 인당 4만 불 시대는 바로 막을 내려야 한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막아주는 건 어떻게 생각해?”
“공정위에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자는 말입니까?”
“뭐, 그렇다기보다는 공정위가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같이 살펴보자 이 말이지.”
“아마··· 강 대표가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네. 원리 원칙을 따지는 사람이니까요.”
“자네 말은 그냥 둬도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이지?”
경제수석이 눈을 반짝거렸다. 박신우는 저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보고 책임지라 이 말이지.’
쩝.
책임지라면 져야지.
“네. 그게 더 나은 방향인 것 같습니다.”
“알겠어. 그렇게 보고 하지.”
경제수석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내소프트 일은 참모진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까지 바로 보고 되는 사항이었다. 그게 지금 시내소프트가 청와대에서 가지는 위상이었다.
***
한창 합병 논의를 하던 두 회사의 회장이 다시 만났다. 갑자기 들어온 시내소프트의 제안 때문이었다. 이정환이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의도일까요. 갑자기 합병 제안이라니.”
“합병 소식이 흘러 들어간 모양입니다. 그러니 역으로 제안이 온 걸 테고요.”
“아무리 우리 둘이 합병한다고 해도 시내소프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인데······.”
“완전 독점 기업이 된다면 인터넷 광고 단가를 시내소프트 마음대로 설정 할 수 있게 되니까요.”
“하긴··· 그렇긴 합니다.”
바나나톡 CEO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좀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완전 독점체제가 되어 버리니 공정위가 시내소프트 제안을 허락해 줄지는 의문이지만 우리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제안 아니겠습니까.”
“······.”
“우리 둘이 합병한다고 해도 사실 크게 희망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내소프트와 합병되면 다르지 않겠습니까.”
이정환이 미간을 찌푸렸다. 바나나톡 CEO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주주들도 아마 환영할 겁니다. 회사 주가가 날아갈 테니까요.”
“흠······.”
“너무 제 이야기만 했군요. 대표님 고견이 있다면 경청하겠습니다.”
바나나톡 CEO가 한발 물러서자 이정환이 팔짱을 풀고 입을 열었다.
“저도 내심 두렵기는 합니다. 시내소프트 기술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고 포기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우리는 포트와 비교해 인공지능 기술에서부터 검색 엔진까지.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정환이 서서히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시장에서 이기는 건 기술력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지역 특화. 넥스터나 바나나 톡은 한국 특화 서비스로 자리를 잡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포트도 고전을 면치 못했고요.”
“시내소프트도 한국 기업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이기도 합니다. 한국 맞춤형 서비스로 송곳처럼 사용자들의 마음을 찌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스탠다드 한 기준을 자사 서비스에 적용해야 할 테니까요.”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시내소프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넥스터가 독점을 했던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그럼 우리끼리 합병하자는 말씀입니까?”
이정환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합병을 해서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나나톡 CEO는 이정환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 말씀은······.”
“이런 논리를 만들어 최대한 몸값을 높게 불러 보는 겁니다. 되면 이득이고, 안 되면 원래 진행하려 했던 두 회사끼리의 합병을 진행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바나나톡 CEO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과연 그게 먹힐까요.”
“어차피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입니다. 그때 중요한 건 두둑한 배짱에서 나오는 말 빨. 현재의 기술력이 아니니까요.”
“흠······.”
“뻥카라도 쳐 봐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바나나톡 CEO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값을 높게 받을 수 있다는데 거부할 사람은 없다. 바나나톡 CEO도 그랬다.
***
비서를 통해 들어온 인수 가격에 승호가 픽 코웃음을 터트렸다.
“뭐? 현 주가의 50%를 프리미엄으로 달라.”
“네. 두 회사에서 들어온 공식 입장입니다.”
“현 시가 총액이 얼마였지?”
“어제 종가 기준으로 각각 10조 3천억, 4조 2천억입니다.”
승호가 냉소를 흘리며 물었다.
“추세는?”
“원 서치와 원 톡이 출시된 이후 꾸준히 흘러내리는 중입니다. 거의 1/3 토막이 났습니다.”
승호의 말투가 서늘해졌다.
“그런데 거기에 50%를 더 달라······.”
승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비서가 살짝 긴장하며 되물었다.
“좀 더 기다려 볼까요? 어차피 주가는 더 내려갈 것 같은데.”
승호가 혀로 입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검색, 채팅 서비스는 거의 다 넘어왔고, 주가를 지탱하고 있는 건 나머지 플랫폼 사업인데······.’
남은 건 웹툰 같은 컨텐츠 사업.
그게 바나나톡과 넥스터를 지탱하고 있는 중요한 기둥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둥이 무너졌으니 나머지 사업도 위태위태했다. 생각을 정리한 승호가 물었다.
“현재 디즈니도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나?”
“네. ONE API를 이용해 자사 컨텐츠 추천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리 한 번 마련해봐. 그쪽과 합작해서 컨텐츠 시장 진출 관련 논의 좀 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비서가 물러나고, 승호는 바로 ㈜제로원의 대표이자 자신의 자산 운용을 하고, 있는 이성욱에게 연락을 취했다.
-네 대표님.
“숏 포지션을 잡아야 할 경우가 생겼습니다.”
-어디로 잡을까요.
“바나나톡 그리고 넥스터. 주가가 흘러내리는 추세가 더 가팔라 질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이성욱이 바로 공매도 주문을 넣었다. 승호가 가진 재산만 수백조가 넘는다. 공매도로 주가를 찍어누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
-시내소프트, 디즈니와 손잡고 한국 컨텐츠 시장 진출 본격화.
-디즈니 산하 마블 코믹스 웹툰 한국에서 볼 수 있게 되나?
-디즈니 효과 기대로 시내소프트 또 한 번 재도약.
-미디어 산업에도 발을 내디딘 시내소프트 그 끝은 어디인가.
그에 비교해 넥스터와 바나나 톡의 주가는 지하 밑에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넥스터의 시가 총액이 10조에서 단숨에 2조가 줄어든 8조원 대로 떨어진 것이다. 그건 바나나톡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두 회사 수장들의 안색이 거멓게 변한 이유였다. 먼저 바나나톡 CEO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종의 경고 아닐까요. 너희들의 그 제안 들어주지 않겠다.”
이정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정말 디즈니를 필두로 세계 컨텐츠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진출한다면.
넥스터는 당장 내년을 기약할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트리고 있는 거란 말입니까?”
“실제로 미디어 쪽에도 손대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이미 타임지 까지 인수했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뭐가 됐든··· 앞일이 캄캄해졌습니다.”
까득.
이정확이 이를 갈았다. 뭔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냥 두 회사 합병을 추진할까요? 우리 둘이서 대항하면 분명 수가 나올 겁니다.”
“오늘 시내소프트에 뜬 공고 못 보셨습니까?”
“공고요?”
“신사업 진출을 위한 경력 개발자 대량 고용. 000명. 회사 내부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알아보니 헤드헌터를 통해서 이직 제안이 엄청나게 오고 있더군요.”
“······.”
“아마 넥스터 쪽에도 많이 갔을 겁니다. 바나나톡 보다 개발자가 많으니.”
“······.”
“그리고 아시다시피 시내소프트 연봉은 업계 최고입니다. 미국 실리콘 밸리 못지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죠. 개발자들의 대량 러시가 시작될 겁니다.”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해야겠군요.”
“그런다고 될까요? 연봉부터 수 천만 원 차이가 납니다. 저라도··· 시내소프트를 선택하겠습니다.”
이정환은 이번에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저 한숨만 나오고 앞날이 암담하기만 했다.
그때.
드르륵.
드르륵.
식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불길한 진동음을 토했다.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
-넥스터 하한가.
멍하니 그 문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바나나 톡 CEO도 비슷한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한 시간 만에 또다시 시총 수조 원이 날아가 버렸다. 식탁 위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식사처럼 식당 내부 분위기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정환이 겨우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연락··· 해볼까요?”
“하한가를 맞은 상황에서 말입니까?”
“······.”
“······.”
다시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