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67)
탑 코더-267화(267/303)
267화 초 격차
강남역.
선진전자 본사 꼭대기 층에 김희건의 사무실이 있었다. 시의적절한 판단으로 회사를 또 한 번 도약 시켰다는 점에서 호평가를 받는 김희건.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동만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포트에서 실리콘 밸리 연합 합류 요청이 왔다고요?”
“네. 만약 ONE OS를 적용한 폰을 출시하면 앞으로 엔진 S에 들어가는 엔드로이드 지원을 끊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 까지 풍겼습니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군요.”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김희건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듣고 있으니 치킨 게임을 통해 반도체 업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졌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시내소프트가 그때의 선진인 거군요.”
“강 대표라면 아마······.”
“대표님 생각이 맞을 겁니다.”
“흠······.”
김희건이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세상이 변해가고 있었다.
시내소프트와 그 외 기업들.
서서히 두 개의 진영으로 편이 나뉘고 있었다. 시내소프트와 가장 많은 비즈니스 모델을 공유하는 포트가 반대편의 선봉에 서 있었다.
“ONE OS가 분명 매력적이긴 하지만 아직 전 세계 모바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건 포트의 엔드로이드입니다. 이번만큼은 저도 판단이 어렵습니다.”
“ONE OS의 적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건 사장님이었습니다.”
“포트가 이렇게 나올지는 예상치 못했을 때의 판단이라. 죄송합니다.”
김희건의 질책성 발언에 고동만이 바로 수긍했다. 현재 선진에서 팔리는 폰의 99%가 엔드로이드로 만들어져 있다. 합류하지 않으면 99%의 폰 판매가 중지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태가 좋지 않았다. 김희건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열심히 자체 OS를 만들려 했건만.”
고동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봐야 할 게 있습니다.”
“만약 시내소프트가 ONE을 뺀다고 했을 때.”
“네.”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다만 대안이 없을 뿐.”
“실리콘 밸리 연합이 말하는 게 그겁니다. 그 대안이 되어 주겠다.”
김희건이 지긋이 고동만을 바라보았다.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고동만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직 포트의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시내소프트의 인공지능 기술은 알 고 있었다.
5단계 중반에서 6단계 초입.
그 사이 어디쯤이다.
5단계 중반은 일반적인 사람의 지능을 갖춘 수준. 6단계 초입은 회사의 핵심 인재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다. 6단계가 정말 된다면 인공지능에게 세금을 물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시내소프트 기술력이 가진 파급력은 폭발적이었다. 김희건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니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군요.”
“답답해서 얼마 전 자식놈에게 물어봤습니다. 지금 ONE이 어디까지 왔냐고.”
고동만의 자식이라면 고동수.
시내소프트에서도 핵심 개발자로 있는 친구였다.
“그래서요?”
김희건이 귀를 기울였다.
“선진의 전대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하더군요.”
“초 격차?”
“네. 타사와 ONE 사이에 벌어진 갭이 그 정도라고 합니다.”
그 말에 김희건의 마음은 한쪽으로 급속도로 기울었다.
그때.
고동만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급히 연락을 받은 고동만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그래.”
“알았어.”
“왜, 무슨 일입니까?”
“결국, 망고사의 전 제품이 중국 관세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합니다.”
현재 망고사의 대부분이 제품이 중국에서 수입된다. 한국에서 수입되는 엔진 S는 한미 FTA에 따라 관세가 면제되지만 망고사는 미-중 무역 합의에 따라 일정액의 관세를 부과받고 있었다. 그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미 정부도 실리콘 밸리 연합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요?”
“대외적으로는 아니지만, 내부적으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큽니다.”
“일단 강 대표를 만나야겠습니다. 만나서 결정하도록 합시다.”
고개를 끄덕인 고동만이 급히 연락을 취했다.
***
다행히 바로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승호는 급히 찾아온 김희건을 반갑게 맞이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 약속을 잡으려 했는데.”
김희건이 찾아간 곳은 청담 시내소프트 본사 대회의실.
그곳에 있는 건 승호만이 아니었다. 자신도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김희건이 그 사람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엔드 소프트 사장님께서는 어쩐 일로······.”
엔드 소프트.
리니아 연대기라는 희대의 명작을 만들어낸 회사의 사장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개발자가 노트북을 켜놓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승호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답했다.
“모바일용 ONE OS. 그걸 확산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지 고민을 한 번 해봤습니다.”
김희건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승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내린 결론은 게임. 포트의 앱 스토어가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항목이기도 하죠. 많은 사용자가 성능 좋은 폰을 사용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번에도 김희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자사 마케팅팀의 설문 조사 결과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20, 30대 남성들중 게임 때문에 핸드폰을 바꾼다는 비중이 높기는 했어. 그리고 20, 30대층은 최신 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연령대고.’
승호가 흐뭇한 표정으로 엔드소프트 사장인 김진택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여기 사장님과 콜라보 레이션을 했습니다. 세계를 놀랍게 만들 게임을 한 번 만들어보자. 그걸 모바일 용 ONE OS 출시와 함께 발표하자.”
“그··· 결과가 나왔다는 말입니까?”
“네. 백문이 불여일견 한 번 보시죠.”
승호는 근처에 있던 VR 기기를 내밀었다. 김희건은 머리에 쓰는 순간 황당함을 느끼고 바로 기기를 벗고 말았다.
“이, 이게 뭡니까.”
김진택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ONE 덕분에 실제 여성과 완벽하게 싱크를 맞춘 게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
김희건의 황당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걸 정말 출시한다고?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김진택이 한 번 더 VR 기기를 권했다.
“한 번 해보십시오. 정말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베타 테스터들의 반응도 엄청납니다. 거의 80%의 유저가 출시 즉시 구매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김희건이 마른 침을 삼키며 겨우 의견을 개진했다.
“이, 이러면 너무 남성 편향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여성 유저들에게 자칫 반감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성별 선택에 따라 다른 연애 시뮬레이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정인해, 박보건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미남 배우 정성우까지 섭외해서 그들의 말투와 행동을 완벽하게 학습시켰습니다. ONE 정말 대단하더군요.”
김희건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가, 강 대표님. 이게 정말 될 거로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이 뭔지 아십니까?”
김희건은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에 더는 듣고 싶지 않았지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승호가 신이나 떠들어 댔기 때문이었다.
“중국 배우를 비롯해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과도 계약을 통해 연예 시뮬레이션 게임에 등장시켰습니다.”
김희건이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그, 그들이 정말 이런 게임에 자신들의 초상권 사용을 허락했단 말입니까?”
“돈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지하게 말씀드리는데 한번 해보십시오. 이것으로 세계는 ONE의 성능에 또 한 번 놀라게 될 겁니다.”
놀라긴 할 것 같았다.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으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니.
당장 자신부터 놀라 자빠질 것 같았으니까.
***
미국 실리콘 밸리 포트 본사.
회장 라이언의 안색이 어두웠다.
“선진으로부터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까?”
라이언의 전속 비서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하고 있습니다.”
“엔드로이드를 빼겠다고 했습니까?”
“직접적으로는 하지 않고, 지원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 정도를 흘렸습니다.”
“선진에서 출시하는 엔진 S의 99%가 엔드로이드 탑재 폰인데 그걸 포기하고서라도 시내소프트와 함께 하겠다······.”
“저희의 제안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ONE OS 전용 폰을 생산한다고 해서 엔드로이드를 뺀다. 지금까지 선진에서 다양한 OS 폰을 생산했지만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엔드로이드를 뺄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저 가벼운 훅이랄까. 해주면 좋고 안되면 그만인 그 정도였다.
“실리콘 밸리 연합 합류 제안은요?”
“그것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엔진 S에 ONE을 탑재할 정도로 두 회사가 협력하고 있는 수준이다 보니.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미 선진의 빅스는 유명무실한 프로젝트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그곳의 인공지능 개발자들 대부분이 시내소프트로 이직했고요.”
“흠······.”
“문제는 우리 쪽 이탈자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리콘 밸리 연합을 만들어 다행히 그 추세가 멈췄지만, 헤드헌터 쪽에 시내소프트 이직 문의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쉽지 않군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다른 회사와 함께 협력해서 연구하면 ONE의 대항마가 탄생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제프의 제안을 받아들이신 건 정말 잘하신 거로 생각합니다.”
라이언이 씁쓸히 중얼거렸다.
“어차피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말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망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라이언이 비서에게 물었다.
“다음 주에 ONE 개발자 컨퍼런스를 한다고요?”
“네. 그때 ONE OS를 공식 발표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 공개된 일정표에 OS를 비롯해 관련 어플리케이션 소개도 대량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뭐, 주목할 만한 점은 없었습니까?”
“게임 섹션에 반나절의 시간을 할애한 게 좀 특이하긴 했습니다.”
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반나절이나? 시내소프트에서 그만큼 다양한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엔드 소프트와 협업을 통해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게임을?”
그 질문에 이번에는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좀······.”
“가져와 보세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비서가 연락을 취했다. 그러자 바로 게임 관련 세팅이 마무리되었다.
핸드폰 한 대와 VR 기기 한 대.
비서가 핸드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ONE OS가 적용된 선진의 폰입니다. 사전 신청을 통해 선정된 사용자들에게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게임은 직접 해보심이······.”
이내 라이언이 VR 기기를 착용하고 환상의 나라로 빠져들어 갔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록 기기를 벗지 않았다. 세 시간 쯤 지났을 때.
탄성을 터트리며 기기를 벗었다.
“엄청 나군요.”
그는 알 수 있었다. 이 게임이 가진 잠재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