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71)
탑 코더-271화(271/303)
271화 초 격차
라이언도 알고 있었다. 인공지능 통합 연구개발 센터의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하지만 이렇게까지 협조가 안 될지는 몰랐다.
“성과가 제로라는 말입니까? 벌써 센터를 발족한 지 3개월이나 지났음에도?”
그 사이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 제프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 기술 내용만 빼내는데 정신이 팔렸습니다. 합심해서 개발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에 늘어진 눈그늘에 거칠게 변한 피부가 지금까지의 고생을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시간 낭비를 한 거군요.”
제프가 단호하게 답했다.
“네.”
라이언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시내소프트와 협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걸까요. 어차피 이대로 있다가는 무너지고 말 테니.”
“중국의 화이가 중저가 핸드폰 시장을 공략해 성장한 것처럼 우리도 시내소프트가 차지하고 있는 프리미엄 시장 한 단계 아래 시장을 공략해 보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라이언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프가 더 잘 알 겁니다. 핸드폰과 인공지능은 다르다는 걸. 불을 켜라고 했을 때 바로 불이 켜지지 않으면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요.”
“······.”
“예상되는 기술 격차는 얼마나 됩니까?”
“얼마 전 강 대표가 리얼 라이프에 들어간 ONE 관련하여 ‘초고도 자가학습 인공지능’이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라이언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제프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 논문과 게임을 통해 살펴보면 최소한 10년 정도 될 겁니다.”
“10년··· 말입니까? 그 말인즉슨.”
“네. 아마 AI-IQ 150을 넘긴 것 같습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라이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흠······.”
10년이면 포트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기간이다. 이대로 사업을 피벗 하여 하드웨어 쪽으로 바꿔야 하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명멸했다.
“강 대표가 튜링상 후보에도 올랐더군요.”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이라 불리는 그것 말입니까?”
“네. 이번에 발표한 논문이 학계에 큰 화제를 일으킨 모양입니다.”
그 순간.
라이언은 살짝 이질감을 느꼈다.
‘강 대표 이야기를 꽤 많이 하고 있어.’
제프 월슨.
그는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CEO 특유의 촉이 발동했다.
설마.
“제프, 혹시 제가 섭섭하게 해드린 게 있습니까?”
“하하, 아닙니다. 포트가 시작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하지만.”
올 게 왔다. 역시 자신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
“최근 재미가 없어진 건 사실입니다.”
“······.”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제가 죽기 전에 6단계 인공지능에 도달 할 수 있을지 의문이더군요. 그런데 거기에 도달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라이언은 뒤에 어떤 말이 나올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 방법밖에 없습니까?”
“어차피 돈은 벌 만큼 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의 한계까지 가보는 게 마지막 소원인데 여기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프 월슨.
그가 포트를 떠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아마 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소한 2, 3% 이상은 떨어지지 않을까. 그만큼 그는 회사에 중요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잡고 싶었다.
“연봉을 30% 인상해 드리겠습니다.”
제프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아시지 않습니까. 이미 돈은 제게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그를 잡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라이언의 집무실에 설치된 모니터에 속보가 하나 전해졌다.
-[속보] 시내소프트 ONE AI-IQ 150 공식 발표.
-[속보] AI-IQ 150 인공지능의 신기원을 이룬 시내소프트.
-타사 대비 기술 격차 최소 10년. 미국의 인공지능 기술은 어디까지 와있나.
그 뉴스에 다시 한번 결심을 굳힌 제프가 문을 열고 나겠다. 라이언의 책상 위에는 사직서 한 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제프는 포트의 핵심 중의 핵심.
그가 이직을 결정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실리콘 밸리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그의 이직이 자사의 핵심 개발자들에게도 영향을 줄까 걱정된 CEO들은 바로 면담을 시작했다.
“회사는 최대한 개발 여건을 보장해 드릴 겁니다.”
“연봉 인상을 해준다는 말입니까?”
“30%까지 가능합니다.”
그러자 나노소프트 인공지능 개발팀의 리더 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는 당장 시내소프트로 이직해도 받을 수 있는 돈입니다만.”
“······.”
“저 역시 인공지능의 끝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가득합니다. 아시겠지만 나노소프트에서 받은 스톡옵션만으로도 평생 놀고먹을 돈은 벌었습니다.”
나노 소프트의 CEO가 표정을 굳혔다.
어쩐지.
얼마 전 스톡옵션을 행사해 보유 주식을 전부 처분해 버렸다.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인 돈이 이 천만 달러.
개발팀 리더의 말대로 평생 놀고먹을 돈으로 충분하리라.
“따로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시내소프트 AI-IQ가 150을 넘었다고 하더군요.”
CEO의 표정이 조금 더 굳어졌다. 개발팀 리더가 말을 이었다.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 어떤 성능을 내고 있을까. 어디까지 가능할까. 잠을 자다가도 생각나더군요.”
이직하겠다는 말이었다. CEO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그가 떠나 버린다면 어디서 또 인공지능 개발자를 구해야 한단 말인가. 걱정이 앞섰다.
“······.”
결국, 개발팀 리더가 쐐기를 박았다.
“인수인계할 사람 정해주시면 잘 마무리하고 가겠습니다.”
비단 나노소프트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망고, 인더스 등등 실리콘 밸리에 있는 대부분의 IT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
그가 이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포트 주가는 정말 하락을 면치 못했다. 그에 반해 시내소프트 주식은 다시 한번 신고가를 기록했다.
-시가총액 : 2542조.
시내소프트 하나의 시가 총액이 코스피에 상장된 전체 회사보다 많았다. 그나마 선진 전자가 시내소프트와의 협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면 그 격차는 더 확대되었으리라. 그 회사의 주인이 직원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튜링상이라니 한국에서 그 상의 주인공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야, 역시 대표님. 바쁘신 와중에 언제 또 그런 논문을 준비하신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시내소프트 초창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직원들의 축하에 승호가 빙그레 웃었다.
“여기 예카테리나 박사님과 함께 준비한 겁니다. 그래서 상도 같이 받았고요.”
“대표님이 거의 다 하신걸요.”
“하하, 아닙니다.”
그러자 고동수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둘을 쳐다보았다.
“설마 두 분······.”
예카테리나가 고개를 흔들었고, 승호도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냐.”
“워낙 붙어 있는 시간이 많으시니까요.”
“그리고 난 만나는 사람 있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카테리나, 고동수를 비롯해 황호근까지.
사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누구예요? 대표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이.”
“누굽니까?”
“헐··· 우리 몰래 연애를 하고 있었다니······.”
승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용한 가운데 지인들만 참석해 결혼식 할 거야.”
고동수가 안달이 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상대가 누구냐고요.”
“신지은.”
“네?”
“신지은?”
“연예인 신지은?”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동그랗게 커진 눈이 한 층 더 커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입을 떡 벌린 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만난 지는 1년 정도 됐고, 이제 결혼해도 될 것 같습니다.”
“후아······.”
“말도 안 돼. 그 신지은이라니.”
“회사에 신지은씨 팬이 얼마나 많은데.”
“하하, 뭐 하여튼 그렇게 됐습니다.”
“축하할 일이 하나 더 생겼네.”
“축하드려요.”
“축하합니다.”
계속 쏟아지는 축하 세례에 승호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다들 고마워요.”
“그래서 결혼식은 언제 할 건데요?”
“2달 뒤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오면.”
고동수가 과장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우와 대표님이 결혼이라니. 신지은과 결혼이라니.”
“너도 연애해야지. 아니면 벌써 하고 있나.”
“전 일과 연애 중입니다. 누가 하도 일을 시키는 바람에.”
“큭, 그래 넌 좀 일을 많이 해도 돼.”
“윽! 대표님!”
시끌벅적한 가운데 서로 축하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승호는 이런 따뜻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축하 인사가 끝나갈 때쯤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시 일해야 할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집무실을 다 빠져나가고, 비서가 보고를 시작했다.
“망고사의 고어 비달, 나노소프트의 제퍼슨 데이비스, 인더스의 노먼 라이스, 포토북의 토니 아나야 까지 잇달아 헤드헌터를 통해 이직 신청을 해왔습니다.”
하나 같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자사로 영입하기 위해 특별 관리하는 인재였기 때문이었다.
“제프가 결정하니 물밀 듯이 밀려오는군요.”
“그 밖에도 각사의 인공지능 개발자를 비롯해 일반 서비스 담당자들까지 경력직 지원자 숫자가 지금까지 500명을 넘었습니다.”
“저희 채용 여력이 어떻게 됩니까?”
“아직 1000여 명 까지는 여유가 있습니다. 각 부문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개발 인력은 계속 부족하니까요.”
“그럼 전부 채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군요.”
“네. 실리콘 밸리 지사 주변 빌딩도 2채를 더 매입해 두었습니다. 그쪽에 사무실을 마련하면 큰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핵심 개발진은 저와 면접 일정부터 잡고 나머지 인원들도 바로 진행하도록 하세요.”
고개를 끄덕인 비서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
미 백악관.
새롭게 대통령이 된 에드워드 브룩이 실리콘 밸리 기업인들과 특별 면담을 하고 있었다.
“인력 유출이 심각하다고요?”
“네. 이대로 두었다간 실리콘 밸리라는 이름이 과거의 유물로 남을 지경입니다.”
한 기업인의 토로에 에드워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포트 쪽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400여 명이 빠져나갔습니다. 검색엔진,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대부분 미래를 책임져야 할 기술진들이었습니다.”
“망고 사도 마찬가지인가요?”
“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흠······.”
“제재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시내소프트 쪽으로 이동하게 될 겁니다.”
물론 전부는 아닐 것이다. 여기서 전부는 회사를 이끄는 중추 개발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맞습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일 할 사람이 없어서 회사가 망하게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직장 선택의 자유가 있는데 제재를 한다는 게······.”
그 밖에도 걸리는 게 많았다. 중국만 봐도 시내소프트에 제재를 가하다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들은 모르지만, 미국도 강승호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함부로 제재를 가할 처지가 아니었다. 생각을 마친 에드워드가 결론을 내렸다.
“정부가 해드릴 수 있는 건 현재 유지되고 있는 법인세 인하 조치를 상당 기간 더 유지하는 것 정도일 것 같습니다.”
단호한 그의 말에 백악관에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