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78)
탑 코더-278화(278/303)
278화 가보지 못한 곳
미국 워싱턴 백악관.
대통령을 비롯해 법무부 장관 그리고 재무부 장관까지. 셋이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먼저 법무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반독점법 조사 명분은 충분합니다. 이미 몇 가지 서비스가 점유율 50%를 넘었으니까요.”
재무부 장관이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을 어필했다.
“그러니까요. 조사해서 원 코인 출시를 멈춰야 합니다. 원 코인이라니요. 현재 시내소프트 사용자가 전 세계 20억이 넘습니다. 그들 안에서 금융이 생겨나면 달러의 기축통화 위치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이게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안보와 직결된 문제였다. 법무부 장관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AI 정부 프로젝트 때문에 그러십니까? 시내소프트가 그걸 진행하고 있으니까? 어차피 별개의 문제이지 않습니까. 원리, 원칙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에드워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사를 시작했는데 아무런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으면요?”
법무부 장관이 자신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하, 그럴 일은 없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은 없으니까요.”
“흠······.”
에드워드의 고심이 깊어졌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말이군.’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제재를 가한다. 원 페이 그 위에서 사용될 원 코인의 미국 진출을 막는다. 그게 과연 미국에 이득일까. 아니면 그대로 두는 것이 득일까. 고심하는 에드워드에게 재무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월가에서도 강력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큰 타격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시내소프트의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달러의 아성이 무너지면 현 미국의 위치도 흔들릴 테니까요.”
“흠······.”
자신 역시 미국의 위치가 흔들리는 건 원치 않았다.
“시내소프트의 현재 사용자가 얼마라고요?”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스마트 시티. 그리고 대외 서비스까지 합치면 현재 25억 명입니다.”
“성장세는?”
“한 달에 1억 명 정도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섯 달만 지나면 30억이 넘겠군.”
“세계 인구 절반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문제는 지금은 한 달에 일억이지만 한 달에 2억이 될 수도 있는 잠재력까지 있다는 겁니다.”
중국도 결국 시내소프트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미국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위협적이긴 하군요. 반독점법 조사를 할 명분도 충분하고.”
두 명의 장관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당장 조사 시작해야 합니다. 늦으면 늦을수록 위험합니다. 원 코인이라니. 그런 가상화폐가 미국 땅에 발을 디디게 만들면 안 됩니다.”
에드워드는 노파심에 한 번 더 확인했다.
“명분은 확실한 거겠죠?”
법무부 장관이 자신 넘치는 표정으로 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실합니다. 독점 기업 때문에 미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걸 더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조사 시작하세요.”
에드워드의 말에 두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비서실장은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괜찮을까요.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면 추후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명분이 중요하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한국에서도 독점 관련 조사를 받았지만, 무협의 처분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내부 조사 결과 무협의 처분으로 결론이 났다고 확인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금융위에서 오히려 금융업 진출을 허가해주고.”
“시내소프트를 밀어주기로 작정한 모양입니다.”
“만약 시내소프트가 미국 기업이었다면 저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겁니다. 하지만 시내소프트는 한국 기업.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그가 비록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해도.”
“······.”
“싸워보기도 전에 꼬리를 말 수는 없으니까요.”
그 문장에 에드워드의 고뇌가 담겨 있었다. 비서실장도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
청담 시내소프트 본사.
비서가 황급히 집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업무를 보고 있던 승호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반독점법 위반 협의로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미국 지사장에게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렇게 나오는 건가. 일정 부분 예상했던 결과였다. 승호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실히 임하도록 하세요. 미 정부와 맞서봤자, 회사에 좋을 건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면 원 페이의 미국 진출은 보류할까요?”
“네. 먼저 중국, 동남아 쪽을 공략하고 유럽 남미를 거쳐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가도록 하죠.”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미국 인구수라고 해봤자 3억. 절대적인 수치로 보면 그리 크지 않으니까요.”
“맞습니다. 구매력이 좋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을 뿐입니다. 동남아나 중국 쪽 구매력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고, 유럽이야 말 할 것도 없으니 차근차근 공략하면 달러의 아성은 무너질 겁니다.”
“그들에게 반감을 보이는 나라부터 공략해야겠군요.”
“한국에서 서비스가 안정화되면 바로 중국부터 공략하고 이후 러시아를 거점으로 유럽, 인도를 먹으면 미국도 별수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서비스 안정화를 해야 합니다. 불안정한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는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유관 부서에 한 번 더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사장님 불러주세요.”
살짝 고개를 숙인 비서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뒤 황호근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승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황호근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시작됐군요.”
“네. 본격적으로 조사가 시작될 겁니다. 본사에서도 만반의 준비 부탁드립니다.”
“이미 감사실 직원을 총동원해서 영업, 총무, 회계 등등 경영지원 부서에서부터 개발 부서까지 내부 감사를 실시 중입니다.”
“발견된 문제는요?”
“개발 쪽에서는 없었고, 영업이나 총무 쪽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가 커지다 보니 협력사 쪽에 갑질을 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하지만 사안이 미미하다 보니 자체 징계로 마무리했습니다.”
“흠······.”
“해당 사안에 대해 미 로펌에 문의해 봤지만, 반독점법과는 관련 없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닐슨앤 스미스라고 기업 문제 관련 미 최대 로펌입니다.”
“아마 미국에서는 최대한 꼬투리를 잡으려 할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은 없을 테니까요.”
황호근이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확실하게 단속해 두겠습니다.”
“만약 법에 저촉됐을 때의 상황도 고려해서 시나리오를 만들어주세요.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네.”
“이번 일만 완성되면 이후 100년동안 ONE 생태계가 무너질 일은 없을 겁니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금융. 그 시스템의 일부를 우리 쪽으로 가져오는 작업이니까요.”
비장한 승호의 표정에 황호근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인지 국내 은행, 증권사 주가 만이 아니라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세계적인 IB 업체들 주식까지 대폭락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원 코인이 세상에 선보이게 되면 그들에게 미래는 없을 겁니다. 인간이 하는 투자보다 월등히 뛰어난 투자자가 존재하는데 누가 그런 IB에 투자를 맡기겠습니까.”
ONE.
거기에 금융투자 알고리즘을 심어 이미 수도 없이 테스트를 거쳤다.
현재 굴리고 있는 자산만 한화 10조.
물론 전부 승호의 개인 자산이었다. 중요한 것은 최초 2조로 시작해 1년도 채 되지 않아 10조가 된 것이다. 이 기록의 일부만 공개해도 월가에 있던 돈은 시내소프트로 흘러들어 올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황호근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원화 연동 일정이 언제인지 물어 왔습니다. 금융위에서 일정을 알고 있어야 대응할 수 있다면서.”
“다음 달 안으로 시작한다고 알려주세요.”
“그리고 최초 원 코인 대 원화 비율 관련해서 협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원 코인.
시내 소프트 생태계 내에서 사용될 화폐로 초기 비즈니스 모델은 매년 낭비되는 국가 간 송금 수수료를 절약해 일정 부분 가져가는 것이다.
더 빠르고, 더 편리하게.
한국에서 간단히 송금해 유럽에서 유로화로 바꿀 수 있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황호근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정말 달러나 유로. 위안화를 이길 수 있을까요?”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될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황호근이 집무실을 빠져 나왔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
강남역 선진전자 본사.
김희건이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반독점법 위반이요?”
“네. 선진전자 미 점유율 50%를 넘었습니다. 명분은 충분한 셈이지요.”
“시내소프트에 이어 우리까지 타깃을 정한 모양이군요.”
고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있다가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무너지게 생겼으니까요.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흠······.”
“일단 미 로펌을 섭외했습니다. 로비력도 강화하고 있고요. 알아보니 시내소프트도 비슷한 대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업까지 진출한다니, 강 대표 강단이 대단하군요.”
“네. 월 가를 겨냥한 모양입니다. 자사 생태계에서 모든 결제가 원 코인으로 사용되면 달러의 기축통화 위치가 흔들리고 월가는 무너질 테니까요.”
“은행 계좌는 없지만 스마트 폰이 있는 사람들을 자본 시장에 편입하는 효과도 있을 테고.”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통계치에 따르면 세계 성인인구 50억 중 20억이 은행 계좌가 없다고 합니다. 특히 동남아에서 인구의 70%가 계좌가 없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시내소프트의 금융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동남아를 석권하게 되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중국은 이미 시내소프트가 먹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김희건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동만이 다음 말을 이었다.
“아시아 금융을 지배하게 되는 겁니다.”
“미국이 급히 반독점법 조사를 시작한 이유를 알겠군요.”
“중국만이 아니라 이미 일본 서비스도 준비 중이더군요. 러시아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아시아를 먹고, 러시아를 발판으로 유럽까지 진출하게 되면.”
“정말 달러가 무너질 수도 있다.”
“맞습니다.”
김희건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시내소프트의 확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도 예측하기 힘든 곳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곳에 신대륙이 있을지 불타버린 잿더미만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우리도 도입해야 할까요?”
고동만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