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79)
탑 코더-279화(279/303)
279화 가보지 못한 곳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1길 19.
전국 은행 연합회가 있는 곳에 22개의 회원사와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둘러앉아 시내소프트의 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황호근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한국의 많은 은행이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만큼 해외 자본시장의 벽이 크다는 뜻이겠죠.”
황호근의 설명에 은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선진 전자 같은 제조 기반의 회사들과는 달리 금융은 내수 시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 코인은 선진이 팔고 있는 ONE 폰에 기본 탑재될 서비스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동남아 인구의 70%가 은행 계좌조차 없지만, 태국 86%, 말레이시아 84%, 인도네시아72% 등등 스마트 폰은 70% 이상이 가지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설명이 아닌 수치에 기반을 둔 주장은 점차 참가한 은행 회장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었다.
“이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금융. 그게 우리나라가 된다면 한국이 금융 선진국이 되는 것도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자 시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은행의 은행장인 믿은 은행장이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프로젝트의 취지는 좋습니다. 된다면야 은행의 해외 진출이 가시화될 테니 손해 볼 게 없고요.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은 행들이 협조해줄지가 의문입니다. 사실 해외 송금 대부분이 유럽이나 미국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라.”
“물론 현재로서는 미국이나 유럽 지역은 규제로 인해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남아를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까지. 원 코인 도입에 대한 각국 정상들과 교감이 끝나 있습니다.”
“흠······.”
“해당 국가의 은행들은 원 코인을 통한 송금을 승인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시간이 지나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거부한다면. 미국 주도의 국제은행간금융통신협회(SWIFT)를 벗어나 아시아 은행 주도의 국제송금협회를 만들면 됩니다. 거기에 필요한 기간 시스템은 시내소프트가 제공해 드릴 겁니다.”
황호근이 조금 더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아시다시피 시내소프트의 전산 능력이 세계 최고입니다. 기존 스위프트를 통해 이루어지는 송금 속도 보다 몇 배는 빠르게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면 이미 아시아 지역은 협상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한 겁니까?”
“네. 협상은 마무리됐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기회를 드리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금융위원장님의 설득으로.”
“말씀대로만 된다면야 좋겠지만······.”
“그렇게 됩니다. 한국이 인공지능의 중심지가 된 것처럼 금융의 중심이 될 겁니다.”
그 말에 각 은행장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전 세계.
진출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좌절했던 곳이었다. 다른 은행의 은행장이 돈 문제를 꺼내 들었다.
“시스템을 교체하려고 하면 꽤 많은 자금이 들 것 같은데······.”
“그래서 여러 옵션을 준비했습니다. 비용을 전액 시내소프트가 대고 일정 부분 수수료를 주실지. 아니면 비용을 은행이 대고 수수료도 은행이 전부 가져갈지. 두 가지 중 원하시는 방안으로 선택하면 됩니다.”
수수료.
스마트 시티 건설과 비슷한 형태였다. 초기 자본금은 많이 투하되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형태였다. 이미 스마트 시티에서 관리비로 의미 있는 수익을 내고 있었기에 손해 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흠······.”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제재가 꺼림칙 합니다.”
은행장들이 수군거리며 의견을 나누었다. 황호근도 잠시 말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유럽과도 아직 연동이 안 되는데 우리가 먼저 참여했다가 오히려 세계 금융시장에서 배척을 당할 위험도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군요.”
“흠······.”
서로 간에 갑론을박이 벌여졌다. 시내 소프트도 은행업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정 안되면 홀로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된다. 그럼 에도 이런 자리를 마련 한 건 금융위원회의 요청 때문이었다. 황호근이 금융위원장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금융위원장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까지 해도 될까요? 회사에 일이 많아서.”
황호근도 무척 바빴다. 내부 감사 보고서를 살펴봐야 하고, ONE 코인, ONE 페이 비즈니스 모델을 한 번 더 검토해야 한다. 그 밖에도 스마트 시티를 비롯해 신사업인 SNS 까지 결제가 필요한 일들이 수두룩했다. 금융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황호근이 말했다.
“그럼 원 코인 설명회는 여기까지입니다. 상의해보시고,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금융위에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일정은 앞으로 삼 일. 그 안에 연락이 없다면 독자적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최후통첩을 날린 황호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 회의장은 돛 떼기 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
아시아 금융 중심지 싱가포르.
현 총리를 맡은 이센양이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승호가 그 앞에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싱가포르의 지금 결정이 앞으로 100년을 좌지우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하, 미국이 싱가포르에 제재를요? 그건 내정 간섭입니다. 당연히 국제사회에 문제를 제기하셔야지요.”
“······.”
“시내소프트의 스마트 시티가 어떤 모습인지 보시지 않았습니까. 싱가포르가 거기에서 배제된다면 지금의 영광을 계속 유지 할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이센양 총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승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시면 답은 간단하게 나옵니다.”
어르고 달래고.
이 젊은 청년의 앞에서 이센양은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싱가포르의 주요 산업은 제조, 금융, 관광이었다. 그 중의 가장 큰 부문이 제조. 그 제조 생태계의 가장 큰 비중이 시내소프트였다. 아시아를 잇는 물류 허브라는 강점을 이용해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며 전기차 생산 공장을 유치했다. 그게 바로 시내소프트의 제로였다.
“전 세계 유일무이한 자율주행 자동차 제로. 그 생산 공장이 싱가포르에 있음으로써 서로에게 꽤 이득이 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이득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요.”
“유럽 쪽 반응은 어떻습니까?”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곧 홍콩도 이곳에 합류할 테니까요.”
“중국이 허락했다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중국 내 시내소프트의 위상이 어떤지 이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중국에 퍼진 랜섬웨어를 해결하고 시내소프트는 그야말로 중국을 휩쓸다시피 하고 있었다. 초토화된 인터넷 기업들이 시내소프트의 공세에 밀려 파산했다. 중국 정부는 시내소프트의 AI 정부 시스템을 도입하며 의존성을 높였다.
자동차 시장 점유율 70%.
인터넷 서비스 점유율 92%.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65%.
중국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흠······.”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만약 원 코인 생태계에서 싱가포르가 배제된다면 지금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
“정말 무서운 분이시군요. 인공지능만으로도 이미 전 세계에 대적할 자가 없는데 이제는 금융까지.”
“확장하지 못하는 기업은 죽음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면 금융 그다음은 어떤 걸 생각하고 계십니까?”
“하하, 총리님 아직 우리는 서로 신뢰를 쌓지 못했습니다.”
담담한 승호의 말에 이센양 총리는 반박하지 못했다. 국가 원수와 기업의 수장 간의 대화라 보기에는 갑, 을 관계가 많이 뒤바뀌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전 세계에서 시내소프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였다. 싱가포르라는 작은 나라 정도는 시내소프트에 함부로 대적할 수 없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이센양 총리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승호가 바로 손을 내밀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게 회담장을 나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
“싱가포르도 참여합니다.”
“방금 남아공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시내소프트 연합에 들어오겠다고 하더군요.”
“그럼 이제 아프리카는 전부 참여 선언을 받은 거군요.”
“네. 미국, 유럽을 제외하고는 전부 원 코인 송금이 가능합니다.”
“한국은 어떻게 됐습니까?”
“오늘 부사장님이 브리핑했다고 합니다. 은행장들끼리 협의를 거친 후 내일 안으로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미국에서 시내소프트를 비롯해 한국 쪽 은행 전부를 차단한다 해도 싱가포르나 홍콩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굳이 애쓸 필요는 없다고 전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언론 발표는 언제쯤 할까요?”
“그건··· 보안 유지하면서 최대한 늦추도록 하죠. 어차피 이미 알고 있겠지만.”
“네.”
“다음 일정은 영국인가요?”
“네. 비행기 대기 시켜 놨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비서가 차 문을 열었다. 검은색 세단이 빠르게 총리 관저를 빠져나갔다.
***
미 백악관.
원 코인을 탑재한 원 페이의 본격적인 사업 진출 소식에 백악관에 비상이 걸렸다. 비서실장이 지금까지 확보된 정보를 바탕으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어제부로 싱가포르까지 원 코인 사용을 승인했습니다. 미국, 유럽을 제외하고 남미 지역까지 전부 사용 가능한 상태입니다.”
재무부 장관이 물었다.
“서비스 출시일이 어떻게 됩니까?”
“시내소프트에서 예고한 바로는 앞으로 한 달 뒤입니다.”
에드워드가 법무부 장관을 보며 물었다.
“반독점법 조사는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몇 가지 혐의점은 발견했지만, 의미 있는 증거는 없었습니다. 법원까지 가게 되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그 말은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까?”
그 말에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에드워드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그저 계속 안 된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다 유럽 지역에서 한 곳이라도 마음을 돌린다면. 시내소프트 확장이 더 가속화될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강 대표가 영국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브렉시트를 통해 유로 단일대오에서 빠져나간 영국이 가장 공략하기 쉬웠을 테니까요.”
에드워드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런던마저 넘어가면 뉴욕을 제외하고 세계 주요 금융 중심이 전부 넘어가게 되는 셈이군요. 중국이냐 말 할 것도 없고, 홍콩 싱가포르도 전부 시내소프트 연합에 합류했으니.”
회의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유로.
달러.
이 두 가지 지배하던 세상에 원 코인이 끼어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마저 넘어간다면 유로 역시 자취를 감출 수도 있었다. 그때 비서실장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연락을 받은 비서실장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국도 원 코인 사용을 승인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 20억 사용자.
그들이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