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8)
탑 코더-28화(28/303)
# 28
잡아야 한다.
────────────────서현석이 지긋이 승호를 보았다.
기껏해야 25살?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 밖 범위의 일을 해냈다.
천재.
그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말씀 인지 잘 알았습니다. 납품 단가는 그대로 진행하도록 합시다.”
황호근이 재빨리 나섰다.
“그러면 앱 건당 200만원에 업데이트 시에는 50만원으로 결정 하신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서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기에 웹 코드 난독화 솔루션도 함께 구매 하겠습니다.”
“웹은 앱 보다 기술 난이도가 높아 초기 400만원에 업데이트시에 백만 원입니다.”
이번에도 서현석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나나 톡의 창업 멤버이자.
현 CTO.
이 자리에서 그의 결정에 반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단가.
단가 결정이 끝나자 나머지 사항은 빠른 속도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계약에 관한 전반 적인 사항이 결정되고 서현석이 승호를 보며 말했다.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보안 관련 공부를 따로 한 겁니까?”
“네. 시간이 날 때 틈틈이 해왔습니다.”
“그러면 목표로 하고 있는 게 있나요? 회사라던가, 자신의 위치라던가.”
조금 더 직접적인 질문에 황호근이 미간을 찌푸렸다. 혹여 승호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하려는 건 아닌지 걱정 되어 바짝 침이 말랐다.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사실이었다.
불과 3 개월 전에 사고가 일어나고,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능력에 서서히 적응해 가는 단계였다.
“그러면 제가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꿀꺽.
황호근이 마른 침을 삼켰다. 다른 회사 사장이 있는 곳에서 대놓고 물어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서야 하나?
그러나 방금 전 계약을 체결했다. 나서서 불만을 토로하기에는 그 계약이 마음에 걸렸다. 황호근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승호가 나섰다.
“이직 제안이라면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순간 황호근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최기훈도 탁자 아래로 주먹을 꽉 쥐었다. 서현석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단호하시군요. 물론 자리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니 따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밝아졌던 황호근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최기훈은 할 말이 있는지 입을 오물 거렸다. 서현석이 한 발 빠르게 입을 열었다.
“제가 하려던 제안은 이 주 뒤에 열리는 바나나톡 개발자 컨퍼런스인 어셈블러에서 코드 난독화를 주제로 강연을 해달라는 겁니다. 어차피 시내 소프트에서도 손해 볼 건 없을 겁니다. 따로 기업용 부스도 마련 될 테니, 거기서 제품 홍보를 할 수도 있고요.”
어두워 졌던 황호근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그러나 다시 어두워졌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부스 자리가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요?”
유명 기업이 하는 개발자 컨퍼런스는 후원금을 기반으로 부스 자리가 주어진다. 자신이 알기로 그 자릿값은 수백을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내 소프트는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상황.
좋은 기회였지만 함부로 참가의사를 밝히기 힘들었다. 서현석이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부스 자리에 대한 비용은 대외비 성격이라 함부로 말씀 드리기는 힘듭니다. 다만, 강연을 수락하시면 그 대가로 작은 자리 하나는 마련해 드릴 수 있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황호근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어쩌면 아주 좋은 기회 일 수도 있었다. 둘의 시선이 승호를 향했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조건이라면, 저도 좋습니다.”
“잘 됐네요. 상세한 내용은 다시 안내 전화가 갈 겁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걸로 마무리 할까요?”
서현석이 말하자 다들 주섬주섬 수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회사로 돌아가는 길.
셋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 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황호근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오늘도 수고 했다. 승호 네 덕분에 회사 사정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어.”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인데요.”
“그 일을 제대로 해내는 직원이 있고, 그렇지 못한 직원이 있으니까.”
자신에 대한 이야기임을 직감한 승호가 귀를 기울였다. 황호근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항상 능력 있는 직원이라면 그에 걸 맞는 대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능력을 평가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어. 내게 정말 직원의 능력을 보는 눈이 있을까? 매일 같이 그런 의문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여기 최 팀장의 의견을 많이 참고해왔다.”
회사의 실질적인 2인자 최기훈.
승호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황호근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맞았어. 최 팀장이 기술자를 보는 눈은 있었으니까.”
황호근이 고개를 돌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승호를 보았다.
“그런 최 팀장이 네게 지분을 주라고 하더라. 그것도 최소한 20%.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고생해 가며 이 만큼 키웠는데, 그걸 주라니. 그건 돈이 문제가 아니었어.”
“병원비를 처리하고, 월급을 올려주고, 인센티브를 더 지급해 주는 건 크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일을 하다 다쳤으면 치료해줘야 하고, 능력 있는 직원이면 그 만큼 대우해 줘야 하는 것이니까.”
황호근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지분을 준다는 건 다르다. 시내 소프트를 유지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 다녔다.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기위해 수십여 개의 은행을 돌아다녔어.”
담담하게 풀어내는 황호근의 과거 이야기에 승호는 쫑긋 귀를 기울였다.
“조그만 소기업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빌고 또 빌어서 직원들 월급을 지급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야. 그렇게 시내소프트를 여기 까지 끌고 왔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
셋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최기훈은 익히 알 고 있는 내용이었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조를 맞추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키웠기에 솔직히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시내소프트의 주식은 내게 돈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니까. 그렇게 주저 할 때 마다 최 팀장이 와서 그러더라. 사장님이 지분을 안 나누시면 자기 거라도 주겠다고. 여기 최 팀장은 그 정도로 널 잡고 싶어 했어.”
황호근이 말을 멈추고 승호를 보았다. 둘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황호근이 살짝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난 사실 그렇게 까지 널 붙잡고 싶은 생각은 없다. 네게 시내소프트는 너무 작은 곳이니까. 어쩌면 이 주식이 네게 족쇄처럼 작용 할 수도 있으니까.”
이어지는 황호근의 말에서 승호는 진심을 느꼈다.
“어차피 시내소프트 주식은 받아도 비상장이기에 팔 곳이 없다. 기업을 성장시켜 투자를 받거나, 상장하지 못하면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란 말이지. 이게 맞는 방법일까? 네게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일, 이 년 정도 일해주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툭 털어 놓는 속내.
승호는 항상 우러러 보기만 했던 사장님의 약한 부분을 본 것 같아 가슴이 찌릿 거렸다. 황호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는 뭐가 맞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지분을 주는 게 좋을지 그걸 그냥 돈으로 주는 게 좋을지.”
족쇄.
승호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주식을 팔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주식을 받고 그냥 회사를 떠나면 주식은 그저 종이 쪼가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정은 네가 해 다오. 여기에서든 이곳을 나가서든 언젠가 너도 사장이 될 테니까.”
그리고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덜컹. 덜컹.
지하철이 움직이고, 황호근도 최기훈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승호도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입사에서 지금까지.
지난 1년여 간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결론을 내리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황호근이 고민한 과정을 듣는 순간 결론은 내려져 있었다.
-이번 역은 가산디지털 단지. 가산디지털 단지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 쪽입니다.
지하철 안내 멘트 끝나고.
곧 내려야 할 타이밍.
승호가 황호근을 보며 말했다.
“미흡하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둘은 말없이 손을 맞잡았다.
***
어두컴컴한 술집.
최기훈이 소주병을 들어 황호근의 빈 술잔을 채워 주었다.
“한 잔 받으세요.”
“이게 맞는 거겠지?”
“네. 잘 하셨어요.”
캬아.
황호근이 단숨에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우리가 처음 이 사업 시작했을 때 기억 나냐.”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 한 번 만들어보자.”
“자꾸 그 꿈 다시 꿔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최기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는 사실 그 꿈. 잊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 그냥 이 수준이나 유지하면서 살다가 가자.”
최기훈의 진심에 황호근이 한 잔 더 술을 들이켰다. 최기훈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던 그 꿈. 승호 만나고 다시 꾸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최기훈이 술잔을 들었다.
탁.
이내 빈 유리잔이 탁자에 내려앉았다. 안주로 골뱅이를 한 점 집어든 황호근이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비슷하다. 승호라면.”
“승호라면······.”
둘은 서로를 보며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술자리는 밤늦도록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