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81)
탑 코더-281화(281/303)
281화 가보지 못한 곳
미 백악관.
핫라인을 통해 날아온 소식에 에드워드 대통령이 으드득 이를 갈았다.
“우리의 제안을 거부했다고요?”
비서실장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그뿐만 아니라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원 화를 원 코인으로 대체 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파급 효과에 대해 연구 용역을 발주한다고 합니다.”
“통화 주권을 포기하겠다?”
“맞습니다. 거기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드워드가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한국이 이렇게까지 나올지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흠······.”
“한국이 시내소프트 덕분에 인당 명목 GDP 4만 달러를 돌파한 건 전 세계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근래 코스피 지수 삼 천을 돌파하고 IT를 비롯한 건설, 금융까지 초호황을 누리고 있죠. 그것 역시.”
“시내소프트 덕분이다.”
“네. 아마 홍상훈 대통령도 시내소프트의 노선을 방해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여론 조사를 해보면 강승호 대표에 대한 인기가 어마어마하니까요. 그와 맞서는 순간 정권에 치명타가 될 겁니다.”
에드워드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비서실장의 저 말이 남 일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후우··· 그건 우리도 비슷한 처지 아닌가? 시내소프트가 스마트 시티를 가지고 시간을 끌지 않았다면 나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비서실장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연준을 비롯한 재무부에서 대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미 너무 많은 나라가 시내소프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특히 영국이 그들의 손을 들어준 게 치명적입니다.”
“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최우선으로 스마트시티 건설을 약속한 모양입니다. 또한, 인공지능 연구소 건설도 약속한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브렉시트로 인해 커진 불확실성이 그로 인해 잦아들었고요.”
“그래서 원 코인과의 연동을 허락했다.”
“이미 원 코인은 기세를 탔습니다. 시장을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없으니······.”
털썩.
에드워드가 자리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자네도 원 코인이 대세가 될 거로 생각하나?”
데이비드 마커스.
민주당 경선에서부터 함께 한 인물로 에드워드의 복심이라 알려진 인물이었다. 35살의 젊은 나이로 백악관에 입성 앞으로 미 정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 미국 10대에서 30대 사이에 시내소프트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쿨, 섹시. 어썸. 어메이징. 시내소프트가 어떤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나오는 말입니다. 이번에 출시한 SNS인 레이션이라는 서비스도 그렇고요.”
“······.”
“리얼 라이프라는 게임은 또 어떻습니까. 아직 일 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매출이 9조를 넘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게임회사 블리자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제재보다는 타협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흠···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대안은?”에드워드의 말에 비서실장이 결재판에 끼워져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국무위원들이 마련한 대응 방안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한국산 제품 고관세.
-인공지능 세금 도입.
-원 코인 도입을 이유로 국내 원 톡, 원 서치 제재.
-동맹 강화를 통한 개별 국가 설득.
항목별로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지만 현 상황을 타개할 만한 묘책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제재를 가하자는 스탠스입니다. 그리고 4번째인 동맹 강화는 이제 어렵게 됐습니다. 우리의 동맹들이 대부분 시내소프트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전직 토마스 대통령이 아메리칸 퍼스트를 외치며 자국우선주의를 너무 밀어붙였습니다. 주변국의 부를 갈취해 미국의 호황을 가져왔으니··· 부메랑을 맞게 된 것이죠. 미국의 몰락을 바라는 이도 많을 겁니다.”
비서실장이 씁쓸히 중얼거렸다. 에드워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딱히 방법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때.
비서실장이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거··· 청첩장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강 대표 말인가?”
“네.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하더군요.”
“기업인의 결혼에 직접 가란 말인가?”
“신흥국 주요 정상들이 올 거라고 합니다. 가서 그의 속내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일정을 잡아 보려 했지만 원 코인에 관한 내용이라면 할 말이 없다며 거부하고 있습니다.”
“······.”
“결혼을 핑계로 한 번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에드워드가 한동안 청첩장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미 대통령이 한 기업인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
삼성역.
거기에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5성급 호텔로 검은색 세단이 세 대 들어섰다. 먼저 앞뒤의 차량에서 다양한 인종에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보디가드들이 내려서고 가운데 차량을 둘러쌌다.
-Clear.
-Clear.
-Clear.
빠르게 무전이 오간 후 문이 열리고 승호가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호텔 지배인이 꾸벅 인사했다.
“지배인 함호종입니다.”
“네. 강승호입니다.”
뒤이어 신지은이 차에서 내렸다.
오늘은 예식장을 둘러보는 날.
비서진이 물색해 놓은 곳 중 하나였다. 지배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말했다.
“정말 영광입니다. 아마 대표님 마음에도 쏙 드실 겁니다. 저희 호텔은 수십 년 정통이 해외 다양한 기업인분들도 항상 만족하셨던 곳으로 최고의 룸 컨디션 그리고 최고의 요리사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꽤 많은 사람이 올 겁니다. 그분들을 대접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야 해요.”
“하하, 물론입니다.”
“이미 러시아, 바로 옆 대만, 일본 쪽 정상 분들이 참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말에 지배인이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기회다.’
이미 비서진에게 언급을 받았다. 세계 각국의 정상에서부터 유명 기업인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참석한다. 즉 그들에게 자사 호텔을 각인시킬 좋은 기회였다.
그 전부를 차치하고 강승호.
그가 자신의 호텔을 선택하는 순간 호텔의 격이 한 단계 올라간다. 무조건 여기서 결혼을 하게 만들어야 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먼저 예식장으로 사용될 홀부터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지배인이 앞장서서 안내를 시작했다. 경호원들이 사방을 점하고 함께 이동을 시작했다.
홀에 도착한 지배인이 열심히 설명을 시작했다.
“1500석 규모로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최고급 안심 스테이크가 준비될 것이며 사전에 숙박하실 분들 명단을 알려주시면 바로 방을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 설명을 들으며 승호가 홀을 둘러 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널찍한 것이 천여 명의 사람은 충분히 들어갈 것 같았다. 승호가 옆을 보며 속삭였다.
“어때?”
“전 좋아요.”
“혹시 나중에라도 생각나는 거 있으면 비서진한테 말해. 최대한 반영해줄 거야.”
“그런데··· 제 친구들 정말 와도 되는 거예요?”
그 말에 승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당연하지. 결혼식에 친구들이 못 온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신지은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시간이 갈수록 결혼식에 어떤 사람들이 올지 실감 났다.
정치인.
사업가.
연예인들의 목줄을 쥐고, 단숨에 휘두를 수 있는 권력자들이 오는 것이다. 그들과 자칫 문제가 생길지 걱정이었다.
“아무 걱정 할 필요 없어. 그들도 조심할 거야. 아직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내가 좀 되거든.”
승호의 농담에 어두웠던 신지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알았어요. 친구들에게도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해두긴 할게요.”
승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다시 예식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결혼이라······.’
평생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그것이 몇 발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때.
지배인이 커다란 꽃다발을 내밀었다.
“이건 결혼식에 사용되는 생화입니다. 신지은님이 튤립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준비했습니다.”
향긋한 꽃내음이 현실감을 더했다.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
-선진 전자 직원 월급 원 코인 지급 검토.
-협력사 결제 대금 원 코인 지급 검토 중.
-선진 전자의 선택. 시내소프트와 혈맹 관계로 가나.
뉴스를 확인한 김희건이 씁쓸히 중얼거렸다.
“원 코인을 사용한다는 뉴스가 나갔을 뿐인데 주가가 5%나 올랐습니다. 확실히 대세는 시내소프트 군요.”
“시내소프트에도 연락이 왔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린다고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미국 반응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습니다. 로비스트의 말에 따르면 반독점법 관련 조사를 계속 진행 중이기는 한데 특별한 혐의점이 없다고 합니다.”
“듣자 하니 얼마 전에 세계은행장을 비롯해 IMF 총재가 시내소프트를 다녀갔다고 하던데.”
“넌지시 미국의 의중을 전한 모양입니다.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고요.”
“결국, 원 코인이 출시 되겠군요.”
“네. 이제 내일이면 전 세계 동시 서비스될 겁니다. 홍콩, 싱가포르, 런던, 상하이 등등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에서요.”
“달러가 무너질까요?”
“선진 경제 연구소에 따르면 당장 달러가 위축되는 현상은 불가피할 거라고 합니다. 앞으로 5년, 10년 후에는 기축통화의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고요.”
“흠······.”
“어쩌면 유로 존과 통합을 꾀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기축통화라는 기득권은 쉽게 포기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긴 독일이 현 사태를 가만히 두고 볼 리만은 없을 테니.”
“그래도 이머징 마켓을 등에 업은 원 코인이 승리할 겁니다. 더구나 중국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랜섬웨어 사태 이후로 시내소프트라는 동아줄을 단단히 잡은 형국입니다.”
“덕분에 선진도 날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미국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미국에 건설될 스마트시티만 7개소.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 디트로이트 경제의 70%를 떠받치고 있는 게 시내 소프트입니다. 오죽하면 그곳 시민들이 원 코인 사용을 승인하라는 청원까지 내고 있다 합니다.”
“결국, 미국이 질 거라는 말입니까?”
“네. 그렇지 않다면 미 대통령이 굳이 한국까지 날아올 필요가 없겠지요.”
김희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몇 시간 전.
미국 언론을 통해 속보로 전해진 뉴스가 하나 있었다.
-에드워드 브룩, 휴가 차 한국 방문.
-행선지 미확인. 시내소프트 강승호 대표 결혼식 참석으로 추측.
갑이 을을 찾아가는 경우보다 을이 갑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뉴스만 보면 시내소프트가 갑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