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83)
탑 코더-283화(283/303)
283화 가보지 못한 곳
삼성역 지산 호텔. 다이아몬드 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펼쳐지는 가운데
초대받은 고동만이 샴페인을 한 잔 마시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올지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하군요.”
동남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러시아, 중동의 강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정, 재계에 중요 인물들이 차고 넘쳐났다. 함께 있던 김희건이 조용히 말했다.
“이게 시내소프트의 영향력일까요.”
“······.”
그때.
또 한 사람이 조용히 식장으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동만이 재빨리 속삭였다.
“VIP 오셨습니다.”
김희건이 고개를 돌려보니 홍상훈 대통령이 자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하하, 네. 오랜만이군요.”
“거의 반년만인 것 같습니다.”
“항상 고생이 많습니다.”
“하하, 네.”
가볍게 인사를 마친 홍상훈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발에 치이는 것이 각국 정상에서부터 세계 유수 기업의 회장들. 김희건에게만 시간을 허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김희건이 홍상훈의 뒷모습을 보며 샴페인을 한잔 마셨다.
“오늘따라 선진이 유독 작게 느껴집니다.”
고동만이 피로연장을 찾은 인물들을 보며 말했다.
“선진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들과는 다르지요.”
포트의 라이언.
망고사의 팀 켈리.
GM 회장 프레데릭 핸더슨.
등등 발에 채는 것이 세계적인 기업들이었다. 물론 선진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업이긴 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트나 망고사에 비해 시가총액은 1/3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 그 갭을 가파르게 메웠다.
“그것도 시내소프트 덕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참석한 것이고.”
김희건의 말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퍼스트 무버.
그 이름을 가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지만 결국 패스트 팔로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동만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것 역시 경영자의 판단입니다. 좀 과격하게 말씀드리면 앞으로 5년 이내 지금 보이는 기업의 수장들 절반이 날아갈 겁니다.”
“그 정도입니까?”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몰락은 당연한 순서지요.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여러 컨설팅 업체에서 VIP 고객에게만 돌리는 소식지에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흠······.”
“회장님의 판단 덕분에 선진전자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스마트 시티 덕분에 선진 건설이 제로 덕분에 선진 SDI가 매년 20%가 넘는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시내소프트라는 메가 트렌드에 편승하지 못하면··· 미래는 불 보듯 뻔합니다.”
고동만이 또 한잔의 샴페인을 마셨다. 그리고 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앞으로 5년 뒤 저들 중 얼마나 살아남을까.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저들 중 절반이 날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승호는 같은 공간에서 신지은과 함께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여기는 홍상훈 대통령님.”
“안녕하세요. 신지은이에요.”
“하하, 역시 TV에서 보던 대로 미인이시군요.”
“헤헤, 아니에요.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강 대표와 인연이 있는데 당연히 와야지요.”
승호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쉽지 않으셨을 텐데, 이렇게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홍상훈이 귓속말을 전했다.
“다른 정상들도 오는 마당에 당연히 와야지요.”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네. 그럼 말씀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전 또 인사를 드려야 해서.”
홍상훈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홍상훈이 돌아다니는 웨이터에게서 삼폐인을 한잔 집어 들었다. 마치 OECD G20 정상회의 장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결혼 피로연에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많은 기업인이 참석해 있었다. 자신의 존재감이 희미해질 정도였다.
‘만약 안 왔다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빠져. 그런 소리를 들을 뻔했군.’
그런 생각을 하며 샴페인을 홀짝거리며 대화에 나섰다. 이곳은 피로연장이기도 하지만 외교의 장.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생각인지 치열하게 입으로 하는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피로연장 한편에 마련된 작은 대기실.
신지은이 그곳으로 돌아와 긴장을 풀고, 한 모금 물을 마셨다.
“휴우······.”
따라 들어온 승호가 물었다.
“괜찮아?”
신지은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연예인 생활하면서 이렇게 긴장한 적 처음이야.”
“천하의 신지은이 긴장이라니.”
“오빠 처음 볼 때도 긴장했었거든.”
“나도 마찬가지였어. 너무 예뻐서 긴장되더라.”
그제야 굳어져 있던 신지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농담은······.”
“너무 긴장할 것 없어. 어차피 다 비슷한 사람들일 뿐이니까. 그들이 어떻게 널 평가할지 신경 곤두세우지 않아도 괜찮아.”
신지은의 표정이 조금 더 풀렸다. 승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크게 관심도 없을걸? 너보다 유명한 사람 엄청 많잖아.”
신지은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뭐어!”
“하하하, 솔직히 그렇잖아. 홍상훈 대통령에 러시아 대통령, 포트의 회장. 선진전자 회장 그리고 신.지.은?”
신지은의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이익!”
승호가 두 손으로 신지은의 볼을 포근하게 감쌌다.
“그러니까 너무 긴장할 것 없어. 그냥 가볍게 인사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쪽.
볼에 입맞춤하는 순간 벌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지은아!”
활기찬 목소리로 들어온 사람은 신지은의 동료 지영애.
이번 결혼식에서 부캐를 받기로 할 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여, 영애야.”
“흠··· 흠흠.”
지영애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어머, 내가 주책맞게 들어와 버렸네.”
“아, 아니야.”
“흠··· 아닙니다.”
지영애가 슬금슬금 뒤로 걸음을 옮겼다.
“호호, 아니에요. 두 분 하던 거마저 하세요. 긴장 푸는 데는 그게 제일이니까. 한 20분 뒤에 들어오면 되지? 지은이 말로는 오빠 힘이 세다고 했으니까. 한 30분 뒤에 들어와야 하나.”
그러자 신지은이 빽 소리를 질렀다.
“지영애!”
“호호, 옷 구겨지지 않게 관리 잘하고.”
그러더니 정말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승호가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 저분이 말한 ‘힘’이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지?”
신지은이 이번에도 소리를 빽 질렀다.
“오빠!”
결혼 피로연장 한편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이었다.
***
미 백악관.
승호와의 짧은 이야기를 마친 에드워드는 바로 비행기에 올라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대외적으로 휴가였지만 대내적으로는 국무위원들이 총출동해 치열한 회의를 벌이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기존의 생각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원 코인 서비스를 강행하겠다고 하더군요. 미국이 어떤 제재를 하던.”
그러자 재무부 장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 대 강 대치로 가겠다는 말이군요. 어디 한 번 해봅시다. 누가 이길지. 일개 기업인이 미국에 대적한다니 허, 참. 내 살다 살다 별 거지 같은 꼴을 다 보는군요.”
그러자 법무부 장관이 입맛을 다셨다.
“어떻게든 반독점법에 엮어야겠군요. 법에 따라 기존 자산을 팔 게하고, 징계성으로 세금도 부과하고 기존 투자 계획에 따라 주어졌던 혜택들도 회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에드워드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AI-정부 때문에 그렇습니까? 저는 그거 처음부터 반대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주권을 민간기업에 맡긴다니요.”
상황을 지켜보던 국무부 장관이 툭 내뱉었다.
“그걸 안 쓰면 대안이 있습니까?”
재무부 장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존에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북이 핵을 포기할 일도, 테러와의 기나긴 전쟁에서 승리할 일도 없었습니다.”
더 놔뒀다가는 1급 기밀 사항이 흘러나올 판이다. 에드워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 하세요.”
그제야 극으로 치닫던 둘이 동시에 입을 닫았다.
“모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강 대표는 그간 미국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해왔습니다. 물론 적절한 대가를 치렀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얻은 이득에 비하면 싼값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명분상으로도, 도의상으로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쉰 재무부 장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원 코인 그 자체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방법은 이미 세계은행장과 IMF 총재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지하 경제에 사용될 수 있다. 금융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통화 주권을 해칠 수 있다. 등등의 우려 점을 이미 전달했습니다.”
“미국의 강점을 활용하는 겁니다.”
“강점이요?”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발권력.”
“그 말은······.”
“그렇지 않아도 미국 경제는 호황기를 지나 침체기에 들어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연준을 동원해 달러를 왕창 찍어 전 세계에 뿌리는 겁니다. 원 코인이 자리를 잡기 전에요.”
“추후 엄청난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에드워드의 걱정에 재무부 장관이 고개를 흔들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완벽히 도래했다고 합니다. 기존의 경제 이론으로는 더는 미래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미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에드워드도 기억하고 있었다.
2008년.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미국은 2조 달러를 찍어냈다. 다행히 경기침체를 막았고,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 이후 호황기를 맞으며 다우존스와 S&P 500이 신고점을 찍기까지 했다. 시내소프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어차피 원 코인이 제대로 서비스 시작한다면 달러의 위상은 추락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 전에 화려하게 불꽃을 틔워 보는 겁니다. 통하든 통하지 않든. 어차피 잃을 것이야 없습니다.”
“······.”
재무부 장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 달러가 아프리카, 동남아, 세계 각지로 흘러 들어가면 미국 우호 여론이 형성될 겁니다. 과거처럼 미국 우선주의를 펼쳐 타국의 부를 뺏어오는 것이 아닌 찍어낸 달러로 세계 각지에 투자를 집행하는 겁니다.”
확신에 찬 모습에 다른 국무위원들도 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여전히 걱정을 금치 못했다.
‘월가다운 사고방식이야.’
현 재무부 장관도 월 가 출신이었다. 2008년 양적 완화 역시 경제를 망가트린 월가 출신이 내놓은 조언이었다. 미국의 경제는 월 가의 사람들에 의해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군.’
에드워드가 국무위원들을 쓱 둘러 보았다. 다들 입을 다물고 있을 뿐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파격적인 양적 완화.
그 카드를 앞에 두고 에드워드의 고심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