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84)
탑 코더-284화(284/303)
284화 가보지 못한 곳
-[속보] 미국 금융위기 이후 최대 양적완화 결정
-[속보] 미 연중 대량 달러발행 준비 중.
-[속보] 양적 완화 소식에 미 다우존스 상승 마감.
속보로 전해진 소식은 청와대에도 전달되었다. 그중에서도 경제수석실이 가장 먼저 들썩였다. 박신우가 빠르게 보고를 시작했다.
“당장 환율 시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막대한 양의 달러가 시중에 풀리면서 원·달러 환율이 1100원까지 내려갔습니다. 이러면 당장 수출 기업들이 타격을 받게 됩니다.”
“한창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선진전자, 선진 건설이 큰 타격을 받게 되겠군요.”
경제수석의 질문에 박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뿐만 아니라 제로 판매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물론 아직 전 세계 유일한 자율주행차라 큰 타격이 있지는 않겠지만.”
“달러발행량은 얼마나 된 답니까?”
“아직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총발행량은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며 결정할 것 같습니다. 연준도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으니까요.”
경제수석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흠··· 시내소프트 대응은요?”
박신우가 입맛을 다셨다.
“아직 공식 대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현재 강 대표는 신혼여행 중이라.”
“신혼여행지에서 이 소식을 보게 되겠군요.”
“네. 그리고 한은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시중 달러를 좀 사들여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1100원 선이 깨지면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면서.”
“1100원 선이 깨지지 않게 계속 사들이겠다?”
“네.”
“흠······.”
갑작스러운 미국의 결정이 세계 경제를 다시 불확실성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이건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현상이었다.
“국내 증시는 소폭 조정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3000을 넘기면서 과열 분위기가 있어. 조정이 와야 할 시기라고 하지만 이 사태가 장기화하면 어떤 방향성이 그려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미국이 무작정 달러발행을 하지는 않을 테고, 무슨 의도가 있을 텐데··· 과거 금융위기 때처럼 미국 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함인가.”
박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경제수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원 코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자국 투자 활성화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계속 말해봐요.”
“그렇게 찍어낸 달러는 이용해 해외 투자를 진행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탈 달러가 진행되는 움직임을 사전 봉쇄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으니까요.”
경제수석이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박신우가 자기 생각을 이어나갔다.
“원 코인의 지배력이 커질수록 달러의 지배력이 약화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아직 달러 패권이 유효한 시기에 달러를 왕창 풀어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 같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의견이었다. 그럼 이제 행동이 남았다. 한국은 어떤 조처를 해야 한단 말인가.
“원 코인 연구 용역 결과 나왔습니까?”
“중간 보고서 올라왔습니다. 여기.”
박신우가 들고 온 결재판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10페이지 정도로 정리된 원화 -> 원 코인 법정화폐 대체 효과를 연구한 결과가 작성되어 있었다. 경제수석이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며 읽어 나갔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통화주권을 잃게 되지만 경제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페이지를 넘기던 경제수석이 손을 멈추었다.
“결론이 긍정적이다.”
“네. 원 코인 협력 국가가 현재 80여 개국을 넘은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그들과 단일 통화를 사용하게 되는 겁니다. 이미 유로존에서 보았듯이 단일 통화를 사용하게 되면 경제 강국의 이득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시내소프트로 인해 경제 강국이 되었고요.”
박신우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통화 효과로 인해 인당 GDP 5만 달러에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설명도 되어 있습니다.”
인당 GDP 5만 달러.
엄청난 액수였다. 시내소프트가 나타나기 전 한국은 GDP 3만 달러에 전 세계 28위에 랭크 되어 있었다. 그런데 4만 달러는 넘기며 단숨에 일본을 넘어 18위까지 올라갔다. 5만 달러를 넘으면 10위권 안에 안착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수석이 눈을 반짝였다.
“그렇단 말이군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논의를 해보고 결정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박신우가 몸을 돌려 경제수석실을 나갔다. 그런 박신우를 비서실장이 호출 했다.
-박 서기관, 잠깐 좀 보지.
난데없는 호출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박신우는 비서실장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론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
향긋한 샴푸 향이 코에 닿았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등에 닿았다. 그리고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승호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뭐해?”
하지만 승호의 정신은 온통 다른 곳에 빠져 있었다.
-[속보] 미국 대대적인 양적 완화 메시지.
-[속보] 연준 미국 경제는 침체기. 적극적 통화정책 펴겠다.
‘결국, 달러를 발행하겠다는 뜻이군.’
생각하던 승호가 몸을 움찔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익숙한 손길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와서도 일 생각해?”
새침한 목소리에 승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냥 잠깐 뉴스 좀.”
“내일이면 다시 한국 가야 하는 거 알지?”
승호가 몸을 돌려 신지은을 감싸 안았다.
“물론 알지.”
“가면 또 엄청나게 바빠지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바쁜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당분간만. 앞으로는 조금씩 일을 줄일 생각이야.”
“뭐? 정말?”
“이제 결혼했으니 아이도 낳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지. 일과 가정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신지은의 표정이 밝게 변했다.
“오빠가 그런 생각인 줄은 몰랐어.”
“하하, 그럼 난 평생 죽을 때까지 일만 할 줄 알았어?”
“뭐···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있었지.”
살짝 시선을 내리깔며 하는 말에 승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난 일 만큼 가정이 중요해 알잖아. 내 과거가 어떤지. 그래서인지 더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싶고.”
신지은이 그런 승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하루 사이 돋아난 수염이 까끌까끌했지만, 신지은에게는 부드럽게만 느껴졌다.
“정말이지?”
“물론.”
“헤헤, 좋다. 나도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게 꿈인데.”
승호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한국 가지전에 허니문 베이비 한 번 만들어 볼까.”
“또?”
“아들 딸, 딱 2명씩 낳으려면 부지런히 만들어야지.”
또 한 번 침실에 열풍이 불어닥쳤다. 그 사이에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
황호근이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에서 시내소프트 연합에서 탈퇴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전략기획실장이 굳게 입술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총 3개국에서는 논의 중이던 법정화폐 전환 협상을 완전히 멈췄습니다. 아마 미국의 투자 결정이 주효한 것 같습니다.”
“달러에 흔들린 거군요.”
“네.”
“흠······.”
황호근의 이마에 깊은 골이 생겼다. 이건 개발자들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었다. 물론 승호가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에게 전권을 넘겼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결정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전략기획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복귀는 언제쯤 하실까요.”
“아마 오늘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일 겁니다.”
“바로 본사로 오시는 겁니까? 이게 사안이 급해서··· 당장 협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제 선에서는 처리가 안 됩니다.”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바로 올 것도 같은데······.”
그런 황호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의실 문이 열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승호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임원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바로 오셨군요.”
승호가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말했다.
“상황이 많이 안 좋다고요.”
“네. 미국이 발행한 달러를 세계 전 지역을 대상으로 투자를 집행하고 있습니다. 무지막지한 돈이 신흥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돈으로 대결을 해보자 이거군요.”
전략기획실 실장이 반색하며 답했다.
“네. 전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 발권력을 가진 미국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유럽 반응은 어떻습니까?”
“유럽 연합에서도 회의하는 모양인데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시간 걸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까요.”
승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럼 당장은 미국만 상대하면 된다는 말이군요.”
“네.”
“그럼 우리도 맞상대하도록 하죠.”
“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돈에는 돈 아니겠습니까.”
“미국도 무작정 달러를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
“그랬다가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아프리카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고요?”
“맞습니다.”
“우리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 계획 발표 준비하세요.”
그 말에 침체 되어 있던 회의실에 활기가 돌았다. 황호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가장 치명타를 입은 건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 기업 선진전자였다. 시내소프트와는 달리 제조 기반의 선진은 환율 변동에 상당한 민감성을 가진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까지 내려가면서 회사 수익성에도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긴급 대책 회의를 위해 임원진이 한자리에 모였다. 선진전자 미래전략실 실장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정부에서 방어하고 있긴 하지만 미국이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입니다. 벌써 발행량이 삼 백억 달러를 넘었다고 합니다.”
300억 달러.
한화로 치면 35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한국은행이 그 정도 규모의 원화를 발행하면 한국 경제는 바로 인플레이션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끄떡도 없었다.
“당장 미국에 수출되는 엔진 S 판매 금액이 10%가량 올라갔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엔진 S에 20%의 추가 관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실판매 금액이 30% 올라가는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겁니다.”
보고를 듣던 김희건이 으득 이를 갈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군.’
선진이 새우라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미전실 실장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ONE 폰입니다. 선진의 독점 판매 덕분에 판매량 변화는 없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희건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밝아졌다.
“가격이 올라가도 소비자들이 산단 말인가?”
“네. 홍보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객들의 가격 민감도가 최하입니다. 30%의 가격이 인상된다고 해도 구매 결정을 내리는 고객이 70%가 넘습니다. 특히나 리얼 라이프 게이머들은 90%의 구매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보고에 김희건도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또 시내소프트 덕분이군.’
이번 사태도 시내소프트 덕분에 나타났다. 하지만 시내소프트 덕분에 버틸 수 있는 제품이 있었다.
병 주고 약 주고.
김희건의 머릿속에 떠오른 속담이었다.
“그래서 우리 대응은?”
“시내소프트에서 신흥국 투자 지원 협조 요청이 들어와 있습니다.”
“투자 요청?”
“네. 미국과 치킨 게임을 벌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김희건도 쉽 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