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9)
탑 코더-29화(29/303)
# 29
더 게이트
────────────────이주 뒤 코엑스.
승호는 서현석의 제안으로 바나나톡 컨퍼런스 어셈블러에 참가했다. 행사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아 간 곳은 주최 측에서 마련해준 시내소프트 부스.
부스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인사를 해왔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부장님 오셨어요!”
“이야, 부장님 덕분에 이런 곳에 부스도 차려 보고. 좋네요.”
“오늘 발표도 멋지게 부탁드립니다.”
아직은 부장이란 호칭이 어색한 상황.
승호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하, 네. 어때요. 준비는 잘 되나요?”
승호의 말에 직원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 졌다.
“팜플렛. 시연할 노트북. 사은품 까지. 전부 준비 마쳤습니다. 이제 손님들만 오면 되는데······.”
확실히 부스가 휑했다. 그리 외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님에도 사람이 없었다.
그에 반해.
옆 부스는 사람들이 줄까지 서 있는 진풍경이 연출 되고 있었다. 황시내가 그 부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이 전년도 ‘더 게이트’. 3위 입상자라나 봐요. 그래서 사람들이 몰리는 거고. 더구나 회사도 꽤 이름 있는 회사니.”
“더 게이트요?”
황시내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찾아보니까. 선진에서 후원하는 해킹 방어 대회라는데. 쩝. 우리도 그런데서 상이나 하나 받으면 더 유명해 질 수 있으려나······.”
간혹 가다 부스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팸플릿만 뒤적거리다 떠나버렸다. 자신이 직원이었다면 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다는 사실에 기뻐했을 지도 모른다.
편하게 쉴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면 우리도 거기서 우승하면 되잖아요.”
너무 쉽게 하는 말에 당황한 황시내가 되물었다.
“···네?”
“어디 보자 더 게이트, 더 게이트.”
승호는 바로 핸드폰을 들어 더 게이트가 무엇인지 자세히 확인해 보았다.
더 게이트.
세계 해킹 방어 대회.
말 그대로 세계 해커들이 참가 하는 대회였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체크포인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상위권은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정이 문제였다.
당장 일주일 뒤가 예선.
예선이 끝나고 삼 일 뒤가 본선이었다. 승호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황시내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이거 맞죠?”
황시내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승호를 보았다. 옆에 있던 직원이 나서서 승호를 말렸다.
“부장님, 부장님 실력이 뛰어난 건 저희도 잘 아는데 그건 4인 1조 팀 대회예요. 더구나 거기에는 세계적인 해커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쉽지는 않겠네요.”
직원이 답답해하며 가슴을 두드렸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에요. 코드 제로에서 1등급 달성하신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요. 거기에서는 부장님 혼자 잘하면 되지만 여기는 아니란 말입니다.”
시내소프트 직원인 원지훈 대리가 한층 더 목소리를 높였다.
“더군다나 거기에서 우승하면 라스베거스에서 열리는 체크포인트 본선 자동 진출권까지 주어져요.”
“꽤 잘 아시네요. 혹시 같이 출전 하실래요?”
“부장님······.”
원지훈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 여유.
저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한 번 생각해보세요. 저는 발표 시간이 다 되 가서 이만.”
승호가 자리를 뜨고도, 부스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
승호는 단상에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었고, 답변을 해주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질문은 없었다. 끝나고 ‘더 게이트’ 준비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막 발표를 끝내려 할 때 객석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발표 내용을 보면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으로 코드 난독화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네. 맞습니다.”
“제가 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서 행사 시작하기 전에 사이트에서 예제 앱을 다운 받아서 풀어 봤더니. 아쉽게도 디컴파일 되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 질문자에게 쏠렸다. 승호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질문자를 보았다.
“아, 난독 화된 앱을 복호화 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솔루션이 괜찮다면 저희 쪽도 도입할까 해서 시도해 봤습니다.”
“하하, 앞으로 저희 고객이 될 분이었군요. 이거 잘 보여야 하겠네요.”
승호의 농담에 장내에 살짝 웃음 흘렀다. 승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어디 보자··· 제게 주어진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네요. 혹시 복호화 했다는 코드 지금 가지고 계신가요?”
질문을 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 노트북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그 코드 다시 컴파일 해서 핸드폰에 한 번 넣어보시겠습니까? 시간이 없으니 그냥 제 말대로 진행 부탁드립니다.”
승호의 말에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크게 이견을 달지 않고 말을 따랐다.
그렇게 3분쯤 지났을까.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얼마 전 바나나 톡에서 나타났던 현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놀란 남자가 툭.
손에서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제가 만든 코드 난독화 솔루션에는 약간의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소리가 난다는 건 그 트릭에 걸렸다는 뜻 이죠.”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알람음이 멈추지 않았다. 남자는 넋을 놓고, 핸드폰을 한 번 보고 다시 승호를 보았다.
“그럼 이것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소리는 약 10초 뒤에 멈추도록 설정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승호가 단상을 떠났지만 강연을 듣던 개발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그리고 정확히 10초 뒤.
뚝.
소리가 멈추었다.
“헐······.”
놀란 개발자들의 탄식이 장내를 사로잡았다.
***
발표가 끝난 승호는 다시 회사 부스를 찾았다.
“···어?”
놀란 승호가 멈칫 거렸다. 한산하기만 하던 부스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설마··· 아까 발표······.”
그걸 보고 찾아 온 것 같았다. 몇몇 개발자들이 자신을 손가락질 하며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승호가 조심스럽게 부스에 다가갔다. 막 상담을 끝낸 개발자가 승호를 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아까 강연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수 군데를 다녀봤지만 그런 강연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난독화 솔루션을 구입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는 거죠?”
“잘 들으셨다니 감사합니다. 네. 정말 그렇게 됩니다.”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 거렸다.
“직원에게 단가 상담을 받았는데··· 성능은 꽤 괜찮은 것 같은데 가격이 좀 비싸긴 하네요.”
“그 만큼의 값어치를 하니까요.”
“뭐, 알겠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가고 또 다른 사람이 승호 앞에 섰다.
이번에도 같은 말.
“아까 강연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진짜 놀랐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곤 떠나갔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상대 하다 보니 끝이 없었다. 마치 정치인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내가 이제 주인이니··· 피할 수도 없고.’
승호는 차라리 코딩을 하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상대했다.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었다.
“어?”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시 뵙네요. 최도윤입니다. 아까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서요.”
“아··· 강승호입니다.”
“하하. 제대로 한 방 먹었어요. 진짜 다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을 줄이야.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직 거기 까지 푼 사람도 거의 없는데 그것만 해도 대단하세요.”
최도윤이 고개를 쓱 내밀어 승호의 뒷편에 마련된 회사 부스를 빠르게 훑었다.
“시내 소프트에 근무하시나 봐요.”
“네. 그 솔루션도 회사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아∼.”
별 말 아니었지만 느껴지는 어감에 승호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최도윤이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들었다.
“저는 여기 디텍트 라는 곳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디텍트.
국내 삼대 보안 관련 업체 중 한 곳이었다. 디텍트에서 출시하고 있는 악성코드 검사기는 설치 안 된 컴퓨터를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
“아··· 네. 여기 제 명함.”
명함을 주고받은 뒤.
최도윤이 승호의 명함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고, 이번에 개최되는 더 게이트에 저희 쪽 팀원으로 초빙하고 싶어서요.”
최도윤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최종적으로 체크포인트 우승까지 염두에 두고 팀을 짜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 드리면 더 게이트에서 작년 3위로 입상했어요. 팀명은 enter. 최종적으로 체크포인트 우승까지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최도윤이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승호를 보았다. 표정에서부터 느껴졌다.
당연히 자신의 팀으로 오겠지.
“팀은 꼭 같은 회사 사람으로 구성될 필요는 없어서요. 이미 저희 팀에도 다른 회사 다니시는 분이 한 분 더 계십니다. 난독화 솔루션을 보니 승호씨 실력을 알 것 같아서 특별히 제안하는 겁니다.”
승호는 순간 시내 직원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열심히 사람들을 상대하며 솔루션 판매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자 최도윤의 제안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뭐, 어차피 할 생각도 아니었지만.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저희 직원들과 함께 출전해 보려고 합니다.”
“네?”
놀란 음성은 부스에서 일을 하던 직원들이 터트린 탄성이었다.
“비록 작지만 다들 열심히. 그리고 잘하시는 분들이라 서요.”
비록 실제로 그렇지 않다 해도.
자신이 생각해도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해도.
남들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네?”
이번에도 일하던 직원들이 터트린 탄성.
오히려 최도윤은 담담히 승호를 보고 있었다.
“아쉽지만 할 수 없군요. 그럼 대회에서 뵙겠습니다.”
그러고는 인사를 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승호가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자, 이제 확정 된 거나 마찬가지 같은데 함께 출전 하실 분?”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직원들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
승호는 바로 최기훈을 찾아갔다.
“팀을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뜸 하는 말에 최기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팀? 무슨 팀.”
“더 게이트에 한 번 나가보려고요. 참가 자격을 보니 최소 4인 이상이 팀을 이뤄야 한다고 합니다.”
“더 게이트?”
“선진에서 후원하는 세계해킹방어 대회. 거기에서 우승한다면. 회사의 이름을 알리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직원들 직무역량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테고.”
적극적인 승호의 의견 개진에 최기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뭐, 나쁜 생각은 아닌데······.”
“뿐 만아니라. 그게 곧 회사의 기술력을 입증 하는 게 될 수도 있어요. 컨퍼런스에서 보니까. 그것 자체가 타이틀이 되어 회사에 도움을 주더라고요.”
승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더구나 이미 선진에서는 절 대단히 높게 생각해 주고 있어요. 거기에 해킹 대회 우승으로 방점을 찍는다면. 앞으로 생길 계약이 순조롭게 진행 될 겁니다.”
승호는 말을 하고 최기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러워진 풍경이었다.
“제가 대회를 준비하는 사이 팀장님이 ZONE에 대한 시스템 설계도를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대회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개발. 바로 사용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최기훈은 묵묵히 승호의 말을 경청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꽤나 괜찮은 계획처럼 들렸다. 오히려 이렇게 적극적으로 회사 일에 참여하는 게 대견하기만 했다.
“와, 이제 같은 부장이라고 나한테도 막 일을 시키네.”
최기훈의 투정에 당황한 승호가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려고······.”
“하하, 농담이야. 좋다. 내 생각에도 네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두워지던 승호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최기훈이 말 을이었다.
“이제 정말 우리 회사의 주인다워 졌어.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다오.”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필요한 건 없고?”
“공지를 팀장님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제가 직급은 부장이지만 나이도 그렇고, 사람을 상대하는 경험이 미천해서요. 직원들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는 저보다 부장님이 더.”
“알았다. 아직 네가 직접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지.”
“공지에 꼭 한 가지를 덧 붙여주세요. 실력은 확실하게 키워줄 수 있다. 대신 뼈를깎는 노력이 필요 하다.”
최기훈이 승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빛에서 단단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최기훈도 장난기를 싹 지우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