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90)
탑 코더-290화(290/303)
290화 가보지 못한 곳
국회의사당 내부 청문회장.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승호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시내소프트 강승호 대표입니다. 먼저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국회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단상 옆으로 살짝 나온 승호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마이크를 잡고 말을 이어 나갔다.
-먼저 원 코인 현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원 코인은 현재 법정화폐 채택 국가 8개국. 연동 중인 나라 82개국. 앞으로 법정화폐로 채택되는 나라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왜 원 코인을 법정화폐로 사용하고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은행으로든 터치 몇 번이면 송금되고, 국가 간 송금 시에도 수수료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내용은 해킹할 수 없는 블록체인 기법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금융사고 위험도 없습니다.
승호의 설명에 국회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했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생방송으로 현재 모습을 내보내는 중이었다. 원 코인 그리고 승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시청률 역시 10%를 넘고 있었다. 이때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 표라도 더 얻는 것이 정치인이다. 당연히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는 원 코인의 상세 특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0분 후.
승호의 설명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찾아왔다. 여당 의원들은 대부분 격려 차원의 내용이었다.
“원 코인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큽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 나가실 생각입니까?”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 국민 여러분들이 느끼셨던 염증이 해결되는 방향으로 가려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돈이 빠져나갔다거나 해외에 있는 자녀분들에게 유학자금을 송금 때 너무 많은 수수료를 내야 한다거나 하는 불편부터 해소해 나갈 것입니다.”
“가장 빠르게 도입한다고 하면 언제쯤 될까요?”
“최소한 1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약점을 파고든다거나, 곤란한 질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조금 달랐다. 날카로운 눈으로 승호를 바라보던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물었다.
“기존 지폐를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원 코인이라는 가상화폐로 그런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입니까?”
“원화 통화는 원 코인과 1대1로 교환 될 것입니다. 그러니 기존 화폐 그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러면 일종의 가상 돈이군요. 기존의 카드 포인트와 차이가 없는.”
“그런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포인트가 국가를 넘어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인공지능 ONE이 개입되지도 않습니다.”
“사용자의 소비에 ONE이 개입하면 개인정보 유출 아닌가요?”
“해당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4법이 통과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옆자리의 국회의원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흠··· 흠흠. 이미 다 아는 이야길 왜 하고 있나.”
“그만하지.”
“자자, 좀 더 생산적인 걸 물어보게나.”
계속되는 주변 국회의원들의 눈치 그리고 폭주하는 문자에 더는 질의를 이어갈 수 없었다.
“아니 지금 제 질의 시간입니다.”
“이러니까. 국회가 기업들 발목이나 잡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거 아닌가. 기업은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는데 국회는 전통에 얽매여 뒷걸음질 치고 있으니 말이야.”
중진 의원의 호통에 남자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승호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차피 자신이 나서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질의응답이 끝나고, 비서실장이 귓속말을 전했다.
“여, 야당 대표님과 약속이 있습니다.”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와서 그들을 보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갑시다.”
“네. 이쪽으로.”
거대 양당의 대표.
현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지만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권력자를 만나본 탓이다. 오히려 긴장하고 있는 건 당의 대표들이었다. 그건 문을 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강승호입니다.”
승호가 건넨 말에 양당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셨습니까.”
“반갑습니다.”
승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이 없다 보니 함께 모시게 되었습니다.”
양, 당 대표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린다. 원래는 따로따로 만남 요청이 있었다. 하지만 일정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같은 시각에 약속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당 대표들은 불만을 토로하지 못했다. 먼저 여당 대표가 입을 연다.
“하하, 기업을 하다 보면 바쁜 법이니까요. 이해합니다.”
그러자 거대 야당 대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시간 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승호가 슬쩍 고개를 들어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바쁘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어찌 보면 무례할 수도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양당 대표는 그 행동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국내를 넘어 세계 최고 기업의 수장. 그와 약속을 잡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게 현재 그들의 위치였다. 먼저 야당 대표가 말했다.
“올 말에 있을 대선 때문입니다.”
표정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필패다. 야당 대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정치적 중립을 공식 발표해주셨으면 합니다.”
승호가 바로 답해 주었다.
“중립 발표요? 시내소프트는 정치와 무관합니다.”
“하지만 국민 중에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마치 시내소프트를 현 정권이 키워 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승호가 입을 다문 채 야당 대표를 바라보았다.
“누가 누굴 키워요?”
그 말에 회의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여당 대표의 입이 씰룩거렸다. 올라가려는 입가를 겨우 내렸다. 그리고 박 서기관의 조언을 떠올렸다.
-굳이 좋은 말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가만히만 계셔도 본전은 찾으실 겁니다.
그렇기에 평소와 달리 입을 떼지 않았다. 그저 침묵을 지키며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었다. 야당 대표가 급히 말했다.
“하··· 하하.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국민들이 마치 시내소프트와 정권이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처럼.”
승호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그리고 기분이 나쁘다는 투로 말했다.
“모종의 관계요? 그럼 제가 지금 정권의 비호를 받아 사업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야당 대표가 한층 더 당황했다.
“아, 아니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그럴 때마다 여당 대표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아야 했다.
“이런 식의 말씀을 하실 거면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좀 있으면 유럽 연합 국가들과 협의가 있어 준비가 필요합니다.”
“아, 아니 강 대표님. 이렇게 그냥 가시면.”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만 알아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일어나 나가버렸다. 야당 대표는 황망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보았고, 여당 대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 대선은 아무 문제 없겠어.’
***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
굳어있는 승호를 보며 비서가 물었다.
“이야기가 잘 안 되셨습니까?”
“정치인들 하는 이야기가 항상 비슷하더군요.”
“하하, 네. 그들이야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불나방 같은 분들이니까요. 하는 말이야 항상 비슷할 겁니다.”
승호는 더는 관련 내용을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 화제를 돌렸다.
“유럽 연합과의 회의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습니까?”
“관련 발표 자료는 작성했습니다. 여기.”
비서가 들고 있던 태블릿을 넘겼다. 거기에는 기획실 직원들이 작성한 발표 자료가 저장되어 있었다.
-유로-원 코인 연동의 효과.
유럽 연합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일 통화인 유로와 연동하기 위해 시내소프트가 만들어낸 자료였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원 코인의 성과, 앞으로의 비전. 그리고 장, 단점들이 상세한 수치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자료를 읽어 나가던 승호가 물었다.
“스마트 시티에 관심 있는 나라는 몇 개국이었습니까?”
“독일을 비롯해 이스라엘, 폴란드 등 동유럽 쪽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면 그쪽 표를 먼저 공략해야겠군요. 스마트 시티 건설을 구실로 찬성해 달라고.”
“네. 이미 달러화와도 연동이 되기에 유로화 연동도 큰 문제가 없다면 진행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유로까지 연동이 되면 원 코인은 전 세계를 관통하는 단일 통화가 된다. ONE 폰을 들고 지구상 어디를 가도 결제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몇 가지 제약 사항들이 존재하지만 그건 차차 해결해 나가면 된다.
-결제.
그걸 실제로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때.
비서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연락을 받은 비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해킹 시도요?”
“방화벽이 뚫렸다는 말입니까?”
“유출된 정보는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데이터 센터가 해킹되었다고 합니다.”
“해킹이요?”
블랙워치.
그가 감옥에 들어간 이후 감히 시내소프트가 해킹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네. 다행히 본 서버가 아닌 미끼 서버가 뚫린 모양입니다.”
미끼 서버.
당시 블랙워치에 의해 본 서버가 해킹된 후 만들어 놓은 서버였다.
“블랙 워치 이후로 해킹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네. 아마 더 강력한 놈이 나타난 모양입니다.”
승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관제실로 갑시다.”
고개를 끄덕인 비서가 지시를 내렸고, 운전기사가 빠른 속도로 서울 도심을 질주했다.
***
전화를 받은 CIA 국장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해킹했어?”
-네. 방금 서버 정보를 입수해 분석 중입니다.
“역시 블랙워치 인가.”
-실력이 대단합니다. 작업을 시작한 지 삼 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ONE 서버를 해킹해 내다니. 이 실력이면 저희 로컬에 설치된 ONE도 해킹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이번 해킹 자료를 보고 검토해 보도록 하지. 로컬 ONE은 범인을 바로 특정할 수도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자료 확보되는 데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그래.“
전화를 끊은 CIA 국장이 보안 회선으로 연결된 전화기를 들었다. 그 전화가 연결된 곳은 백악관. 전화하자마자 비서실장이 전화를 받았다.
”성공했습니다.“
-그래요?
”네. 현재 확보된 자료를 분석 중입니다.
-수고했습니다. 바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네.”
CIA 국장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10년의 격차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뛰어난 정부 요원들이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의 뒤를 잇는 워싱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ONE을 이기는 것도 가능하리라. CIA 국장이 이를 악물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