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297)
탑 코더-297화(297/303)
297화 가보지 못한 곳
성남 서울공항에 중국 국적기가 한 대 내려다. 중국 주석이 극비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마중 나와 있는 청와대 인사는 없었다. 한국에서 나와 있는 건 외교부 장관. 그와 함께 주한 중국 대사가 하오란을 맞이했다. 그 조촐한 모습에 하오란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외교부 장관의 인사에 하오란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현 중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사상 초유의 중국 마이너스 성장.
-중국 GDP 전년 대비 -40%.
-최악의 경제 위기를 일으킨 ‘엔드’ 정말 중국을 ‘엔드’시키나.
-젊은 중국인들 사이. 탈중국 유행 중.
바로 어제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뉴스 때문이었다. 하오란이 주한 중국 대사를 보며 물었다.
“강 대표는?”
“근처에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또 이동해야 한다는 말인가?”
“네. 죄송합니다.”
하오란이 으득 이를 갈았다. 이 무슨 치욕이란 말인가. 하긴 공항에 내렸을 때 그가 없는 모습을 보고, 짐작하긴 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하오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한 중국 대사가 재빨리 요원들에게 지시했고, 바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한 곳은 근처 청와대에서 마련해 준 안가.
사실 서울공항에서 만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그때부터 하오란은 불길함이 엄습했다. 그 불길함은 승호를 보며 더 짙어졌다. 승호의 표정이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군.”
“네. 주석님.”
“공사가 공사다망하시다 들었네.”
“누군가가 자꾸 시내소프트를 해킹하는 통에 쉴 틈이 없습니다.”
날카로운 말에 하오란이 마른 침을 삼켰다. 오늘 만남의 결과가 결코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하하, 그 참. 공안국장은 그 사실이 밝혀진 순간 경질 했어. 과잉 충성을 하는 부하들 때문에 나도 참 곤욕스럽네.”
“저도요. 제 밑에 직원들이 중국을 해킹하려 하는 걸 겨우 말리고 있습니다. 지금 랜섬웨어로 감염된 이때가 기회라면 달려드는 통에.”
빠직.
하오란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하지만 그 거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하오란은 생각했다.
‘저 자세로만 나가서는 안 되겠어.’
하오란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강 대표. 이번 랜섬웨어 유포자가 시내소프트 일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수집되었어. 자네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야. 이렇게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서로가 불편하다는 걸 왜 모르나.”
하지만 승호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수집된 증거. 배포하고 정식 재판 절차 밟으면 되겠군요. 전 상관없습니다.”
으득.
하오란이 또 한 번 이를 갈았다.
‘이 개자식이.’
점점 화가나 참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감히 대중국의 주석인 자신을 상대로 저 뻣뻣한 태도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의 인내심도 이제 한계였다.
“강 대표. 자네 정말 끝까지 가볼 생각인가?”
승호의 대답은 단호했다.
“네.”
“이러면 자네에게 불릴 할 수 있어. 제공되었던 서비스 독점 권한에서부터 각종 혜택을 싹 없애고 다시 제로를 운행 정지시킬 수도 있어. 그러면 시내소프트 피해도 만만치 않을 걸세.”
승호는 어이가 없었다.
‘역시 중국인가.’
이미 한 약속도 서슴없이 깨다니. 생각이 맞는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생각대로 밀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하, 역시 양아치 본성은 어디 안 가는군요. 그러면 다른 기업들이 중국을 어찌 생각할지 생각 안 하십니까?”
“뭐, 뭐? 양아치 본성?”
“계약을 이렇게 밥 먹듯이 어기는 게 양아치 아니면 뭐겠습니까. 그리고 중국에서 주는 혜택을 없애겠다고 하셨습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
“아직 세상 물정 파악이 잘 안 된 모양인데 아프리카를 비롯해 인도, 인도네시아 등지의 개발이 착착 진행되면서 소비 수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제조 공장은 베트남에서 돌리면 되고요.”
하오란이 마른 침을 삼켰다. 승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더는 중국이 세계 생산의 거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초기 충격은 좀 있겠지만 금세 가시게 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승호가 말을 끊고 들어갔다.
“주석님. 말이 됩니다. 중국의 가장 큰 강점이 무엇이었습니까. 값싼 노동력으로 고품질, 저가격의 물품 생산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더는 그런 노동력을 필요치 않습니다. 스마트 팩토리에 ONE을 넣었더니 기존 인력에서 1/20 정도면 공장 하나가 돌아가더군요.”
하오란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승호가 하는 이야기는 정말 중국에 치명적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다른 지역으로 공장 이전을 하면 됩니다. 공장을 원하는 개발도상국은 많아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승호는 자문자답했다.
“제가 한번 상상해봤습니다. 중국의 공장이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 아프리카로 흘러가면 추후 중국이 그들과 반대의 위치에 서지 않을까? 지금까지 이룬 성장률은 전부 반납하게 되지 않을까.”
하오란의 머릿속에서도 미래 중국의 모습이 서서히 그려지고 있었다.
“그렇게 경제가 바닥을 치면 국민 불만은 하늘을 칠 테고, 어쩌면 독립을 요구하는 성주가 나타날지도 모르겠군요. 부유한 성의 성주 위주로요. 그런데 그거 막을 수 있겠습니까? 곧 군대를 유지할 돈도 없을 텐데요. 무슨 수로?”
하오란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승호의 말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중국은 철저히 일당 독재의 공포 정치로 인민을 통제해 왔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리면 공포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굶어 죽게 생겼는데 뭔들 못하겠는가. 군대도 마찬가지다. 유지할 돈이 있어야 군대를 유지할 수 있다. 그 점을 승호가 찌른 것이다.
“아직··· 쌓여 있는 자금은 충분하네.”
승호가 픽 헛웃음을 터트렸다.
“법인세를 내려 해도, 금융 시스템이 마비돼서 낼 수가 없습니다. 기업들이 행정 기관에 가서 일일이 내라는 말입니까? 소득세는 또 어떻습니까. 근로자들에게 월급 지급은요. 모든 게 다 전산으로 이루어집니다. 엔드로 인해 그게 망가졌어요.”
승호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주석님. 아직 현실이 어떤지 모르시는군요. 중국은 이제 멈출일만 남은 겁니다.”
하오란의 입가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이제는 분노를 넘어서 허탈함이 밀려왔다. 승호의 말대로라면 정말 중국은 망하는 길밖에 남지 않은 건가. 하지만 아직 한가지 동아줄이 남아있다.
“미국이 랜섬웨어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곧 완료될 거야.”
승호가 싸늘하게 물었다.
“그 6개월 버틸 자신 있으십니까?”
솔직히 말해 없었다. 서서히 분노는 사라지고 무기력이 남았다.
젠장.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고민해 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오란이 힘없이 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정말 이대로 해결해 주지 않겠다는 말인가?”
승호가 단호하게 답했다.
“네. 그럴 생각입니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하오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의 협의는 그렇게 불과 2시간도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
회사로 돌아가는 길.
차에 탄 비서가 물었다.
“대표님. 혹시 기존의 생각대로.”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끝까지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요.”
“하하, 그렇더군요. 화를 냈다가 회유를 했다가 사정을 했다가.”
“중국의 주석이 말입니까?”
“네. 그렇게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던 중국의 주석도 결국 한 명의 사람이더군요.”
“흠······.”
“그리고 이참에 중국 지사를 비롯해 공장까지 전부 철수시키세요. 동남아 쪽 소비 수준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으니 그쪽으로 옮기고요.”
“그러면··· 중국 체제 붕괴가 더 가속화될 수도 있습니다. 시내소프트가 철수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대표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 세계에서 시내소프트가 지니는 의미는 그저 한 기업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시내소프트의 지사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 나라의 성장성을 대변해주게 된 것이다.
이 나라는 성장한다.
시내소프트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런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이미 개발도상국에서 시내소프트 덕분에 한해 성장률이 10%를 넘어가는 국가가 속속 나타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외국 자본 유치도 쉬워지고, 나라는 발전하고 선순환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가 된다면.
그 나라는 발전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시내소프트가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될 테니까.
“네. 그러니까 더더욱 철수하겠다는 겁니다. 중국 주석이 그러더군요. 독점 서비스권을 철회하겠다고. 어차피 철수해야 할 사업이었습니다. 제로 유지보수 인력만 남기고 모조리 빼세요.”
비서가 마른 침을 삼키며 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다음날.
승호의 지시는 바로 시행되었다. 중국 내에 있던 시내소프트 지사가 하나둘씩 철수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마자 외국 자본이 바로 반응했다.
-시내소프트는 중국을 도와줄 생각이 없다.
그런 메시지가 전달된 것이다. 바로 상하이 종합지수는 급락했다. 개별 종목이 아닌 종합지수 자체가 하한가라 할 수 있는 10%가 폭락한 것이다. 화들짝 놀란 당국에서 바로 주식 거래 정지를 지시했다.
하지만.
그 지시는 바로 이행되지 않았다. 정지를 할 수 있는 서버가 랜섬웨어에 감염되어 버린 것이다.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중국 랜섬웨어 사태 심화. 폭동 조심.
-관영 언론. 문제없다. 시민들 반응 냉랭.
-여전한 언론 통제. 하오란의 리더쉽이 의심받고 있다.
그에 관한 사항을 세계 각국 언론들이 1면에 보도했다. 중국 경제가 그만큼 세계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붕괴를 점치는 전문가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 예견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그와 중에 또 하나의 기사 올라왔다.
-[단독]중국의 시내소프트 해킹 사실이 밝혀졌다.
시내소프트는 공식 배포 자료를 통해 중국의 시내소프트 해킹 에 대한 물적 증거를 제시했다. 이는 WTO 및 세계 각국에 제공되어 공증을 받을 예정이다. 만약 이 증거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중국의 대외 이미지는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며 현 주석인 하오란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상하이 종합 주가 지수는 폭락을 거듭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도 기업은 속출했고, 실업률은 20%를 기록하며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결국, 중국 당국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모라토리엄 즉 국가부도.
중국이라는 거대 나라가 부도 나버린 것이다.